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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 ━━┃자유올림방┃ 스크랩 부산~구덕 운동장으로 마실오세여^^
별진 추천 0 조회 19 09.08.26 12:0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어릴적 부산 스포츠의 본거지 야구,축구 종합 운동장 부산의 모든경기가 열렷던곳 사직운동장이 생기전에는 롯떼 야구홈구장이엿으며 아시아드주경기장이 건설되기전까지 부산 아이파크의 홈구장이엿던 구덕운동장 부산의 스포츠역사을 간직한 그곳으로 어릴적생각을 떠올리면서 한번 가보앗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동대신동역에 내리서 5-10분정도 걸어 올라가니 구덕운동장이 나왔다

지하철에내려서 가는길은 쭉 한길이여서 구덕운동장을 바라보면서 걸을수있었다.

운동장은 종합운동장답게 웅장함을 들어 내보엿다.지금은 큰경기보단 고교 야구등 사회운동장의형식을 띠지만 아직 많은 시민들이 운동장을 찾고 있었다.운동장 정면엔 아마추어 야구단 아마추어 축구단들의 경기일정이 플랜카드의 흔날리고있고 운동장 주변으론 많은 시민들이 운동장을 돌면서 걷기 운동을 하고있었다 밤이 되면 이일대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공원을 형성한다고 한다.10여년전엔 스포츠구장으로 밤을 불야성을 만들고 지금도 시민운동장겸공원으로 그명성을 이어가는듯하다.나도 시민들을따라 운동장을 돌아보았다.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가 우연히 비석하나을 발견했다. 운동장의 왠비석?자세희읽어보니 이런글이엿다.

 

 

 

‘부산 항일학생의거의 터’ ‘노다이 사건’이라고도 불리 우는 항일 학생운동으로서 1940년 11월 23일 일본 장교 ‘노다이’의 지휘 아래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학생군사훈련 체육대회 과정에서 발생한 반일 운동의 하나이다. ‘제2회 경남학도전력증강 국방경기대회’ 란 이름으로 개최된 이 날 행사에서 노다이를 비롯한 일본 심판들이 일본인 학교의 우승을 위해 민족차별과 편파판정을 일삼았고, 이에 동래중학과 부산2상 등의 한국 학생들이 판정과 차별에 대한 분노를 폭발 시키며 항일의거 시위를 벌이게 되었다. 이 학생들의 주도한 시위는 당일 저녁 1000여명이 참가하는 시가행진으로 이어졌고 노다이 관사습격과 같은 무력행동으로 까지 확대되었다. 비록 이미 노다이는 도망을 가고 없는 상태였고 일본 경찰들의 진압으로 많은 학생들이 옥고를 치러야 했지만 부산 공설운동장에서부터 비롯된 이 날의 의거운동은 일제말기 부산지역의 항일의식 고취에 큰 역할을 했다.

알고보니 아픈 역사...마음을 추스르고 운동장 담벼락을 따라 걸었다. 한모퉁이을 도니 장터 같은것이 쭉 펼쳐져있었다 와우~이게 머지?하면서 가까이 가보니 골동품 미술품등등 예술장터을 만들어져있었다. 많은작품들 많은 골동품들이 즐비해있었구 이런곳도있구나~ 하면서 놀랐다 하나하나 살펴보니 그리 대단한것들은 아니지만 운동장 한켠에 이렇게 즐길거리가 이다는게 신기했다.

다시 운동장 정문으로 와서 출출한 배을 채울까해서 운동장 앞 신호등을 건너는데 기념판이랄까 동판이 하나보였다 “전차종점”이였다 여기는 1928년 9월부터 전차가 대청동을 거쳐 오는 선과 남포동을 거쳐 오는 선이 부용동 앞을 지나 운동장 정문 앞까지 운행되면서 운동장 앞이 전차종점 (현재의 대신문화맨션 자리)였다고한다 사실 어릴때 여기올때 택시을 타면 대신동 전차 종점이란말을 들은적있다. 본적은 없지만...

새삼 구덕운동장이 역사 박물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턱대고 운동경기만 보던 운동장이 이런 많은역사들은 간직하고있다니..오랜만에 들러본것이지만 많은생각을 하게 만든하루였다.

마지막으로 운동장을 검색해보니 이러하였다(부족한 글의 참고하세여^^)

구덕운동장이 위치하고 있는 곳에 처음으로 경기장이 들어선 때는 저 멀리 1920년대의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0년, 지금의 구덕운동장 부지에는 조그마한 동물원을 곁에 둔 공터가 위치하고 있었다. 마을 운동회라든지 모임의 장소로 활용되던 이 자리에 처음으로 경기장이 건립된 시기는 1928년 9월, 부산 공설운동장이란 이름으로 부산 최초의 규격화된 체육시설이 들어선 것이었다. 이로서 1800년대 말 급격한 개화와 함께 도입된 근대스포츠들이 부산에서도 본격적으로 행해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구덕운동장’이라는 이름은 1982년 1월 사직운동장 개장 때이다.

1982년 6월에는 야구장에 조명시설을 하였고, 그 후 1987년 5월에는 제16회 전국소년체전이, 1988년 10월에는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의 축구경기가 이 곳에서 열렸다.

2002년 11월 1일에는 체육관, 헬스장, 에어로빅장, 조깅트랙 등을 갖춘 ‘부산국민 체육센터’가 개장되어 이제 구덕운동장은 종합체육요람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소 촌스럽다고 느껴질 수 있는 경기장 외형과 조금은 허름해 보이는 부대시설들, 그리고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조그마한 야구장과 실내 체육관 건물에서는 구덕운동장이 겪어온 세월의 흔적들이 적지 않게 배어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은 80년에 가까운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

 

p/s:운동장앞은 학원가 형성되어있어 페스트푸드점,전문 식당,많은 요리집들이 즐비하였음

골라먹는 재미있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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