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의 한나라 고분 --장신궁 등불을 켜도 금루옥의를 다 볼 수 없습니다.
출처: 신화망 작성자:高博 杜一方 고고학 중국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처음 발견한 '커플룩' 금루옥의 두 벌, 옛사람들의 지혜와 앞선 환경보호의식을 담은 장신궁등, 한나라 때 만들어진 행주기구….……. 모두 2100여 년 전 서한 중산정왕 유승과 아내 두관(窦绾)의 묘소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 유승·두홀금루옥의
한나라의 제후왕이자 후급인 대형 애동묘로서 만성한묘의 발굴은 여러 고고학 중에서 가장 많은 고고학을 만들어냈으며, 이는 서한성대의 장엄한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50여 년 전 고고학적 발굴 이후 만성의 한묘와 그 출토 유물에 대한 전문가 및 학자들의 연구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 중산 징왕 묘역 입구에서 우발적인 공사가 2,000년 이상 잠들어 있던 역사를 깨우쳤다
1968년 5월, 인민해방군 공병 모 부 장병이 허베이성 바오딩시 만청링산에서 공사를 하던 중 우연히 2,000년 이상 잠들어 있던 고분묘를 발견했습니다. 당시 41세의 노 씨는 고고학 연구원으로 도시 전체에서 고대 무덤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는데, 그야말로 '파격적인 놀라움'이었습니다.
이후 루자오인 등 중앙과 허베이 고고학자들이 합동 고고학 팀을 구성하여 두 달여 만에 고분 고고학 발굴 작업을 완료했습니다.
▲ 홀관
산을 따라 굴착된 만성한묘는 횡혈식 '애묘'에 속하며 묘도, 복도, 북이실, 남이실, 중실, 후실의 6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능묘는 지상 궁궐을 본떠 배치하고, 귀실은 차마방과 헛간, 중실은 모의 연회객실, 후실은 침실을 본떠서 욕실을 상징하는 측실이 배치되어 있고, 묘에는 정교한 방범과 배수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 중산정왕묘
두 무덤에서 모두 1만여 점의 구리, 철, 금, 은, 도자기, 옥 등이 출토되었습니다.많은 유물이 출토됐지만 무덤 주인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이 신비한 묘주는 어떻게 확정되었습니까? 판더웨이 허베이박물관 연구관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무덤의 형태, 출토된 유물, 금루옥의와 청동기의 명문, 예를 들어 '중산내부동프랑스1,34년'이라는 문구를 바탕으로 무덤의 주인이 서한 중산국의 초대 정왕 류성임을 확인했습니다.
전국과 한대에 중산국이 존재했지만 무덤에서 한대에만 있던 오수전이 대량 출토됐기 때문에 이 무덤은 한대 중산국에 속했고, 한대 중산왕 재위 30년이 넘은 것은 유승 한 사람뿐이었습니다."판더웨이가 말했습니다.
▲ 동인도한 중산왕 유승과 왕후 유승의 정교한 생활 유승은 문경의 치를 개척한 한 경제 유계의 아들이자 한 무제 유철의 서형입니다.10대 때 서한의 제1대 중산왕으로 봉해졌고, 42년간 재임한 것은 서한의 전성기 때입니다.
사기'는 "인락주호내(人樂酒好內)보다 낫다"고 기록했습니다.판더웨이에 따르면 서한의 성세에는 중앙집권과 지방세력의 갈등이 숨어 있습니다.후한 무제는 즉위 후 추은령을 내려 번을 깎으려는 의도가 분명했습니다.시국을 간파한 류승(劉勝)은 정사를 무시하고 안락과 태평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 놋쇠 타원형의 놋쇠 한 자루 놋쇠로 만든 술잔이 만성의 한 무덤에서 주령용 주사위와 돈 등 다량의 술그릇이 출토되었습니다.대표적인 오류는 금과 은으로 동 주사위를 상감하여 총 18개의 면을 상감하는데, 그 중 16면에는 '1'에서 '16'까지의 숫자가 표기되어 있고, 다른 두 면에는 '술래'와 '교만'이 표기되어 있으며 주사위 표면에는 금실, 터키석, 홍마노로 상감되어 있습니다.
▲ 금은 상감 구리 주사위 유승과 왕후 두관(窦绾)은 글장난을 좋아합니다.유승은 문필에 능했고, 대표작인 '문락대', '문목부'는 후세에 칭송을 받았습니다.두홀무덤에서도 연석, 서도 등의 서재 도구와 고슬 등의 악기가 출토되었습니다.
만성의 한묘는 도난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출토된 유물이 많으며, 특히 일급 유물의 비율이 매우 높아 한나라의 전성기 때의 미적과 공예를 대표하고 있습니다.출토된 유물을 보면 부장품은 유승 부부의 미적 수준을 보여주는 정교한 부장품이며 현대어로 말하면 호호불토입니다.
▲ 궁중 행락 동전
금루옥의(金缕玉衣)와 장신궁(長信宮)등은 여러 무덤 문화재 중 가장 눈에 띄는 '국보'입니다.옥의(玉衣)는 한나라 황제와 고급 귀족들의 무덤에 사용되었던 염복으로, 유승과 두관묘에서 출토된 두 벌의 금루옥의(金缕玉衣)는 사람의 모양과 동일하며, 옥의는 머리, 저고리, 소매통, 바지통, 장갑, 신발의 6개 부분으로 나뉘며, 모두 옥조각으로 이루어져 있고 옥조각 사이에는 금실로 엮어져 있습니다. 판더웨이에 따르면 이 두 세트의 옥의는 중국에서 고고학적 발굴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완전한 보존 옥의입니다.
만성의 한묘 이전에는 약간의 옥의 조각이 출토되었을 뿐, 사람들은 사료 기록에 의존하여 금루옥의 모습을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홀무덤에서 출토된 장신궁등은 한나라 청동 공예의 절정입니다.외형은 마치 등불을 들고 춤을 추는 궁녀와 같으며, 궁녀는 무릎을 꿇고 앉아 시중드는 자세이며, 생활의 정취가 풍부하여 한나라 여인의 일상복식과 순간의 자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 장신궁 램프의 도시 문화 보호소장인 량옌둥은 장신궁 램프의 램프가 회전하고 램프 커버를 열고 닫을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밝기와 조명 방향을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촛불의 연기는 궁녀의 오른팔을 통해 체내에 들어갈 수 있으며, 이는 실내를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내벽에 그을음을 부착하여 옛사람들의 앞선 환경 의식을 반영합니다.
한세의 웅풍을 노크한 노조음은 만성의 한묘 고고학적 발굴에 앞서 당나라 역사와 금은기를 주로 연구하였는데, 이 놀라운 발견으로 인해 그의 연구는 한대의 옥을 사용하는 제도 연구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습니다."만성 한묘에서 출토된 수만 점의 진귀한 유물들은 한대의 문을 두드리며 한대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 실물적인 예증을 제공합니다.”
▲ 발굴 이후 금은보산로의 각 부서는 만청 한묘와 출토된 문화재의 보호, 연구 및 전시를 지속적으로 심화했습니다.1992년부터 만청한묘는 원래의 무덤 유적지에서 과학적이고 질서 있는 개발 전시를 진행하여 많은 관광객이 방문했습니다.
량옌둥(梁艳東)은 2014년 지방정부가 만청한묘릉 단지의 환경을 정비하고 유물전시실을 건설했다고 소개했습니다.개방된 명승지를 통해 관광객은 천 년을 '횡단'하며 역사의 온도를 만질 수 있습니다.
▲ 유리 접시 유리 귀컵
허베이 박물관의 전시 시스템은 여러 번 조정되었지만 '만성 한묘'는 항상 중요한 부분입니다.전시를 통해 한나라의 정신적 풍모, 풍습과 패션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특유의 환경에서 역사를 체득하고 깨우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판더웨이는 최근 몇 년 동안 허베이 박물관이 만청 한묘 유물을 요소로 디자인하고 개발한 200가지 이상의 문화 및 창작 제품이 지속적으로 혁신되어 널리 환영받았다고 말했습니다.
▲ 투조쌍룡백옥벽
만성의 한묘와 그 출토 유물에 대한 전문가와 학자들의 연구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문화재부가 제정한 '중산정왕묘 고고학 사업계획'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0년까지 허베이는 능산 주봉에 있는 유승묘와 두관묘, 주봉과 남쪽 봉우리가 인접한 곳에 있는 왕자분 18기, 산기슭에 있는 부장분 2기 등 만성의 한묘에 대한 수수께끼 연구를 가속화했습니다.
▲ 철갑
분류:고고학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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