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축구는 한국축구를 이루는 한 축이다. 과거에만 해도 좋은 대학을 나와 프로로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예전만큼 대학축구의 위상이 살아나지 않고 있다. 모든 건 변하고 영원한 건 없다. 대학축구의 역할에 대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더 나은 방향을 찾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진로를 빨리 찾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사회에 나가서 성공하는 것이 대세인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으로 거치는 과정들을 따라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축구선수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만 해도 초중고 그리고 대학을 거쳐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이 정석이었지만 이제는 최대한 빨리 프로로 나서는 것이 성공의 길로 여겨지고 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프로의 문을 두드리는 선수들이 많아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대학축구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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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이 떨어진 대학축구
2002 한일월드컵 멤버이자 현재 지도자로 승승장구 중인 홍명보(울산현대 감독), 황선홍(남자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둘 다 대학축구 출신이라는 것이다. 홍명보 감독은 고려대, 황선홍 감독은 건국대를 나왔다. 두 사람 말고도 과거에는 대학축구를 거쳐 스타 플레이어로 성공한 선수들이 적지 않다.
과거의 대학축구는 선망의 무대였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선수들은 좋은 축구부가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이 꿈이었다. 졸업하면 프로 진출은 대부분 보장됐다. 이 시기 대학축구가 한국축구에 미치는 영향력도 상당했다. 초중고를 거쳐 대학에 들어간 뒤 프로로 나가는 것은 일반적인 엘리트 코스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흐름이 바뀌고 있다. 프로 팀들이 모두 유스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자체적으로 유망주를 육성하기 시작했다. 또한 우선지명 제도를 적극 활용하면서 가능성 있는 선수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프로의 문을 두드릴 수 있게 됐다. 축구 선진국 유럽처럼 고등학교 축구 클럽 시스템이 전체적으로 활성화되면서 굳이 대학을 거쳐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대학을 간다고 해도 4년 내내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고학년이 되기 전에 프로에 입단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3, 4학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대학에 남아있는 선수들은 동기부여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부는 더 이상 축구를 계속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둔다.
손흥민(토트넘 홋스퍼FC), 이강인(파리 생제르맹FC) 등 현재 유럽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은 대학에 가지 않고 어릴 때 외국으로 나가 정착한 케이스다. 이들의 영향으로 다수의 유망주들은 재능이 있으면 빠르게 외국에 가거나 혹은 프로에 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현재 프로에서 뛰고 있는 20대 초반의 A 선수는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프로 직행을 1순위, 대학을 2순위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프로에 더 마음이 갈 수밖에 없었다. 22세 이하 의무출전 제도가 있고, 이왕이면 높은 레벨에 가서 경쟁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만약 대학에 가도 1~2년 안에는 무조건 프로를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프로에 오기가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대학축구 현장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가교 역할을 하던 대학축구가 점차 위상을 잃고 있는 것이다. 변석화 한국대학축구연맹 회장은 “대학 3, 4학년만 되어도 프로에 가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학업과 선수 생활을 모두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프로 22세 이하 의무 출전 제도 때문에 22세가 넘어가면 프로 팀에서 선수들을 스카우트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학 지도자, 선수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대학축구 상생협의회는 단계적으로 K3, 4리그의 저연령 출전제도를 조정하기로 했다
대학축구 역할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
바뀌고 있는 대학축구 흐름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들이 있다. 먼저 ‘대학이 늦게 꽃 피는 선수들을 위한 무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수마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극대화하는 시기가 다르다. 어떤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이지만 어떤 선수들은 한참 지나서야 가진 것을 보여준다. 숨겨진 재능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축구를 중도에 그만두는 것은 결과적으로 한국축구의 손해라는 것이다.
지난 10월 발표된 대학축구 상생협의회의저연령 출전제도 개선 협의 건은 이러한 문제들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다. 대한축구협회(KFA), 한국대학축구연맹, 프로축구연맹, 대학축구 지도자 협의회, 외부 인사 등이 참여해 수차례 의견 수렴과 토론을 거쳐 협의 내용을 도출했다. K리그1, 2(프로)의 22세 이하 의무출전 제도는 현행대로 유지하되 K3, 4리그(세미프로)의 21세 이하 의무출전 제도는 단계적으로 변화를 주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또한 구단의 우선지명 제도에서 선수에 대한 추가 보유기간을 3년에서 2년으로 단축하는 안도 추진된다.
K3, 4리그는 현재 전체 출전 명단 18명 중 21세 이하 선수들이 의무적으로 3명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이중 1명은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프로 B팀은 프로 B팀 운영 세칙을 따름). 하지만 이번 협의 결과에 따라 2024년에는 22세 이하 1명, 23세 이하 2명이 출전 명단에 오르도록 조정한다. 2025년에는 의무 출전 연령이 23세 이하 3명으로 바뀔 예정이다.
변석화 회장은 “K3, 4리그에서 의무 출전 연령이 23세 이하로 바뀌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졸업을 하고 나가게 된다. 일본의 사례를 살펴봐도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선수들이 사회에 나가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아직까지 아시아는 대학 졸업 여부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고 사회적 위치도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현장 지도자들은 어떨까? 박규선 한남대 감독은 “저연령 의무출전 제도 조정이 대학축구 현장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 학부모들이 입학 후 1~2년 안에 프로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대학에 와서도 선수나 지도자 모두 쫓길 수밖에 없다. 늦게 성장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이들이 일찌감치 포기해버려 안타까움을 느낀 적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실력이 되는 선수들이라면 일찍 프로에 가는 것이 맞지만 프로에 갔다가 적응을 못해 다시 대학에 오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실력이 있고 팀에서 필요로 한다면 당연히 프로에 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내가 볼 때 70% 이상은 연령 제한 때문에 쫓기듯이 프로로 간다. 이런 선수들은 대학에서 충분히 훈련을 하고 성장해 프로로 가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다른 생각도 존재한다. 일단 한국 연령별 대표팀이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원동력은 프로에서 진행 중인 22세 이하 의무출전 덕분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것만으로도 저연령 의무출전 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것이다.
또한 대학축구 상생협의회에서 도출한 내용이 수도권 일부 대학들에게만 도움이 될 것이며 당장 지방 대학팀들은 선수 수급을 하는 것조차 힘들기 때문에 크게 공감대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학부모들도 인터넷 카페 등에 회의적인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22세 이하 의무출전때문에 선수들이 축구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가정환경, 본인능력, 군대, 지도자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그만두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일부 고등 지도자들도 대학 지도자와는 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다.
대학은 유소년과 프로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보다 사회인을 육성하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대학, 프로를 거쳐 현재는 은퇴한 B씨는 “내가 선수로 뛸 때와 지금의 대학축구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이 축구 말고 제2의 삶을 살아야 하는 친구들을 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는 유소년 클럽 시스템이 지금보다 더 활성화되어야 하고 대학은 공부하고 싶은 선수들이 부담 없이 찾아가서 배울 수 있도록 문을 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규선 한남대 감독은 선수 기량 발전을 위해 지도자들도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노력 필요해
현대 사회에서 대학축구의 역할론을 정하는 것은 굉장히 예민한 문제다. 그래서 결론을 쉽게 내는 것이 어렵다. 오랜 기간 아마추어와 프로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온 대학축구가 쉽게 무너져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있고 이제는 세계적인 추세에 맞게 변화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옳고 그른 것은 없다. 모두 일리 있는 이야기다.
박종관 단국대 감독은 지난 7월 ONSIDE와의 인터뷰에서 “빨리 프로에 진출하는 것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지만 한국 축구의 구조만 봤을 때는 불안한 측면이 있다. 유럽처럼 하부리그가단단히 받쳐줘야 하는데 현재의 K3, 4리그는 적잖은 팀들이 생겼다가 없어진다. 대학축구가 무너지게 되면 극소수의 선수를 제외한 대부분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프로에 가는 것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매년 수많은 유망주들이 치열하게 경쟁한다. 성공한다면 다행이지만 오히려 실패를 맛볼 가능성이 더 크다. 박진섭(전북현대), 박지수(우한쓰리타운즈FC)처럼 하부리그를 거쳐 프로에 올라와 국가대표까지 한 사례도 있지만 사실 그리 많지 않다.
한정된 국내에서의 일자리를 두고 수많은 선수들이 힘든 경쟁을 해야 한다. 일부 대학은 이 상황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가려고 한다. 한양대가 좋은 예다. 한양대는 2014년 정재권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소속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해외로 보내고 있다. 서영재, 원두재, 김준영 등이 대표적이다. 정 감독은 대학 축구부 수도 많아지고 투자도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서 남들이 다 가는 길을 따라서 갈 것이 아니라 독창적인 노선을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차별화인 셈이다. 정재권 감독은 “올해도 졸업생 중 한 명을 홍콩으로 보냈다. 또 일본 2부리그에서 뛰다가 1부로 승격한 친구도 있다. 유럽에 갔다가 다시 돌아온 친구도 있는데 다시 도전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워낙 좁은 국내 시장만 바라보는 대신 한양대는 해외 진출로 선수들이 커리어를 계속 이어 나갈 수 있도록 꾸준히 돕고 있다.
또 정재권 감독은 “우리가 선수로 활동하던 시대와 현재는 환경, 조건들이 굉장히 많이 달라졌다. 옛날처럼 축구만 잘하면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교육부 방침도 이제는 선수가 운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와 운동을 같이 하면서 인격을 갖추는 사회인이 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모든 선수들을 다 성공시킬 수는 없겠지만 성장이 느린 선수들이 도태되지 않도록 대학에서 커리어 개발을 도와줄 필요도 있다. 선수들의 해외 진출은 커리어 개발의 일환”이라고 이야기했다.
대학축구가 자생력을 갖추고 여전히 한국축구의 한 부분이 되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노력도 중요하다. 은퇴 선수인 B씨는 “요즘 선수들은 우리 때와 생각이 다르다. 무작정 감독의 말의 순응을 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 시스템이 체계적이고 투명해야 따라오게 된다. 환경이 개선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지도자들이 스스로 변화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뒤따라야 한다. 일부 대학 지도자들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KFA나 프로연맹이 어떻게 해주기만 바라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박규선 감독은 “대학에서 선수들이 잘 성장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대학 지도자들도 현대 축구에 뒤쳐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있다. 배운 내용을 선수들에게 잘 가르치고 이끌어가는 것이 나를 포함한 대학 지도자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은 좋은 성적을 내는 것보다 선수들의 취업이 더 중요한데 이들이 취업을 할 수 있도록 개인 기량 향상에 도움을 줘야 한다. 성인 레벨에 가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도자들이 돕는다면 대학축구는 보는 시선도 긍정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권 감독은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 팀끼리 싸우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디비전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대학의 틀을 넘어서 좀더 다양한 선수들과 교류하고 수준에 맞게 계속 축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디비전 시스템으로 가게 되면 대학팀도 거기에 맞는 근육을 키워야 한다. 장기적으로 고민해볼 점”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나온 대학축구 역할에 대한 의견들은 모두 존중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개인보다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KFA를 포함한 축구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최선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 모두의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이 글은 KFA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12월호 ‘ISSUE’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안기희
사진=대한축구협회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