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발걸음 / 강순지 (제주지부)
도심 뒷골목을 마른바람이 쓸고 지나간다. 네거리 모퉁이에 있는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카페는 작지만 조용한 분위기로 혼자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카페 건물 전체를 담쟁이가 덮고 있는 모습이 좋다. 회백색 건물들 사이에 홀로 푸른 옷을 입은 듯하다.
담쟁이 모습은 다양하다. 잎이 풍성한 여름에는 푸른빛 비단을 두른 듯하다. 새색시의 치맛자락처럼 초록빛으로 나풀거린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은 벽 전체가 갈맷빛 물결로 출렁인다. 담쟁이의 굵고 가는 줄기는 날짐승의 뼈대처럼 유연하면서도 단단하다. 금방이라도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다. 그 기세에 반하여 한참을 서서 바라보곤 한다.
잎을 떨군 담쟁이는 줄기가 굵고 가는 앙상한 모습으로 벽에 붙어 지낸다. 살점 없이 뼈대만 드러낸 짐승의 모습처럼 처연하다. 겨울바람이 그의 등줄기를 쓸고 지나갈 때 더욱 스산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어떤 날은 땅에서 뻗어 나온 혈관 같아서 달리기 출발선에 선 것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카페 창가에 앉아 카모마일 한 잔을 주문했다. 차 향기가 처음 왔던 날을 떠올리게 한다. 사직서를 쓰고 책상 서랍에 넣어 놓고 나온 날이었다. 심란한 내게 담쟁이가 들어와 쉬라는 듯이 초록빛 손짓을 했다. 차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했다. 고민은 욕심에서 생겨난다는데 가정일과 회사일 사이에서 어느 욕심을 내려놔야 할까. 잦은 야근 때문에 아이들 돌보는 일로 고민이 많던 시기였다.
창문을 열자 선선한 공기가 훅하고 밀려온다. 일상의 소음과 옆 식당에서 풍겨오는 음식 냄새도 따라 들어온다. 방충망 군데군데에 까맣게 말라붙은 것이 눈길을 끈다. 가는 뿌리처럼 보이는 것들이 철망을 움켜쥔 채 말라 있다. 동그랗고 쪼그맣다. 조그맣고 까만 흔적 위로 담쟁이 여린 줄기들이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놓고 있다.
담쟁이의 덩굴손이다. 옅은 갈색이 도는 가는 줄기가 조그마한 이파리를 달고 방충망 위를 천천히 가로지르고 있다. 줄기에 좁쌀 크기의 빨판 같은 게 붙어있다. 청개구리 발가락처럼 생겼다. 흡반(吸盤)이다. 다른 동물이나 물체에 달라붙기 위한 기관이다. 담쟁이 흡반은 여린 줄기와 잎이 잘 자랄 수 있게 뿌리 역할을 한다. 흡반이 바닥을 지지하면 다시 새로운 잎과 줄기가 자라며 마디를 이룬다. 철망 위에 말라죽은 것은 아슬아슬한 걸음들의 흔적이다. 쉬지 않고 딛는 걸음들이 모여 담쟁이의 푸르른 기세를 만든다. 누군가의 본모습을 보고 싶다면 그의 고단한 일상을 들여다봐야 한다.
담쟁이는 의지할 것을 가리지 않는다. 뿌리를 내리는 곳이 그들의 영토가 된다. 삶과 죽음, 낭만과 현실 사이를 잇는 밧줄처럼 줄기를 뻗는다. 평면이건 수직이건 어떤 방향으로든 줄기를 뻗는다. 뿌리를 내리면 어디든 타고 오른다. 암벽은 물론 나무줄기나 건물 외벽, 울타리나 돌담 위도 걷는다. 새벽을 시작하는 서민들의 발걸음처럼 쉬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나아간다.
팍팍한 현실에서 위태롭고 절박한 게 어디 담쟁이 발걸음뿐이랴. 첫차를 타고 가서 막차에 몸을 싣는 일용직 노동자들, 피곤한 몸을 이끌고도 아침이면 출근해야 하는 가장들, 어린 나이에 가장 역할을 해야 하는 소년 소녀들, 보육원을 나와 어른으로 살아야 하는 젊은이들,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삶 속에도 간절함과 절박함이 녹아있다.
스물하나에 결혼하고 세상 물정 모르고 살다 세 아이를 혼자 키우게 됐을 때, 언니의 심정이 그러했을 것이다. 하루에 시간제 일을 서너 개씩 하며 억척스럽게 아이들을 키워냈다. 아침이 오는 게 두려웠다고 그녀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지난 이야기를 했다. 날이 밝으면 다시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언니의 어깨에 삶의 무게가 무겁게 누르고 있다.
때로 가족이라도 서로의 아픔을 모르고 살아간다. 가족이나 혈육보다 더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나 동료에 기대어 힘든 시간을 견디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들의 손을 잡고 어깨에 기대어 일어선다. 내일은 오늘과는 다를 거라는 믿음으로 꿈을 향해 또 한 걸음 내딛는다. 그녀는 불안한 현실 속에서도 푸른 희망을 향해 나아갔으리라.
어느 날, 흰 봉투에 ‘사직서’라고 썼다. 쉼 없이 달려온 시간에 대한 마침표이다. 마지막 순간에 날릴 비장의 무기이기도 하다. 생각만으로도 팽팽한 줄을 끊고 날아가듯 홀가분해진다. 하지만 아직은, 아직은, 하며 책상 서랍에 숨겨두었다. 많은 이유를 저울에 바꿔 달아도 눈금은 늘 먹고사는 문제에 기울었다. 봉투를 만지작거리다 다시 서랍에 넣는다. 더 나은 내일을 봉투 속에 꾹꾹 밀어 넣는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도종환의 「담쟁이」일부
시인의 말처럼 현실은 절망의 벽이고 허공 속을 걷는 한 자국의 걸음일지 모르겠다. 담쟁이는 절망의 벽을 쉼 없이 기어오르고 있다. 상처를 봉합하듯 허물어지고 무너지는 것을 끌어안는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벽을 넘고자 한다.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하여 수백의 줄기로 수천 개의 마디로 벽면을 채운다. 붉은 갈색빛의 어린 이파리는 전장의 깃발처럼 바람에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모세혈관처럼 퍼져있는 줄기의 번식은 삶의 터전을 지켜나가는 성실한 도전이다. 가파른 현실을 견디며 때를 기다린다. 그들은 세상의 벽에 단단히 붙어있다. 마디가 끊기면 다시 어딘가에 뿌리를 내릴 것이다. 경계를 지우고 한계를 넘는 건 삶의 확장이다. 벽을 타고 담을 넘는 담쟁이의 담대함과 부지런함 그리고 끈질김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현실을 견뎌내야 푸른 꿈을 피워 낼 수 있다.
고난의 시간을 살아낸 이들의 얼굴에는 푸르른 생명력이 있어 좋다. 투박해진 손가락 마디와 얼굴의 주름 사이로 견디고 살아낸 시간이 모여 눈이 부시다. 그들의 걸음은 연대의 행렬이다. 담쟁이가 푸른빛으로 반짝인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나가는 모습이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누군가의 얼굴이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어깨에 기대고 그들의 손을 잡고 살아온 세월이다. 멈추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는 용기가 필요했던 순간들이다. 열심히 내딛는 발걸음으로 살아간다면 돋보이지 않는 삶인들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