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의 출생
조반니 바론치오
조반니 바론치오(Giovanni Baronzio)는 14세기 중엽 라벤나와 리미니에서 활약했던 이탈리아 화가이다.
그는 조토의 기법과 비잔틴의 색채를 결합시켰다.
그가 1330-40년경에 그린 <세례자 요한의 출생>은 루카복음 1장 57-66절이 그 배경이다.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루카 1,57-58)
출산에 지친 엘리사벳은 침대에 누워서 쉬고 있다. 엘리사벳은 믿음을 상징하는 흰 옷을 입고 흰 베일을 썼다.
그녀가 깔고 있는 침대보도 믿음을 상징하는 흰색이고, 그녀가 덮고 있는 이불은 사랑을 상징하는 붉은색이며,
그녀가 베고 있는 베개는 희망을 상징하는 녹색이다.
그녀는 믿음을 바탕으로 희망을 꿈꾸며 하느님의 사랑으로 온 몸을 덮었기 때문에
늙은 나이에도 세례자 요한을 낳을 수 있었다.
그녀의 머리에 있는 황금색 후광은 그녀가 성인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그녀가 낳은 아들 요한도 역시 후광으로 말미암아 성인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아기 요한은 예수님처럼 구유에 누워 있고 수의로 감겨 있다. 그 아기의 운명을 예견하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 임금에게 참수를 당했기 때문이다
아기 요한을 받아 안은 두 산파는 두려움에 휩싸여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궁금해 하고 있다.
그 여인의 베일과 옷 색깔이 믿음과 희망의 색이다.
그들은 메시아를 보내주시리라는 성경말씀을 믿었고, 메시아가 곧 오리라는 것을 희망했기 때문이다.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루카 1,59-63)
오른쪽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요한에게 할례를 베풀고 있다.
그들이 요한에게 할례를 베푸는 곳은 고딕성당 구조를 한 성전내부이다.
제의를 입은 사제는 칼을 들어 아기 요한의 표피를 자르고 있고,
벌거벗은 아기 요한은 고통을 호소하며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들이 아기의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즈카르야라고 부르려하자,
아기 어머니 엘리사벳이 아기의 이름을 요한으로 불러야 한다고 했고,
아기 아버지에게 사람들을 보내어 아기의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지 묻자,
즈카르야는 의자에 앉아 흰 두루마리에 ‘아기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쓰고 있다.
즈카르야가 하느님 앞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할 때,
주님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했고,
즈카르야가 천사에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하고 말하자, 천사는 믿지 못하는 즈카르야를 벙어리가 되게 했고,
즈카르야가 두루마리에 아기 이름을 쓰자,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엘리사벳의 방은 14세기 양식의 가구가 있는 부유한 집이다.
외경에 따르면 즈카르야는 부유한 제사장이었고,
그가 성전에서 어린 마리아를 맞은 대사제였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황금전설>에 따르면 성모마리아가 새로 태어난 아기 요한을 처음 안은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 작품에는 마리아가 등장하지 않는다.
[출처] 세례자 요한의 출생 - 조반니 바론치오|작성자 말씀과 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