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이 왜 이들을 납치했는지 알려면, 우선 탈레반에 대해 알아봐야 하다. 탈레반은 소련이 1980년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후, 1989년에 철수한 후 조성된 혼란기를 틈타 결성되었다. 소련 철수 후 아프가니스탄의 각 종족들과 군벌들은 서로 정치적 군사적 주도권을 잡고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다자구도의 내전에 돌입한다. 이는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극심한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을 의미했고, 당연히 누군가가 나타나 혼란을 바로 잡고 질서를 세워 주기를 바라는 심리도 일어났다.
이 때 나타난 집단이 탈레반이다. 탈레반은 탈리브(Talib)의 복수형으로 '학생들'이라는 의미이다. 정치단체이자, 종교무장투쟁단체에 '학생들'이라는 우스워 보이는 이름이 붙은 것은 탈레반을 주도한 이들 즉, 물라 오마르, 가우스, 모하메드 라바니 등이 탈레반 결성 당시 마드라사라고 부르는 이슬람 교육기관의 훈련생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마드라사는 이슬람교육기관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이슬람전사 양성기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탈레반은 출범초기부터 강력한 순니 이슬람율법주의를 들고 나왔기 때문에 대중들은 이들을 높은 수준의 종교적 순수성과 종교적 도덕성을 높이 샀고, 이러한 순수성과 도덕성, 그리고 무력을 동원하면 아프가니스탄을 혼란에서 건져내 질서를 수립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게다가 미국이 탈레반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중동에서 강력한 반미세력으로 떠오른 이란을 견제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란이 강경 시아파 이슬람 성향을 띠고 있기 때문에, 시아파와는 상극이라고 할 수 있는 순니 강경파인 탈레반은 이에 아주 적절해 보였다.
대중의 지지와 미국의 지원은 이들이 아프가니스탄 전체를 장악하고 집권세력으로 부상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94년에 집권한 후 911 직후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해 권좌에서 축출되기까지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면서 극단적인 율법통치와 대중의 원성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고, 국제사회도 이들과 등을 돌렸다.
이들의 통치스타일은 매우 엄격했을 뿐 아니라 잔인하고 시대착오적이었다. 모든 남자들은 수염을 기르게 했고, 이를 어기면 수염이 길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여성의 취학은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전면 금지되었고, 취업도 당연히 금지되었다. 결국 어느 직종에서도 여성을 찾아 볼 수 었었고, 이는 큰 비극을 낳았다. 여성 산부인과 의사가 없는데다 여성이 남성에게 신체의 일부를 보일 경우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율법적 분위기까지 겹쳐 많은 여성 환자들이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어갔다. 이는 산부인과가 아닌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였다. 절도범은 손과 발을 절단했고, 간음한 자는 돌로 쳐 죽였으며, 음주자는 태장을 쳤다, 외래 이교도 문화의 전래를 막는다며 TV, 비디오, 위성방송, 음악, 장기, 스포츠 등 모든 오락거리가 금지되었다.
이처럼 강력한 반미적 성향와 이슬람주의의 성향을 가진 집단이 탈레반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들이 (자신들의 관점에서는) 친미국가로 미국을 도와 파병하고 있는 한국에서 온 수십 명 규모의 기독교인 집단에게 매우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교회에서 파견한 단기봉사팀을 납치하고도 남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작년, 2006년에 있었던 평화행진 추진도 한국과 교회에 대한 적대감을 키우는데 한몫했다.
작년에 현지에서는 IACD라는 NGO의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는 선교단체인 인터콥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천 명 규모의 평화축제를 개최하려다가 아프간 정부와 외교부와 큰 마찰을 빚었던 적이 있다. IACD와 인터콥의 관계에 대해서는 IACD가 인터콥의 산하단체라는 이야기도 있고, 협력단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IACD의 사무총장과 인터콥의 본부장이 동일인인 것으로 보아 동일단체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세계 어느 나라 교회 치고 아프가니스탄의 복음화를 기도하며, 추진하지 않는 나라가 없겠지만, 아프간에 이처럼 기독교인들을 추천 명씩 입국시키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교회는 한국 교회밖에 없었으니 탈레반 입장에서 세계 모든 나라의 어느 교회 보다도 한국과 한국교회는 요주의 대상으로 그들의 뇌리에 각인했을 것이 틀림 없다.
여기에 하나 덧붙여 탈레반측은 이들의 움직임과 동선을 충분히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보인다. 그 근거는 운전기사의 진술에서 찾을 수 있다. 운전기사는 탈레반 측이 버스가 지나가는 길을 지키며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탈레반은 피랍자 일행의 인적구성도 파악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피랍자 23명 가운데 3명은 20명의 샘물교회 교인들을 가이드하던 현지활동 한국 NGO 요원이었는데, 이들 NGO 요원의 소속된 단체가 IACD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렇다면 작년에 대규모 평화행진을 추진하여 탈레반으로부터도 경계 대상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IACD가 샘물교회 팀의 활동에 간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에 어떤 식으로든 원인제공을 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다.
우선은 피랍자의 무사귀환이 최우선과제이다. 그러나 이후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을 방지하면서도 효율적인 봉사와 선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건설적인 반성과 복기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작년의 평화행진과, 인터콥(IACD)의 활동과 이번 사건 발생의 함수관계는 없는지 면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모든 선교활동과 봉사활동, 그리고 이에 참여하는 모든 단체와 교회가 윈-윈하면서도 안전까지 도모할 수 있는 전략개발에 나서야 할 것이다.
첫댓글 아멘..유익한 교육 자료 말씀 잘 읽고 가져갑니다. 어찌됐건 다른 나라들은 다 말로만 이곳에 복음을 떠들었는데 과감하게 현지로 날아가 사명을 감당하려했던 우리 선교사 한분한분께 진심어린 경의를 표하고 모쪼록 무사귀환하시기만을 기도합니다.
이번 탈레반의 한국인 피랍사건에 대한 많은 오해들을 이해하고 풀 수 있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