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장 앞에서 바라본
인왕산
[사형장~중앙사] 구간 이동로에서 바라본
(좌로부터) 안산, 서대문형무소, 인왕산
[사형장~중앙사] 구간 이동로에서 바라본
(좌로부터) 안산, 서대문형무소, 인왕산
옥사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중앙 간수소 건물인
중앙사
중앙사에 관한
안내문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는 일제 통감부가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운동가들을 투옥하기 위해 1907년에 오늘날의 서대문구 지역에 건설하여 1908년 10월에 문을 연 감옥을 가리킨다. 해방 후에는 주로 서울 구치소라 불리며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다. 서울 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1987년 10월에 폐쇄되었고, 그 후로 역사성과 보존가치 등을 고려하여 일부 시설을 철거한 뒤 나머지 시설들이 1988년 2월 27일에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98년 11월 5일부터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가 관리하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재개장하였으며, 1992년부터는 서대문구 현저동에 위치한 독립공원의 주요시설로 기능하고 있다.
역사
일제강점기
일제 통감부는 항일의병들을 투옥하기 위해 현재의 서대문구 현저동에 근대적 감옥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일본인에게 설계를 맡겼다. 그 설계에 따라 1907년 8월 무렵에 완공된 감옥시설의 첫 이름은 '경성감옥'이었다.
최초의 경성감옥은 약 500명을 투옥할 수 있는 560여 평 규모의 목조건물이었으며, 증축 과정에서 수감자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원형의 감옥인 파놉티콘 구조로 만들어졌다. 이후 일제는 1912년에 현재의 마포구 공덕동에 일명 '마포형무소'로 알려진 또 다른 감옥을 세우고 그 이름을 '경성감옥'이라고 칭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원래의 경성감옥의 이름은 '서대문감옥'으로 바뀌게 되었다. 1923년에 이르러 서대문감옥은 오늘날 잘 알려진 이름인 '서대문형무소'로 개칭하게 된다. '경성감옥'에서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로 명칭이 바뀌는 동안 수감인원은 계속하여 증가하였는데, 서대문형무소는 18세 미만의 여성, 10년 이상을 선고받은 자, 그리고 무기수를 수용하였으며, 1944년 기준 2,890명이 수용되어 있었다. 잘 알려진 수감자로는 백범김구 선생, 강우규 열사, 유관순 열사가 있다. 유관순 열사는 서대문형무소에서 목숨을 다하였다.
광복 이후
1945년 광복 후 서대문형무소의 명칭은 '서울형무소'로 바뀌었고, 이 시기에는 반민족행위자와 친일세력들이 수용되었다. 그러나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주장에 의하면 1949년까지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활동에 따라 이광수, 노덕술 등의 친일파가 수감되었지만, 반민특위 활동이 와해된 후 이승만 정부 치하에서는 오히려 독립운동가였던 정치인들이 서울형무소에 수감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국전쟁 중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던 시기에는 북한군이 반공·친미 인사로 추정한 인물들을 투옥하였으며, 그 후 1950년 서울을 수복한 이승만 정부는 북한군에 협조한 부역자들을 서울형무소에 가두었다. 역사관은 일제 강점기에 투옥된 모든 사람들을 추모하고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군사독재에서 폐쇄까지
1961년에 '서울형무소'의 명칭은 '서울교도소'로 바뀌었고, 4․19혁명과 5․16군사정변 등과 같은 정치적 변동에 따라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다. 예를 들어 김두한은 1947년, 1954년, 1965년, 1966년 등 4차례 서울형무소 및 서울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마지막으로 수감된 원인은 국회 오물투척사건이었다.
그 후 1967년에 '서울교도소'는 '서울구치소'로 그 이름을 바꾸어 1987년에 폐쇄될 때까지 같은 이름을 유지하게 된다. 1987년 11월에 서울구치소는 오늘날의 위치인 경기도 의왕시 안양판교로 143으로 이전하였고, 서대문에 있는 서울구치소 시설은 폐쇄되었다. 정부는 폐쇄된 전체 시설 중에서 역사성과 보존가치가 인정되는 보안과 청사, 제9~12옥사, 공작사, 한센병사, 사형장 등 일부만을 보존하기로 하고 나머지 건물을 모두 철거하였다.
사적 지정 및 역사관 개장
1988년 2월 27일 서울구치소의 남은 건물들은 서울 구 서대문형무소라는 명칭 아래 대한민국의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다. 사적의 관리자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는 그 장소를 역사의 교훈으로 삼기 위해 같은 해 11월 5일 그곳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개장하였다. 그 주변은 같은 시기에 공원으로 조성되기 시작하였으며, 1992년 8월 15일 광복절에 이르러 오늘날 '서대문독립공원'으로 알려진 독립공원으로 개장하게 된다.
시설
현재 사적으로 지정된 서울 구 서대문형무소의 주요 건물들은 다음과 같다.
보안과 청사 : 서대문형무소의 업무를 총괄한 건물로 1923년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로 지어졌다. 1층은 사무실, 2층은 회의실과 소장실. 지하는 조사실로 사용되었으며, 일제가 위압감을 주기 위해 정면의 지붕을 높고 웅장하게 세웠다고 한다. 현재는 서대문형무소의 역사 전시관으로 사용된다.
중앙사 : 옥사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건물로 1920년대 중반에 2층 규모로 지어졌다. 잔존해 있는 10, 11, 12옥사와 연결되어 있고 중앙 간수소의 기능을 맡았다. 1층은 간수들의 사무 공간, 2층은 수감자들의 사상교육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9옥사 : 1920년대에 2층 규모로 지어졌다. 형무소에서 중앙사(중앙 간수소)와 분리되어 있는 유일한 옥사로서, 일제강점기에 주로 '사상범'을 가두고 특별 감시와 통제를 했던 감옥으로 알려져 있다.
사형장 : 지상 1층, 지하 1층 규모로 지어진 일본식 목조건물로, 건축연대는 1916년으로 추정된다. 사형장 건물은 5m 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1층에서 사형을 집행하였다. 지하실은 시신을 수습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일제시대 서대문형무소의
운영 인력
[관리자급 13명과 실무자 261명으로
서대문 형무소를 운영한 일제]
기록으로 보는 옥중 생활1
기록으로 보는 옥중 생활2
일제시대 서대문형무소에서의
수감자 식사
일제시대 서대문형무소에서의
재소자 동작 시한표
중앙사 내부 복도
(좌로부터) 10옥사 복도, 11옥사 복도, 12옥사 복도
중앙사의
10옥사, 11옥사, 그리고 12 옥사에 관한
안내문
중앙사 12옥사의 복도
12옥사 징벌방에 관한
안내문
12옥사 징벌방
1월의 독립운동가
2월의 독립운동가
3월의 독립운동가
4월의 독립운동가
5월의 독립운동가
6월의 독립운동가
7월의 독립운동가
8월의 독립운동가
9월의 독립운동가
10월의 독립운동가
11월의 독립운동가
12월의 독립운동가
타벽 통보법에 관한
설명문
타벽 소리를 듣고 있는
수감자 모습을 재현해 놓은
감방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있는
독립건물 화장실
[일제시대에는 없었고,
역사관 조성시 시설한 화장실이다.]
취사장
취사장에 관한
안내문
취사장과 취사장 유구에 관한
안내문
서대문형무소에서 바라본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앞)과 한성고등학교(뒤)
9옥사
사각 연못
사각 연못에 관한
안내문
지금은 연못으로 변한
초기 사형장터에 관한
안내문
지금은 연못으로 변한
초기 사형장터
수감자의 노역 현장으로 사용된
공장
수감자의 노역 현장으로 사용된
공장에 관한
안내문
수감자의 노역
수감자의 노역시간
공장에 있는
추모의 공간
중앙사의
12옥사(좌)와 11옥사(우)
감방 환기구에 관한
안내문
감방 환기구
해방 후 설치된
옥사 화장실의
흔적에 관한
안내문
해방 후 설치된
옥사 화장실의
흔적
[ 흰 색의 벽이
해방 후 설치된 옥사 화장실의
흔적이다.]
서대문 형무소 건축 부재에 관한
안내문
서대문 형무소 건축 부재와
그 뒤로 보이는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2024년02월02일(금요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세종이야기 전시장&충무공이야기 전시장] 탐방기 탐방지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 세종이야기 전시장 & 충무공이야기 전시장 탐방코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세종이야기 전시장~충무공이야기 전시장~광화문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 탐방일 : 2024년 02월 02일(금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서울 서대문구 최저기온 0도C, 최고기온 6도C]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3시간21분 소요) 11:22~11:35 연신내역에서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독립문역으로 이동한 후 독립문역 4번 출구로 나옴 [13분 소요] 11:35~11:36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251 번지에 있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매표소로 이동 [입장요금 : 3천원] 11:36~12:53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탐방 [1시간17분 소요]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는 일제 통감부가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운동가들을 투옥하기 위해 1907년에 오늘날의 서대문구 지역에 건설하여 1908년 10월에 문을 연 감옥을 가리킨다. 해방 후에는 주로 서울 구치소라 불리며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다. 서울 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1987년 10월에 폐쇄되었고, 그 후로 역사성과 보존가치 등을 고려하여 일부 시설을 철거한 뒤 나머지 시설들이 1988년 2월 27일에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98년 11월 5일부터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가 관리하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재개장하였으며, 1992년부터는 서대문구 현저동에 위치한 독립공원의 주요시설로 기능하고 있다. 역사 일제강점기 일제 통감부는 항일의병들을 투옥하기 위해 현재의 서대문구 현저동에 근대적 감옥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일본인에게 설계를 맡겼다. 그 설계에 따라 1907년 8월 무렵에 완공된 감옥시설의 첫 이름은 '경성감옥'이었다. 최초의 경성감옥은 약 500명을 투옥할 수 있는 560여 평 규모의 목조건물이었으며, 증축 과정에서 수감자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원형의 감옥인 파놉티콘 구조로 만들어졌다. 이후 일제는 1912년에 현재의 마포구 공덕동에 일명 '마포형무소'로 알려진 또 다른 감옥을 세우고 그 이름을 '경성감옥'이라고 칭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원래의 경성감옥의 이름은 '서대문감옥'으로 바뀌게 되었다. 1923년에 이르러 서대문감옥은 오늘날 잘 알려진 이름인 '서대문형무소'로 개칭하게 된다. '경성감옥'에서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로 명칭이 바뀌는 동안 수감인원은 계속하여 증가하였는데, 서대문형무소는 18세 미만의 여성, 10년 이상을 선고받은 자, 그리고 무기수를 수용하였으며, 1944년 기준 2,890명이 수용되어 있었다. 잘 알려진 수감자로는 백범김구 선생, 강우규 열사, 유관순 열사가 있다. 유관순 열사는 서대문형무소에서 목숨을 다하였다. 광복 이후 1945년 광복 후 서대문형무소의 명칭은 '서울형무소'로 바뀌었고, 이 시기에는 반민족행위자와 친일세력들이 수용되었다. 그러나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주장에 의하면 1949년까지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활동에 따라 이광수, 노덕술 등의 친일파가 수감되었지만, 반민특위 활동이 와해된 후 이승만 정부 치하에서는 오히려 독립운동가였던 정치인들이 서울형무소에 수감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국전쟁 중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던 시기에는 북한군이 반공·친미 인사로 추정한 인물들을 투옥하였으며, 그 후 1950년 서울을 수복한 이승만 정부는 북한군에 협조한 부역자들을 서울형무소에 가두었다. 역사관은 일제 강점기에 투옥된 모든 사람들을 추모하고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군사독재에서 폐쇄까지 1961년에 '서울형무소'의 명칭은 '서울교도소'로 바뀌었고, 4․19혁명과 5․16군사정변 등과 같은 정치적 변동에 따라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다. 예를 들어 김두한은 1947년, 1954년, 1965년, 1966년 등 4차례 서울형무소 및 서울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마지막으로 수감된 원인은 국회 오물투척사건이었다. 그 후 1967년에 '서울교도소'는 '서울구치소'로 그 이름을 바꾸어 1987년에 폐쇄될 때까지 같은 이름을 유지하게 된다. 1987년 11월에 서울구치소는 오늘날의 위치인 경기도 의왕시 안양판교로 143으로 이전하였고, 서대문에 있는 서울구치소 시설은 폐쇄되었다. 정부는 폐쇄된 전체 시설 중에서 역사성과 보존가치가 인정되는 보안과 청사, 제9~12옥사, 공작사, 한센병사, 사형장 등 일부만을 보존하기로 하고 나머지 건물을 모두 철거하였다. 사적 지정 및 역사관 개장 1988년 2월 27일 서울구치소의 남은 건물들은 서울 구 서대문형무소라는 명칭 아래 대한민국의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다. 사적의 관리자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는 그 장소를 역사의 교훈으로 삼기 위해 같은 해 11월 5일 그곳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개장하였다. 그 주변은 같은 시기에 공원으로 조성되기 시작하였으며, 1992년 8월 15일 광복절에 이르러 오늘날 '서대문독립공원'으로 알려진 독립공원으로 개장하게 된다. 시설 현재 사적으로 지정된 서울 구 서대문형무소의 주요 건물들은 다음과 같다. 보안과 청사 : 서대문형무소의 업무를 총괄한 건물로 1923년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로 지어졌다. 1층은 사무실, 2층은 회의실과 소장실. 지하는 조사실로 사용되었으며, 일제가 위압감을 주기 위해 정면의 지붕을 높고 웅장하게 세웠다고 한다. 현재는 서대문형무소의 역사 전시관으로 사용된다. 중앙사 : 옥사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건물로 1920년대 중반에 2층 규모로 지어졌다. 잔존해 있는 10, 11, 12옥사와 연결되어 있고 중앙 간수소의 기능을 맡았다. 1층은 간수들의 사무 공간, 2층은 수감자들의 사상교육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9옥사 : 1920년대에 2층 규모로 지어졌다. 형무소에서 중앙사(중앙 간수소)와 분리되어 있는 유일한 옥사로서, 일제강정기에 주로 '사상범'을 가두고 특별 감시와 통제를 했던 감옥으로 알려져 있다. 사형장 : 지상 1층, 지하 1층 규모로 지어진 일본식 목조건물로, 건축연대는 1916년으로 추정된다. 사형장 건물은 5m 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1층에서 사형을 집행하였다. 지하실은 시신을 수습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 12:53~12:57 도보로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251 번지에 있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279-24 번지에 있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으로 이동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관람요금 : 무료] * 12:57~13:38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관람 [41분 소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국가보훈부 소속 박물관이다. 기념관은 이전에 서대문구의회 건물이 있었던 부지에 건설됐고, 본래 2021년 11월 23일에 개관할 예정이었으나 추가 공사로 연기되어 2022년 3월 1일에 정식 개관했다. 지상 4층, 지하 3층 건물로 상설전시실 3개와 특별전시실 1개로 구성되어 있다. 건립 배경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 의지를 표명했고, 2019년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계획이 추진됐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련 기념 시설들이 상하이시, 충칭시 등 중국에 소재하고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졌다. 이에 국내에도 기념관을 건립해 자주독립과 민주공화제의 정신을 후대에 전승하는 것이 기념관 건립의 목적이 됐다.] 13:38~13:42 도보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독립문역 5번 출구로 이동 13:42~13:49 독립문역에서 경복궁역으로 가는 3호선 지하철 승차 대기 13:49~13:53 독립문역에서 3호선 지하철을 타고 경복궁역으로 이동한 후 경복궁역 6번 출구로 나옴 13:53~13:57 도보로 서울 종로구 세종로 1-68 번지에 있는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으로 이동 13:57~14:54 [광화문광장 세종대왕동상~세종이야기 전시장~충무공이야기 전시장~광화문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의 동선으로 탐방 [57분 소요]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서울 광화문을 지나칠 때면 언제나 마주치는 세종대왕의 동상도 가까이 가서 보면 새롭다. 세종대왕 동상 앞에는 측우기, 앙부일구 등이 전시돼 있고, 벽면에는 그의 업적을 묘사한 그림들이 양각돼 있다. 동상 뒤로 돌아가면 지하와 연결되는 입구가 하나 있는데, 이를 따라 내려가면 세종대왕에 대해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전시관 ‘세종이야기’가 나온다. 세종대왕의 출생과 가족관계, 품성과 취미, 애민사상 등에 얽힌 일화를 살펴보고 한글 관련 문헌과 현대 작가들의 작품 등도 엿볼 수 있다. 10시~20시(폐관 30분 전 입장 마감), 매주 월요일 휴관 무료] [세종충무공 이야기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지하 175 (세종로) 세종충무공이야기는 도심 속 광화문 한복판에서 생생한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조선 4대 임금 세종대왕과 임진왜란 당시 큰 공을 세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전시관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운영한다. 세종이야기 전시장은 2009년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개관하였고, 충무공이야기 전시장은 2010년 4월 28일 이순신 장군의 탄생일을 맞아 개관하였다. 세종이야기 전시장은 [인간, 세종], [민본사상], [한글 창제], [과학과 예술], [군사정책], [한글도서관] 총 6개의 전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충무공이야기 전시장은 [성웅 이순신의 생애], [조선의 함선], [7년간의 해전사], [난중일기를 통해 본, 인간 이순신], [이순신의 리더십], [영상체험관] 총 6개의 전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체험 및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생생한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연간 약 150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서울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첨단전시와 4D로 만나는 충무공이야기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오.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다(必生則死, 必死則生).” 서울시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지하 2층에서 이런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 것 같아 기억을 더듬어보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명언 중 하나다. 그런데 세종문화회관에서 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일까? 이순신 장군에 관한 전시 공간, ‘충무공이야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충무공이야기는 2010년 4월 28일 문을 열어 다녀간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동상은 알아도 근처에 이런 전시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다. 일반 전시관과 달리 최첨단 매체를 활용해 관람객들을 조선시대 임진왜란 시기로 초대하는 전시공간을 소개한다. ● “필생즉사, 필사즉생”··· 4D 체험관에서 만나는 명량해전 이곳은 이순신 장군의 업적과 인간적 면모, 전쟁 이야기를 비롯한 7개의 체험 전시장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4D 체험관’. 영상을 보고 들을 뿐만 아니라 촉각과 후각까지 자극하는 장치를 마련해 관람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첨단 체험관이다. 4D 체험관에서 상영되는 영상은 판옥선을 타고 명량해전에 참가하는 내용이다. 1597년 9월, 명량해협(울돌목)에서 전투를 앞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13척의 전선을 가지고 일본 수군이 이끄는 133척의 함대와 맞섰다. 10분의 1의 전력으로 전투에 나서는 그와 조선의 수군은 죽을 각오로 전투에 임했고, 울돌목의 거센 조류를 이용해 대승을 거뒀다. 이 전투로 일본 수군은 전선 31척을 잃었지만, 조선 수군의 전선은 모두 무사했고 사망자도 2명에 그쳤다. 다윗이 골리앗과 벌인 전투에서 완벽하게 이긴 셈이다. 4D 체험관에 설치된 의자는 영상에 맞춰 앞뒤, 좌우로 흔들리는 진동 효과를 줄 수 있고, 공기를 내뿜을 수도 있다. 따라서 관객들은 자신의 귀밑이나 뺨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이순신 장군처럼 파도에 출렁거리는 판옥선을 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의자에서 튀어나오는 물과 등받이 맨 위쪽에 마련된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는 전투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 앞과 옆에서 동시에 영상이 나온다?··· 3면 복합영상 3면 복합영상관은 정면과 양 측면에 스크린이 설치돼 관람객들이 입체적으로 영상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전시관 북측에 자리 잡은 3면 복합영상관도 인기다. 여기에서 상영되는 영상에는 임진왜란의 발생부터 이후까지의 역사적 사건을 담은 스토리가 펼쳐진다. 정면에 있는 거대한 스크린에는 주요 사건이 전개되고, 양 측면 스크린에는 조선과 일본의 장수나 각 군의 군사 규모 같은 정보가 나온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술을 역동적인 애니메이션과 영상으로 제작한 3면 복합영상의 원리는 간단하다. 관람객이 이 상영관에 들어서면 센서가 반응해 30초 후에 영상이 시작된다. 이때 정면의 스크린을 향해 3개의 빔 프로젝터가 각각 미리 계산된 영상을 쏘고, 양 측면에도 빔 프로젝터가 설치돼 준비된 영상을 쏘는 것이다. 3개의 빔 프로젝터가 영상을 쏘기 때문에 넓은 바다에서 전개되는 전투상황을 더 실감나게 볼 수 있고, 고개를 돌려 측면에 제시된 정보를 볼 수 있어 입체적인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3면의 복합영상이 꺼지면 정면의 스크린이 양쪽으로 분리된다. 이때 거북선 모형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관람객은 함미부터 볼 수 있다. 중앙에 전시된 이 거북선 모형은 해군사관학교가 복원한 거북선을 모델로 자문 위원들의 고증을 거쳐 완성됐다. 실제 크기를 55%로 줄여서 재현된 이 모형은 관람객이 직접 내부로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졌다. 늘 겉모습만 봤던 거북선 내부 구조를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축소 인형의 모습을 보며 예전 해군의 모습도 짐작할 수 있다. ● 조선시대 화포와 총통을 직접 다뤄볼까? 노 젓기를 체험해보거나 판옥선을 조립해보는 코너는 물론, 조선시대 화포와 총통을 쏘는 게임도 마련돼 있다. 기존의 전시관에서는 유리로 관을 만들고, 그 안에 무기 같은 유물을 전시했다면 이곳에서는 실물 모형을 마련해 직접 다룰 수 있게 했다. 화포와 총통 체험은 정면 스크린과 화포와 총통 각각 1개로 이뤄진 간단한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화포와 총통 중 하나를 선택해 게임 시작을 누른 뒤 스크린 위로 지나가는 적선을 명중시키면 되는 식으로 구성됐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화포와 총통 체험, 노 젓기 체험, 판옥선 조립 체험, 이순신 장군에 얼굴 합성 체험이다. 이 밖에도 관람객 본인의 사진을 찍어 이순신 장군의 사진에 합성해 보는 체험처럼 다양한 형태의 즐길 거리가 마련됐다. 이런 매력적인 요소 덕분에 충무공이야기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해 백 번을 듣는 것보다 그에 대한 정보를 입체적으로 전시한 공간을 찾아 한 번 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충무공이야기는 세종문화회관이 운영하고 있으며 매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문을 연다. 매주 월요일은 휴무다.] [광화문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은 정부의 산하 단체였던 애국선열 조상건립위원회와 서울신문사의 공동주관으로 1968년 4월 27일 건립되었다. 전체 높이 17m(동상 6.5m, 기단 10.5m)의 청동 입상 형태로 건립되었으며 주변 조형물로는 거북선 모형 1개와 북 2개가 위치해 있다. 국가의 심장부로 통하는 광화문 네거리에 위치할 애국선열동상의 인물지정에 관해 확인된 바에 따르면 세종로와 태평로가 뻥 뚫려 있어 남쪽 일본의 기운이 너무 강하게 들어오게 되는데 이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던 당시 풍수지리학자들의 주장을 배경으로 세종로 네거리에 일본이 가장 무서워할 인물의 동상, 국가를 수호하는 지킴이의 의미를 지닐 선열조상의 인물로서 왜적을 물리쳐 나라를 구하신 이순신 장군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이 동상의 조각적 특징은 기념비적 상징성에 있다. 형상의 완전한 사실성보다는 그 인물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는 표현이다. 바다를 지킨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라도 하듯이 이순신 장군 동상 근처에 분수대를 설치하였다.] * 14:54~14:56 도보로 광화문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에서 광화문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여 탐방 완료 * 14:56~14:57 광화문 버스 정류장에서 연신내역으로 가는 704번 버스 승차 대기 * 14:57~15:38 704번 버스를 타고 광화문 버스 정류장에서 연신내역 버스 정류장으로 간 후 연신내역에서 6호선으로 환승하여 구산역으로 이동 [41분 소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지도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위치도 [세종이야기 전시장 & 충무공이야기 전시장] 안내도 광화문 광장 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