성경 속 식물: 밀과 보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덩이의 빵(떡)은 모든 땀과 수고의 결정판이었다. 한 덩이의 빵을 먹기 위해 씨를 뿌리고 추수한 후 맷돌을 돌리고 빵을 굽는 수고를 거쳤기 때문이다. 빵을 만드는 ‘밀과 보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식이었으며 말 그대로 ‘일용할 양식’이었다. 성서 시대 유대인들은 그날 먹을 빵을 만들기 위해 그날 곡식을 맷돌로 갈았다. 방앗간이 없던 그 시대엔 집마다 맷돌이 있었다. 마을에 끊이지 않는 맷돌 돌리는 소리는 평화와 풍요를 상징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40년의 광야생활 끝에 가나안 땅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염려는 ‘내일에 대한 불안’이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셔야 하는가?” 광야 시대에는 하늘에서 매일 내려준 만나와 메추라기로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내일을 염려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란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광야의 시간을 보내는 우리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모세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땅의 소산물에 관해 이야기했다.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올리브)나무와 꿀(대추야자 나무 열매)의 소산지라.”(신 8:8) 성경은 만나가 그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소산물을 먹었다고 기록한다.(수 5:11)
지금 실직이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한 사람들에게 주님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다’고 말씀하신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마 6:31~34)
빈자의 양식, 보리떡
이탈리아 성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의 모자이크화 ‘오병이어’.
‘오병이어 기적’에 나오는 다섯 개의 보리떡은 지금도 유대인들이 즐겨 먹는 둥근 모양의 피타 빵이다. 현대는 주로 밀로 만든 빵을 먹지만 오병이어 기적에 사용된 떡은 보리떡이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요 6:9) “이에 거두니 보리 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요 6:13)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며,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생한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 행한 표적이다. 왜 하필 보리떡이었을까.
성서 시대 밀은 보리보다 두 배(왕하 7:1) 또는 세 배(계 6:6)나 비싼 곡물이었다. 보리는 거칠고 씹기 힘들어 평소엔 동물사료로 사용됐다.(왕상 4:28) 빵을 만들 때 주로 밀을 갈아서 만들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보리로 만들어 먹었다.(삿7:13, 겔4:12) 보리떡은 가난의 상징이며 가난한 자들의 양식이었다.
보리는 유월절이 있는 4월에 추수하고 밀은 이로부터 7주 뒤에 있는 칠칠절에 추수했다. 보리는 유다 광야가 인접한 산지에서 많이 재배됐다. 베들레헴도 비가 적게 오는 산지이므로 밀보다 보리가 많이 재배됐다. 구약성서 룻기에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온 룻이 이삭을 열심히 줍다가 보아스를 만난 이야기가 나온다.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니라.”(룻 2:23)
생명의 양식을 주소서
밀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곡물이며, 키부츠들은 기계를 이용해 대단위로 재배한다. 기드온의 고향 오브라와 삼손이 여우를 잡아 밀밭에 불을 지른 소렉 골짜기는 지금도 밀 경작지로 유명하다. 밀은 약간 습한 토질에서 잘 자라며, 팔레스틴에서는 청동기 초기부터 밀을 재배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천막 어귀에 앉아 있다가 지나가는 나그네를 초대해 사라에게 고운 밀가루로 빵을 굽게 한다. 아브라함의 지극한 손님 접대로 사라가 자식을 얻을 것이라는 축복을 받게 된다.(창 18:1~15) 이런 이유로 밀은 축복의 근원이 됐다.
예수님은 자신을 많은 열매를 위해 땅에 떨어져 죽은 한 알의 밀알에 비유했다.(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또 예수님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30배, 60배, 100배 결실을 낸다고 하셨다(마 13:3~8). 실제로 밀은 보통 한 알에서 평균 30배 수확하며, 옥토에서는 지금도 100배 수확도 올릴 수 있으니 결코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밀과 가라지 비유에도 나온다.(마 13:24~30)
주기도문에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에서 일용할 양식이란 ‘일상의 평안’ ‘일상의 행복’ 그리고 안정을 간절히 구하는 것이다. 또 그렇게 양식을 얻을 수 있는 육체적 건강과 힘을 달라는 기도이기도 하다.
주님은 광야의 시간을 견뎌낸 사람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신다. ‘마음이 가난한 자’란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의 도움으로써만 생존할 수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을 비워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인 되게 한 사람이다. 우리 자신에게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면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모든 것을 기대하게 된다.
우리는 하루가 지나면 썩을 만나를 위해 기도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요 6:35)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요 6:27)
이지현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34691
밀(wheat, grain, corn)
1. 용어
성경에 등장하는 보리나 밀은 현재 우리가 아는 밀과 다르지 않다. 지역마다 약간의 품종차이는 있지만 동일한 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밀의 히브리어는 '히타'와 '쿠세메트'가 있다. 헬라어로 시토스(σίτος,알곡)와 스포리모스(σποριμος, 밀밭)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학명은 Triticum aestivum 이다. 포아풀아과, 벼과, 벼목에 속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곡물이다. 소맥, 밀, 빵밀이라고도 한다. 탄수화물의 가장 많이 들어있다. 그 외도, 비타민, 무기질, 녹말, 단백질이 풍성하다. 저장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한 번 수확해 저장하면 최소 1년에서 수백년까지 저장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밀은 아열대지방에서 잘 자라지만, 전세계 어느 곳에서도 자생이 가능한 곡물이다. 팔레스타인 주변에서는 갈릴리 지역과 트랜스 요르단에서 주로 생산되었다. 밀과 보리, 귀리 등은 초겨울에 파종해 겨울을 지나 늦봄에 수확한다. 4월말이나 5월초가 되면 수확한다.
최근들어 밀싹은 강력한 항산화식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특히 몸안의 노폐물을 효과적으로 빼내는 엽록소가 풍부하다고 한다. 식이섬유와 효소는 장을 깨끗하게하고 몸안의 독소를 제거하는 디톡스효과를 가져온다.
밀은 기원을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되었다. 신석기 시대 고고학 유물에서도 밀은 발견된다. 애굽의 람세스 3세 벽화에도 밀로 빵을 만드는 요리사의 모습이 보인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밀 추수 풍경
밀을 추수하는 모습
2. 성경 속의 밀
유월절과 무교절이 시작되는 시기는 추수기의 시작이기도 하다. 무교절 안식일이 지난 첫날이 초실절이다. 초실절은 갈릴리 지방에서 재배되던 보릿단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리는 날이다. 밀보다 보리가 보름 정도 빠릴 수확되기 때문이다. 밀은 아직 익지 않은 상태이다. 초실절에 드리는 보릿단을 ‘오메르’라고 한다. 초실절로부터 49일이 지나 오순절이 되면 다시 곡식단을 하나님께 드린다. 이 때 드리는 곡식은 보리가 아닌 밀이다.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는 기드온(사사기 6장)
아마도 성경 속에서 밀에 대한 언급 중 가장 인상적인 곳은 기드온이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는 장면일 것이다. 하나님께 범죄 한 이스라엘은 미디안 연합 족속들에 의해 고통을 당하게 된다. 이때 하나님은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시기 위해 찾아 가신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이 두려워 포도주 틀에서 숨어 밀 타작을 하고 있다. 밀타작 시기는 그해 곡식을 완전히 추수한다는 의미이다. 만약 밀 추수를 완성하지 못하면 그해는 기아(飢餓)에 허덕이게 될 것이다. 기드온이 숨어서 밀 타작을 했던 이유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밀 추수와 합환채 사건
창세기 30:14에 의하면 밀을 거둘 때 레아의 장자 르우벤이 합환채를 구한 장면이 나온다. 합환채(Mandrakes)는 히브리어 '두다임'이며, 정력제로 알려져 있다. 가지과에 속하는 다년생 풀이다. 뿌리가 사람의 인삼처럼 사람의 하체를 닮았다하여 귀하게 여겼다. 5월 밀을 추수할 때 합환채도 캔다. 아마 매우 귀한 식물이었던지 라헬이 합환채와 야곱을 바꾸었다.
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이르되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니라. 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들어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 (창 30:14~16)
밀 추수기인 5월말은 합환채는 푸른 잎이 말라 누렇게 된다.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르우벤이 이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르우벤은 성적으로 매우 민감한 아이였음을 알 수 있다. 후에 르우벤이 빌하와 동침한 사건은 그의 장자권이 박탈되는 이유가 된다.(창 35:22)
밀 추수기와 남녀의 사랑
성경을 유심히 살펴보면 밀 추시기와 남녀의 사랑이 기묘하게 연결되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레아의 합환채 사건뿐 아니라 삼손이 밀을 벨 때 염소를 가지고 블레셋 아내를 찾아가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삿 15:1) 또한 룻기에서는 밀 타작 마당에 룻이 보아스를 찾아가는 장면도 보인다. 아가서에서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 속에 합환채가 등장한다.
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내고 우리의 문 앞에는 여러 가지 귀한 열매가 새 것, 묵은 것으로 마련되었구나. 내가 내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 둔 것이로다. (아가 7:13)
밀 추시기는 그동안 수고한 밀을 추수하는 시기인 동시에 사랑의 시기임이 분명하다. 아마도 풍성한 곡식을 얻음으로 인해 기쁨과 사랑이 가득했으리라 충분히 추측해 볼 수 있다.
밀 추수기(오순절)과 신약교회
사도행전 2장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밀을 추수하는 시기에 일어난 사건이다. 예수님은 종종 추수와 복음전도를 비유적으로 사용하곤 하신다.(마 9:37-38; 눅 10:2) 오순절은 성령의 강림을 통해 영적 추수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눅 10:2)
이스라엘에서 밀 추수는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어떤 면에서 올리브 수확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추수는 중요한 종교적 제의이자, 축제였고, 사랑의 시간이었다. 신약에서는 복음과 연결시켜 교회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비유로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