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 이임순
읍내 병원 앞에서 선아 할머니를 만났다. 엉덩이를 주무르는 것이 주사를 맞은 모양이다. 위에 걸친 옷은 단추가 어긋나 한쪽이 기울었고 신발은 짝짝으로 신었다. 추려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영감이 마실 나간 틈을 타 서둘러 온 기색이 역력하다.
“응, 멋쟁이 할머니 만났네. 오늘 재수 있으려나 봐요. 할머니를 뵌 날은 운이 좋았거든요.” 하니 “그런가, 나도 자네를 보면 기분이 좋아.” 하신다. 온종일 있어도 웃을 일이 없다던 할머니가 앞니를 훤히 드러낸다.
어느 지인 간에 작은 다툼이 있었다. 서로의 입장에서 오해가 생긴 것이다. 곁에 있던 수나 엄마가 “자네는 거짓말할 줄 모르지? 한다. 그녀는 나와 친하면서도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다. 나는 거짓말을 잘한다. 꽤 오랫동안 해왔다. 그런데도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한다. 반성은커녕 오히려 즐기면서 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꺼리를 찾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옳다.
“우리 할머니는 유행도 잘 따라 하신다니까. 그런 것은 누가 가르쳐 주는지 모르겠어? ” 하며 눈이 신발로 간다. “이 사람아, 유행은 무슨 유행. 영감 나가는 것을 보고 얼른 왔는데 주사 맞고 신으면서 보니 짝짝이더라고.” 하는데 오늘따라 눈매가 깊다. 그래도 사람들은 할머니가 유행에 따른 줄 알 것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남들이 보기에는 우세스런 모습이라고 스스로 주눅이 들었는데 내 말에 용기가 났는지 그러냐고 하신다.
딸이 할머니 손녀와 친구다. 요즈음 그 손녀의 건강이 좋지 않아 노부부 집에서 지낸다. 어른들 걱정한다고 혼자 끙끙 앓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할아버지의 불호령으로 거쳐를 옮겼다. 그분이 집안에 계시면 할머니도 집에 있어야 애먼소리를 듣지 않는다. 외출에서 돌아오셨을 때 할머니가 집안에 없는 날에는 골목이 쩌렁쩌렁 울렸다. 젊었을 때 없던 의처증이 다 늙은 마당에 생겨 할머니를 옴짝달싹도 못하게 했다. 집안에만 있으니 갑갑해도 속상한 것보다 낫다고 하여 지금도 여전히 현모양처라고 추켜세워 드렸다.
할머니를 만나면 거짓말이 슬슬 나온다. 처음에는 속상한 마음에 작은 위로라도 드리고 싶어 했다. 그러다 점점 주변으로 옮겨졌고 우울해 보이는 분을 위해 작은 웃음거리라도 찾는다. 새참으로 먹으려고 밥알을 단추 밑에 붙여 두었느냐며 한 알씩 나누어 먹자고 한다. 당신이 이렇게 주책이라고 하면 젊은 나도 가끔 그런다고 맞장구를 친다. 정직하게 살아야만 밝은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선의의 것이라면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거짓말이 또 그것을 낳는다. 허나 그 빈말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그로 인해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잠시나마 시름을 잊을 수 있다면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 내가 그것을 즐겨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산다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찾기도 하지만 때로는 손에 쥔 것을 놓음으로 자유를 건져 올리기도 한다. 주름투성이인 어르신한테 요즈음 회춘하는지 얼굴이 곱다고 하면 실없는 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좋아하신다. 때로는 하찮은 말 한마디에 정이 달라붙기도 한다. 그러니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말썽꾸러기한테 “요즈음은 엄마 말을 잘 듣는다고 하시더라.” 하고 운을 떼 놓으면 다음 행동이 다소곳해지기도 한다. 이런 경우 내 실없는 말 한마디가 천방지축이던 모습이 줄어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가슴에 묻었다. 아마도 그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할머니의 다리를 묶은 것이, 소문도 한몫했다. 아들이 바람난 며느리를 찾아나섰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 이후로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자유를 옭아맸다. 아니 할머니에게 아픈 소리를 듣지 않게 하려는 본인만의 사랑법인지도 모른다. 마을 입구 삼거리에 아름드리 당산나무가 있다. 그 아래에 평상이 있다. 그곳은 사철 동네 사람들의 휴식처이자 소식 나눔의 장소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려면 잠시라도 쉬었다 갔다.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들끓었다. 더위에 땀을 식혔다 다음 사람이 오면 자리를 내주고 일어났다. 낯선 이에게는 길 안내의 장소고, 티격태격하는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의 가르침이 있는 곳이다. 할머니한테 평상은 바깥소식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으나 할아버지의 경우는 달랐다.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오다 사람들이 무심코 하는 말을 들었다. 아무리 사실이라도 없는 아들에 대한 소리는 고까울 수밖에 없다. 그날 이후 일 없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남의 흉이나 보는 곳이었다. 당신이 들었던 아픈 소리를 할머니도 듣게 될까 봐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거기 가는 것이 싫었다. 그 마음을 할머니가 모를 리 없다.
오늘도 할아버지는 헛기침을 하며 손녀가 있는 방앞을 몇 번이나 오락가락했다. 손녀라도 당신 곁에 오래도록 두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애타는 마음을 냉수로 삯힌다. 자식 앞세운 늙은이라고 스스로에게 회초리를 내리치다 대문을 나선다. 손녀가 좋아하는 사과를 사려고 가게에 가는 사이 할머니는 병원에 가셨다. 허한 마음 다잡기도 힘든데 육신은 예전 같기가 않다. 담배 한 대 참이면 다녀오던 길이 이제는 대여섯 갑절의 시간이 걸린다.
자식 잃은 할아버지의 심정이나 부모님을 여윈 손녀의 아픔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없을까? 같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내 거짓말에 잠시나마 힘이 솟을 수 있다면 주저할 수가 없다. “할아버지 뒤뜰의 진달래가 선아 웃는 모습 같은데 한번 보지 않으실래요?” 하니 “그럼, 봐야지.” 하며 무겁게 몸을 일으킨다.
“할아버지가 손녀의 지팡이인 거 아시지요?”, “할머니가 건강해야 할아버지도 손녀도 지킬 수 있으니 기운 내세요. ”, “선아야, 기운 차리렴. 할아버지 할머니의 버팀목은 너야.”
아마도 내일쯤은 세 식구 마주 앉아 식사를 하시려나?
첫댓글 이런 거짓말을 술술 하실 수 있는 따뜻한 분이시군요.
감사합니다. 따뜻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중입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고 배려이겠죠?
그 마음 씀씀이에 고마워하는 할머니의 웃음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삶인데 때로는 버거울 때도 있습니다.
그때 작은 힘이 되어주고 싶은데 생각처럼 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삶인데 버거울 때도 있습니다.
작은 힘이라도 되어주고 싶은데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에고. 맘이 아파요.
선생님, 글이 참 좋아요. 따뜻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의 글솜씨가 모자라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을 온전하게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따뜻하고 사려깊은 빈말이네요.
감사합니다. 어울려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아프고 깊은 마음이 글 속에서 그대로 전해지네요. 선생님 글 솜씨 덕분이겠지요.
감사합니다. 글솜씨가 부족해 할아버지의 애잔한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기분 좋으라고 일부러 하는 말을 거짓말이라 할 수 있을 까요?
할아버지는 그런 말을 늘 기대하고 있을 것 같아요.
사실이 아닌 것을 말 했으니 거젓은 거짓말이지요
할아버지의 바람은 오직 손녀가 건강하게 지내는 것일뿐
자식 앞세운 죄인이라며 사람 만나는 것을 꺼려합니다.
애정이 담긴 거짓은 상처를 내지 않겠죠?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마음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관심과 애정을 쏟은만큼 상처도 치유가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