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의 의심
베르나르도 스트로치
베르나르도 스트로치(Bernardo Strozzi, 1581-1644년)가 그린
<토마스의 의심>은 예수님 부활에 대한 자전적인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스트로치는 이탈리아 북부 제노바 출신의 화가로,
카라바조나 루벤스 등의 영향을 받아 온화하면서도 화사한 색감을 구사하였다.
특히 형태면에서는 엄격한 종교적 이념보다는 종교성을 세속적 이미지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관능적으로 묘사하였기에 당시 교회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화풍이었다.
스트로치는 17세의 나이에 카푸친 작은 형제회의 수도자가 되었는데,
당시 작은 형제회의 엄격한 쇄신을 요구하던 수도회는 실제 그의 화풍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교회는 그에게 교회규범에 맞는 예술을 강요했으나, 스트로치가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교회는 그를 감옥에 가두고 만다.
그는 종교와 예술의 갈등을 피하려고 제노바를 떠나 베네치아로 향했으며,
그곳에서 화가로서의 자유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그가 1620년경에 그린 <토마스의 의심>은 제노바의 수도원 시절에 그린 것으로,
엄격한 교회규범 속에서 그가 어떤 예술의 길을 걸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가 그린 예수님에게서는 영광스러운 이미지를 발견할 수 없다.
그가 그린 예수님은 오히려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에게 부활을 확인시켜주는
온화한 마음의 평범한 젊은이로 표현되어 있다.
결국 화가는 예수님의 부활을 형식적이며 현시적인 차원에서만 묘사하지 않고,
의심에 가려진 사람들에게 신앙의 눈을 뜨도록 권유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은 요한복음 20장 24-29절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예수님을 본 제자들의 말을 믿지 못하는 토마스는 말하였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0,25)
토마스는 보고, 또 보는 것에서 만족을 못하고, 만져보고 검증까지 해야 믿겠다고 말했다.
이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요한 20,27)
스트로치도 다른 화가들처럼 바로 이 순간을 묘사했다.
예수께서는 토마스의 의심에 대한 검증이라도 해주듯이 손등의 상처를 보여주시고,
토마스의 손을 잡아 당겨 옆구리의 상처를 만져보게 하신다.
발갛게 달아오른 예수님의 얼굴은 제자의 의심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 아닐까?
토마스는 예수님의 손에 이끌려 그분의 상처에 검지손가락을 넣고 있다.
그의 시선은 다른 한 제자와 함께 예수님의 상처로 향하고 있다.
그의 찌푸린 이맛살과 촉촉한 눈망울은 의심에 대한 죄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그분의 상처를 보고 만졌으니 그가 할 것은 무엇이겠는가?
검증된 것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고백한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그렇다. 보고서 믿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그것은 확인일 뿐이다.
신앙은 원래 보지 않고 믿는 것이다. 신앙은 표징을 요구하지 않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등 뒤에서 또 다른 제자가 토마스를 보고 있다. 그런데 그의 눈빛에 두려움이 가득하다.
그의 신앙도 토마스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표징에 대한 요구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태도였을 것인데, 이를 토마스가 극적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그래서 의심이 많은 우리들도 그의 눈빛과 마주치면서 두려움을 공유하게 된다.
토마스의 심적 방황을 잘 나타낸 것이 토마스의 용모와 복장이다.
그는 머리와 수염은 단정하지 못하고, 옷도 다해지고 터져서 누더기에 가깝다.
그러나 그는 희망을 상징하는 녹색 옷을 입고 있다.
이것은 비록 지금은 초라한 믿음이지만 예수님께 대한 희망의 끈은 놓지 않고 있다는
토마스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예수님은 믿음과 영광을 상징하는 흰 옷을 걸치고 있다. 또 예수님의 속살에서는 광채가 난다.
그래서 예수님의 몸은 배경의 암흑과 대비를 이룬다.
이것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어둠 속에서의 빛이며,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는 영광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물으신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출처] 토마스의 의심(1620) - 베르나르도 스트로치|작성자 말씀과 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