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민간에서는 산머루를 강장제 및 보혈제로 먹으며 음위에도 쓰인다고 합니다. 열매를 말려 꿀에 잰 후 졸여서 머루정과를 만들어 복용하면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몸을 튼튼히 하며, 머루는 열매 이외에 잎과 줄기, 뿌리를 약으로 쓰는데 몸이 퉁퉁붓는 부종에는 줄기를 잘게 썰어서 차처럼 해서 조금씩 마시면 잘 낫습니다. 단독에는 뿌리를 짓찧어 바르며 옴이 번져 생긴 종기에는 뿌리를 말려 찧어서 가루로 만들어 꿀에 붙여도 좋으며 노인성좌골 신경통에는 머루나무의 줄기를 썰어 푹 삶은 후 욕탕에 넣고 이 물로 매일 목욕을 계속하면 대단한 효과가 있습니다.
약용으로는 옛부터 열매로 종창, 종화, 화장, 동상, 식욕촉진, 해독, 보혈, 폐질환, 유종안질, 무독증, 지갈, 이뇨, 두통, 요통, 두풍, 대하증, 양혈, 폐염, 폐결핵, 허약증 등에 널리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머루는 포도의 조상으로 10배 이상 농축 되어있어 효과가 매우 우수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포도의 원조"인 머루의 성분은 칼슘, 인, 철분, 회분들의 성분이 포도보다 10배 이상 성분이 높고 특히 항산화작용을 하는 안토시아닌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머루의 효과는 저혈압, 혈액순환, 부인병에 좋고 성장기 어린이 두뇌발달에 도움을 주며 머루의 신맛은 식욕촉진과 소화촉진을 돕는 알칼리성식품입니다. 또한 불면증, 변비, 피로회복, 숙취,피부 미용에 효능이 있으며 특히 초히근 학술에 탁월한 효능을 나타낸다고 조사되고 있습니다. 또 산머루는 칼슘, 인, 철분, 회분 및 안토시아닌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보혈강장 및 자양효과가 뛰어납니다.
>> 자동차
1. 서울 → 자유로 → 일산 → 문산 → 37번 국도 → 적성 삼거리 → 전곡방향 → 객현1리 2. 서울 → 통일로 1번국도 → 구파발 → 문산 → 37번 국도 → 적성 삼거리→전곡방향 → 객현1리 3. 의정부 → 3번 국도 → 덕정사거리(좌회전) → 316번 지방도 → 상수리(우회전) → 신산리 → 설마리 법륜사 → 적성 → 전곡방향 → 객현1리
>> 대중교통
1. 서울 → 문산(경의선 철도, 좌석버스 922번, 909번 이용) 2. 문산 → 적성/시외버스 1일 60회 운행, 50분 소요(92번 버스이용) 3. 적성 → 전곡(52번 버스 이용) 4. 서울(불광동) → 적성 / 불광동서부터미널발 06:00 → 22:30 (30번 버스 이용) 5. 의정부 → 적성 / 의정부에서 15
감악산은 옛부터 바위사이로 검은 빛과 푸른 빛이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 하여 감악(紺岳), 즉 감색 바위산이라 불렸다. 파주시 적성면에서는 어디서나 보이는데, 멀리서 보면 순해 보이지만 일단 정상(675m)에 올라 사방을 살펴보면 암봉과 낭떠러지가 도처에 널리 있고 부근에 높은 산이 없어 맑은날에는 개성의 송악산과 서울의 북한산, 동두천의 소요산이 보인다. 그래서 가평 화악산, 개성 송악산, 과천 관악산, 포천 운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의 하나로 손꼽혀 왔다고 한다.
정상에는 감악산비가 세워져 있고, 산중턱에는 길이 30m의 운계폭포가 있으며, 옛 운계사 터에는 1972년 건립된 범륜사가 있다. 설마리 쪽으로 하산하다 보면 1951년 4월 설마리 계곡에서 북한군과 교전 중에 전사한 영국군 글로스터셔 연대의 장병들을 기념하기 위한 영국군 전투비도 볼 수 있다.이 외에도 공릉, 영릉, 도라전망대, 보광사, 용미리석불입상, 임진각, 판문점 등이 가까워 등산객들의 발걸음을 잡는다.
향토유적 제 8호인 감악산비는 감악산 정상에 우뚝서 있는 비석으로 기단부, 비신, 개석을 갖춘 화강암 석비이다. 세월의 풍파에 씻겨진 비에는 전혀 글자가 확인되지 않고 있어 몰자비(沒字碑)라 부르기도 하고, 설인귀비, 빗돌대왕비 등으로 구전되고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 비에 대한 실체는 밝혀지지 않고 있어 속전에 의한 기록에만 의존할 뿐이다. 1982년 동국대학교 감악산 고비(古碑) 조사단에서 2차례에 걸쳐 이 비를 조사한 결과 그 형태가 북한산의 진흥왕 순수비와 흡사하고, 적성지역이 전략적 요지로서 진흥왕대에 영토확장 정책에 따라 세력이 미쳤던 곳이라는 점을 들어 제5의 진흥왕 순수비의 가능성을 제기 했으나, 그 역시 결론을 낼만한 확실한 증거는 발견되지 못했다. 또 한편에서는 진평왕비일 가능성을 제기하였으나 그 역시 결정적이지는 못하다. 앞으로도 이 비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운계폭포
감악산의 명소는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높이 20m를 조금 넘는 운계폭포이다. 거의 수직에 가깝게 떨어지는 이 폭포는 일명 비룡폭포·은계폭포라고도 불린다. 폭포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1972년 옛 운계 사터에 새로 지은 범륜사가 있다. 한편 산의 북쪽 객현리 쪽에서 올라오는 중턱에 충혼사라는 절 겸 사당이 있는데 이곳은 한국전쟁 때 희생된 이 지방 청년들의 넋을 기리는 곳이다. 하산시 설마리 쪽으로 내려오면 '영국군 전투비'를 볼수 있다. 이 전투비는 1951년 4월 22일부터 25일까지 설마리 계곡에서 북한군과 교전중에 전사한 영국군 글로스터셔 연대의 제1대대와 제170경 박격포대 장병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것이다.
가는길
광동-적성(직행) 적성터미널 하차후 의정부행 25번 버스를 타고 감악산 입구 영국군 참전비앞 하차후 산행 2시간 소요됨
임진각을 향해 자유로나 통일로 드라이브 코스로 50분 거리에 위치한 임진강폭포어장은 서울 근교의 음식 명소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3,000여평의 퍼팅전용 골프장과 각종놀이시설 및 체육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10m 높이의 쌍립인공폭포와 초대형 분수까지 조성되어 있어 도심 속의 자연휴식처로는 그만이다. 맑은 공기와 수려한 풍경 속에서 맛보는 송어, 향어회의 맛도 일품이다. 넓은 주차공간은 물론 다양한 어린이 놀이시설과 요리센터가 있어 가족단위 관광객이 많은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승용차 1. 통일로 또는 자유로∼문산∼파평(임진강폭포어장) 2. 의정부∼양주군 남면∼감악산∼적성면∼파평
분단의현장 비무장지대
조선시대에는 도로를 도성 내도로, 외방 도로로 나누고 이를 다시 대로, 중로, 소로로 구분했다. 대로는 지금의 국도에 해당하는 길로 총9개의 길이 있었는데 그중 제1로가 서울과 의주를 잇는 길로서, 광탄면 혜음령 고개를 넘어 분수원-신탁막-파주읍-선유4리를 거쳐 임진나루를 건너게 된다. 이 옛 국도는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이 의주 몽진길에 나섰던 유서 깊은 길이다.
(임진각관광지 DMZ광광사업소 Tel. : 031-954-0303)
임진각→제3땅굴→도라전망대→통일촌→대성동마을→판문점
임진각 임진각은 1992년에 조성된 관광지로, 6.25전쟁 유물 및 전적비가 전시되어 있고, 철마는 달리고싶다(경의선철도 중단점), 북한 실향민을 위한 망배단, 50여년 만에 개방된 자유의 다리와 한반도 모양의 통일연못, 평화의종 등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관광지로 매년 200만명의 내.외국인이 방문하고 있으며,DMZ관광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제 3 땅굴 총길이는 1,635m로서 남방 한계선까지 435m, 문산까지는 12km이고 서울까지의 거리는 52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1시간당 무장군인 1만명의 병력이동이 가능하다. 관광안내 : 031-954-0303 출입신청 : 임진각 관광지내에 있는 제3땅굴 사업소에 당일 신청가능
도라전망대 도라전망대는 DMZ안에 위치하며 북한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잇는 남측의 최북단 전망대이다. 이곳에서는 북한의 선전마을, 농토 등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고, 망원경으로는 일부 개성 시가지와 김일성 동상을 볼 수 있다.
통일촌 농산물 직판장 민통선 북방지역에 있는 마을로 가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또한 이들 주미니 복지 향상을 위해 건립된 농산물 직판장은 주벼에서 생산되는 각종 농산물을 직판하고 있으며 장단콩 순두부와 토속짙은 산채나물, 매운탕 등을 먹을수 있다.
대성동 마을 휴전선 남쪽 비무장지대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유의 마을'로 불리우며 43세대 224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헌법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병역, 납세의 의무가 면제되어 있다.
판문점 판문점은 서울에서 통일로를 따라 북으로 50km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이루어진 곳으로, 현재는 남북대화의 장소로 이용되며, 군사정전회담이 열리는 곳으로 세계적인 명소가 된 이곳은 국토분단의 비극과 동족간의 전쟁이라는 민족의 아픔을 되새기는 산교육장이기도 하다.
옛국도 1호선을 따라
조선시대에는 도로를 도성 내도로, 외방 도로로 나누고 이를 다시 대로, 중로, 소로로 구분했다. 대로는 지금의 국도에 해당하는 길로 총9개의 길이 있었는데 그중 제1로가 서울과 의주를 잇는 길로서, 광탄면 혜음령 고개를 넘어 분수원-신탁막-파주읍-선유4리를 거쳐 임진나루를 건너게 된다. 이 옛 국도는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이 의주 몽진길에 나섰던 유서 깊은 길이다.
혜음령→혜음원사지→용미리석불입상→임진나루터
혜음령고개 광탄면과 고양시 벽제등을 잇는 고개로써 낮은 고개(164m)이지만 저평한 주변지역에 비하면 지형이 험하고, 서울로 입성하는 마지막 큰 고개이기 때문에 일찍이 전략요충지로 인식되어 왔으며, 임진왜란때 이여송이 이곳에서 왜국과 싸워 패전하였다. (광탄면 용미리~고양시 고양동)
혜음원사지 고려시대 와의 남행을 위해 건립된 행궁이며,숙박의 기능을 갖춘 건물지이다. 경기도 기념물 제181호(광탄면 용미리 234-1)
용미리 석불입상 고려중기에 제작, 거대한 천연암벽에 우람하게 새겨져 있는 마애불상들은(높이 17.4m) 머리 위에 돌갓을 얹혀 놓아 토속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하며, 고려시대 지방화된 불상형식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있다.
보물 제93호(광탄면 용미리 산8)
임진나루터 과거 한양과 의주를 잇던 임진강의 포구로 주변에는 화석정이 있으며 이 일대의 겨이가 너무 아름다워 '임진강 8경'이라고 한다. (문산읍 임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