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라는 용어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다. 첫째, 사랑 또는 성교의 대상으로 동성만 좋아하는 사람을 뜻할 수도 있고, 둘째, 사랑 또는 성교의 대상으로 이성보다 동성을 더 좋아하는 사람을 뜻할 수도 있고, 셋째, 동성과 사랑 또는 자발적 성교(또는 성 충동)를 경험해 본 사람을 뜻할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두 번째 의미로 사용하겠다.
동성애자의 존재가 진화 생물학 또는 진화 심리학과 모순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동성과 주로 사랑에 빠지고 동성과 주로 성교를 하려는 사람은 잘 번식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동성애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진화 생물학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닐까? 동성애가 적어도 부분적으로 유전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가 많다. 도대체
동성애를 유발하는 유전자는 왜 자연 선택에 의해 사라지지 않았단 말인가?
수십 년 전에는 동성애자의 존재를 적응론적으로 해석하려는 학자들이 있었다. 개미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동성애자가 일개미와 비슷할지 모른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일개미는 직접 번식하는 대신
가까운 친족인 여왕 개미(어머니)와 차세대 여왕 개미(여동생) 등을 돌봄으로써 간접적으로 번식한다. 윌슨이 제시한 것은 인간 동성애자가 동생, 조카 등을 돌봄으로써
마찬가지로 간접적으로 번식하는 전략을 취한다는 가설이다. 하지만 이 가설은 거의 가망성이 없어 보인다. 성교나 연애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일개미와는 달리 동성애자는 동성과 나누는 성교 또는 사랑을 위해 엄청난 시간을
보내는 경향이 있다. 만약 간접적 번식이 목적이라면 뭐 하러 동성을 찾아 헤맨단 말인가?
남자 동성애자가 다른 남자의 질투를 피할 수 있다는 가설도 제시되었다. 남자
동성애자가 자신의 아내와 같이 있어도 남편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남의 배우자와 성교를 하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설사 남편이 방심한다고 하더라도 동성애자는 여자와의 성교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난점이 있다.
지금은 동성애자에 대한 적응 가설이 가망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진화 심리학자가 거의 없는 것 같다.
동성애자의 존재가 자연 선택 이론과 모순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연 선택이 항상 완벽하게 작동하는 심리 기제들을
어떤 조건 하에서도 만들어낸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하는 것 같다. 하지만 자연 선택이 어떤 환경에서도 항상
완벽하게 번식을 최대화하도록 작용하는 기제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첫째, 돌연변이는 계속 생긴다. 그리고
돌연변이 중 대다수는 번식에 해롭다. 번식에 해로운 돌연변이는 자연 선택에 의해 개체군 내에서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번식에 해로운 모든 돌연변이가 다 사라질 수는 없다. 왜냐하면 돌연변이는 계속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이 기형아가 태어나는
이유 중 하나다.
둘째, 진화한 환경과 매우 다른 환경에 처하면 잘 “설계”된
기제라 하더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극단적인 사례를 들자면, 물 속에서 진화한 물고기는 육지로 나오면 숨을 쉬지 못해서 죽는다. 물
속에서 잘 작동하는 아가미가 공기 중에서는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허파는 물 속에서는 쓸모가
없다. 그래서 포유 동물은 물 속에만 있으면 익사한다. 심지어
고래나 돌고래도 부상을 입어서 물 위로 떠오르지 못하면 익사한다.
어쩌면 과거 사냥-채집 사회에는 사실상 동성애자가 없었는데 문명으로
바뀐 환경 때문에 동성애자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나는 현존 사냥-채집
사회의 동성애자 비율에 대한 연구를 본 적이 없다.
셋째, 다면발현이라는 것이 있다.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가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유전자는 한편으로 그 유전자좌에 그 유전자가
하나만 있을 때에는 말라리아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유전자좌에 그 유전자가 두
개 있을 때에는 낫 모양(겸형) 적혈구 빈혈증을 일으킨다. 그 유전자가 심각한 빈혈을 일으킴에도 불구하고 개체군 내에서 어느 정도 비율로 유지되는 이유는 그 지역에 말라리아의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말라리아에 대한 저항이라는 이로운 효과 때문에 빈혈이라는 해로운 효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유전자가 개체군 내에서 어느 정도 일정한 비율로 유지된다.
동성애를 유발하는 유전자도 비슷한 이유 때문에 어느 정도 비율로 유지되는지도 모른다. 그 유전자가 사람을 똑똑하게 하거나 더 잘 생기게 하는 등 이로운 효과를 발휘한다면 동성애라는 해로운 효과(순전히 번식의 관점에서 해롭다는 뜻이다)가 있다 하더라도 개체군 내에서
어느 정도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에 비해 머리가 좋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것을 통계적으로
확실히 입증한다면 그런 가설이 좀 더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정신분열증 환자들 중에 천재가 많다는 통계도
있다. 정신분열증을 유발하는 유전자도 그런 이유 때문에 어느 정도의 비율로 유지되는지 모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자연 선택이 모든 경우에 번식을 위해 제대로
작동하는 기제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예컨대, 색맹, 정신분열증, 팔 없이 태어나는 사람 등이 존재한다. 흥미롭게도 “동성애를 진화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라고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들은 꽤 있지만 “색맹을 진화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라는
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만약 인구의 50% 이상이 동성애자라면 진화 심리학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다. 하지만 첫 번째 의미 또는 두 번째 의미의 동성애자는 인구의 1~4% 정도 밖에 안 된다. 정신분열증의 비율인 1% 정도보다는 훨씬 클지 모르지만 전체 인구에서 보면 작은 숫자일 뿐이다.
동물의 동성애에 대한 연구가 인간 동성애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암컷
갈매기가 수컷과 결혼을 하지 못할 때에는 암컷끼리 결혼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일종의 동성애인 것이다. 혼자서는 알을 부화시켜서 새끼를 키우는 것이 매우 어려운 갈매기와 같은 종에서는 동성간 결혼 전략이 암컷에게는
훌륭한 차선책으로 보인다. 갈매기 수컷이 아무 암컷에게나 정자는 쉽게 제공하겠지만 오랜 기간 동안 알과
새끼를 돌보는 노동은 아무에게나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갈매기의 사례에서는 동성애의
적응 가설이 가망성이 큰 것 같다. 하지만 동성 간 결혼을 하는 암컷 갈매기는 원래 수컷보다 암컷을
더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수컷을 얻지 못할 때 차선책으로 동성 간 결혼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첫 번째 의미 또는 두 번째 의미의 동성애자가 다른 동물에게서 관찰되었다는 보고를 본 적이 없다.
2011-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