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사람](2010.겨울호)강문숙 시-'받아들이다' 외1편
받아들이다
강 문 숙
‘꽃이 왔구나’
사과꽃 흐드러지게 필 때
어머니, 환하게 말씀 하신다
연분홍 치마도 없이
햇볕 시들고, 한 사흘 내리는 찬비에
제 목숨 다하여 피었던 꽃들
속절없이 떨어질 때
‘ 열매가 *조히 앉았구나’
어머니는 모든 걸 받아들인다.
꽃을 열매로 받아들이고
애물단지를 선물로 받아들인다.
받아들이는 마음은 결이 곱다.
‘꽃이 오다’ 라는 말의 여운이 고여
열매의 속살은, 마침내
부드럽고 향기롭게 익어간다.
*조히- ‘넉넉하게’‘많이’라는 뜻의 안동지방 사투리
춘양분교 안선생
강 문 숙
간밤에 큰 눈 내렸다.
텅 비었던 운동장은 목화솜 공장이다.
저 정도면, 이불 두어 채씩 지어
동네 처자들 다 시집보내고도 남겠다.
문 닫힌 교실 유리창에
폭죽처럼 피어나는 성에꽃.
몇 안남은 아이들
쌓인 눈 밟으며 뛰놀기에도 벅차
대처로 떠난지 오래다.
분교 운동장이 이렇게
꽉 들어찬 게 얼마만인지
수학선생 안 아무개 씨
산골 분교 외진 모퉁이처럼
오늘은 혼자 골똘하다.
해가 갈수록 큰 적막이 작은 고요를 이끌고
일가를 이루며 사는 곳이지만
저렇게 푸근하게 덮어줄 때도 있어
징한 오지학교 선생노릇도 나쁘지 않다.
<약력>
▲1991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1993 작가세계 <신인상> 당선
▲<시·열림> 동인
▲시집: <잠그는 것들의 방향은?>, <탁자 위의 사막>, <따뜻한 종이컵>, <보고 싶다>(사진공동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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