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적었던 글을 올립니다. 어찌보면 사비움님글에 대한 답글이 될 수 있겠네요.. 제주의 음식문화도 알면 참 재밌고 소중하답니다. 입맛이야 천차만별이고 맛있다 없다는 지극히 주관적이기에 빨간 육개장이 아니드래도 제주음식 알고 먹으면 건강식에 참 맛있어요.. 물론 제 입맛에요... ^^ ------------------------------------- 서울은 오랜만에 비도 그치고 햇볕도 비친 하루였네요. 요즘 날씨도 덥고 비도 많이 오고 실내 습도는 너무 높고 해서 기가 빠지는 나날이었던 것 같아요. 이런 날 얼음동동 띄운 한치빠진 오이냉국이 그리워요.. 매년 이맘때쯤 고향집에 가면 엄마께서 항상 해주셨던 음식이었죠.. 오늘은 흔히 육지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제주음식에 대해서 적고자 합니다. ^^ 제가 유년시절을 제주도 음식만 먹고 살아서 그런지 제주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이 뭘까 생각해보면 바로 된장과 돼지고기, 생선이 아닐까 싶네요..
결혼 후 처음 여름휴가때 제주도로 갔었는데 엄마가 오이넣고 된장풀어넣은 제주도식 오이냉국을 먹으라고 차렸는데 신랑은 난생 처음 보는 음식에 생된장을 풀어넣었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숟가락을 쉽게 들지는 못하더군요. 그래도 엄마가 권하니깐 한그릇 뚝딱 해치웠는데 그걸 본 엄마.. 사위가 오이냉국을 너무 좋아한다 생각해 다시 한그릇 가득 오이냉국을 또 권했지요. 그날 신랑은 다른 제주 음식은 다 먹겠는데 날된장을 그냥 풀어서 식초 넣어 만드는 제주의 냉국은 도저히 못 먹겠다고 저에게 고백하드라구요. 제주식 오이냉국에 심하게 문화충격을 받은 모습이었어요. 전 서울에서도 엄마가 해주던 그 오이냉국을 만들어봤는데 영 엄마의 맛이 안나던데 나중에 제주도식 된장과 육지식 된장이 좀 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똑같이 콩과 소금이 들어가지만 제주도식 된장은 바람이 많고 온도가 따뜻한 기후의 특성상 쉽게 발효가 되서 담근지 3~4개월이면 먹을 수 있고 냄새가 없지만 육지식 된장은 묵히면 묵힐수록 맛이 있기 때문에 보통 1년 이상을 묵혀서 먹는데 특유의 냄새 때문에 생된장으로 요리에 활용하지는 않다는군요. 그래서 육지식 된장을 냉국에 풀어 먹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다고 하더군요. 제주 된장이 냄새가 전혀 안 나는 이유로 사람들은 제주지하수와 제주전통옹기를 뽑더군요. 그 중 유약을 바르지 않고 제주흙으로 구워낸 제주도식 전통옹기는 통기성이 뛰어나 발효도 잘되고 각종 유익균을 생성하는데 최고의 효과를 발휘하면서 제주된장맛을 좌우한다고 합니다. 맹물에 된장 한스푼 풀어서 끓어오르면 어린 배추 뜯어넣어 배추 숨만 죽을 정도면 밥상에 내놓은 배추 된장국, 제주의 해초인 가시리, 넙패, 미역 등을 끓는 된장물에 살짝 익혀 먹는 해초 된장국 등 양념을 하지 않아도 원재료의 맛으로 담백하게 끓인 된장국만 먹다 육지식으로 각종 양념을 넣어서 진하게 끓여넣은 된장찌개의 맛은 저에게도 문화적 충격이었어요. 처음엔 너무 강렬한 맛에 속도 안좋고 입이 짜서 잘 안먹다가 요즘은 제가 더 육지맛에 동화되어 심심한 된장국은 안 끓이게 되네요.. 제주사람들은 된장을 너무너무 사랑한 나머지 된장국, 냉국, 고사리육개장 뿐만 아니라 참외나 오이 심지어 수박까지도 된장에 찍어 먹었답니다. 된장이 없다면 도대체 뭘 먹고 살았을까? 상상이 안되죠.
두번째로 제주사람들이 정말 정말 사랑하는 음식은 바로 돼지고기죠. 잔칫날, 상가집에 돼지고기를 안 내놓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시골에서는 80년대초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똥도새기(일명 제주흑돼지)를 키웠는데 그 똥도새기의 역할은 다 알다시피 음식물 쓰레기 처리와 사람들 분뇨처리였고 종국에는 그 집의 단백질 보충용으로 사라지는 운명이었죠. 제주사람들은 드넓은 목장에 소를 키워도 소고기는 별로 안좋아했고 돼지고기 사랑은 유난했어요. 단, 육지식 삽겹구이가 아닌 보쌈식으로 삶아먹는 조리법을 선호했죠. 비계가 담뿍 들어간 요즘의 삼겹살보다는 육질이 좋은 살코기가 삶아 놓으면 더 맛났어요. 전 중학교 입학식때인가 아버지께서 입학기념으로 삼겹살구이를 사주셨는데 그때 처음으로 돼지고기를 삶지않고 구워먹어도 맛나는구나.. 라는 걸 알았답니다. 하지만 조리법에서도 구이보다는 삶아먹는게 더 몸에 좋다고 하니 제주 할머니들이 100세 가까이 장수하는 분이 많은 비결도 삶은 돼지고기를 자주 먹는 식습관에 있다고 한 TV 다큐프로가 생각나네요. 제주도 동네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시려면 다른 음식보다도 돼지고기관련 음식점... 특히 보쌈이나 족발집 같은거 하면 망할일 없다고 지인이 그러던데 그게 어찌보면 맞는 말인 것 같아요. 그만큼 제주인의 돼지고기 사랑은 열광적일만큼 대단하죠..
세번째로 제주음식문화에서 뺄 수 없는게 바로 생선이죠. 근데.. 보통 생선하면 조려먹거나 매운탕 끓여먹거나 구워먹거나 그러는데 제주사람들의 생선조리법은 보통 국이 많았어요. 갈치와 늙은호박, 배추를 넣어 끓인 갈치호박국, 끓는 물에 얼갈이배추 넣고 고도리(고등어새끼), 각재기나 멜넣고 땡고추 썰어넣은 고도리국, 각재기국, 멜국과 옥돔, 참돔, 벵에돔 등 돔종류는 한번 삶아서 살만 발라내어 미역과 함께 끓이는 등 자칫 비릴 것 같은 생선들을 이용해 국을 끓여내는데 어떤 분들은 선입견땜에 도저히 못 먹겠다고 하더군요. 신랑도 어떻게 생선을 국으로 끓여먹느냐 하고 거부하더니 한번 먹고나서는 제주음식 중 가장 맛있는 음식 중 하나가 생선국이라고 할 정도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죠. 마트에서 파는 일반 시판 생선으로는 도저히 제주도식 생선국을 만들 수는 없고 예전부터 바로 배에서 내린 싱싱한 갈치 등으로 국을 끓여내니 비린맛이 전혀 없는 삼삼하고 시원한 국으로 탄생이 된거죠. 아버지께서 바다에서 생선을 낚아오시면 엄마는 바로 손질해서 국을 끓여 주셨는데 그 맛은 어느 식당에 가서도 맛볼 수 없었던 귀한 맛이었던 것 같아요.
예전 아는 분이 제주도 여행을 자주 하시는데 제주만 가면 먹을 음식이 없다고 투정아닌 투정을 부렸었어요. 근데 요즘은 제주도 가도 맛집이 많아서 골라 다닌다고 하드라구요. 제주도도 탈지역화, 글로벌화(?) 되다보니 유명 맛집도 많이 생기고 특색있는 외국요리전문점들도 많이 생기고 있어요. 하지만.. 사라지는 것도 많네요..
그 중 대표적인 게 제주도의 전통음식들이죠.. 예전부터 메밀농사를 많이 지어서 새해첫날에는 떡국대신 꿩고기나 소고기가 들어간 메밀국수를 먹었고 돼지비계로 얇게 부쳐낸 메밀전병에 소금으로 삼삼하게 간 한 무채나물을 돌돌말아 먹었던 메밀빙떡, 잔칫날이나 상가집에서는 돼지뼈와 내장등을 푹 우려서 모자반 넣어 먹었던 몸국 등.. 처음 맛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게 무슨 요리야.. 하겠지만 한번 먹고 두 번 먹었을 때 느낌이 다른게 제주음식이었던 것 같아요. 밥먹을 시간조차 없이 바빴던 제주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요리시간이 짧은 게 가장 최고였고 남들 보기엔 맛도 없고 투박하고 단촐하지만 그 음식을 먹고 자란 세대들에게는 더이상의 맛있는 음식이 없다고 할만큼 소중한 음식이죠.
세상은 변하고 입맛도 변하고 모든게 변하고 있지만 역시 사람이란 동물은 추억을 먹고 살기에 유년시절의 입맛을 좌우했던 그 음식들이 더 그리워지는 것 같아요.
엄마가 해주신 한치오이냉국이 그리워 글을 쓰다보니 한없이 길어졌는데 요즘처럼 축 늘어지고 기운없을 때 엄마의 손맛이 들어간 음식은 절로 힘을 내게 해주죠.. 그게 많이 그리운 날이네요.
첫댓글그 제주식 고사리 육개장이 맛없어보여 안먹은게 아닌건 알져?ㅋ 나이들어보니 음식은 한사람의 역사를 기반으로 하고, 기억과 추억이 담긴거더라고요. 한치오이냉국이나 빙떡이 소중하고 그립듯이 그날 전 육지스탈 고사리육개장이 간절했는데 제주식 육개장이 나온거져. 그건 배, 배반이었어요, 기대에 대한 -.-
작년에 내려와서 동홍동에 입에 잘맞는 식당을 발견해 부지런히 다녔어요. 저는 몸국에 신랑은 고기국수에 빠졌는데...얼마전에 사정으로 폐업...ㅠ.ㅠ 여름에 자리축제가서 먹은 자리돔물회도 맛났는데...설에 먹는 메밀국수..진짜 먹고 싶어요@.@ 글을 읽다보니 오만가지 생각이 오가네요 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첫댓글 그 제주식 고사리 육개장이 맛없어보여 안먹은게 아닌건 알져?ㅋ
나이들어보니 음식은 한사람의 역사를 기반으로 하고, 기억과 추억이 담긴거더라고요. 한치오이냉국이나 빙떡이 소중하고 그립듯이 그날 전 육지스탈 고사리육개장이 간절했는데 제주식 육개장이 나온거져. 그건 배, 배반이었어요, 기대에 대한 -.-
내가 또 적응 못하는게 바로 갈치국, 옥돔미역국 이런거. 당일바리 옥돔으로 서귀포바닥에 짜하게 소문날 정도로 솜씨좋은 분이 끓여도 그 국이랑 안친해지는게 긍까 생선을 국물에다가 빠트리는거에 당췌 적응이 안가는거고, 과메기부터 전복내장까지 날로 씹어먹을정도로 비린걸 잘 먹어도 국에서 나는 옥돔 비린내는 기가막히게 맡아진다니까요.
몸국도 정말 맛있게 끓였다는데도 못 먹겠더라고요. 하드코어 순대국, 내장탕도 먹는데. 긍까 그 찐덕찐덕한 국물에 일단 적응을 못하는거더라고요.
요 세개 빼고는 아강발부터해서 멜젓에 찍어먹는 돼지고기, 성게알까지 원츄 안하는게 없다는. 아, 자리물회를 별로 안 좋아함, 자리젓은 원츈데
저는 얼마전에 신제주 노형동에 있는 논짓물이란 생선 음식점엘 갔었어요.우럭조림을 먹을까 하다가 갈치 조림을 먹었는데.대빵 비쌉디다요..근데 제가 태어나서 첨 먹어본 갈치국맛에 완전히 뿅 갔드랬습니다.얼갈이와 싱싱한 갈치를 넣고 끓여낸 음식인데 전 태어나서 글케 담백하고 개운하고 깔끔하고 고소한 갈치국은 첨 먹어봤습니다..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답니다...또 먹고 싶어요..저는 육류보다 생선을 좋아하다보니 주로 생선쪽에 관심을 두는데..제주의 갈치국 대박에 충격 이었습니다~~~
정말 맛있는 글이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요즘 자리가 살이통통해서 엄청고솝고 쫀득한디~~아~ 자리먹고싶은데요~~곳 한치철이 될건디~소주에 캬~~이눔에 입맛이란^~^ㅎ
글도 맛나게 잘쓰시네요~~
잘읽고 갑니다~~
작년에 내려와서 동홍동에 입에 잘맞는 식당을 발견해 부지런히 다녔어요.
저는 몸국에 신랑은 고기국수에 빠졌는데...얼마전에 사정으로 폐업...ㅠ.ㅠ
여름에 자리축제가서 먹은 자리돔물회도 맛났는데...설에 먹는 메밀국수..진짜 먹고 싶어요@.@
글을 읽다보니 오만가지 생각이 오가네요 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된장냉국, 생선국, 된장에 과일 찍어 먹기... 육지촌넘 눈엔 참 신기한 식문화가 많군요. 언제 먹어볼라나...ㅎ
엄마음식이 그리운거..
더 바랄것도 없이 좋은 제주생활에서 저에게 딱~하나 아쉬운거에요.
여름이면 열무김치에 빡빡장넣어 비벼먹고 싶고. 남은 빡빡장은 된장에 살짝 익힌 연한콩잎쌈싸먹고..
무채나물이며 호박나물..
언제나 그날 반찬만을 해주신 울엄니..
오늘따라 울엄니 무쟈게 그립네요.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음식들이라서리...
아마도 저도...
이런 글 참 좋아요...제주의 음식문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고, 어린시절의 추억도 묻어나는......^^*
갈치국 진짜 둘이 먹다가 한사람 집에가도 모를 정도로 무쟈게 맛있어욤~~
글이 참 따스하고 맛나네요...저도 마구마구 제주음식을 탐험하고 싶어지네요~좋은 글 감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