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주는 사람 / 허혜연 (경인지부)
화창하다는 것만으로 설레는 날이다. 약속한 장소로 햇살을 받으며 걸었다. 맞은편에 부부로 보이는 초로의 남녀가 오고 있어 자연스럽게 마주친다. 산책을 나온 듯하다. 깔끔한 차림의 여자에 비해 편한 복장의 남자는 걸음이 불안정해 보인다. 무표정한 남자와 온화한 표정의 여자, 둘 사이는 가깝다.
그들과 나와의 거리도 점점 가까워지는데 여자가 몸을 구부려 손가락으로 무언가 집어 올렸다. 내가 그녀 앞에 닿았을 때, 여자가 손을 불쑥 내민다. 네잎 클로버다. 고개를 숙이니 길가에 클로버가 초록빛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걸 받아도 되나요?” 묻는 내게 여자는 “네, 드리고 싶어서.” 라며 미소를 짓는다. 나는 뜻밖의 상황에 꽃다발만큼 벅찬 무게를 느끼며 네잎 클로버를 받았다. 옆에 있던 남자는 그런 여자의 행동에 익숙한 듯 무심하다. “고마워요.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나는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뭔가 빚진 것 같아 자리를 서둘러 떠났다.
우리가 토끼풀이라 부르기도 하는 클로버(clover)는 세 잎이다. 네잎 클로버는 일회성 기형이다. 실제로 자연에서 기형의 네잎 클로버가 되는 확률은 일만 분의 일이라 한다. 예부터 네잎 클로버는 행운을 가져온다고 전해져 일부러 찾는 사람도 많다. 나폴레옹이 네 잎 클로버를 보고 엎드려서 날아온 총알에 목숨을 건졌다는 것부터 네 잎 클로버에 얽힌 일화도 많다.
나도 학교 운동장 가장자리나 야외로 나갔을 때 한 번씩 눈이 아프도록 행운을 찾아보았다. 나중엔 어디를 봐도 푸릇한 네잎 클로버가 아롱거린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미신이긴 해도 그만큼 희소성이 있어 세 잎 속에서 발견했을 때 기쁜 일이다.
일시적으로 찾아오는 기쁨이 행운이 되길 바라는 희망이기도 하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코팅된 네잎 클로버를 팔기도 하는데 발견한 기쁨에 비할까. 네잎 클로버만 있는 화분도 나와 있어 수험생이나 생일을 맞은 이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행운을 바라는 마음은 복권에도 있다. 다양한 이름의 복권을 파는 곳에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올 행운을 기대하며 복권을 구입한다. 한 주간동안 당첨이 될 경우의 미래를 그려보며 기다린다. 일장춘몽일지라도, 1등이 몇 번 당첨되었다는 입간판이 놓인 복권 판매장은 오늘도 줄이 길다.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니 사은행사로 복권을 주었다. 받아만 두고 잊고 지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보면 그 흔한 천 원짜리 행운도 없다. 지인이 여행가서 재미로 나누자며 건네준 것도 꽝이다. 그런 요행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
행복을 애써 좆는 한/ 넌 행복에 이를 때가 되지 않았다./ 잃어버린 걸 안타까워하고/ 몇 가지 목표를 가진 채 안달하는 한/ 넌 평화가 무언지 아직은 모른다./ 모든 소망을 체념하고/ 목표도 욕망도 더는 알지 못하고/ 더 이상 행복을 여러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면/ 비로소 수많은 사건들이 더는 내 심장에 이르지 않는다./ 그리고 내 영혼은 쉴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행복>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소소한 행복으로 아쉬움을 달래야겠다.
복권을 구입 해 친구와 나누고 당첨되면 당첨금을 나누자고 하지만 나눈 경우도 있고, 그러지 않아 소송으로 간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행운과 불행의 간극이다. 전자는 행운이고 후자는 당첨되지 않았다면 우정이라도 유지하지 않았을까 싶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양쪽에 함께 매달린 흉악한 죄수 둘이 있었다. 하나는 자신의 죄를 알고 인정하지만 다른 하나는 예수님을 비난하며 원망과 불평을 했다. 뉘우치고 회개한 죄수에게 예수님이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 하셨다. 죽음의 순간에 구원을 받은 이런 것이야말로 행운의 확장 아닐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라는 성경 구절도 있다. 기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기부를 했는데 받는 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본인이 더 행복을 느껴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받은 이들이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을 주변에서 본다.
모임에 시간 맞춰 오는 것도 힘든데 간식과 차를 준비해 오는 분들을 보면 주는 행복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성경에 담긴 요지도 받은 사람이 다시 주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그 기쁨과 행복을 함께 누리라는 의미를 담았으리라.
작은 풀잎 하나로 행복한 하루를 선물 받은 기분이다. 나는 그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아쉬운 기회를 놓쳤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들은 지금 이만큼 걸을 수 있는 것도 행복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덕분에 나도 별일 없이 오늘에 이른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들이 건강을 회복하고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그녀가 내게 건네준 작은 풀잎 하나에 행복한 여운이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