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기름과 곡물로 만드는 엿
엿을 무엇으로 만드는지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엿에는 엿기름과 곡물이 필요한데 쌀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그 밖에 찹쌀, 조, 수수, 옥수수 등 아무 곡물이나 가능하다. 밥을 지어서 엿기름 물에 삭힌 다음 오랫동안 솥에 조리면 된다. 식혜를 만들 줄 안다면 엿도 쉽게 만들 수 있다.
묽은 엿은 조청, 더 오래 조려서 굳힌 것은 갱엿, 갱엿을 굳기 전에 여러 차례 잡아늘인 것을 흰엿(백당)이라고 한다. 한자로는 ‘이(飴)’, ‘당(餹)’, ‘성(餳(당))’ 등으로 표기한다. 재료와 만드는 법은 간단하지만 인내심과 주의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불에 조려야 하는데 눌어붙기 쉬우므로 나무 주걱으로 계속 저어 주어야 한다. 불이 세면 끓어 넘치면서 엿물이 손이나 얼굴에 튀어 화상을 입기가 쉬우니 조심해야 한다.
조청이란 엿을 고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묽은 엿으로, 반찬이나 한과 만들 때 요긴하게 쓰인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간단하게 조청을 만들 수 있는 법이 나와 있다. “차기장을 한 말 쪄서 식기 전에 냉수 두 병과 엿기름 가루 두 되를 넣고 버무려 항아리에 넣어 입구를 꼭 봉하고 큰 사발 같은 것으로 덮는다. 땅에 한 달 가량 묻었다가 꺼내면 희고 좋은 백청이 된다”고 하였다. 땅 속에 묻어 저온에서 서서히 당화시키는 방법으로 지금은 만들기가 쉽지 않다.
같은 책에 나오는 ‘흑당’은 “멥쌀로 밥을 지어 솥에 그냥 두고 엿기름 가루와 더운물을 붓되, 쌀이 한 말이면 엿기름 가루 한 되 닷 홉과 더운물 두 병이 필요하다. 즉시 뚜껑을 덮고 게불을 피워 솥 밑이 식지 않게 하여 반나절만 두면 밥이 다 풀려 물이 되고 쌀 껍질만 남는다. 그것을 헝겊에 싸서 찌꺼기는 버리고 즙만 솥에 붓고 다시 고면 엿이 된다. 골 때에 솥 아구리에 시루를 놓아 넘치는 것을 막는다”고 하였다. 따로 엿기름 물을 내지 않고 엿기름과 물을 밥에 바로 부어서 고는 방법이다.
쌀에 엿기름 물을 부어서 삭힐 때는 온도가 아주 중요하다. 옛날 책에서는 손 담그기 좋을 정도의 더운물을 붓는다고 하였으나 50℃ 이하로 두면 쉬고 65℃ 이상이 되면 엿기름에 들어 있는 당화 효소가 작용을 하지 않아 전분이 삭지를 않는다. 요즘에는 보온 밥통을 이용하면 편리한데 온도에 신경을 써야 한다.
엿의 단맛은 엿기름에서 나오는 맥아당 때문이다. 보리를 적셔서 두면 싹이 나는데 이 때 전분을 당화시키는 효소가 생긴다. 보리의 전분이 효소 작용으로 맥아당과 포도당으로 분해되어 특유의 단맛을 내는 것이다. 엿기름은 보리가 완전히 싹트기 전에 말린 것으로 효소 작용이 중지되었다가 이것을 가루로 빻아서 밥을 섞으면 효소 작용이 일어나 쌀의 전분을 당화시키는 것이다.
설탕이 없던 옛날에는 엿이나 조청으로 음식의 단맛을 냈다. 우리나라에서 서민이 설탕을 먹기 시작한 때는 1800년대 말이지만 궁중이나 대갓집에서는 그 이전부터 중국이나 일본에서 들여와 먹었다고 하며, 1920년경 처음 설탕 공장이 생겼다. 일제 시대에는 ‘눈깔사탕’과 ‘박하사탕’이 있었고, 새 모양의 색칠한 사탕을 소독저 끝에 물려 놓은 ‘비오리 사탕’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충무로인 진고개에는 일본 과자 가게가 있어서 사탕을 팔았는데 아이들 사이에는 “꿀보다 더 단 것은 진고개 사탕”이라는 동요까지 있었다고 하니 사탕이 어지간히 귀한 시절이었나 보다.
조선 시대의 서울 모습을 담은 책 『한경지략』(1890년)에서는 엿과 사탕을 파는 백당전이 각처에 있으며 아이들이 목판을 메고 다니면서 팔았다고 하였다. 김홍도의 풍속화에도 엿장수가 등장한다.
잘 곤 엿은 붉은 호박빛이 난다. 보관할 때는 사기 항아리에 콩가루를 켜켜로 놓아 가며 퍼 넣는다. 또 엿을 골 때 후추나 마늘, 생강, 계피 등을 넣어 매운맛을 내기도 하고 아예 닭과 함께 고기도 한다. 다 곤 엿에 깨나 콩을 섞기도 하고, 엿을 잘라서 겉에 콩가루나 통깨를 묻히기도 한다.
강원도 평창의 옥수수엿, 울릉도 호박엿, 개성 밤엿, 광주 백당, 제주 닭엿, 창평 쌀엿 등이 특히 유명하다. 『규합총서』에 ‘광주 백당’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쌀 한 말을 씻고 또 씻어 밥을 지어 막 익으면 엿기름 가루 되가웃을 더운물 세 병에 풀어 밥에 섞는다. 솥뚜껑을 덮고 겻불을 피워 솥 밑이 더울 정도로 반나절 정도 두면 밥이 다 삭아 물이 된다. 고운 베 자루에 녹말 내듯 하여 도로 솥에 붓고 다시 겻불로 뭉근하게 고아 호박빛이 되면 꺼낸다. 실깨를 넣으면 검은 엿이 되고, 쇠못을 한 간 사이에 마주 박고 서로 걸어 힘껏 당기면 켜가 많이 생겨 눈빛 같고 단단한 흰엿이 된다.” 이렇듯 예부터 독특한 비법이 있었다.
조리법
엿은 엿기름과 곡물로 간단히 만들 수 있는데 묽은 엿은 조청, 더 오래 조려서 굳힌 것은 갱엿, 갱엿을 굳기 전에 여러 차례 잡아늘인 것은 흰엿(백당)이라고 한다.
엿
재료(쌀 2kg분)
쌀 2kg, 엿기름 200g(쌀의 10%), 물 2리터, 볶은 콩 1컵, 볶은 깨 1컵, 땅콩 1컵, 콩가루 1컵
* 계량 단위
1작은술 - 5ml(cc) / 1큰술 - 15ml(cc) / 1컵 - 200ml(cc) / 1되 - 5컵(1,000ml)
만드는 법
1. 밥을 푹 퍼지게 지어 더울 때 넓은 양푼에 쏟아서 한김 식힌다.
2. 엿기름은 물을 붓고 비벼서 풀고 체에 걸러서 가라앉은 앙금의 윗물만 따라 쓴다. 밥에 섞어서 보온밥솥에 넣는다.
3. 삭히는 온도를 50~60℃ 정도를 유지하면서 8~10시간 동안 두고 밥알이 완전히 삭으면 면 보자기에 쏟아 짠다.
4. 삭은 밥물을 솥에 담아 처음 4시간은 센불에서 펄펄 끓이다가 점차 누르스름해지면 불을 줄이고 가끔 저어 주면서 졸인다.
5. 계속 은근한 불에서 끓이는데 처음에는 거품 크기가 좁쌀만 하다가 8시간 정도 지나면 동전만해지면서 솥 전체를 덮게 된다. 이때가 엿이 거의 다 고아진 상태이고, 조청으로 쓰려면 1시간 정도 덜 졸이면 된다.
6. 다 된 엿에 볶은 콩, 볶은 깨, 땅콩 등을 섞어서 콩가루를 묻혀서 잘게 썰거나 둥글납작하게 빚는다.
엿에 콩이나 건과를 버무린 엿강정
엿에 콩이나 건과를 섞은 것을 엿강정이라 한다. 흑임자, 들깨, 참깨, 콩, 잣 등을 볶아서 엿으로 뭉친 것으로 깨엿은 엿에 깨를 넣거나 겉에 묻힌 것이고, 깨강정은 볶은 깨를 엿으로 버무려서 엉기게 하여 밀어서 썬 것으로 엿 분량이 훨씬 적다. 씨앗이란 식물의 종자이므로 온갖 귀한 영양분이 밀집해 있다. 특히 깨, 콩, 호두, 잣, 땅콩 등은 단백질, 비타민, 지방은 물론이고 철, 인 등 무기질이 풍부한 영양 식품이다. 엿강정은 이런 좋은 열매를 엿과 버무려 씹는 맛도 있고 영양분도 섭취할 수 있게 만든 훌륭한 과자이다.
엿강정을 잘 만들려면 엿 물을 알맞게 끓여야 한다. 물엿이나 조청만으로는 잘 굳지 않고 늘어지며, 설탕으로만 하면 단단하게 굳어 부서진다. 따라서 설탕, 물엿, 물을 합하여 적당한 농도로 끓이는 것이 중요하다. 세 가지를 같이 냄비에 담고 약한 불에 올려서 젓지 말고 끓이다가 반쯤 졸아들면 숟가락으로 떠서 찬물에 떨어뜨려 보아 실타래처럼 엉길 정도이면 알맞다.
엿강정 만들 때의 물엿은 누런 조청이나 요즘 병에 넣어 파는 투명한 물엿을 사용한다. 흰색의 물엿은 전분을 이온 분리법으로 만든 액체당으로 담백하고 점도가 높아 제과에 많이 쓰인다. 조청은 특유의 향도 있고 색이 진하므로 용도에 맞게 골라 쓰도록 한다.
엿강정과 같은 방법으로 쌀이나 찹쌀을 튀긴 다음 버무려서 굳힌 과자가 있는데 흔히 일본 과자로 알고 ‘오까시’라고 잘못 부르고 있다. 찹쌀이나 멥쌀을 찌거나 아주 되게 밥을 지어서 찬물에 여러 번 헹구어 풀기를 없애고 건져 물을 빼고 채반에 널어 말린다. 말리는 도중에 뒤집으면서 밥알을 알알이 떼어야 한다. 말린 밥알을 기름에 재빨리 튀기면 하얗게 일어나는데 이것을 얼른 망으로 건져서 종이에 쏟아 기름을 잘 뺀다. 튀긴 밥알을 엿물로 버무려서 네모진 상자에 쏟고 위에 대추나 석이채 등의 고명을 얹어 방망이로 고르게 민다. 너무 굳기 전에 칼로 먹기 좋게 썬다.
조리법
깨엿강정
엿에 콩과 건과를 섞은 것을 엿강정이라고 한다. 흑임자, 들깨, 참깨, 콩, 잣 등을 볶아서 엿으로 뭉친다.
께엿강정
재료(4인분)
흰깨 1컵, 검정깨 1컵, 식용유 적량
(가) 설탕 ½컵, 물 4큰술, 물엿 ½컵
* 계량 단위
1작은술 - 5ml(cc) / 1큰술 - 15ml(cc) / 1컵 - 200ml(cc) / 1되 - 5컵(1,000ml)
만드는 법
1. 흰깨와 검정깨를 씻어서 볶는다.
2. 냄비에 (가)의 설탕과 물을 넣고 끓이다가 물엿을 넣어 젓지 말고 서서히 조린다.
조금 덜어서 찬물에 떨어뜨려 보아 흩어지지 않고 엉겨질 때까지 조린다.
농도가 적당해지면 꿀을 넣어 섞고 불에서 내린다.
3. 흰깨와 검정깨에 ②를 넣고 재빨리 버무려서 도마에 참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밀대에도 기름을 발라서 깨 반죽이 식기 전에 0.7cm 정도의 두께로 민다.
4. 딱딱하게 굳기 전에 칼로 가로 2cm, 세로 3cm의 네모꼴로 썬다.
* 다 된 엿강정에 물엿을 바르고 잣이나 호두를 위에 붙이기도 한다.
백자편
잣에 더운 엿물을 부어 굳힌 과자이다.
백자편
재료(4인분)
잣 1컵, 식용유 적량
(가) 물 4큰술, 설탕 ½컵, 물엿 ½컵, 꿀 1큰술
* 계량 단위
1작은술 - 5ml(cc) / 1큰술 - 15ml(cc) / 1컵 - 200ml(cc) / 1되 - 5컵(1,000ml)
만드는 법
1. 잣은 마른 행주로 비벼서 씻고 고깔을 딴다.
2. 냄비에 (가)의 설탕과 물을 넣고 끓이다가 물엿을 넣어 젓지 말고 서서히 조린다.
조금 덜어서 찬물에 떨어뜨려 보아 흩어지지 않고 엉겨질 때까지 졸인다.
농도가 적당해지면 꿀을 넣어 섞고 불에서 내린다.
3. 그릇에 잣을 담고 더운 엿물을 부어 재빨리 섞어서 기름을 바른 도마에 쏟는다.
4. 방망이에도 기름을 발라서 1cm 두께로 편편하게 민다.
5. 엿이 거의 굳으면 가로 2cm, 세로 3cm 정도의 네모로 썰어 시원한 곳에 보관하였다가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