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제도와 설교단 바위 보고 바로 신청한 노르웨이 여행 ~
예전 캐나다 서부 여행 하고 계속 미뤄오던 북유럽 여행이었다
버스 타고 가서 대자연 쳐다보는 여행,
더 나이 들어 가도 되겠다 했는데
여행이 확 젊어져서 나왔다 ㅎ
지금 안가면 가기 어렵겠다는 위기감에 얼른 신청했죠 ㅋ
뭉크도 물론 커다란 유혹 ~~
한국은 찜통 더위에 신음하는데
시원한 곳 간다는 주위의 부러움 한껏 받으며 떠나왔다
카타르 항공 타고 와서 도하에서 환승
노르웨이 피요르
육지 깊이까지 바닷물이 들어와있다
오슬로 도착
현지가이드 클라라씨 만나 바로 일정에 들어간다
조각공뤈으로 ㅎ
정문
철제문도 작품
비겔란 조각 공원
Vigeland Sculpture Park
단일 작가의 작품으로 조성된 가장 큰 조각공원
작품 수가 212개에 달한다
노르웨이 국민 조각가 비겔란
뭉크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조각가
공원은 길게 이어진다
다리 위의 사람 조각들
주로 커가는 어린아이가 관심사다
솟구치는 생명력
애 먹이는 놈은 좀 때려야 ㅋ
아동 학대? ㅋ
다루기 힘든 사춘기 자녀
씨름을 합니다
사춘기 소녀
여기 사춘기 아이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모양 ㅎ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구르는 애기
한 성질하시네 ㅋ
손이 열이라도 부족한 육아 ㅎ
쭉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조각품들
저쪽에 분수랑 기둥이 보인다
바닥의 무늬는 미로
단 한 군데 나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데
잠깐 해보니 계속 막히네요
인생은 탈출이 어려운 덫?
청동 분수대
6명의 남자가 큰물쟁반을 받치고 있다
분수대 옆면에도 조각들 ~
현지 가이드 말로는 인생의 이야기하는 거라고
태어나서 살다가 죽고 ... 그리고 환생
늘 존겅하는 로사님, 율리님 자매께서 오셨다
건강하시고 맘은 아직 청춘 ~
나의 롤모델님과 한 컷
분수대 전겅
분수대 주위에 청동나무가 심겨져있다
속삭이는 두 젊은이
분수를 둘러싼 옆면 부조는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보는데
순환하는 인생을 이야기한다
귀엽구나 ...
어린 시절
죽음
그리고 죽음(해골) 후의 환생 ...
분수대를 지나면 이런 우뚝 솟은 석조 기둥이 나타난다
이 공원에서 가장 높은 곳
철재문 - 남성들
저기 뒷쪽 나가는 문에는 여성들이 새겨져있다
250톤 거대한 화강암으로 만들 조각기둥 Monolith
비겔란의 석고 작품을 석공들이 14년에 걸쳐 조
남녀노소 121명의 사람들이 서로 붙잡으며 엉켜있는 모습
행여 놓치면 추락 곧 죽음이죠
우리 인생이 그렇다는 거네요
계단 옆 조각들
모노리트 뒷쪽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는 구조
작품을 일직선상에 놓으면서 높이로 변화를 주었다
뒤쪽으로 나가는 철재문
여성들
룸메
다시 편안한 계단을 올라오면
Wheel of Life
4명의 어른과 3명의 아이가 엉겨있는 모습
마지막 조각입니다
절친 두 분
깁스 푼 지 얼마 안된다는 친구분,
힘드셨을텐데 그래도 내색 않으시고 끝까지 잘 다니셨다
호텔방에 가방 넣어 놓고
바로 산책 나간다고 내려왔다
모닥불이 피워져있는 동네로 왔네요 ㅎ
오슬로 중앙역 통과하여 걸어가니
금방 피오르로 나온다
물에 떠있는 듯한 오페라 하우스
1층
2층
2층 옥성
운동장처럼 넓은 옥상
주변 신도시의 근사한 건축물들이 보인다
왼쪽 건물은 국립 도서관
건너 보이는 뭉크 미술관
1963년 뭉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뭉크 미술관이 문을 열었는데
전시 공간이 좁아 여기에 다시 지어 옮겨왔다
21년 10월에 오픈
앞으로 고개를 숙이고 절하는 모습
환겅을 생각하는 그런 건물이라 했는데 왠지 투박한 느낔
저녁
2층에서 내려다 보는 아래
오슬로 피요르의 석양
뭉크 Scream의 석양에는 한참 못미치지만 ㅎ
그새 오페라하우스 안에 불이 들어왔다
내부 모습
펌
펌
다시 역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 호텔로 간다
우리가 묵을 레디송 호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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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오슬로의 번화가 카를 요한 (칼 요한슨) 거리로 왔다
왕궁으로 부터 중앙역까지 1.3키로 거리
왕궁을 지은 왕의 이름을 땄다
노르웨이 대학교
법학부 건물
대학 건물 앞 동상은 뭉크 삼촌
좋은 집안이었네
가이드님이 어느 가게를 기리키며
노르웨이는 맥주만 마트에서 살 수 있고
그 외 술은 저런 가게에서만 살 수 있다고 한다
그것도 주말에는 안되고.. 어쨌든 술 안 권하는 사회
나중 들은 얘기지만
여기선 파티에 술은 준비하지 않고 (너무 비싸니까 ㅎ)
각자 자기 술을 들고 와서 마시고는 남으면 도로 가져가는 술문화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랑은 한참 달라 신선하기까지 ㅎ
카를 요한 거리
이 거리를 그린 뭉크의 그림도 여러 점 있다
'저녁 때의 카를 요한 거리 '
'카를 요한의 봄날 거리' ...
그랜드 호텔
매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이 이 호텔에 북으며 연회를 여는 곳
1층 코너의 저 그랜드 카페는
극작가 핸리크 입센이 자주 애용했던 곳
뭉크는 거기에 앉은 입센도 그렸다
호텔 건너편
국회 의사당 앞 공원
노르웨이 초대 수상
국회 의사당
이곳에서 매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선정한다고 한다
분수 공원
오슬로 국립극장
1899년 문을 열였다
1899년에 지어진 건물이며 연극 공연을 위한 극장이다.
건물 앞에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극작가 입센(Ibsen)과
비에른손(Bjørnson,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동상이 서 있다.
왼쪽이 입센, 오른쪽이 뵈른손
극장 오른쪽의 뵈르손
노르웨이 국가의 작사가
1903년 노벨 문학상 수상
비에른손(Bjørnstjerne Martinus Bjørnson, 1832년 12월 8일 ~ 1910년 4월 26일)은 노르웨이의 소설가, 극작가이다.
대학 시절에 이미 신문에 극평 등을 발표하였고, 희곡을 써서 이름을 날렸다.
노르웨이의 연극을 덴마크의 영향으로부터 해방할 것을 주장하였고,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힘썼다.
1903년 북유럽 가요의 연구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작품으로 소설 《아르네》, 희곡 《파산》, 《왕》 등이 있으며, 노르웨이의 국가를 작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펌
오슬로 시청
시상식에 참석한 노르웨이 국왕 가족
노벨은 스웨덴 사람이었지만
무슨 뜻인지 평화상만은 노르웨이가 주도록 한 그의 유언 때문에
해마다 여기서 노벨 평화상이 주어진다
중앙홀은 아름다운 벽화가 가득하다
Oslo City Hall was designed by Arnstein Arneberg and Magnus Poulsson,
showing the Grand Hall with paintings by Alf Rolfsen and Henrik Sörensen.
More than 1,850 square metres of murals celebrate aspects of Norwegian society.
The Nobel Peace Prize is awarded here.
김대중 대통령 수상 때 꿈나무로 따라 왔던 조카 생각에 더 감회가 깊었던 곳
Henrik Sørensen's decoration in the Oslo City Hall
'행정부와 축제'
정면의 이 그림은
이번에 노르웨이 가서 알게 된 노르웨이 화가 헨릭 쇠렌센( Henrik Sarensen) 의 그림
세계 최대의 유화 벽화라 한다
푸른 색의 1단은 혁명과 1624년의 대화재,
2단은 사회생활,
3 ~ 4단은 결혼과 행복한 가정생활 / 왕의 귀환 (오른쪽 말을 탄 인물)
국민들의 유토피아적 삶울 그렸다
결혼식도 한다는 2층 공간으로 올라가는 계단
거기 뭉크의 방이 있다는데 오늘 못올라간다네요
뭉크의 방
조촐한 결혼식장으로 쓰인다
생명 life 1910
2층에 있는 '뭉크의 방'은 오슬로 시청사의 가장 작은 응접실이며.
오슬로 시민들이 결혼서약을 많이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가운데에 삶을 뜻하는 큰 나무(생명수?)가 있도 그 양쪽으로 젊은 남자와 노인이 있다
오슬로 시청사 그랜드홀 부조
북유럽 신화의 나무 - - 세계수(생명수)를 새겼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고 생명의 근원
북유럽 신화는 이 땅에 기독교가 전래되면서 거의 없어졌는데
기독교 왕의 억압을 피해 아이슬란드로 건너가 정착한 사람들에 의해 일부가 살아남았다 한다
노르웨이는 그 신화의 전통을 살리려고 애쓰고 있는 듯
나로서는 전혀 문외한인 북유럽 신화 ~
'행정부와 축제' 아래 공간
양쪽으로 그림이 있다
창 밖으로 펼쳐지는 피요르
오슬로 항 (= 토르 항)
양손으로 아이 손을 잡고 있는 엄마 동상
가족이 최고의 가치인 이 곳
오른쪽 그림
가정을 그리고 있다
detail
왼쪽 그림
사회를 그리고 있다
detail
Norway's social progress and women's rights are illustrated in Reidar Aulie’s painting
The Labor Movement’s Development in Oslo.
중앙홀 들어와서 왼쪽 벽화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점령으로 고통받던 상황을 그린 것이라 한다.
잊지말자 외세 침입 ~!
the Nazi Occupation
detail (윗 사진 오른쪽 코너)
Celebration of freedom
노르웨이의 사회주의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그림들이다
입구 위쪽
Alf Rolfsen 작품
노르웨이의 다양한 국민들을 그렸다
농부, 어부, 근로자 등 ...
맨 왼쪽 인물은 북극을 탐험한 탐험가이자 인도주의자인 국민 영웅 난센,
맨 오른쪽 인물은 국가를 작사했으며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비에른손 ~
2층에 못올라 가는 이유가 있었네요
결혼식~
가이드님 말씀이 '저기도 큰 딸이 있네요' 하면서
노르웨이 사람들은
모임에서 서로 만나서 사귀다가 동거, 출산, 그리고 결혼이라는 과정을 밟는다한다
실제로 동거부부가 더 많고 아무 차별도 받지 않는다고 ..
살아보다가 진짜 평생을 함께 할 수 있겠다 확신이 들면 그 때 결혼하는데 그것도 선택사항 ㅎ
벽면의 그림은 ...
오슬로의 수호성인 할바르 (Hallvard) 의 이야기를 그렸다
억울하게 도둑 누명을 쓰고 도망가던 임산부를 배에 태워 숨겨주려다
뒤쫓아 온 관원에게 여인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는 귀족 홀바르 이야기
손에는 그가 맞은 화살과 목에 달아 물 속에 던져졌던 맷돌을 들고 있다
나중 시민들에 의해 오슬로의 수호 성인(St. Hallvard)으로 추대되었다
화려하고 정교한 시청 정문
북유럽 신화를 새겼다
나오다 보니
양쪽으로 있는 긴 회랑에 아름다운 목조각들이 눈길을 끈다
Wooden friezes in the City Hall’s courtyard
are made by Dagfin Werenskiold (1892-1977), a painter and sculptor.
Dagfin Werenskiold has completed 16 wooden friezes on the walls of the courtyard. Werenskiold's motifs are from Norse mythology.
Here we find ancient myths about creation, the life of gods, the sources of wisdom,
about love, hate, war, destiny, revenge, the demise of old worlds and powers,
영리하신 가이드 덕에 우린 거의 1등으로 들어가 잘 보고 나왔는데
지금 들어가려고 긴 줄 서 있는 관광객들 ㅎ
사슴도 보이고
닭도 보이고 물개도 보이고는데
그 아래는 도깨비인지?
내용을 모르니
마치 글 모르는 사람 같이 답답하다
조각 아래쪽에 노르웨이 글자와 영어로 설명이 있는데 시간이 없네요 ㅜ
사진에 담기도 바빠서
그래서 집에 와서 몇 개 찍어 온 설명과 인터넷쎔 도움으로
노르드인의 신화, 조금 맛 보았네요
긴 창을 들고 다리가 8개 달린 말을 타고 달려가는 Odin
최고의 신 오딘 ( Odin)
Odin, the most powerful of gods, rides his eight-legged Sleipner,
the fastest stallion in the world.
Odin's spear Gungne strikes everything he hurls it at.
Odin's two ravens Hugin (thought) and Munin (memory) fly out every day into the wide world
and bring news back to their master.
오딘이 들고 있는 창은 궁니르 Gungnir
난장이들이 만들어 중 최강의 창이다 명예의 상징이다
주인의 손을 떠나면 확실하게 적의 심장을 꿰뚫는다
창끝은 철, 자루는 물푸레 나무
궁니르는 또한 오딘의 신격인 번개를 상징한다
오딘은 선전포고를 할 때 백발백중의 궁니르를 던졌다고 한다
오딘의 정보원, 큰까마귀
두 마리 까마귀는 매일 전 세게를 돌아다니며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들을 주인 오딘에게 보고하는 일을 한다
토르(Tor)가 염소 두 마리가 끄는 수레를 타고 있다
신 토르는 망치를 들고 나타난다
After Odin, Tor is the next most distinguished god.
He is the god of strength and often battles with the giants.
Tor owns three valuable things:
The hammer Mjollne that always strikes when thrown and returns of its own volition,
a pair of magnificent iron gloves, and a belt which increases his strength.
When Tor travels in his chariot across the sky and strikes his hammer,
thunder crashes and lightning blazes.
토르는 스칸니나비아의 기독교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바이킹시대에 이르기까지 게르만 민족들에게 널리 숭배받았다.
아이슬란드 문헌에 잘 보존되어 있는 노르드 신화에서 토르에 관한 많은 이야기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금발의 여신 시프의 남편이다
토르는 두 명의 하인을 거느리고, 두 마리 염소 (잡아먹어도 재생된다)가 모는 전차에 타고 다니며,
산도 부술 수 있는 망치(철퇴) 묠리르를 들고, 허리띠를 차고, 무쇠 장갑을 꼈으며, 지팡이를 소유하고 있다.
토르가 그의 적들을 가차없이 때려죽인 이야기, 괴물 뱀과 싸운 이야기 등이 신화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천둥과 번개, 바람과 폭풍, 화창한 날씨와 생산력을 다스린다.
역병이 돌거나 기근이 닥치면 사람들은 토르에게 제물을 바쳤다
펌
페로 제도의 수도가 '토르스하운'이었는데
그 뜻이 '토르의 항구'라는 뜻이라니
아직 북유럽에 신화가 면면히 살아있는 것 같아 반가왔다
문화의 다양성 ~~
신화를 새긴 목조각
토르의 부인 시프(Sif)인 듯
시프(Sif)는 북유럽 신화의 여신으로, 천둥의 신 토르의 아내이다
시프는 본래 황금으로 돼 있는 아름다운 머리가 자랑으로, 에게 떨어져도 머리카락만큼은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만하는 것을 싫어하는 로키가 시프가 자는 사이 시프를 삭발해 버렸다.
토르는 화가 엄청나게 나서 로키의 뼈를 다 부숴 버리겠다고 날뛰었다.
로키는 드베르그들을 시켜서 전보다 더 좋은 머리카락을 만들어 줄테니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성격 좋은 토르는 로키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로키는 드워프 아발디의 아들들을 시켜 황금으로 만들어진 머리카락을 만들어 왔다.
이 머리카락은 색깔뿐 아니라 진짜 금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진짜 머리카락처럼 자라기까지 했다
Nidhogg
세계수의 뿌리를 갉아벅는 날개 달린 뱀
a dragon who gnaws at a root of the world tree (세계수)
Froy와 Gerd의 만남 (사랑을 표현)
Froy는 지구의 과실을 관장하고 국내 동물들을 보호하는 인기있는 신
어느 날 female giant Gerd를 보고 상사병이 걸려 드디어 만나게는 장면
우리 춘향이와 이도령 이야기 ㅎ
Frigg
최고의 신 Odin의 한 와이프
The Death of Balder
겨우살이 창으로 Balder를 찌르는 Loki (시기 질투가 부른 죄 )
Balder is one of the two sons of Odin and Frigg.
Balder is the god of almost all that is good.
He is associated with everything that is beautiful and joyous in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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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 from Norse mythology in which Balder is killed by a mistletoe (겨우살이) spear
The capricious trickster god Loki, propelled by jealousy and spite, uncovers a loophole in Frigg's protection plan.
Concealing his true identity, Loki approaches Frigg, who, in her oblivion, fails to elicit an oath of protection from him.
Seizing this golden opportunity, Loki learns about the only entity that holds the power to harm Baldur — the inconspicuous mistletoe.
Equipped with this crucial information, he crafts a spear out of mistletoe and manipulates Baldur's sightless brother, Hod, into unintentionally hurling it at Baldur during their game.
To everyone's horror, Baldur is fatally wounded by the mistletoe spear, and he succumbs to death.
자, 갑시다 ~ ㅎ
뭉크 미술관으로 ...
오후에 북쪽으로 먼길을 가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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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오페라 하우스 옆 신시가지에 새롭게 문을 연 뭉크 미술관
뭉크가 1944년 사망하기 전에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작품을 오슬로시에 기증했다
이로써 뭉크 미술관이 세워졌다
그 미술관의 그림을 보러 우리가 여기까지 왔으니
대단한 예술의 영향력 ~
Edvard Munch (1863 - 1944)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는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이자 판화 작가이다.
노르웨이에서는 국민적인 화가이다. 그의 초상이 1,000 크로네 지폐에도 그려져 있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그림 - Scream
여기 뭉크미술관에 있는 Scream 3작품
유화 - 판화 - 파스텔화
Self-Portrait with Cigarette 1895
뭉크가 5세 때 어머니를 결핵으로 떠나보냈다.
그로부터 9년 후에는 누나 역시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여동생은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고,
엄격한 기독교 신자였던 아버지도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1889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남동생도 1895년에 서른 살의 나이로 사망하였는데
일생 뭉크 주위에는 죽음이 따라다녔다.
1881년 왕립 미술공예학교에 입학한 그는
노르웨이의 유명한 자연주의 화가 크리스티안 크로그(Christian Krohg)의 문하에서 프랑스 인상주의를 배웠다.
뭉크는 한스 예거(Hans Jæger) 에게서 영감을 받아 어둡고 고뇌에 찬 자신의 삶과 심리적 경험,
그리고 사랑과 죽음에 대한 견해를 작품에 반영했다.
뭉크는 1885년에 처음으로 파리를 여행했으며,
이후 독일과 이탈리아를 둘러보며 인상주의와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Vincent van Gogh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 폴 고갱(Paul Gauguin)의 작품에 크게 공감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1886년 작 《병든 아이》이다.
뭉크는 누나의 죽음을 주제로 한 이 작품에서
어린 시절부터 줄곧 따라다닌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절망, 정적, 슬픔을 표현했다.
이 작품에 대해 비평가들은 거칠고 암울한 묘사 방식에 대해 경악했지만,
뭉크는 이 그림이 자신의 작품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중요한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1889년 그는 국비 장학금을 받고 파리로 유학을 갔으며,
에콜 데 보자르에서 레옹 보나(Léon Bonnat)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이 시기에 쓴 뭉크의 『일기』를 보면,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책을 읽는 사람이나 뜨개질하는 여인이 있는 실내 정경을 그려서는 안 된다.
숨을 쉬고 느끼며 아파하고 사랑하는 살아있는 존재를 그려야 한다.”
1892년 뭉크는 베를린 미술가협회의 초청으로 베를린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이 전시에는 총 55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그때까지 그런 작품을 경험하지 못했던 베를린 미술계와 보수적인 언론은
성과 죽음, 그리고 폭력의 이미지를 담은 그의 그림을 보고 강하게 비방하고 나섰다.
결국 전시회는 1주일 만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뭉크는 순식간에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작품들은 네 벽 위쪽에 띠 모양(Frieze)으로 전시되었는데
그래서 일생을 관통하는 그의 그림은 생의 프리즈라고 불리게 되었다
각각의 주제는 <깨어나는 사랑> <피었다 사라지는 사랑> <삶의 두려움> 그리고 <죽음>이었다.
(참고) Frieze 프리즈: 건축물의 외벽이나 내벽에 붙인 띠 모양의 장식물
'생의 프리즈'는 삶과 사랑과 죽음에 관한 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은 '절규'이다
《절규》는 뭉크가 ‘생의 공포’라고 부르던 것을 표현했다.
뭉크는 1890년대에 독일에서 되살아난 그래픽 아트의 영향을 받아 1894년에는 판화를 제작했다.
그의 판화는 특히 단순하고 솔직한 형상으로 널리 알려졌고
에칭, 석판화 및 목판를 다룸으로써 가장 중요한 현대 판화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1908년까지 독일에 머물렀으며 이 기간 동안 독일 표현주의 미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평소 조울증과 알코올 중독을 겪었던 뭉크는
1908년에 신경쇠약에 걸려 덴마크 코펜하겐의 병원에 8개월간 입원했다.
이후 건강이 회복되면서 색채가 밝아지고 작품 양식이 변화되면서 이전의 표현주의적 힘은 다소 경감되었다.
뭉크는 1909년 3월 오슬로에서 열린 뭉크 회고전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자신의 고국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 후 뭉크는 주요 거처를 노르웨이로 정하고,
1910년부터 1916년까지는 오슬로 대학 강당의 벽화 작업에 몰두했다.
1916년 오슬로 근교 에켈리에 넓은 면적의 토지를 매입했고, 그곳에 은거한 채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뭉크는 1933년 70세 생일에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성 올라브 대십자 훈장을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1937년 독일의 나치 정부는
뭉크의 그림이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독일 미술관에 있는 그의 작품 82점을 압수했다.
1940년(77세) 4월, 노르웨이가 독일군에 점령되자,
나치 미술 평의회에 관여하도록 강한 압력을 받았으나, 이를 완강히 거부.
1944년 1월 23일 자택에서 홀로 죽음을 맞았다.
그의 80번째 생일이 지나고 몇 달 뒤였다.
뭉크는 유언을 통해 자신의 모든 작품을 오슬로시에 기증했고
그의 작품은 1963년 뭉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개관한 뭉크 미술관에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미술관 입구 걸개 그림
그의 그림 '목소리'를 내걸었다
뭉크의 삶의 프리즈에 대해서는 이미 보티첼리님이 잘 설명해 주셨으니
여기서는 작품 소개 ~~
감상하세요
Puberty 1894
사춘기
성에 눈 뜨기 시작하는 시기
Eye iin Eye 1899 - 1900
눈맞춤
The Seducer 1913
Jealousy, 1907 Munch Museum, Oslo
제목만 보고는 앞을 응시하는 인물이 질투에 시달리는 뭉크 자신인 줄 알았는데
보티첼리님 설명 보니 나중 연적이 된 친구였네요 ㅎ
친구를 선택한 다그니와 (두번째 애인 ) 다시 잘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에서 그린 그림 ~
The Dance of Life 1899 - 90
가운데, 뭉크가 같이 춤주고 있는 여인은 그의 첫사랑 테을로브 ('목소리'의 여인),
양쪽에 서 있는 흑백 의상의 여인은 동일 인물로서 툴라로 추정
달빛 아래 들판에서 춤추는 장면이다
"나의 첫사랑과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에 관한 기억을 그린 것이다
곱슬한 금발의 미소 짓는 여인을 다음에 그렸는데
누구라기보다 꽃과 같은 사랑을 나타낸 것이다
맞은 편 검정색 의상을 입은 여인은 춤추는 광경을 고통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들이 춤을 출 때 내가 소외된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소외되었다"
Red and White, 1899–1900, Munch Museum, Oslo
Kiss
창가의 키스 1892
노르웨이 국립미술관
작품의 배경은 생클루의 뭉크 방이다.
파란색 커튼 앞에서 남자와 여자는 키스를 하며 두 얼굴이 하나로 보인다.
뭉크의 청색시대 대표작이다.
뭉크에게 사랑은 불안을 잉태하고, 삶과 죽음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고독한 인간의 사랑, 그런 것이었다.
종국에는 배반하고 괴롭히는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과 불안, 공포의 문제들을
그는 자신의 삶 자체를 작품 속에서 집요하게 표현했다.
펌
Kissing Couple in the park 1904
Love and Pain (Vampire), 1895
평생 순조로운 사랑이 없었던 뭉크에게 Love는 사랑이자 고통
Ashes, 1894
When lovers are consumed by the hot flames of passion,
their love turns to ashes.
목판화
Tulla Larsen 1905
뭉크의 세번 째 연인
두번 째 연인에게서 당한 배신으로 여성을 믿지못하게 된 뭉크
그녀의 청혼에 뭉크가 망설이자 지배력이 센 툴라는 자살 소동까지 일으켜
결국 뭉크의 손가락에 총상을 남긴다
그러고는 곧 다른 애인을 따라 가버려 그들의 4년 연애도 고통으로 끝이 났다
그 후 그는 정신병원 치료를 받기도 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
둘 사이에 아예 선을 그어버린 그 마음이 어땠을까
뭉크는 그녀를 '내 인생의 악령'이라고 칭했다
Metabolism, 1898–1899
물질대사
Separation 1894
이별
Separation 1896
뭉크에게 이별은 어떤 의미었을까?
사랑하는 어머니와 누이의 죽음 ,
사랑했던 연인들은 결국 고통만 주고 떠나버렸고 ...
여자는 돌아서 가는데,
그 여자에게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 그의 마음에서는 피가 흘러내린다
그 피가 피운 붉은 꽃
그런데 여자는 물가 (물속)에 서있다
뭉크에게 여자는 물이 흘러가듯 그렇게 흘러가는 존재였을까 ?
Separation
Kode 3, Bergen
여기 여인은 이쁜 꽃을 들고 고개를 세우고 떠닌디
뒤에서 아직 여자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의 목에 둘러진 여자의 머리카락) 피흘리고 있는 남자와는 너무나 대조적
세 그림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니
뭉크의 슬픔이 나에게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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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연애사는 그의 그림들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만큼 우중충했으며, 뭉크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러나 그에게도 여자와의 관계가 아예 전무했던 건 아니었으며, 밀로 탈로, 다그니 유엘, 툴라 라르센이라는 세 여자와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다만 셋 중 어느 누구와도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뭉크의 첫사랑은 헤이베르그라는 크로아티아 사교계 유명인사였다. 그녀는 해군 장교의 아내였으며 당시 신여성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고, 팜므파탈의 기질이 다분했다. 뭉크는 헤이베르그를 사랑하며 중독과도 같은 강렬한 경험을 하게 되지만 여기저기서 인기가 많았던 밀리는 뭉크에게 상처를 주고 떠난다. 뭉크는 크게 상처를 입고 여자에 대한 혐오와 비슷한 감정을 품게 된다. 이때 탄생한 작품이 흡혈귀이다.
이후 뭉크는 베를린에서 살면서 스타니스와프 프시비셰프스키(Stanisław Przybyszewski) 등의 예술가와 교류하였는데, 이 프시비셰프스키에게 자신의 소꿉친구이자 연인이었던 다그니 유엘(Dagny Juel)를 빼앗긴다. 뭉크는 '질투'나 '이별' 등의 그림을 통해 다그니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는데 결국 다그니는 1893년 프시비셰프스키와 결혼식을 올리게 되고 이에 분노한 뭉크는 배신감과 분노에 사로잡혀 '마돈나'를 그리게 된다.
참고로 다그니는 34살 젊은 나이에 총을 맞고 사망하는데, 바로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난 남편 프시비셰프스키가 다그니와 다른 남자가 불륜을 하게 조장한 후에 그 불륜남에게 살인을 사주했다고 한다..
그 후 한동안 좌절에 빠졌던 뭉크는 그 후 툴라 라르센(Tulla Larsen)이란 여자와 교제하게 된다. 그동안 뭉크를 떠나 상처를 주었던 여자들과 달리 툴라의 경우 그보다 4살 더 연상인 연상녀로서 예술 방면에 해박하고 성격도 적극적이어서 뭉크와 깊은 관계를 지녔지만 그 사랑이 너무 지나친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녀는 뭉크에게 집착하기 시작했고 결혼을 요구했다. 점점 툴라를 멀리하는 뭉크에게 툴라는 자살하겠다고 협박한다.
뭉크는 결국 툴라에게로 돌아와 툴라를 말렸는데, 하필이면 이 때 총이 발사되면서 뭉크의 왼쪽 3번째 손가락(중지)이 관통당하는 사태가 생기고, 뭉크는 결국 영영 왼손의 중지를 잃고 만다. 이 일을 겪은 후 뭉크가 그린 그림이 '마라의 죽음'이다.
툴라와의 결별 이후 뭉크는 과도한 음주, 싸움 등을 하다 보니 불안증세가 더욱 심해졌고 거기에 더해 환각 증세까지 얻게 된다. 결국 뭉크는 야콥슨이란 의사의 병원에 가서 8개월 동안 요양치료를 받았는데, 이 때의 경험 덕분인지 요양치료 시기 이후의 뭉크의 그림에서는 특유의 신경증 + 비관적인 느낌이 줄어들고 색채가 좀 더 밝고 다양해졌다고 한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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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ck Child 1927
The Sick Child 1907
죽은 누이
Death in the Sickroom, 1893 Munch Museum, Oslo
Death and the Child 1909
엄마의 죽음
Death and the Child 1889
어린 시절 가족의 죽음이 뭉크에 남긴 상처는 컸다
Death Struggle 1915
Death and Life 1893 - 94
해골을 격정적으로 껴안고 있는 소녀
Conversation 1917 - 18
Bathing Men, 1907–1908
Ateneum, Helsinki
Madonna / Loving Woman
Although it is a highly unusual representation, this painting might be of the Virgin Mary.
Whether the painting is specifically intended as a representation of Mary is disputed.
Munch used more than one title, including both Loving Woman and Madonna
드디어 Scream방으로 왔다 ㅎ
The Scream 1893
우리가 도착했을 때 열려 있던 그림
Dog's Head 1942
Workers on Their way home 1913 - 14
Workers in Snow 1913 - 15
Friedrich Wilhelm Nietzsche 니체 1906
Munch Museum
예술은 인간의 모순과 고통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고 극복하게 도와준다
따라서 예술은 종교와 도덕보다 뛰어나다
니체의 이런 예술 철학에 깊이 경도되었던 뭉크는 만난 적 없는 니체 (1844 - 1900)를 그렸다
Portrait of Friedrich Nietzsche, 1906, Thiel Gallery, Stockholm
그랜드 카페의 입센 1908
카를 요한 거리의 그랜드 카페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신문을 읽고 있는 입센을 그렸다
입센은 거의 매일 여기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했다고 한다
그가 앉던 테이블 위에는 지금도 그의 모자가 얹혀 있어 그를 기린다
Portrait
Dagny Juell 1893
뭉크의 두 번째 연인
마돈나의 모델
뭉크의 평생 친구였는데
결국 뭉크의 친구 Przybyszewski 와 삼각관계를 이루다가 그 친구를 선택해 떠났다
나중 34세의 나이에 (1901년) 호텔에서 총격을 받아 숨졌다
바람난 남편 Przybyszewski 이 다른 남자를 접근시켜 일을 벌린 거라는 설도 있다
뭉크 뮤즈의 허망한 인생 ~
There is some evidence that Przybyszewski and Emeryk may have plotted her murder.
On 5 June 1901, in a room of the small 'Grand Hotel' in the Georgian capital city of Tiflis (now Tbilisi),
Emeryk shot Juel in the head; the next day he attempted to shoot himself.
Juel's 5-year-old son, Zenon, witnessed the murder of his mother.
She was buried at a Roman Catholic church in Tiflis
and reburied, in 1999, into a churchyard at the Kukia cemetery.
Portrait of Przybyszewski 1894
( 7 May 1868 – 23 November 1927)
He was a well-known Polish essayist, dramatist and port.
He was an enthusiastic bohemian and a self - proclaimed Satanist.
두 개의 뼈다귀 위에 얼굴이 떠있다
윤두서의 자화상이 연상되는 작품
Edvard Munch painted a portrait of Przybyszewski in 1894.
The portrait highlights Przybyszewski’s interest in mysticism and the occult:
his disembodied head,
easily recognizable with close-set eyes and goatee beard,
hovers in mid-air above two crossed bones.
Golgotha, 1900
Munch Museum, Oslo
홀로 고통 중에 계신 예수
아무도 그에게는 관심이 없다
뭉크는 예수에 자신을 투사했을까
The year 1900 was heartbreak for Edvard Munch
for he was unable to banish the habit of drinking and fear of marriage.
As a result his lover Tulla Larsen left him to marry another individual who is a younger colleague of the painter.
The period was of great suffering to Munch
and his subsequent works represented his feelings towards Larsen
and the mental agony he suffered.
예수 십자가 뒤로 내민 손이 보인다
하느님의 손길?
However, the painting also depicts the faith of Edvard Munch towards Christianity.
There is hope in the painting and this hope is for redemption.
Melancholy 1900 - 1901
Melancholy III 1902
저 멀리 다리 위에 예전의 여인이 다른 남자와 서있다
Melancholy, 1894–1896
Bergen Kunstmuseum, Bergen
Evening. Melancholy, 1891
oil, pencil and crayon on canvas, Munch Museum, Oslo
Deapair 1904
절망
Sick Mood at Sunset. Despair
1892
Anxiety, 1894 Munch Museum, Oslo
불안
Red Virginia Creeper 1899 - 1900
벽의 붉은 담쟁이는 마치 피가 흘러내리는 듯 하다
놀란 듯이 현장을 떠나는 인물은 Jealousy에 나오는 친구 Przybyszewski 의 얼굴
가까이 붙은 눈, 염소 수염 ~
Weeping Nude, 1913–1914, Munch Museum, Oslo
Model by the Wicker Chair, 1919–1921, Munch Museum, Oslo
The Hands, 1893, oil on canvas, 91 x 77 cm, Munch Museum, Oslo
Weeping Woman, 1907–1909
Two Women on the Shore 1935
달이 물에 비추인다
백야의 두 여인 1893
목판화
그의 자화상
1938c Self-Portrait with Bottles
1940c Self-Portrait by the Window
Self-Portrait with a Bottle of Wine, 1906,
Self-Portrait with the Spanish Flu, 1919, National Gallery (Norway)
병약한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뺏아간 스페인 독감을 이겨냈다
Self - Portrait. Between Clock and Bed 1940 - 43
Elm Forest in Spring 1923 - 25
Starry Night 1922 - 24
Two Children on their way to the Fairytale Forest 1901 - 02
Forest Landscape with small lake 1887
초기 풍경화
Landscape at the Sea, 1918
Kunstmuseum Basel
Galloping Horse 1910 - 12
The Murderer 1910
피묻은 손으로 여유롭게 걸어가는 남자
The Murderer is not a straightforward representation of reality, but it is a vivid depiction of Munch’s most concentrated thoughts and feelings. The painting is often compared to the famous painting of Marat’s murder by Charlotte Corday by Jacques-Louis David. Munch’s artwork is widely recognized for its contributions to the rise of Surrealism and Expressionism in art history.
Death of Marat I 1907 Munch Museum, Oslo
툴라와 헤어진 후 그린 그림
At the Roulette Table in Monte Carlo
Munch Museum, Oslo
The Girls on the Bridge 1927
Four Girls in Åsgårdstrand, 1903, Munch Museum, Oslo
The Voice / Summer Night, 1896,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소녀
사랑에 눈뜸
Summer Night. Mermaid 1893
Shore with Red House, 1904, Munch Museum, Oslo
돌다가 다시 가보니 두 번째 '절규'가 다른 벽면에 나와있다!
그러고 보니 좁은 방 3면에 세 그림이 있고
하나씩 문을 열어 보여주는 방식
말은 그림 보호를 위해사라지만 관람자의 흥미를 끄는 재미도 준다
세 번째 그림은 언제 나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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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님과 다른 전시를 먼저 보기로 했다
뭉크가 노르웨이에 정착하게 되면서 맡은 첫 공공 프로젝트~
1910 ~ 1916
오슬로 대학 강당에 설치된 기념비적인 작품을 여기에 전시했다
물론 copy
University of Oslo, the University Festival Hall (the Aula)
펌
The decoration of the University Aula in Oslo was among Edvard Munch's most comprehensive art projects,
and a prestigious and controversial assignment in its time.
The 11 pictures are the only expressionist monumental paintings preserved in their original context.
위층 판화실에서 내려다 본 전시실 모습
The Sun (제 1주제)
The Sun, 1910–1911, Munch Museum, Oslo
뭉크의 기념비적 걸작으로 불림
Woman turned towards the Sun
Men turned towards the Sun
The Sun 양쪽에서 태양을 향하고 있는 여자와 남자들
The Human Mountain (제 2주제)
아래는 그 양쪽의 그림
The Rainbow
The Peace
The Human Mountain
엉겨있는 사람들이 모여 산을 이루었다
비겔란의 Monolith가 생각나는 순간
동시대를 산 두 예술가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을까
뭉크는 비겔란에 경쟁심이 있었는데
공적 자금으로 조각 공원을 조성하자 자신과 비교했다고 한다
비겔란은 자신의 작품을 모두 시에 기증하기로 하고 시의 도움을 받았다
The Researchers (제3주제 )
Alma Mater 1916
너그러운 어머니가 중앙에 앉아있고
주위에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놀고 있다
detail
오슬로 대학의 Alma Mater
펌
로사님께서 얼마나 열심히 보시는지 나도 덩달아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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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un 보고 다시 Scream 방 살짝 들여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한쪽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곧 열리겠구나 ..
마지막에 나가면서 들러보자하고
로사님이랑 위로 올라가서 잠시 판화를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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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 체험도 하고 ㅎ 내려오니 정말 마지막 순간에 Scream 3 이 열려있다
우와 ~ 작은 환성을 지르고 ㅋ
근데 사람들이 몰려있어 사진찍기가 곤란하네요 ㅋ
The Scream of Nature (1893-1910년 )는 핏빛의 노을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괴로워하는 인물을 묘사하였다.
배경의 풍경은 노르웨이 오슬로의 이케베르크 언덕에서 보이는 오슬로피오르이다
“친구 둘과 함께 길을 걸어 가고 있었다.
해질녘이었고 나는 약간의 우울함을 느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멈춰선 나는 죽을 것만같은 피로감으로 난간에 기댔다.
그리고 핏빛 하늘에 걸친 불타는 듯한 구름과 암청색 도시가 있었다.
그때 자연을 관통하는 그치지 않는 커다란 비명 소리를 들었다.”
뭉크가 1892년 1월에 남긴 글은 매우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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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을 꽉 채운 뭉크와의 만남 ~
뭉크 때문에 오셨다는 첼리님도 잘 보셨는지...
주어진 시간 안에 절규 세 점을 모두 보았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했지만
함께 보는 그림 감상, 정말 재미있었네요
이제 점심 먹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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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사 있을 때부터 여기저기 핸폰에 계속 재난문자가 떴다
폭우 경보 ~
여긴 괜찮은데 ᆢ
모두들 무시 ㅋ
근데 점심 먹는 식당에서 중대발표가 있었다
우리가 점심 먹고 윗쪽으로 4시간 쭉 올라가서 숙소에 가야는데
그 길이 폭우로 산사태가 나서 갈 수가 없단다 ㅜ
밥 빨리 먹고 바로 출발하려고 했는데
좀 기다리시라고 ..
가이드님과 기사님과 지금 최선의 방법을 찾고 있다고
그래서 정하신 두 가지 선택지 ~
오늘 숙소에서는 우회로를 제시하며 환불은 불가하다는데
그 길은 멀기도 하지만 우리 큰 버스가 가기엔 위험한 길
다음 선택지는
아예 오늘 길뚫려 있는 서쪽으로 가서 자고
내일 다시 동쪽으로 가서 내일 숙소(팀장님 포기할 수 없는 최고 숙소ㅎ)에 도착하기
모레부터는 정상 일정 소화 ~
다행 현지 여행사에서 노력하여 오늘 저녁 숙소 확보되었다해서
서쪽으로 6시간을 달렸죠
사이사이 경관 좋은 데서 내리기도 하고
팀장님,
이런 돌발 사태에 유능하신 가이드님과
베르겐 출신으로 노르웨이 지리를 통달한 기사님 덕에 잘 해결됐다며 엄청 고마와하신다
당신 혼자셨으면 어쩔 뻔 했냐고
우린 결정대로 따르면 되니까 걱정도 않고 수다 떨고 있었는데
팀장님 거의 멘붕 상태셨던 듯 ㅜ
무섭게 흘러가는 물
툰드라 지역 통과
비 주룩주룩 오는 노르웨이 산길을 계속 간다
스키 리조트도 지나고 별장도 지나고 ᆢ
나무 없는 툰드라지역도 지나고
그러다 한 번씩 내리고 ᆢ
비가 내려 창밖 풍경을 찍을 수가 없었다
노르웨이 여행의 많은 부분은 창 밖으로 대자연 풍경 보기 ~
물 흐르듯 잘 달려가는 버스 안에서 하염없이 비오는 바깥을 본다
근데 가이드 좋은 서ㄹ명 들으며 가는 이런 풍경도 좋다
근데
가이드 클라라님은 자꾸 여기 별장 하나 사라신다 ㅎ
비싸고
게다가 수도도 없고 전기도 없는 이곳 별장을 ~ ㅋ
그래도 여기 사람들은 문명을 벗어난 이런 곳에서 쉬는 것을 진정한 힐링이라 생각한다고
가이드님의 유머에
우리 반응은 ᆢ
'돈 얹어 준다해도 못살겠네요' ㅎ
잠시 내려봅니다
외딴집
별장일까?
프랑스 여행에서 맞춰보니 대학 선후배 ~
여기서 다시 만나 급 친해졌다
더 맞춰 보니 나의 대학 동아리 선배님이시기도 ~
촌수 복잡합니다 ㅎ
'성님요 ~' 하는 조대장 말에
경상도 말 모르시는 어느 분,
'손 위 같은데 이름을 막 부르네 ' ㅋㅋ
길가에 세워진 허접한 ㅎ 막대기들 보이시죠?
뭘까요?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길 표시가 안나서 저리 박아두었답니다
정말 친환경적이고 실용적인 이 곳 사람들
부슬부슬 비에는 모자 달린 저런 방수옷이 최고죠
우산 펴고 접고 오히려 귀찮으니
급히 구한 숙소
내다보는 운무가 환상입니다
피요르 바로 옆 숙소
크루즈 손님들이 통과하는 게이트
동네 산책
피요르로 도도히 흘러드는 물길
이렇게 민물이 흘러드니 피요르 바닷물의 염도는 상당히 낮다고 한다
급히 구한 숙소였지만
그 다음에는 보지 못한 운무 가득한 숙소 ~
좋았네요
숙소 못구하면 버스에서 자냐고 우스개 소리도 했는데
좋은 곳에서 자게 되니 감사한 저녁 ~~
첫댓글 드디어 선생님 후기를 접하네요
뭉크!
쓰신후기 연거푸 두번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
쓰시느라 수고 하셨을 모습이 너무 엿보입니다.
감히 편히 읽는게 송구스럽습니다.
좋아하시는 롤모델 로사선생님과 함께 하셔서 너무 행복 하셨을듯!
아직 한참 남았을 후기 천천히 감상 하고싶습니다^^
이미리 입니다ㅋ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숙수님 후기 접할때마다 저는 너무 맹숭맹숭 수박겉핡기로 여행하는 것같네요.
언제 저렇게 자세히보셨을까?
또 언제 저렇게 찾아보셨을까 경외감 마져 드네요...
앞으로 전개될 후기 기대만땅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있는 게 시간인 저는 ㅎ
여행 다녀와서 사진 정리하며 보내는 시간이 또 여행의 연장이라
계속 여행을 하는 기분을 즐긴답니다
여러가지 일로 바쁘신 고고님께선 못누시리는 시간 ㅋ
저번을 끝으로 후기는 퇴장이다 했는데
대표님 노마드 여시고 이곳 북유럽은 처음이라 자꾸 맘에 걸리네요
담주 어디 좀 멀리로 가야는데 후다닥 올리고 가야겠다 갑자기 변덕이 생겨 올려봅니다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아 줄 동지가 계시니 감사해요
sooksoo 님
에구 가고 싶었던곳을 취소하고 우울했었는데
멋진 사진과 자세한 설명으로 ~~
리브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감사합니다
리브님
오래간만이예요
이번 북유럽, 처음 가는 여정이라 조금 걱정도 했는데 정말 완벽했어요
영국 잘 다녀오셨죠?
명랑하고 잼난 후기 곧 이어 올려주세요 ~
일정을 알 수 없어 이스라엘 아직 신청 못하고 있는데
같이 갈 수 있기를 ~ !
숙수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를 잘 챙겨 주셔서도 감사하구요~
오슬로 시청사 밖에 있던
Wooden Frieze 들을 몇개 찍어왔고 이것들이 뭐지?했지만 그냥 지나치고 말았는데 신화 이야기라니...감동입니다.
숙수님 덕분에 유식해 졌어요.ㅋ
뭉크의 절규 세가지를 모두 보고 환호성 올렸었지요. 고마웠습니다.
항상 모든 걸 일일이 검색해 보시는 열정! 참 부럽습니다. 저는 이제 너무 늦었나 봅니다~ㅠ
계속 열심히 읽고 또 읽어 보렵니다.
고맙습니다!!^^
노르웨이, 페로제도의 아름다운 여행 후의 여운을 충분히 음미하지 못하고 미국 딸네집으로 와서 아쉬웠는데 sooksoo 님 후기 너무 반갑네요. 무언가 엉켜있던 실타래가 풀린듯 살살 따라가 봅니다.
시간을 적절히 분배 못해 보지 못 한 뭉크의
그림 사진들을 보며 속상해 하고요. ㅎㅎ
비속에 1100 m 새로운 모습의 습지대를 흔들림 없는 좋은 버스로 달리던 풍경.
돌발사태 덕에 볼 수 있었으니 그도 감사요.
sooksoo 님의 해박한 설명을 들으며, 번거로움 마다않고 수고해주심에 감사하며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