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친구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그 사실을 딱 세 명에게만 알렸고
세 명의 입을 통해 수 백 명이 알게 되었는데
나는 인스타를 통해 발인이 다 끝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섭섭하지는 않았다.
그 친구의 56년 하고도 몇 개월의 시간 속에
얼마나 많은 인연들이 켜켜이 쌓였겠는가?
그런 사연들을 비집고 고작 1년 5개월의 인연으로
세 명 속에 끼지 못했다고 속상해 하는 건 좀 우습지 않은가?
어쨌건 7남매의 막내로 수 십년을 돌봐 온 엄마가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신 것이기에
그 속을 헤아리기가 어려워 한참 있다 얼굴 보러 갔다 왔다.
친구는 여느 때처럼 숙박 손님들 떠난 자리를 정리하다
따스한 햇살 비치는 마루 한쪽에 앉아 밥 한 술 뜨고 있었다.
"이불이 많네."
"응...내가 며칠 정신이 없었잖아. 빨래방을 벌써 두 번째 다녀오는 길이야.
밥 먹었어? 카레 했는데 같이 먹자."
"아냐, 막 먹고 왔어. 그래도 오늘은 해가 나와서 이렇게 앉아 먹어도 좋네."
"그려~~이런 날 마루에 앉아 해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계속 자리 옮겨다니는 것도 재밌어"
늘 하던 대화를 하며 안색을 살피다 어머니 장례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는 잘 보내드렸지? 요즘 내 시간에 빠져 통 살피지를 못했네."
"아이고, 됐다. 엄마는 잘 보내드렸다. 고마워~"
친구는 영정 사진으로 작년 봄에 꽃무늬 셔츠 입고 썬글라스 끼고 찍은 사진을 썼다고 했다.
어버이날 꽃무늬 셔츠를 사서 입히고 휠체어 태워 모시고 나들이 갔더랬다.
어머니는 아주 해사하게 함박 웃음 지으시며 사진도 많이 찍어 달라 하셨단다.
친구 썬글라스를 끼고 이런저런 미소를 지으시며 찍었던 사진을 나도 인스타를 통해 봤었다.
장례식장을 찾은 사람들 중 어머니를 직접 알고 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자식들의 지인이나 직장 동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고
친구의 경우 10년 동안 게스트하우스를 하며 만난 인연들이 아주 많이 왔더란다.
입에서 입을 통해 대빵 어머니 소천하셨다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서울에서 강원도에서 부산 등지에서 와서 이룬 조문행렬은 완전 기사감이었다.
이들 중 어머니를 직접 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냥 대빵 어머니니까 조문을 온 것이다.
이렇게 누구의 지인으로 장례식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꽃무늬 셔츠와 썬글라스의 영정 사진 속 어머니는
'아이고,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나를 보러 왔소?
고맙소. 정말 고맙소. 밥 많이 먹고 잘 놀고 쉬다 가시소.' 하지 않으셨을까?
나는 친구에게 꽃무늬 영정사진을 아주 많이 칭찬했다.
어머니 가시는 길도 편안하셨을 테고
찾아 준 사람들도 어머니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갈 수 있었을 테니.
내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접어들었을 때부터 부탁하고 있는 말이 있다.
'엄마가 죽으면 너희들이 볼 때 제일 예쁜 사진을 크게 뽑아서 걸고
하루만 나 가는 마지막 길을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거 먹고 좋은 이야기 하면서 그렇게 나를 기억해 줘.'
따라 오는 질문들이 있을 것이다.
'사고로 비참하게 죽어도 그럴 수 있을까?
자식들이 먼저 갈 수도 있는데 그런 부탁이 의미 있을까?'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너무 많은 것을 짐작하고 예측하면
세상에 아름다움이란 건 없겠지?
그저 아름다운 장례에 대해 내가 준비하는 마음이랄까?
첫댓글 생각해보니 나는 서둘러 엄마를 보내드린듯 해
수진이가 친구랑 나눈 대화가 난 왜 이렇게 슬픈지 흐르는 눈물을 멈출수가 없네 엄마라는 단어만 봐도 아직...
어머니와의 관계가 각별했구나.
가장 가까이에서 온갖 것을 함께 한 사람을 떠나보내기란 쉽지 않지...(토닥토닥)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잘 준비해야 할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죽고 싶은지...
아니지
나는 죽을 때
어떤 모습이고 싶은지....
요즘 은근히 속이 불편해
병원 검진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래...꼭 그러길...
잘 죽는게 꿈이야.
그것도 내 집에서 가족들과 인사하며 죽는거...
“딸들아, 이 엄마는 이제 죽는다. 잘들 살어... 꼴까닥“
준비는 하고 있지만 죽고 사는게 내 맘대로 되야 말이지...
여관 쥔장 맘이 많이 서운하고 허전하겠네.. 잘 위로해 드려.
수진아,
가장 놀기 좋은 계절 6월에 남도 일주일 살기하고 싶다. 놀기 위해 휴가도 아끼고, 카카오 26주 적금도 붇고 있다.
카카오 26주 적금이란 게 있어? 6개월짜리 적금이구나~~신박한데??
놀기 좋은 계절에 남도 일주살기...좋다!!
적금 타면 한턱 쏠거지?
모오~~라구우?
나한테 눈총을 쏠거라구우?
부르르~~
매일매일의 삶이 죽음에 한발짝식 다가가는것인데
두려워말고 하루하루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면서
잘즐기면 좋지않을까?
사선을 몇번왓다 갓다해보니 건강하게 웃으면서
지내다 즐겁게 가는것이 나는 행복이라 생각되더라구 오늘이 가장즐거운날 이거거등~~
모습은 항상 밝게웃음넘치는 화사한 것으로~~
죽음에 대비한다고 해서 하루를 최선을 다 하지 않는 건 아니지.
결국 내 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남은 사람들을 위한 의식이라고 생각해.
효정이야 늘 최선을 다해서 불철주야 에너지 뿜뿜하니~~^^
미진아 댓글을 쓸까 말까
혹시 쓰다 어두워지면 어쩌지?등등
처음 글을 읽으며 울엄마가 생각났어
조금만 더 사시지...
아직 못 다한 엄마사랑
아직 덜자란 자식성장
아직 난 덜받은 부모사랑..
이어지며 드는생각..
내가 늘 하는말이..
죽음이 무섭다기보단
남은사람들이 힘들게 하진 말아야할텐데
많이 긴시간동안 아프진 않게 관리해야 할텐데
뭐 ...뭐 기타등등
그치만 아직은 두려워 말자
나만 너만 하는 생각이 아닌듯해
그냥 우리답게 나이들고
우리답게 좀 즐기며 살아내보자
미진이는 오사랑
수진이는 닌자샘
당근인 미진사랑
아이 좋아
@오사랑 수진이도 사랑하거든~~ㅎㅎ
@오사랑 아앗 쳇나보다 수진이글이었네~~
유후~~
수진아 아이러브유 다ㅎㅎ
@토끼패는당근 강한 부정은 긍정
사랑사랑 내사랑 미진이지?
@오사랑 나 부정한거 엄는디?ㅎㅎ
@토끼패는당근 느낌적 느낌으로 부정하고 발을 빼는 것 같은 느낌?
이해해 이해해
당근이는 미진사랑
@오사랑 알아또~미진아 사랑해 ㅎㅎㅎ
@토끼패는당근 나도 알라뷰~
아이고~두 분의 주거니받거니 잘 봤어요~~~ㅎㅎ
당근아, 남은 사람들을 위해 힘들게 하지 말아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은 누구나 다 하는 거지만
그것이 참 내 생각과는 달라서 말야..
그냥 최선을 다해서 아름답게 살자...^^
삶과 죽음
잘 살고 있어야
잘 죽는거 아닐까
난 언제나 나의 장례식장은 잔칫날처럼
축제분위기였음 좋겠다고 생각했어
근데
아빠를 보내드리고
시할머니를 보내드리고
시아버님을 보내드리고
가까운 이웃들이 가는 모습을 보며
기쁘게 내일 다시 만날듯이 보내는것이
쉽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나를 다시 못보아 너무도 아쉽고 서운한 사람들이 조금은 있으면
하는 생각은 들어.
그러니 잘 살아야지
새벽부터 무겁당
워낙 정이 많은 미정이라 더 그랬을 거 같아.
결국 남은 자의 감정이고 몫인 거겠지?
새벽엔 무거웠지만 남은 시간은 가볍게~~~^^
나는 2002년 12월 노무현 대통령 당선되는 날 아버지 하늘나라 보내드리고,
2010년 비 많이 오는 7월에 어머니 천국 환송예배를 드리고
2018년 5월 장인어른 천국에 가시고,
이제 장모님 한분 남았는데...
못난 사위가 더욱 잘 해야 하는데 잘 안되네...
결혼과 동시에 부모님이 넷이었으나, 이제 모두 가시고
한분 남았네.. 더욱 더 잘 해야겠다...
사위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장모님껜 최고의 선물일 거야..
당장은, 엄마 아빠가 연세가 있으셔 남의 일 같지가 않아.
나의 장례식은 생각 못해보고 아들한테 엄마 죽으면
화장해서 산 위에서 몰래(이거 불법이거든) 뿌려달라고 아들한테 말했더니.
아들 밥먹다 비질비질 울면서(얘가 엄마 얘기만 나오면 잘 올어 ㅎ) 그러면 엄마 보고 싶을때 찾아갈 곳이 없다는 거야.
야 ㅅ꺄 ㅎ 있을때나 잘해 ㅎㅎ
난, 친정 엄마 아빠한테나 자주 가야겠어 ㅠ
그러게~~있을 때 잘 해! ㅎㅎ
부모님과 자주 대변하다보면 보내 드릴 땐 의외로 담담할 수 있을 거 같아.
적어도 나를 책망하는 무거운 슬픔은 덜 할 테니..
(네 분의 죽음)
첫 이별은 시할머니셨어~
날 진짜 예뻐하셨는데 노망이 드셨어
벽에 *바르는 것도 난 봤었고 아무데나 잠 잘자는 우리 가족들만 그 방에서 시할머니랑 잤었어
돌아가실때(응답하라1988처럼 똑같이 시댁마당에서 상을 치뤘고~)
첫 이별이라 3일 내내 너무 많이 울었고 그 충격이 몇 년동안 간 것 같아
그 다음 내가 모셨던 울아버지~6개월 진단 받았는데 1년 6개월 더 사셨어
약값으로 돈잔치 했을만큼 마음적, 물질적으로 원없이 해드렸는데 그 충격이 1년이 갔었어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시어머니는 결혼초부터 나만 찾아서 2주일에 한 번은 반찬 만들어 꼭 가서 놀아드렸어 (시댁에서 끝발없는 약자들만 맨날 나만 찾아 ㅠㅠ)
울엄마도 내가 모셨는데..세 분에 비해서 잘해드리지 못한 것 같아
못울겠더라고 죄송해서~
(우리 형제들이 너가 제일 잘해드렸다고 왜 자책하냐고 위로해줘서 3년 후에서야 펑펑 울었네
섬샘은 어르신들께도 이리 잘해서 복 많이 받을거야 ^^
@꽃보다 닌자쌤 글 읽으며 울컥해져서
울면서 넋두리가 나와 글 썼네~
꽃보다는 항상 덕으로 오는 말을 많이 해서
더 많은 복 많으며 살거야 ~
잘 하는 자식이 더 많이 자책하지...
잔정 많은 정희라 더 그랬을 거야.
어머니 잘 보내드리고
햇볕 좋은 곳에 앉아 밥을 먹는 친구..
이 장면에서 기어이 눈물이 흐르네.
이별의 아픔을 돌덩이처럼 마음에 두고
또 일상을 살아야지.
엄마를 잃은 세상은 어떨까?
요즘 우리 엄마도 기억력이 거의 분단위셔.
총명하셨던 분이셨는데....
계실 때 더 찾아뵈야지.
마루에 앉아 햇살 받을 때마다 엄마 생각하겠지?
꽃무늬 셔츠입고 썬글라스 낀 모습도 떠오를 테고...
엄마 자주 만나 좋은 시간 가지면 좋겠다..^^
삶을 잘 마무리 하는 것도 큰 축복인 것 같아
글을 읽으면서 우리 어머니 , 그리고 아직 멀었을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네
큰 충격 없는 평범한(?) 죽음을 맞이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잘 살고 있을 때 부재를 준비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생각해.
요즘 울엄마의 기도는 늘 자식들힘들지안케 자면서 돌아가시는거..
죽는얘기를 모 그렇게하냐고 타박하지만 80이훌쩍넘은 나이에는 죽음이 멀지안타는걸 늘 신경쓰이게찌
나도 수진이친구처럼 엄마의 제일 이뻤던사진 좀 찾아바야게따
누구나 한번은 죽는삶이지만 그죽음이란건 당할때마다 먹먹해지네 ㅡㅡ
살고 죽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닥칠 때마다 먹먹한 건 너무나 당연하지.
그래도 무겁지 않게 죽음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는 시간을 가진다는 건 너무 중요한 거 같아.
친정엄마..
잘해드린다 하는데도
우리집 오시면 불편해 하시는게
넘 맘 아프다 ㅎ
오빠가 살갑게 하지도 않는데도
거기가 편하시다네 ㅠㅠ
올해 초 에 동생들과 엄마 모시고 제주도에 다녀오는게 버킷리스트 ㅎ
친정 엄마의 아이러니지...ㅎ
버킷리스트, 꼭 이루길~~~^^
요즘 들어 부쩍 친정 엄마께서 당신 사후에 처리 할 일들을 하나하나 알려 주시는데...
속상하지만 미리 정리해 두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서 메모장에 입력해 놓고 있어.
당신이 가신 자리 깨끗하게 처리 하고 싶으신가 봐...ㅠㅠㅠ
쌀 20kg , 현금 삼십만 원을 성당 연도실에 기부해라.
사후 연미사 용으로 현금 육백만 원을 성당 사무실에 납부해라. 등등
사시는 그 날 까지 행복하게 사셨음 좋겠어.
작년 이맘 때 몇 장의 사진을 보내면서 저장해두라고 했더니 벌컥 하더라.
이렇게 새파란데 뭘 어쩌라고?? 하면서..ㅎㅎ
그렇지만 난 이런 게 준비라고 생각해.
어머님께서 준비를 잘 하고 계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