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은 ‘절기’도, 이것을 기념하는 ‘주일’도 될 수 없습니다.
매년 11월 셋째 주일이면 교회는 추수감사절 주일을 지키느라 분주합니다.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베푸신 축복을 회상하며 그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겠다는 것은 권장할 수 있으면 권장할 일이지 이것을 뭐라고 탓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요. 이렇게 추수감사절 주일을 지키는 것에는 도무지 권장할 일이 되지 못하는 비성경적이고 비신앙적인 배경과 내용이 깔려 있으니 문제입니다. 그것은 추수감사절 주일을 구약성경의 절기인 수장절과 연속성을 갖고서 추수감사절 주일을 지키는 것이 수장절을 지키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르며 순종하는 믿음에 있는 것이라며, 이를 성도들에게 행하도록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갖고서 지켜나가는 추수감사절 주일은 구약성경의 절기인 수장절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애써 수장절과 연계해서 지킬 수 있는 성질의 것도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신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인들이 교회당을 짓고 학교를 짓고 집을 짓고 또 농사를 짓고 하면서 한 해 동안 수확한 것을 가지고 원래의 주민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기 위하여 동네잔치를 가져나간 것이 그 시작인데다가, 무엇보다도 그것이 교회 절기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게 설사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정신 속에서 가져 나간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서 결코 교회 절기로 적용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수장절을 비롯하여서 구약의 절기는 이것의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또한 십자가의 구속 사역에서 절기가 가지고 있는 원리를 온전케 하셨을 때 폐지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인 다음 몇몇 성구를 찾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골 2:16-17, 20-23/ 히 8:5, 13).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쓰는대로 부패에 돌아 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이니라
그리스도인에게는 말입니다. 구약의 절기가 모형론적 역할을 통해 계시해 온, 이것을 온전케 한 ‘더 좋은 언약’이 있습니다. 그것은 옛언약의 실체이신, 그래서 새언약으로 오신 그리스도이시며,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에 의한 구원입니다. 우리는 이 구원의 은혜를 날마다 주 안에서 가져나가는 것으로 교회 모임을 매주 가져나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주일(주님의 날)’입니다. 주일!, 이 날 외에 어떤 기념될만한 날도, 기념해야 할 날도 없습니다. 진정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을 잘 가져나가고자 하시는지요. 그래서 주일에 믿음의 형제들과의 교회 모임을 통해 주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그리스도인에게는 모든날이 주일이지요]
그러한 데도 우리네 주위의 교회는 ‘추수감사절 주일’을 지킨다며 참으로 분주합니다. 온갖 가을 수확기에 얻게 되는 풍성과 곡식과 과일과 채소를 성도들은 가져와 모아 놓고 감사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감사절’에는 감사 예물을 드려야 할 것라고 하면서 그 예물로서 감사헌금을 하게 합니다. 그러면서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둔다며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원리이니 많은 예물로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추수감사절을 왜 지키는지를 보면, 이것을 교회적 절기로 가져나가는 것에서 실은 저들 자신들이 먹고 마심에 있으며 한 때를 즐겁게 지내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감사 예물을 드려야 할 것을 권하는 것에서 교회는 재정적인 한 몫을 하는 기회로 가져나갑니다. 이것은 매년 교회가 1년 예산을 세우는 것에 이미 잡혀져 있습니다. 그것도 매년 몇% 증가된 것에서 말입니다. 교회는 그 예산 세운 것보다 감사헌금이 초과 달성하면 성도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많이 받았다고 하고, 그 때문에 재정을 잘 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예산에 미치지 못하는 감사헌금이 되었으면 믿음이 예전만 못하다며 그래서는 안 된다고 성도의 믿음 없음을 탓합니다.
교회는 말이죠. 이런 저런 어떤 이름으로 감사절을 만들어 가져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러한 것으로 재정적 부요를 쌓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추수감사절이 재정 자립이 어려운 교회가 이때를 기회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며 넘어가기 위한 것으로 가져나가서도 안 됩니다. 어찌 그리스도의 교회가 절기를 내세우고 감사 예물을 내세워 이것으로 교회 재정 축재나 도움을 받고 운영해 나가는 기회로 삼아나가려고 하는지요. 만일에 교회가 운영에 있어서 재정적 보충의 필요를 가진다면 그 사실을 성도들에게 알리고 합력하여 섬겨가면 될 일입니다. 그러한 것을 '감사절'로 추수감사절을 내세워서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빌미로 감사헌금을 하게 하여 거둘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감사절을 이유로 먹고 마심으로 그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만일에 말입니다. 먹고 마심에서 의미를 두고 목적을 갖는다고 하면 그것은 각각의 집에서 하면 될 일입니다. 또한 교회 모임을 갖고 주 안에서도 얼마든지 서로 가진 풍성한 부요를 나누며 교제해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감사절’을 이유로 하고, 이것을 ‘기념 주일’로 가져나가는 것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는 교회에서는 성도의 교제를 위해 그러한 모임을 가져나갈 수 없는 것이냐는 것에서가 아닙니다. 교회는 그러한 모임을 가져나갈 수 있으며 여기에 필요한 일을 얼마든지 가져나갈 수 있습니다. 사실 성도들이 교회 모임을 가져나가는 것에서 함께 몸을 이룬 자들이 먹고 마심은 하나된 특질의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감사절'을 이유로 추수감사절을 내세워서 가져나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결코 아닙니다. 추수감사절은 교회 절기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결코 이것을 기념하는 것으로서의 ‘주일’이 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주일’은 이것으로의 날이 아니라, 이 날을 갖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 그리스도께서 믿음의 주로 계신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말이죠. ‘주일’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신 까닭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외에 다른 그 어떤 것이 ‘주일’을 차지하고 주인 행세를 할 수가 없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또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을 받은 부활의 복음을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되풀이해서 선포하고 이를 기억하는 것 외에 다른 그 무엇이 기념될 것으로 ‘주일’을 대신하거나 채울 수는 결코 없습니다.
우리가 절기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알지 못하여 추수감사절을 절기로 지키고 이것으로의 주일을 가져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비성경적이요 비신앙적인지를 알지 못한 것에 대해서 주께서는 우리의 알지 못함을, 그래서 우리가 무지함으로 그러함으로 용납하시고 용서하심에 두십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우리가 올바르게 이해하여 알고서는 계속해서 그렇게 해 나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서 절기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나가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절기와도, 또한 믿음의 주이신 그리스도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헛된 절기를 좇는 것으로 주일을 보내는 것에서 돌아서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함에 한몸된 믿음에 있는 것에서 주일을 가져나가는 것이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주일’을 한 주, 한 주, 그렇게 매주 가져나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며 감사한지요. 우리가 ‘주일’을 원해도 매주 가져나갈 수 없는 환경과 여건에서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분들이 참으로 많을 뿐만 아니라, ‘주일’을 매주 가져나갈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주어지고 있으나 ‘주일’에 이 날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와 그 몸으로 있는 것 외의 것에 마음과 생각이 빼앗김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 또한 우리일 수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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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 하노라[갈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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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신앙공동체/이천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