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1일 오늘의 역사
2022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사망
2021년 영국 퀸엘리자베스 항공모함 한국 해군과 연합훈련
8월 31일 경북 포항 인근 동해상. 영국의 최신예 퀸엘리자베스 항공모함(6만5000t)과 이를 호위하는 구축함, 지원함으로 이뤄진 항모전단이 방한기간 한국 해군과 탐색구조 및 군수물자 교환 등 연합해상훈련을 하였다.
F-35B스텔스기는 동체 상부의 리프트팬(엔진)을 열어 최대 출력으로 올린 뒤 굉음을 내면서 5초 만에 쏜살같이 활주로를 내달려 이륙했다. 활주로 끝단의 ‘스키점프대’는 14t에 달하는 F-35B 스텔스기를 하늘로 도약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어 비행 임무를 끝낸 F-35B 1대가 제자리 비행을 하면서 항모에 천천히 접근한 뒤 활주로에 사뿐히 착륙했다. 2017년에 취역한 퀸엘리자베스 항모는 가스터빈과 디젤엔진을 갖춘 재래식 중형 항모다. 영국 해군의 F-35B 스텔스전투기 8대와 미 해군의 F-35B 10대를 탑재하고 구축함 2척과 호위함 2척, 지원함 2척, 핵추진잠수함 1척 등으로 항모전단을 구성한다.
2021년 세계 최초 인앱결제(내부 결제 시스템으로만 유료 콘텐츠를 결제하는 방식) 금지 법안 통과
2017년 국방부 JSA 의문사 김훈 중위 19년 만에 순직 인정
2016년 브라질 첫 여성대통령 지우마 호세프(68세) 브라질 상원의 탄핵안 가결로 대통령직 상실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이 대통령직 승계
2015년 원로 코미디언 남성남 별세
원로 코미디언 남성남(84·본명 이천백)씨가 31일 오전 자택에서 별세했다.
1956년 데뷔한 남성남은 남철과 콤비를 이뤄 ‘왔다리 갔다리 춤’으로 1970년대에 인기를 끌었다.
MBC ‘웃으면 복이 와요’ ‘일요일 밤의 대행진’ ‘청춘행진곡’ 등에서 활동해온 남성남은 1996년 MBC ‘웃으면 복이 와요’를 마지막으로 TV에서 떠났다. 2003년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2006년 KBS ‘폭소클럽’에서 후배들과 무대에 서기도 했다.
2013년 6월 남철이 당뇨와 고혈압 합병증으로 발생한 신부전증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남성남은 한 인터뷰에서 “아내를 떠나보낸 것 같았다.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고 했다.
2015년 호서학원 설립자 강석규 박사 별세
호서대 설립자이자 명예총장인 강석규(103) 박사가 지난 31일 밤 11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별세했다.
논산 출신으로 독학으로 초등교사 자격증을 따고 서울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군산여고 교사와 충남대·명지대 교수로 일했다.
1970년 서울 대성중·고등학교를 세웠고 1978년 호서대 전신인 천원공업전문대학을 설립, 이후 호서전산학교와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학교를 세워 호서학원으로 키웠다.
1989년 국민훈장 모란장, 2009년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1년 질병관리본부 가습기살균제가 원인미상 폐 손상 위험요인으로 추정된다 발표, 가습기살균제 사용 및 출시 자제 권고, 2016.8.31 환경보건시민센터는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접수된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 4,486명(사망자 919명 포함)이라 발표
2010년 미(美) 버락 오바마, 이라크 종전(終戰) 공식 선언
2010년 8월 31일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의 오벌오피스 연설을 통해 미군의 이라크 전투 임무 종료를 공식 선언했다. 2003년 3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래 이라크전은 미군 최다 주둔 17만1000명, 총비용 9000억달러, 미군 전사 4420명, 최고 지지율 86%, 최저지지율 28%의 기록을 남겼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라크의 정세가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조기에 종전 선언을 한 것은 2008년 이라크에서의 조기 철수를 주장한 대선 공약을 지킨다는 명분과 종전을 통해 경제위기에서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미국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또한, '오바마전쟁'으로 불리는 아프가니스탄전쟁에 지원을 집중시키겠다는 의미도 있다.
이라크전쟁은 비록 이라크의 WMD(대량살상무기) 보유에 대한 잘못된 정보로 인해 개전되었지만, WMD 개발 의도를 가지고 있던 사담 후세인을 몰아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2009년 안병훈, US아마추어 골프대회 최연소 우승
2009년 8월 31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의 서던힐스 골프장(파70.7천93야드)에서 열린 제109회 US아마추어 골프대회에서 안병훈(18)이 마지막 날 결승전 상대인 벤 마틴(미국)을 무려 7홀 차로 완파하고 이 대회 최연소 챔피언이 됐다.
안병훈은 ’탁구 커플’로 유명한 안재형(44)-자오즈민(46)의 아들이다.
지난해 뉴질랜드 교포 이진명(19.캘러웨이)이 세운 18세 1개월의 최연소 우승 기록을 바꿔 쓴 안병훈(1991년 9월생)은 이 대회에서 한국은 물론 아시아 국적 선수로는 처음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을 함께 누렸다. 또 2010년 아마추어 신분을 계속 유지할 경우 마스터스와 US오픈, 브리티시오픈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
이 대회는 1994년부터 3년 연속 정상을 지켰던 우즈는 물론 필 미켈슨(1990년), 스콧 버플랭크(1984년), 마크 오메라(1979년), 잭 니클라우스(1961년) 등 세계적으로도 내로라하는 선수들의 등용문이 돼왔다. 특히 17일 끝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PGA챔피언십에서 양용은(37.테일러메이드)이 우승한 데 이어 또 한국 선수가 US아마추어 챔피언십까지 석권하면서 이미 한국 선수들이 주름잡고 있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뿐 아니라 남자 대회에서도 ’코리안 파워’가 몰아친 셈이 됐다.
7세 때부터 이번 대회 캐디를 직접 맡은 아버지 안재형 대한항공 전 탁구감독을 따라 골프를 치기 시작한 안병훈은 2005년 12월 미국으로 건너가 지금은 플로리다주 브레이든턴에 살고 있다. 키 186㎝에 96㎏의 건장한 체격에 드라이브샷 비거리가 300야드를 훌쩍 넘기는 장타자인 안병훈은 2010학년도에 UC버클리 진학이 예정돼 있다.
2007 탈레반에 납치된 분당 샘물교회 신도 19명 44일 만에 풀려남
23명 가운데 배형규 목사 등 2명은 살해되고 2명은 8.13에 먼저 풀려남
2005년 저가항공사 ㈜한성항공, 청주~제주 노선 첫 취항
2005년 바그다드 순례객 자폭테러설 참사
2005년8월31일 오전 11시30분(현지시각)쯤 이라크 바그다드 북부 시아파 성지인 카드미야 인근에서 순례객들이 시아파 사원으로 향하는 다리 위로 행진하던 중 자살 폭탄테러 소문에 놀라 한꺼번에 대피하면서 적어도 841명이 숨지고 323명이 부상했다.
이에 앞서 오전 8시15분쯤에는 그 인근에서 저항세력의 소행으로 보이는 박격포탄 3발이 터져 적어도 7명의 순례객들이 숨지고 36명이 다쳤다.
이날 참사는 이라크 시아파 신도들이 자신들이 섬기는 성인인 7대 이맘 무사 알 카딤을 추모하기 위한 연례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카다미야의 사원에 운집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사고 당시 전국에서 모인 100만명의 시아파 순례객들은 시아파 성인인 이맘 무사 알 카딤을 추모하기 위해 순례 행진에 참가하고 있었다. 알 카딤은 예언자 무하마드의 후손으로 제7대 이슬람 시아파의 지도자였으며, 전 세계 시아파들로부터 추앙받아왔다. 그가 묻힌 카드미야 사원으로 향하는 순례 행진은 시아파들의 연례 행사다.
“자폭 테러” 외침이 터져 나온 순간은 순례 행렬의 일부가 티그리스 강 위의 알 아이마 다리를 건너던 중이었다. 아수라장 속에서 많은 순례객들이 서로 다리를 벗어나려고 하다가 잇따라 압사했다. 목격자들은 또 사람들이 서로 밀치다가 다리 난간이 떨어져 나가면서 강으로 떨어져 익사했다고 전했다. 사망자는 주로 여성과 어린이들로 전해졌다.
한편 이날 사망자 중에는 독극물에 중독돼 숨진 사람도 50여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야르무크 병원 등은 최소 20여명이 알 카딤 사원 주변에서 독극물이 든 음식과 주스를 받아먹고 숨졌다고 말했다. CNN은 성스러운 날을 기념하기 위해 사원에서 음식물들을 순례객들에게 나눠주는데, 이 음식을 먹은 순례객 중 50여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이브라힘 자파리 이라크 총리는 3일간을 애도기간으로 선포했다.
2005년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착공식
남북한은 2005년8월31일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착공식을 가졌다.
이산가족 상봉장으로 사용할 면회소는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 조포마을 앞 1만5000평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12층, 연면적 6000평 규모로 짓는다. 206개의 객실을 갖추고 1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20개월 공사를 거쳐 2007년 4월쯤 완공 예정이다. 공사비는 491억원으로 현대건설이 수주했다.
착공식은 11차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금강산에 온 북측 이산가족 100명, 남측 가족·친척 430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2005년 제16회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 개막
2005년8월31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펼쳐진 제16회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개막식에서 남북한 선수단은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했다. ‘밝아오는 동녘(Rising Asia)’이라는 주제의 개회식에 앞서 아시아의 평화를 기원하는 인천시립무용단 등의 ‘터벌림’ 공연과 대규모 타악·무용·깃발 공연 등이 펼쳐졌다.
네팔을 선두로 시작된 선수단 입장에선 남북 공동 선수단이 참가국 중 마지막으로 입장해 관중들의 갈채를 받았다. 공동 기수는 배용일(북한 남자 멀리뛰기 선수)과 최주영(남한 여자 단거리 선수)이 맡았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남녀 마라톤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따냈던 남한의 이봉주와 북한의 함봉실은 성화 최종 주자로 뛰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오전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북한청년학생협력단 125명(임원 포함)은 개회식 직전 인천 시청 앞 미래광장에서 한반도기를 흔들며 나타나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개회식장에서는 다채로운 응원을 선보였다. 이번 대회 참가 선수단 규모는 당초 예상(45개국 1000여명)보다 많이 줄어든 37개국 774명으로 집계됐다.
2002년 태풍 ‘루사’ 내습으로 전국 철도·도로망 붕괴. 246명 사망·실종
2002년 8월 31일 영동과 영호남, 제주 등 전국을 강타한 제15호 태풍 루사로 막대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났다. 중앙재해대책본부가 집계한 루사로 인한 전국 피해상황에 따르면 모두 5조1479억원의 재산피해와 246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이날 하루 동안만 강원도 강릉에 870.5mm 대관령에 712.5mm의 비가 내려 역대 1·2위를 기록했다. 이전까지 1일 강수량 최고기록은 1981년 전남 장흥에 내린 547.4mm였다. 제주 고산 지역의 순간 최대풍속은 초속 56.7m로 사상 두 번째의 강한 바람으로 기록됐다. 루사는 태풍의 강도와 강수량, 풍속 등 다양한 측면에서 1959년 사라 태풍 이후 최악의 태풍으로 기록됐다.
루사로 경북 김천시 감천철교의 한쪽 구간과 정선선의 여량천교 교각이 붕괴되고 영동선의 도경과 옥계 구간의 교각도 유실됐다. 도로도 126곳에서 피해가 발생했고 낙동강유역의 둑 110여곳이 붕괴되거나 유실됐다. 호남 곡창 들녘에도 큰 생채기를 남겨 4년 만의 쌀 생산량 감소에 영향을 끼쳤다. 루사가 문화재라고 빗겨가지 않아 부산 금정산의 망루, 강릉 해운정과 선교장·망해정, 부여 무량사 극락전, 남원 실상사 등이 피해를 입었다.
정부는 재해대책위원회를 열고 전국 232개 시·군·구 중 피해가 큰 203곳, 전국 3,500여개 읍·면·동 중 1917곳을 특별재해지역으로 지정·선포했다. 이에따라 전국의 이재민 2만7600여세대 8만8600여명이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정부는 루사의 총 피해복구비용을 7조7000억으로 추산했다. 수재의연금도 의연금 사상 최대인 1300억원이나 모아졌고 수재현장으로 달려간 자원봉사자도 42만명에 달해 훈훈한 정을 느끼게 했다.
1999년 한-일 합작 세계 최고 쌍둥이빌딩 ‘페트로나스 타워’ 개관
삼성물산과 극동건설이 시공에 참여한 세계 최고층 빌딩인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타워’가 착공 5년6개월 만인 31일 공식 개관식을 가졌다.
콸라룸푸르에 위치한 이 타워는 지하 6층-지상 92층 짜리 쌍둥이 빌딩. 상층부 첨탑을 포함, 지상 452m로 현존하는 빌딩중 세계 최고층이며 미 시어스 타워(443m)보다 9m가 높다.
이 빌딩은 발주 당시 일본업체들의 수주가 당연시되던 공사였다. 그러나 삼성물산(당시 삼성건설)과 극동건설이 수주전에 뒤늦게 참여, 2개동 중 1개동을 수주, ‘막판 뒤집기’에 성공한 공사로 유명하다.
삼성-극동은 쌍둥이빌딩을 연결하는 스카이 브리지 공사를 일본의 하자마건설과 경쟁 끝에 따내, 세계 최고층 빌딩의 간판 시공사로 자리매김됐다.
1998년 북한, 인공위성 광명성1호 발사
북한은 1998년 8월31일 사전 예고없이 함북 무수단리에서 사거리 1천500~2천500㎞로 추정되는 3단식 로켓인 대포동 1호를 발사해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다.
당시 1단계 로켓은 발사지점으로부터 243㎞ 거리의 동해 공해상에 떨어졌고 2단계 로켓은 65㎞의 고도로 일본열도 상공을 지나 1천646㎞ 해상에 낙하했으며 3단계 로켓은 궤도진입에 실패해 대기 중에서 타버린 것으로 추정된 바 있다. 하지만 탄도미사일이나 인공위성 기술 중 하나인 다단로켓 기술은 상당수준임을 보여줬다. 이후 북한은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는 3단계 로켓의 고체연료 기술 확보에 나섰고 KN-02 미사일 개발로 소형로켓용 고체연료 기술을 확보했다.
1998년 한나라당,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새총재에 이회창 명예총재를 선출
1997년 다이애나 전(前) 영국 왕세자빈 사망
1996년 찰스 영국 왕세자와 이혼했던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빈이 이날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다이애나와 그의 새 애인 도디 알 파예드, 그리고 운전사, 경호원 등 4명이 타고 있던 벤츠 승용차는 0시 35분쯤 파리 알마광장 지하터널에서 파파라치들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고속으로 질주하다 터널 벽과 충돌했다.
이 사고로 알 파예드와 운전사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경호원은 중상을 입었으며 다이애나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과도한 흉부 출혈로 오전 4시쯤 숨을 거뒀다.
유치원 보모였던 다이애나는 1981년 7월29일 찰스 왕세자와 ‘세기의 결혼’을 함으로써 신데렐라처럼 등장했다. 이후 결혼과 이혼 또 죽음에 이르기까지 16년동안 다이애나는 동화에서 뛰쳐나온 진짜 공주처럼 세상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는 너무나 달랐다. 엄격한 왕실 생활은 숨이 막혔고 12살 연상인 남편과는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다. 찰스 왕세자와의 계속된 불화에 다이애나는 우울증에 걸려 5차례나 자살을 기도했다. 1992년 12월 찰스와 공식 별거에 들어간 다이애나는 결국 1996년 8월 정식 이혼했다
1996년 음성 꽃동네 오웅진 신부, 막사이사이상 수상
사회시설 ‘꽃동네’의 설립자 오웅진 신부가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 공공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1996년 8월 31일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오신부는 고아, 집없는 노인, 장애인 등을 위해 충북 음성에 ‘꽃동네’라는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는 등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을 몸으로 실천해 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위원회는 덧붙였다. 3천명의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거처하고 있는 ‘꽃동네’는 약 70만명의 사람들이 조금씩 돈을 내 설립됐다.
오신부는 당초 정치인이나 반부패운동가가 되려했으나 많은 불쌍한 아이들을 도와주기 위해 성직자의 길을 택했다.
1993년 종합유선방송(CATV) 관련 20개 프로그램공급업체 확정 발표
1993년 러시아 함대 89년 만에 한국 방문
1993 감사원 3개월간 실시한 평화의 댐 특별감사 결과 발표
북한의 금강산댐이 수공을 하면 서울이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고 만다는 전두환 정부 주장은 위험을 3-8배 과장한 것으로 당시 불안한 정국을 전환하기 위해서였다고 지적
1992년 한준수 전 충남 연기군수 부정선거 폭로
14대 총선의 광범위한 관권선거부정 폭로했다, 증거물로 이종국 지사가 보낸 선거자금 1000만원 중 10만원권 자기앞수표 90장과 선거지침서 등 공문서 15종 공개했다
한 군수는 자신도 불법선거운동에 연루됐고 공무원의 품위손상 이유로 파면됨 2004년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가 복직권고결정하자 소송했지만 원고패소판결, 서울행정법원은 0 한 군수가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낸 파면처분 무효확인소송에서 “이미 1995년 파면이 정당하다는 내용을 확정판결을 받았고,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가 행안부에 복직을 권고했지만 한 씨의 행위 및 파면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변한 것이지 판결의 효력을 차단하는 새로운 사유라 볼 수 없다”고 밝혔다
1989년 동아건설, 리비아 대수로 2차공사 수주
1989년 영국 앤공주와 마크필립스공 결혼 16년 만에 이혼
1986년 소련 여객선 아드미랄 나히모프호 흑해 노보르시크항 근처에서 화물선과 충돌 침몰 사망 79명 실종 319명
1984년 한일(韓日)정상 핫라인 개통
1984년 대홍수(-9.3) 189명 사망 실종 1,686억원 피해
1984년 체코 교포 화가 이기순씨 34년 만에 귀국
1983년 필리핀 야당지도자 아키노 장례식
1980년 폴란드 자유노조 `연대` 설립과 파업을 보장하는 협정서 체결
폴란드 그다니스크의 레닌조선소에서 제1부수상 야루젤스키와 파업위원장 바웬사간에 자주관리노조의 설립과 파업을 보장하는 합의협정서가 1980년 8월 31일 조인됐다. 이로써 7월 이후 폴란드 전역에서 전개된 노동자 파업이 막을 내렸다.
2개월에 걸친 파업의 발단은 7월 재정파탄에 직면한 폴란드정부가 고기값 인상을 발표해 노동자들의 반발을 샀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초반에 보였던 파업 노동자들의 열기도 명확한 정치적 프로그램 부재로 와해될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런 상황을 지속적인 노동운동으로 전환시킨 사람이 전기공 바웬사였다.
바웬사는 1970년 불법파업의 중심인물로 당시에는 그다니스크 레닌조선소에서 해고된 상태였다. 8월14일 조선소 담을 넘어 진입한 바웬사는 파업을 지도하는 파업위원장에 선출됐다.
사태수습에 나선 정부가 바웬사의 요구를 수용했지만 다른 지역 노동자들의 호소로 바웬사는 8월17일 그다니스크-소포트-그디니아 3개지역의 연합파업위원장이 됐다. 위원회는 정부에 파업권 승인과 자주관리노조 설립, 검열 완화, 표현의 자유 등 16개 항목을 요구했고 정부는 마침내 이날 연합노조 `연대`의 결성을 승인하는 합의서에 조인했다.
1971년 국무회의 비적성 공산국과 교역 의결
1969년 미국 프로권투선수 로키 마르시아노(46세) 비행기사고로 사망 49전 전승 43KO승
1968년 이란 동북부 진도 7.4 지진 12,000여명 사망, 5만여 명 부상
1967년 서울역서 증기기관차 퇴역, 디젤기관차 등장
1965년 윤보선 등 6의원 의원직 상실
1964년 정부, 언론윤리법에 찬성하지 않은 5개 신문사에 보복 조치
1963년 공화당 전당대회 박정희 대통령을 공화당 총재 및 대통령후보로 지명
1963년 입체파 발전에 공헌한 프랑스의 화가 브라크 사망
1963년 김활란 이대 총장 막사이사이상 받음
1963년 워싱턴-모스크바 간 핫라인 개통
1962년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 막사이사이상 언론상 받음
1962년 트리니다드 토바고, 영국으로부터 독립
1961년 소련 핵실험 재개 발표
소련이 1961년 8월 31일 핵무기실험을 재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핵실험에 관한 소련정부의 성명서는 이날 소련이 2천만, 3천만, 5천만 및 1억톤의 TNT에 달하는 폭발력을 가진 초특급 핵폭탄을 제조할 계획을 안출해 냈다고 말했다.
흐루시초프는 서방측이 핵실험을 하지 않는 한 소련도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던 스스로의 약속을 깨뜨리고, 3년동안 340번이나 거듭해온 핵실험회담을 결렬시킨 채 핵실험을 재개했다. 세계 각국이 무슨 결의를 하든 이것이 소련의 이익과 배치되면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한 흐루시초프는 세계가 반대하든 말든 핵실험을 하겠다고 밝혔다.
서방측 탐지기에 걸린 소련의 핵실험회수가 31회였는데 반하여 소련은 50회라고 유엔에 보고했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했어도 탐지기만으로 핵실험여부를 탐지할 수 없으니 감시 및 관리제도가 확립되지 않으면 핵실험중지협정이 성립될 수 없다는 서방측 주장이 타당하다.
1957년 말레이시아, 영국으로부터 독립
1956년 해인사, 국보 석가입상 도난
1953년 정국은 국제간첩 사건 발생
1953년 8월 31일 육군 특무대장 김창룡 준장은 연하신문 편집국장 겸 동양통신 편집국장이던 정국은을 간첩과 정부전복음모혐의로 체포했다.
정국은은 해방직후부터 국제신문, 국제통신, 국방신문, 태양신문 등을 운영했고 연합신문 주일 특파원으로도 활약한 저명한 언론인으로 여수·순천 14연대반란사건에 대한 군당국의 대응태세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는 등 정부당국의 미움을 많이 받아왔다. 그는 1952년 9월 당시의 권력 2인자인 장택상 국무총리를 일본인 밀입국사건과 관련하여 민족반역자라고 보도했다.
국회 조사위원회까지 구성케 한 `정국은 사건`은 연합신문 사장이었던 족청계의 양우정 의원 구속으로 확대됐다. 정국은은 끝내 12월 5일 군재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954년 2월 19일 처형당했다.
1950년 미국 여객기 카이로서 추락. 55명 사망
1949년 반민법 공소 완료, 408명 소장 발부
1942년 독일군 스탈린그라드에 돌입
1939년 서울 카바이트 자동차 시운전
1935년 미국 의회 중립법 의결
1910년 전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 신민족주의 제창
1909년 등대 6개소 설치
1907년 영국 러시아협상 조인(영국 프랑스 러시아 3국협상 성립)
1907년 필리핀 대통령 막사이사이 출생
1902년 미국 반트러스트법 제정
1879년 일본의 제123대 왕 대정(大正) 출생
1874년 동물행동과 학습과정을 연구한 미국 심리학자 손다이크 출생
1870년 이탈리아의 교육자 몬테소리 출생
1867년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 사망
1867년 8월31일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가 46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사망했다. 정착된 선(善)보다는 악(惡)을 택했고 굴종적인 도덕보다는 불행한 투쟁을 택했던 반항아 보들레르. 실제 그는 특이한 여성관계와 수치스런 병으로 인한 육체의 황폐함 그리고 46세 때 실어증에다 반신불수의 병고를 안고 생애를 마감한 기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퇴폐적인 작가라고도 부른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살았지만 20세기 독자를 향해 시를 썼던 보들레르는 상징주의의 첫 봉우리로 평가받는다. 베를렌, 랭보, 말라르메 등 20세기 상징파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보들레르를 향해 발레리는 "그보다 위대하고 재능이 풍부한 시인들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보다 중요한 시인은 없다"고 찬탄했다.
1821년 파리에서 서른 네 살의 나이차가 나는 부부사이에서 태어난 보들레르는 6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의부 밑에서 성장했다. 리옹의 사립학교와 리옹 왕립중학교를 거쳐 루이 르 그랑 중학교에서 수학했으나 18세 때 품행관계로 퇴학을 당했다. 성년이 된 보들레르는 의붓아버지가 남겨준 재산을 센강의 생 루이섬에서 호화판 탐미생활로 2년 만에 날려 한정치산자가 됐다. 24세 때 `1845년의 살롱`을 출판, 미술평론가로 데뷔했으며, 문예비평, 시, 단편소설 등을 잇달아 발표, 문단에서 활약하는 한편, 1848년 의붓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2월혁명의 폭동에도 가담했다.
1864년 독일 사회주의운동의 창시자 페르디난트 라쌀 여자문제로 결투하다 세상 떠남
1821년 독일 과학자 헬름홀츠 출생
1749년 러시아 작가 라디시체프 출생
161년 로마의 황제(177-192) 콤모두스 출생
12년 제3대 로마황제 칼리굴라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