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PC선 등 발주 증가 기대되나 RG 한도 제한으로 올해 수주목표도 못 채워
침체기 축소된 한도 그대로 "대통령 지원 강조에도 실질적 논의 이뤄지지 않아"
케이조선 석유화학제품선(사진 왼쪽)과 대한조선 원유운반선(사진 오른쪽) 전경.ⓒ각사
러시아 정유제품에 대한 수입을 금지한 유럽이 중동, 아프리카 등 수입선 다변화에 나서면서 국내 중견 조선사들도 내년부터 석유화학제품선을 중심으로 수주가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침체기 당시 RG 한도를 축소한 국책은행이 이를 다시 늘리지 않으면서 중견 조선사들은 늘어나는 계약 문의에도 올해 수주목표조차 채우지 못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어 국내 조선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방안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HJ중공업, 케이조선, 대선조선, 대한조선 등 국내 중견 조선사들은 올해 총 25억3000만달러 규모의 선박을 수주한 것으로 집계됐다.
HJ중공업은 7700TEU급 컨테이너선과 합동양륙군수지원함 등 특수선을 수주했으며 대한조선도 8000TEU급 컨테이너선과 아프라막스 석유화학제품선, 수에즈막스 유조선 등을 수주했다.
케이조선은 석유화학제품선(PC, Product Tanker) 중심으로 수주에 나섰으며 대선조선은 피더 컨테이너선과 카페리(Ro-Pax) 등을 수주하는 성과를 거뒀다.
올해 글로벌 시장이 대형 컨테이너선과 LNG선 위주로 발주가 이뤄지면서 유조선, 벌크선 발주는 지난해보다 감소했으나 내년부터는 유조선 시황 개선 영향으로 중견 조선사들의 수주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Clarkson)은 내년 2월 러시아 정유제품에 대한 유럽의 금수조치가 시행되면 정유제품 운임이 10%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기존 러시아 의존도가 높았던 정유제품 수입을 미국, 중동, 아프리카 등으로 다변화한다는 계획이며 이에 따라 중동의 정유제품 수출은 오는 2024년까지 5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달 초 유조선 시장의 일평균 운임은 7만5000달러까지 올랐는데 이는 최근 30년간 상위 1%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클락슨은 리포트를 통해 "매우 강세를 보이고 있는 유조선 시장은 단기 전망도 긍정적"이라며 "이와 같은 시장 분위기는 향후 2~3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조선업계도 MR(Medium Range)탱커, LR2(Long Range2)탱커 등 석유화학제품선의 노후선박 비중 증가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노선 다변화·원거리화 영향으로 신조 발주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KHI그룹에 인수되며 한지붕 두가족이 된 케이조선과 대한조선은 유조선 시황 호조에 따라 선종별 수주에 집중함으로써 시너지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케이프사이즈 벌크선 강자였던 대한조선은 대형선 건조가 가능하다는 장점을 살려 아프라막스·수에즈막스 유조선 수주에 나서고 케이조선은 MR탱커, LR1·LR2탱커 등 석유화학제품선 시장 위주로 수주에 나설 계획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석유화학제품선과 피더 컨테이너선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는 대선조선은 기존 강점을 갖고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한진중공업 시절 특수선 전문 조선소로 변모했던 HJ중공업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상선 수주를 확대한다는 목표다.
하지만 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글로벌 조선 빅3가 올해 수주목표를 초과달성한 것과 달리 중견 조선사들은 대부분 올해 수주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며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책은행이 선수금환급보증(RG, Refund Guarantee) 한도를 지나치게 제한하면서 중견 조선사들의 수주 자체를 가로막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어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중견 조선사들에 대한 국책은행의 RG 한도는 지난 2016년 '수주절벽'으로 불릴 만큼 글로벌 조선경기가 극심한 침체를 겪을 당시 축소된 이후 다시 확대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한된 한도 내에서 RG를 발급 받기 위해서는 기존에 수주한 선박들을 인도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호황기에도 적극적인 수주에 나서는 것이 불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에 RG 한도 확대를 요청하면 산업은행은 금융위원회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금융위에서는 청와대가 결정해야 하는 문제라는 답변만 돌아오고 있다"며 "현재 대통령 뿐 아니라 전 대통령, 전전 대통령도 조선업 지원을 약속했으나 RG 한도는 전혀 확대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국책은행과 금융위의 주장대로라면 RG 한도 확대는 산경장 회의(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논의해야 하는데 이 회의에서는 조선업 지원에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라며 "말 뿐인 조선업 지원 약속이 반복되면서 실질적으로 선박 수주를 위한 지원방안이 마련되지 않아 답답한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주) EB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