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멍
정현수
산책로로 이어지는 하천, 백로는 물 한가운데서 집착을 떠나 해탈의 경지에 이르듯 물멍을 하고 있다. 매서운 칼 추위가 물러가고 아직 여간 어설픔이 남아 있는 공원 산책로는 거슬리지 아니하고 감사하게도 나를 산뜻한 고독으로 이끈다. 정갈하게 숨을 쉬며 부는 얕은 바람은 이해와 사랑을 안고 나르듯 나에겐 더 없는 겨울 하늬바람이다. 깊이 들여다보고 명상, 고찰해야 할 가지가지의 아쉬움이 늘 나와 함께하는 듯한다. 그동안 숱한 기쁨, 슬픔은 어느덧 사라지고 멍한, 진정한 공감들에서 나를 멈추게 한다. 두려운 현실 속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신의 가르침과 선한 이의 통찰을 꿰뚫어 다시 한번 나를 다듬는 것 같다. 벤치에 앉아 물 안 백로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는 사이 멍한 상태로 돌입한다. 무아지경이고 그 순간은 더 없는 행복이었다. 뭔가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고 그 순간만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념 수양을 하듯 순수하게 정화되는 듯했다. 번뇌의 강한 어지러움은 사라지고 그냥 멍한 상태에서 고독과 함께 아무 생각 없이 자유로워진다.
길 아래 좁은 통로의 물길이 사뭇 거센 아픔이 일듯 빠르게 흐른다. 맑은 물이 굳이 깊은 이해를 바라지 않은 흐름인 듯 무심하고 빠르게 존재, 혹은 비존재의 두려움에서 흐르는 것 같다. 그곳에 쪼그려 앉아 내 안의 모든 일들의 소용돌이가 세차게 휘몰아치는 허무한 무의식 속으로 빠진다. 세상과 합의된 타협에서 얼마나 많은 거래를 하였는가를 생각하다 빠르게 흐르는 물멍에 다시 한번 빠진다. 저 흐르는 물이 다시 돌아오는 순환에 의문을 품는다. 빠르게 흐르는 물의 능동적 움직임은 어떤 변화를 안고 다시 구름이 될까? 그 안에서 억제되어 깔려 있을 본질에 익숙해 있는 다반사의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어떤 모호한 개념이 있을 수 있다. 삭막한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다. 또 비존재의 어둠 속에서 헤맬 수도 있다. 어떤 이가 말했다. '너희들이 짊어진 것들을 퇴색시키지 아니하고도, 절규하지 아니하고도, 모든 걸 감내할 수 있겠는가'
2023.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