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방송 에세이(13)]
간절욱조조반도艮絶旭肇朝半島 / 김잠출
간절곶은 이 땅에서 새해 첫 햇빛의 은총을 입는 곳이다. 2023년 1월1일 울산 간절곶의 일출 시각은 7시32분으로 한반도 최초의 햇빛을 맞았다. 경북 영일만 호미곶은 이보다 2분 뒤였고 강원도 정동진은 6분 늦게 해가 떴다.
올해도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울산 간절곶으로 몰려들었다. 간절곶艮絶串은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12월31일 새천년 일출 맞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찾아 낸 명소다. 한국일보 김성우 고문이 칼럼에서 힌트를 줬고 울산광역시 울주군이 이를 재빠르게 낚아채 급하게 행사를 치렀다. 그 후 울산MBC가 주관을 맡으면서 ‘艮絶旭肇朝半島’라는 카피를 내걸었다. “간절곶에 해가 떠야 비로소 한반도의 아침이 시작된다.”는 말이다. 1902년 울산의 한 시인이 읍지에 기록한 것을 찾아 낸 것이다. 2000년 1월1일 울산 울주군 서생면의 대송리(간절갑등대) 일대의 일출시각은 7시31분이었다. 이것은 울릉도의 일출시각과 꼭 같았다. 우리나라 내륙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은 울산이었다.
당시 새 밀레니엄을 맞기 위해 온 세계가 떠들썩했지만 우리는 첫 일출의 땅도 마지막 일몰의 땅도 어디인지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해가 어디에서 언제 지고 어디에서 언제 뜨는지 무관심했고 그저 해는 서쪽으로만 지고 동쪽에서만 뜨는 줄 알고 있었다.
간절곶에는 1920년 3월 26일 처음 불빛을 밝힌 이래 100여 년을 한결같이 울산항 뱃길을 인도해오고 있는 간절곶 등대를 비롯해 기네스북에 등재된 높이 5m 무게 7톤의 ‘소망 우체통’과 1970년대 김상희가 부른 “내 이름은 경상도 울산 큰애기”라는 울산 큰애기 노래비가 있다. 포르투갈의 카보다호카 돌탑도 있다. 카보다호카는 유라시아 대륙의 끝이다. 대륙에서 마지막 해가 넘어가는 곳이니 간절곶과 절묘한 대칭을 이룬다. 포르투갈 리스본주 신트라시에 있는 곶串이다. 유럽 대륙 가장 서쪽 끝 지점 연안에 있어 마지막 해넘이를 상징하는 곳이다. “여기... 대륙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도다.”라는 포르투갈 국민 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서사시가 돌탑에 새겨져 있다.
간절곶의 ‘간절’은 먼 바다를 항해하는 어부들이 멀리서 이곳을 바라보면 꼭 간짓대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지금 사람들은 각자의 처지에서 가장 ‘간절함’을 담아 새해 소원을 빌고 있다.
아직은 섣달인 ‘어머니의 달력’
어머니의 달력은 아직 섣달에 머물러 있다. 새해가 밝은지 며칠 지났지만 평생 음력으로 절기를 쇠고 제사나 명절을 기억하던 어머니는 이달 22일이 되면 비로소 새해를 맞는다고 하실게다. 나도 그랬고 친구들도 모두 그랬다. 고향에서의 섣달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이었고 겨울 중에서 가장 춥고 긴 달이었다. 기억해 보니 어머니의 생신은 섣달 그믐날이어서 해마다 생일 챙기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요양원에서 계실 때 두어 번 생일 축하 외출을 한 기억뿐이니 무심한 아들이었음에 씻지 못할 불효를 고백한다.
음력 기준이라면 이번 달은 해오름달이다. 어릴 적 양력 새해 첫날은 양력 설, 또는 신정新正으로 부르며 그냥 그렇게 보냈다. 신정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본래 설날이었던 음력설을 깎아내리기 위해 '구정'으로 부르고 새해 첫날을 '신정'으로 했다는데 30대까지 아무 생각 없이 답습해 왔다.
1986년, 라디오 특집을 기획했다. 신정 구정 구별 말고 우리 설을 되찾아야 한다는 기획의도로 ‘100 명의 시민에게 물었습니다.’라는 제목을 내걸었다. 지금은 여론조사를 할 수 있겠지만 그 때는 그냥 길거리에서 계층별 연령별 직업별 사람들을 만나 백 명을 추려 내 의도에 맞는 내용만 방송했다. 요지는 '구정'이라는 단어는 음력설을 낡은 것으로 취급해 겨우 ‘민속의 날’이라고 부르니 그럴 바엔 ‘설날’이라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부르며 고개 들고 명절을 쇠어보자는 주장이었다.
어쨌든 이중과세니 세계 기준이니 하면서 없앴던 ‘설날’이 1989년 전통문화 복원 차원에서 3일 연휴로 부활하기는 했다. 1895년 을미개혁 때 도입된 양력 이후 94년 만에 이름과 실질이 같은 명실상부 설이 되었고 어머니의 달력도 완전히 복권되었다
방송의 호들갑
우리 방송은 새해만 되면 음력 예찬론자가 된다. 첫날부터 전국의 방송은 무슨 띠의 해인지 간지는 무슨 연도인지, 사주가 어떻고 24절기나 설날 등 명절이 어떻다며 호들갑을 떤다. 시도 때도 없고 앞뒤도 아귀도 하나 안 맞는다. 예전의 신정 구정 개념이 아직도 남아 있어 그런지 모르지만 띠나 간지, 명절은 양력 기준이 아니다. 음력인 줄 모르고 착각하고 있나 싶지만 방송인들이 그리 헛똑똑이는 아닐텐데 하여튼 수수께끼다. 대한민국의 달력과 표준 시간을 주관하는 국가기관인 한국천문연구원이 홈페이지의 월별음양력을 보면 음력 1월 1일이 새로운 간지의 시작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1444년 음력 1월 1일을 새 간지의 시작으로 정한 칠정산 이후 공식적으로 한 번도 바뀐 바 없다고 한다.
“계묘년을 축하한다.”는 신년 인사도 어색하다. 그냥 2023년 새해를 축하한다면 될 것을 음력 기준인 계묘년은 왜 들먹이는지 모르겠다. 대부분 신년사에 계묘년 토끼의 해를 축하하고 각종 포털사이트도 토끼 그림으로 장식이 되어있다. 대부분의 언론도 양력 1월 1일 새해 첫날을 계묘년 첫날이라 보도했다. 모든 생활이 양력 기준으로 이뤄지는 만큼 양력 기준으로 간지와 띠가 바뀐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어 그렇다지만 개운치는 않다. 음력을 안 쓰면 음력 기준의 띠나 간지도 쓸 필요가 없다. 정히 계묘년 토끼띠라고 말하고 싶으면 음력 기준의 설날까지 기다리면 된다. 그 때 가서 60갑자와 10간 12지를 떠들어도 늦지 않은데 말이다.
지역방송은 왜 필요할까
지금도 지역방송은 필요할까? 미래에도 지역방송은 존재할까? 지역방송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나올 때마다 홀로 삭이는 화두이다. 지역문화 창달과 발전, 계승이나 지역여론 형성을 위한 공적 기능을 강조하지만 공영방송 관련 법 논란 중에도 ‘지역방송’이란 개념이나 확실한 법적 지위, 개념은 외면당하고 있다. 지역공영방송의 이사나 경영진, 대표를 지역민이 선임하던지 지역 구성원의 의사가 반영되는지도 무관심 상태이다. 그 많은 법들 중에 지역방송법은 왜 따로 만들 수 없는지도 의문이다.
언젠가부터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잊혀져 가고 있는 지역방송. 그들은 지금까지 지역성을 제대로 구현했는지, 늘 재원 부족 타령만 해 온 것이 아닌지 반성해야 할 과제다. 겉으로는 지역성이니 지역문화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서울 본사를 통해 이윤을 추구해 오진 않았는지 지역방송 스스로 반성했으면 한다.
지역방송은 여전히 약자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지역 내에서는 아직 강자 행세를 하고 있다. 방송법에 지역방송은 어떠해야 한다는 분명한 기준이 없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총독(?)이 내려와도 환영 일색에 식민지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더 즐겨 왔다. 지역이 소외되고 지역문화를 무시하는 지역방송이라면 과연 존재이유는 무얼까. 시청자 권익과 소비자 권익을 위해 어떤 복무를 했는지 지역민들이 지금도 지역방송을 보고 싶어 하는지 자문해 보자.
답은 늘 정해져 있었다. 지역방송의 핵심은 “지역 밀착 콘텐츠”여야 한다고. 지역에 대한 밀착과 심층 취재, 지역민들의 삶의 이야기 등 지역 주민이 ‘내 방송 우리 방송’이라고 여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지역방송. 자리에 연연하여 정년까지 버티다가 나가는 인력구조, 경영과 투자의 문제도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시사나 토론 프로그램이 지역방송에선 자취를 감췄고 지역 아젠다를 외면하고 늘 서울 포맷이나 흉내 내다가 트렌드에 뒤처지는 지역방송. 전통음식이나 고향의 맛을 지역방송 콘텐츠의 금과옥조로 여기는 것도 수정해야 한다. 전국은 이제 반나절 문화권이다. 지역의 특산물, 향토음식을 꼭 현지에 가서 먹어야 한다는 강박은 착각이다. 고향음식이 최고라는 논설도 헛된 담론이 되고 있지 않은가.
지역 프로그램의 MC나 사회자를 보자. 이미 한물간 전성기가 지나 서울에선 소비되지 않는 올드 보이들, 그런 연예인과 리포터들이 대표 프로그램을 장악하고 있다. 벌써 수 십 년 전의 웃음코드나 과장된 리액션이 지역민들에게 먹혀들까? 과장된 지역 사투리는 또 어떤가. 사투리는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저절로 나와야 제 맛이다. 교양 없는 촌스러운 사람들의 언어마냥 소비되는 것은 분명 지역성을 왜곡하고 그 틀로 정형화하는 행태이다. 지역에 가면 아직도 그런 프로그램들이 지역방송사의 얼굴 역할을 해대니 참으로 한숨이 나온다.
기자와 취재원
2017년부터 2년 여 동안 내 출입처는 청와대 춘추관이었다. 청와대는 구중궁궐이라고 할 만큼 넓고도 깊었다. 그때 춘추관에 머물며 지낸 시간은 반쪽기자, 무늬만 청와대 출입기자였다. 지금의 대통령실도 그렇다고 한다. 대통령실을 출입한다고 해서 다 같은 기자가 아니다. 기자가 기자를 차별하고 무시할 뿐 아니라 언론사가 언론사를 선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운동장은 이미 기울었고 기득권과 카르텔이 엄청나게 작용하는 곳이 대통령실 출입처이다. 출입기자들의 단체 카톡방에 등록된 250명의 기자 중에 풀기자단이 200여명이고 비풀이라는 선 밖의 아웃사이더가 50여명 있다. 풀기자만이 진정한 대통령실 출입기자로 편의를 제공받고 취재를 한다고 보면 된다. 춘추관 시절에도 그랬다. 그러니 대통령 전용기를 타느냐 마느냐 하는 논쟁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실 출입기자단 자체의 민주화와 언론자유부터 확보해 보라.
개인적인 생각이자 경험이지만 대통령실과 MBC의 갈등이 시작됐을 때 출입기자단의 대응은 실망스러웠고 소극적이었다. 대통령실은 MBC가 왜곡·편파 보도를 반복해 온 데 대한 징벌이라며 대통령 전용기 탑승명단에서 제외했다. ‘언론자유에 대한 도전’이라는 항의에도 현재까지 둘의 접점은 보이지 않는다. 도어 스테핑도 중단 상태다. 대통령실이 별도의 인터넷 창구를 마련하는 중이라고 들었다. 대통령실과 MBC의 불화를 보는 전직 기자의 마음은 불편하고 꺼림칙했다. 기자는 누구인가? 취재원은 어떤 이들이며 둘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배움과 쌓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되짚어 봤다.
기자는 사회의 흐름과 맥락을 짚어내고 좋은 기삿거리를 찾아내야 한다. 양질의 다양한 취재원을 확보하는 것도 기자의 경쟁력 중 하나다. 모든 분야에 대해 조금은 알면서도 어떤 분야는 전문가 수준이 되어야 한다. 지역 기자는 지방자치나 분권에 대한 전문가가 되고, 적어도 지역의 역사는 전문가 못지않게 공부해둬야 한다.
기자는 아무나 만날 수 있고 무엇이든 물어볼 특권이 있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답을 강요할 권한은 없다. 취재원이 답을 말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기자의 능력이다. 감정을 담아 취재원을 대하거나 예의와 겸손을 잃은 질문은 해서도 안 되고 취재원을 강제할 권한은 어디에도 없다.
기자와 취재원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을 유지해야 한다. 너무 멀리도 너무 가까운 관계여서도 안된다. 특히 공인이거나 유명 인사인 취재원과 기자가 너무 밀착하면 기자는 홍보맨으로 추락해 더 이상 언론인이 아니다. 너무 멀어 접촉이 없으면 취재원 관리가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고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기자와 취재원, 참 어려운 관계이자 유지하기 쉽지 않은 관계다. 하지만 좋은 기자는 위의 룰을 대체로 잘 지킨다.
다시 읽는 동명일기
새해가 되면 늘 궁금한 것이 있다. “알고 나도 별 쓸모없는 실데 없는 일”이지만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며 소원을 비는 풍속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우리나라 문헌 어디에 기록이 남아 있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우리 고유의 풍속이 아니라면 정말 일본의 전통을 흉내내고 있는지 아직도 아리송하다.
어떤 이는 해돋이 소원 빌기는 일제강점기의 산물이거나 오래된 일본 풍속을 따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메이지明治 연간에 신도神道가 국가 종교로 자리 잡으면서 성행하였다는 것이 근거인데 제국주의의 욱일기나 일장기에는 유독 태양이 선명하게 보이긴 하다. 물론 정치적 함의를 갖다 붙일 필요는 없지만 알 건 알아야 직성이 풀리니 이것도 병인가 보다. 외딴 바닷가 마을이 해돋이 명소로 자리 잡는 것도 나쁘지 않고, 새해 첫날 아침 일찍 해돋이를 보며 새해의 다짐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긴 하다.
그럴 때 떠오른 것이 교과서에 실렸던 ‘동명일기’다.『의유당관북유람일기(意幽堂關北遊覽日記)』에 수록된 수필이다. 일출에 관한 수필로는 가장 기억에 남는 탁월한 작품이라 여긴다.
“행여 일출을 못 볼까 노심초사하여, 새도록 자지 못하고, 가끔 영재를 불러 사공(沙工)다려 물으라 하니, "내일은 일출을 쾌히 보시리라 한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이 허다하니 이 구절에 특히 공명이 컸다.
“이윽고 날이 밝으며 붉은 기운이 동편 길게 뻗쳤으니, 진홍 대단眞紅大緞 여러 필을 물 우희 펼친 듯, 만경창패 일시에 붉어 하늘에 자옥하고, 노하는 물결 소래 더욱 장하며, 홍전紅氈 같은 물빛이 황홀하여 수색水色이 조요照耀하니, 차마 끔찍하더라.” 동이 트는 장관을 이처럼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해돋이를 직접 본 사람은 모두 안다. 바다에서 해가 솟아오를 때의 광경이 얼마나 장관이며 동 트기 직전이 가장 붉다는 것을... 회오리 밤 같은 것이 수평선에 튀어오를 때면 주변의 붉은 빛은 더욱 붉어지고 함께 한 사람의 낯이며 옷이 다 붉어진다. 회오리밤만 한 것이 별안간 쟁반으로 바뀌고 수레바퀴로 변해가는 모습은 안 본 사람은 상상조차 어려운 신묘한 조화다. 해돋이를 보고 이렇게 묘사한 수필을 아직도 본 적이 없다면 과문한 탓일까. 등장인물들에 대한 심리묘사는 개성이 넘치고 심미적 관찰력이 드러나는 문장은 탁월하고 문체도 유려하고 세련되었다. 새해가 되면 늘 생각나는 명수필이다.
달력을 사용한지 2022번째 해가 사라지고 새해를 맞았다.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흔적이 없고 매듭 하나 남기지 않고 흐르건만 우리는 인위적으로 마디를 남기고 매듭을 지으려 한다. 그래봤자 한 번도 자의로 시간을 어찌하지 못했는데, 숫자만 바꿔가며 일월연을 만들고 세월을 재는 단위로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수목의 나이테年輪나 대나무의 마디竹節를 보고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도 그렇다. 60 갑자를 세며 띠를 짚듯이 60년 전과 120년 전을 되돌려 보는 습관이 있다.
1963년 제 3공화국이 수립되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제 5대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고 취임했다. 미국에선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해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삼양라면이 출시됐고 모나미 153볼펜이 생산을 시작했다. 그 해에 비틀즈는 첫 데뷔 앨범을 발매했고 일본의 애니메이션 아톰이 TV에 처음으로 방송됐다. 1903년엔 라이트 형제가 최초의 동력비행을 했고 미국 프로야구의 첫 월드시리즈가 보스턴에서 개막됐으니 120년 전의 일이다. 올해는 2023년. 12월이 지나 해가 바뀌면 그 때 또 우리는 2023개의 나이테를 새겼다고 자랑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