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랭의 성모
얀 반 에이크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75-1445)는 15세기 플랑드르 미술을 이끈
선구자로 유화기법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화가다.
그는 유화를 통해 선명한 색체, 빛과 음영의 놀라운 조화, 그리고 꼼꼼한 세부묘사를 창조할 수 있었다.
그가 1435년경에 그린 <롤랭의 성모>는 유화의 장점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롤랭의 성모>를 보면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 그림은 세속화인가, 아니면 종교화인가? 인물화인가, 아니면 풍경화인가?
이 그림을 그린 목적은 뭘까? 롤랭이 자신의 부와 신앙을 과시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진정 참회하며 자신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의뢰한 것일까?
이런 의문들을 풀기 위해서는 먼저 롤랭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아야한다.
니콜라 롤랭(Nicolas Rolin, 1376-1462)은 1376년경에 부르고뉴 오툉(Autun)에서 태어났다.
소시민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공국의 수도였던 디종에서 법률을 공부한 후 파리 고등법원에 진출했다.
그는 흔들림 없는 결단력과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과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20대 초반에 부르고뉴 공작인 장(Jean sans Peur)의 정책조언자로 떠오를 수 있었다.
1419년에 장 공작이 프랑스의 왕세자였던 샤를 7세에게 암살이 되고 난 뒤,
장의 아들 필리프 3세(Philipe le Bon)가 부르고뉴의 공작이 되었고,
롤랭은 1422년에 공국의 수상이 되어 무려 40여 년 동안 모든 분야를 통치했다.
정치 외교 수완이 뛰어났던 그는 부르고뉴 공국을
15세기 전반에 유럽에서 가장 힘 있고 부유한 나라로 만들었다.
그는 형제 나라인 프랑스를 배반하고 영국과 조약을 맺어 많은 영토를 얻기도 했고,
전세가 바뀌자 영국과의 협약을 깨뜨리고 1435년에 프랑스와 아라스(Aras) 협정을 맺어,
프랑스가 백년전쟁을 마무리하고 영국군을 몰아낼 수 있는 전환점도 마련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정치적 수완이 뛰어난 롤랭은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그는 여든 살이 넘도록 오래 살았고, 60년 동안이나 권력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대에 살았던 쟈크 두 끌레르크(Jacques du Clerque)는 롤랭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왕국에서 가장 현명하다고 명성이 높았으나, 영성에 대해서는 차라리 입을 다물겠다.”
또 부르고뉴의 연대기 저자인 조르주 샤틀랭(Georges Chastellain, 1405-1475)도 롤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대지가 영원토록 그의 소유물로 남을 것처럼 수확해 들였다.”
그런데 왜 부유하고 세속적인 롤랭이 제단화를 의뢰했을까?
미술사가 다나엔스(Elisabeth Dhanens)가 말한 것처럼 수상으로서 1435년 아라스 협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자신의 정치적, 외교적 역량을 기념하기 위해 제단화를 의뢰했을까?
이 제단화가 단지 롤랭의 위선과 허영의 도구였을까?
아니다. 적어도 이 제단화는 그의 영혼을 구하기 위한 구원의 도구였으리라.
그는 이 제단화를 아들인 장 롤랭이 주교로 있는
오툉교구의 샤텔 성모성당(Notre-Dame du Chatel)의 성 세바스티아노 경당에 봉헌했다.
그러니 그곳에서 미사를 드리는 사제와 신자들은 수상이었던 주교의 아버지를 기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 제단화에서는 롤랭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겸손함을 발견할 수 있다. 롤랭은 화려한 옷을 입고 있다.
그는 담비 털로 가장자리를 두른 금사의 다마스쿠스 산 모직 외투를 걸치고 있다.
푸른색 우단으로 된 방석과, 모서리에 술이 달린 붉은 보자기 위에 기도서가 펼쳐져 있다.
기도서에는 장식문자로 “D”가 크게 쓰여 있다. 이것은 성무일도의 시작기도인
“주님, 내 입술을 열어주소서.” 이거나, “하느님, 날 구하소서.”의 첫 글자일 것이다.
그는 수상으로서 바쁜 와중에도 입을 열어 주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의 구원을 갈망하며 성모자 앞에 무릎 꿇어 두 손 모아 기도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성모님을 응시하고 있다. 붉은 비단옷을 입은 성모님은 눈길을 아래로 보내고 있다.
그 시선이 머무는 곳이 아기 예수님이다.
그리고 푸른 옷을 입은 천사가 성모님에게 천상모후의 관을 씌우고 있다.
그러기에 하늘의 색인 푸른색과 사랑의 색인 붉은 색이 서로 만나 하느님의 사랑을 예수님께 청하는 것이다.
성모님은 사람들의 구원을 전구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아기 예수님은 십자가로 장식된 둥근 지구를 상징하는 보주를 들고 오른손을 들어 롤랭을 축복하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죄를 사하는 사제의 모습과 닮았다.
이로써 롤랭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게 될 것이다.
롤랭의 머리위에 있는 기둥주두에 표현된 조각의 주제가 모두 죄와 연관된 것도 재미있다.
조각의 첫 번째 이야기는 아담과 화와가 낙원에서 추방되는 장면이다.
인류의 첫 번째 죄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죄다.
두 번째 이야기는 카인이 아벨을 죽이는 장면이다. 인류의 두 번째 죄는 형제살육의 죄다.
세 번째 이야기는 노아가 술에 취해 알몸으로 누워 있는 것을 보고 함이 형제들에게 말하는 장면이다.
인류의 세 번째 죄는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죄다.
그것은 성모님 머리위에 있는 기둥주두에 표현된
멜키체덱이 아브라함에게 빵과 포도주를 바치는 장면과 대조를 이룬다.
빵과 포도주는 성찬식과 관련되고, 아브라함은 믿음의 선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원의 미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술 취한 노아와 멜키체덱의 빵과 포도주에서 공통된 것은 포도이고,
그것이 롤랭의 영지에서 재배되는 포도원과 연결되는 것도 놀랍기만 하다.
배경에는 테라스를 마주하고 있는 세 개의 아치가 보이고, 그 너머로는 강이 흐른다.
이것이 욘 강(Yonne River)이다.
롤랭 쪽으로는 포도원과 시골풍경이 보이고, 성모자 쪽으로는 대성당과 도시풍경이 보인다.
이 도시풍경은 천상 예루살렘을 묘사한 것이다. 그러기에 이 다리는 시골과 도시를 연결해 주는 것이요,
물질적인 지상세계와 정신적인 천상세계를 연결해 주는 것이며, 롤랭과 성모자를 이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림의 중앙에 다리가 놓여 있는 것이다. 이 다리가 몽트로 다리(Montereau Bridge)이다.
그런데 몽트로 다리 중간에 십자가가 하나 세워져 있다.
이것은 1419년에 샤를 7세 왕세자에게 암살당했던 장 공작의 죽음을 기념하는 탑이다.
이로써 부르고뉴 공국은 형제나라인 프랑스와 결별하고 영국과 조약을 맺은 것이다.
그러나 16년이 지난 뒤에 아라스 협정을 맺어 형제의 죄를 용서하고,
힘을 합쳐 영국군을 몰아내었기에 그를 기념하기 위해 이 다리를 중심에 그린 것이다.
그래서 욘 강은 이곳에서 센 강(Seine River)과 합쳐져 파리로 유유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풍경과 인물들을 연결해 주는 것이 담으로 둘러싸인 작은 정원이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 피어있고, 까치와 공작새가 유유히 거닐고 있다.
까치는 서민의 새이지만 공작은 재력과 권력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낸다.
그러나 공작은 영생과 부활도 상징한다. 그것이 롤랭 쪽 정원에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이것은 그가 영생을 갈망하는 사람이었음을 대변해 주는 것이다.
또 성모님 쪽 정원에 있는 꽃들은 성모님을 상징하는 꽃들로 가득하다. 백합은 순결을 상징한다.
가시 없는 장미는 원죄 없이 태어나신 성모를 상징한다.
아이리스는 성모의 슬픔과 고통을 상징한다. 그러나 작약 꽃은 성모의 꽃이 아니다.
작약은 이국적인 꽃으로, 희귀한 꽃을 자랑하는 부유한 귀족들의 과시용 꽃이다.
이렇게 그의 작은 정원에도 부유함과 신앙이 공존하고 있다.
인생의 끝자락에 있었던 롤랭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구원이다.
그런데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오 19,24)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는 노년에 재산을 팔아 선행의 공덕을 많이 쌓았다.
그는 샤텔 성모성당이 1450년에 참사회성당으로 격상될 때 많은 희사를 했고,
1443년에는 가난한 병자들을 돕기 위해 본에 자선병원(Hotel de Dieu)도 설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대신해서 많은 이들이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리라는 기대로 이 제단화를 성모님께 봉헌했다.
“지금도 영원히 성모자를 찬양하며 구원의 보증을 받고 싶어서.”
그런데 그림의 정중앙에 두 사람이 서 있다.
붉은색 옷을 입은 사람은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고,
푸른색 옷을 입은 사람은 지팡이를 들고 그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그림의 정중앙에 위치한 푸른색 옷을 입은 사람은 얀 반 에이크이다.
그의 옆모습이 자화상의 모습과 흡사하고
그의 의상이 아르놀피니 부부의 거울에 비추어진 모습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붉은색 옷을 입은 사람은 그의 형인 후베르트 반 에이크이다.
그들은 플랑드르의 사실주의를 이끈 화가들이다.
사실주의 회화란 열려 있는 창을 통해 보이는 외부 세계의 재현이다.
그래서 그들은 창밖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무슨 말을 했을까?
혹시, 예수님께서 벳사이다의 눈먼 이를 고치시며 물으셨던 말을 하지 않았을까?
“형, 무엇이 좀 보여?”
그런데 그의 형은 성벽 아래만 보고 있다. “창밖의 세상은 절벽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출처] 롤랭의 성모 - 얀 반 에이크|작성자 말씀과 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