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수행의 향기] 고불총림 방장 수산스님 | ||||||
“사람들이 ‘인과’ 알면 세상은 시끄럽지 않아” | ||||||
새벽 5시 서울을 출발한 차는 아침 출근 시간 전에 전남 영광에 내려놓았다. 좀처럼 가기 힘든 오지(奧地)인데도 새벽부터 서두르면 회사 출근하듯 닿는 가까운 곳이 됐다. 아래로 물러났던 장마가 다시 몰려온다는 기상청 예보를 믿고 서둘렀는데 무더위는 전날보다 더 기승이다. 지난 6월29일 아침 불갑사에 주석중인 고불(古佛)총림 백양사 방장(方丈) 수산지종(壽山知宗)스님을 찾아뵙는 길은 그렇게 한달음에 시작됐다.
6월30일로 임기를 끝낸 김봉열 영광군수도 불갑사를 번창시킨 주역이다. 기독교 신자인 김 군수는 기독교도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 쓰고 마라난타가 해상을 통해 백제에 불교를 전한 ‘백제불교 초전지’ 성역화 불사를 완성시켰다. 만당스님과 김봉열 군수가 손잡고 이룬 쾌거다. 경내는 조용했다. 인기척조차 없이 고요하다. 조용히 불렀는데도 ‘큰스님’ 소리가 계곡 건너편 대웅전 까지 들릴 듯 했다. 조금 있다 안 쪽에서 ‘누구요’라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2년 만에 뵙는 스님이다. 그 모습 그대로다. 올해 우리 나이로 여든 다섯이다. 목소리는 힘이 있고 자세가 꼿꼿하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오랜 요가 수련과 직접 재배해서 만드는 차(茶)를 통해 많은 효험을 얻었을 것이다. 기자가 인사를 하는 동안 스님은 차를 준비했다. ‘건강해 보이십니다’라는 말에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요가를 하는데 이제 힘이 들어. 몸이 안 아픈 데가 없어”라고 말했다. 며칠 전 서울 동대문 밖 102살 된 한의사에게 갔는데 겉으로 볼 때는 ‘스님 참 건강하십니다’ 하더니 진맥을 짚어본 뒤에는 ‘몸 이끌고 다니는 것이 용하다’라며 놀라더란다. 스님은 “건강해보인다 하는 사람에게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 몸만큼 한 번 아파보라 한다’”며 웃었다. 선은 불교의 근본바탕
건강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차가 끓었다. 스님이 직접 만든 차는 한약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났다. 이름이 ‘전다’라고 했다. “냉한 사람은 온하게 만들고 열이 심한 사람은 내려주는 역할을 한다”며 “작설은 찬 것인데 차게 먹는 등 차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게 많다”고 일렀다. “약 드시고 병원에 가시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 왜 모두 내놓으시냐”고 묻자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돈이 무신 필요 있어” 하신다. “돈이 없으니 아예 돈 달라 기대하지를 않지, 돈 없으니 여기저기서 약이니 먹을 거니 갖다 주지. 돈 없으니 이렇게 편한데 내가 뭐하려고 돈을 가져.” 승가 사회도 돈 때문에 사제지간에 얼굴을 붉히거나 이연(離緣)하는 일이 가끔 일어난다. 돈 없으니 상좌가 기대도 않고 그래서 싸울 일이 없는데다 오히려 갖다 주더라는 스님 앞에 ‘나도 그렇더라’며 나설 사람 몇 명이나 있을까. 차를 마신 기자 일행에게 스님은 “부처님 말씀은 인과를 가장 중시한다”며 “사람들이 인과를 안다면 세상이 이렇게 시끄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건강이 나쁜 것도 불살생계를 어긴 과(果)를 받는 것”이라고 했다. 스님은 “살생을 하면 단명하는 업을 받거나 병고에 시달리다 죽는다. 남을 죽인 죄가 금생에 와서 나를 죽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과의 엄중함을 알고 바르게 살라는 가르침이다. 스님은 “올바른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올바른 인간 행을 행하다 올바르게 죽어야지 아집에 집착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올바르게 사는 것은 입적한 서옹스님이 생전에 주창하던 ‘참사람’이라는 것이 스님의 설명. “마음 씀씀이 인간답지 못하면 허물만 인간”“사람으로 태어나서 마음 씀씀이가 인간답지 못하면 허물만 인간일 뿐이다. 자기의 참인간이 되어야 한다. 마음이라는 것이 무슨 형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나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이 떠나면 그대로 송장이다. 그 주인공을 알려고 이 더운 여름날 두문불출하며 앉아서 참선공부하는 것이다.” 스님의 말씀은 계속됐다. “양심적으로 사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다. 부처님이 언제 나 믿으면 구원받는다 했나. 부처가 되라고 하셨다. 다 부처인데 오염돼서 모르는 것이다.” 스님의 말씀은 역시 ‘참사람’으로 모아졌다. 스님은 평소에도 “선은 불교의 근본바탕이며 그 목적은 무위진인(無爲眞人) 즉 ‘참사람’이 되는데 있다. 올바른 인간이 되면 세상 시끄러울 일이 없으니 늘 주인으로 살아야한다”는 말을 강조한다. 이는 스승인 서옹스님의 ‘참사람’에 따른 것이다. 서옹스님을 이어 방장에 취임한 뒤에도 “스승의 뒤를 따라 참사람 운동에 매진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스님이다. 스님은 얼마전 서옹스님 2주기를 맞아 백양사에 부도와 사리탑비를 제막하기도 했다. 스님은 “서옹스님은 빈부귀천, 분별심, 삼독심이 없는 것이 ‘무위’, 명예와 욕망이 떨어진 자리를 ‘참사람’이라고 하셨다. 결코 자기마음대로 하는 것이 참사람이 아니다”라며 “보지 않고, 말하지 않고, 듣지 않는 부처님에게서 ‘참사람’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스님은 세태에 대해서도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과학문명 물질문명만 추구하는 교육의 잘못을 지적한 스님은 “나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하는데 뭣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정치를 하다보니 사람들을 평안하게 못해준다”고 말했다. 얼마 전 끝난 지자체 선거를 두고 이르는 말인 듯 했다. 밖으로 나선 스님은 더 활기차 보였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서는데 한 스님이 찾아왔다. 불교신문에서 왔다는 말에 이 스님은 쑥스러운 듯 엷은 미소를 띠며 나직이 말했다. “우리 스님 천진불 그 자체입니다.” 그 말만 남기고 스님은 사라졌다. 스님의 등 뒤에다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말을 쓰려고 했습니다.” 영광=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사진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38년 수계…30여년 선원서 정진1922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스님은 1938년 백양사에서 만암스님을 계사로 법안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계했다. 백양사 강원 대교과를 마치고 정혜사에서 만공스님을 모시고 공부 했다. 백양사 운문암, 나주 다보사에서 인곡, 고암, 우화스님 등을 모시고 정진하는 등 출가 후 30여년을 제방 선원에서 참선 정진했다. 1975년부터 불갑사에 주석하고 있다. 백양사 주지, 중앙종회의원, 광주 정광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1986년 원로의원에 추대됐으며 2004년 서옹스님의 뒤를 이어 고불총림 방장을 맡고 있다. 새벽 3시에 일어나는 스님은 예불에 이어 만암스님에게 받은 ‘시심마’를 화두로 40분 가량 참선을 한다. 그 후 요가를 하고 아침은 죽을 먹는다. 낮에는 진입로 마을입구까지 행선(行禪)을 하고 손수 제조한 차를 마시며 찾아오는 이들에게 권하며 부처님 말씀을 들려준다. 늘 반복되는 생활이다. 최근에는 어느 스님이 사준 휴대전화를 사용한다. 몇 발자국 떨어져서도 상대방 목소리가 들릴 만큼 음량이 크다. 인터뷰 동안 두통의 전화가 왔는데 모두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 [불교신문 2244호/ 7월12일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