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벤틴 마시스(Quentin Massys, 1464∼1530, 16세기 플랑드르 화가) / ‘대금업자와 그의 부인’, 1514년. 나무에 유채, 74x68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코로나19에게 묻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전쟁 중입니다.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이 미물은 현미경에선 왕관을 쓴 제법 위엄이 있는 모습이어서 이름조차 왕관을 뜻하는 코로나(Corona)로 지어졌습니다. 보기에는 산수유 꽃 같기도 하나, 하는 짓은 꽃 달린 수류탄입니다.
보통 전쟁은 적대세력 간에 벌어지는데, 코로나19는 전 인류를 상대로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공격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이 전쟁은 코로나19가 이겨 인류가 망하면 코로나19도 멸망하는 공멸의 전쟁입니다.
전 지구적 지혜로 대처해야 할 이 전쟁에서 인간의 단합을 방해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코로나19는 사람 사이는 물론 나라 사이를 단절시키고 있습니다. 학교와 교회와 공항의 문이 닫히고, 올림픽이 연기됐습니다. 공장이 문을 닫아 실업자가 쏟아집니다.
인간이 개발한 핵무기와 같은 고성능의 무기는 이 전쟁에선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인간이 쓸 수 있는 대응책이라곤 검사하고, 격리하고, 통행금지하고,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5,000만 명의 전체 인구가 마스크를 쓰는 단군 이래 처음 보는 동시패션이 나타났습니다. 인류의 종말이 이렇게 오는 건가 하는 공포가 엄습합니다.
인류의 공적(公敵) 1호가 된 코로나19를 만났습니다. 그는 숙주로 삼은 인간의 몸속 깊숙이 숨어 있었습니다. 보자마자 그의 숨통을 누르고 싶었지만 나에게 들러붙을 게 분명해 악수도 하지 않았습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누르며 그에 대한 호칭을 2인칭(너)으로 했습니다.
-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사망은 사탄의 흉계라고 했는데 너는 사탄의 자손인가?
▲ 천만의 말씀! 나를 품게 될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나도 인간을 만든 창조주의 질서 안에서 존재할 뿐이야. 내가 사탄이 되는 것도, 천사가 되는 것도 인간이 하기나름이지.
- 너의 존재가 인간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거야?
▲ 생각해 보라구. 인간들은 서로 편을 가르고 싸울 궁리만 하잖아? 그 싸움에서 이기겠다고 지구를 파멸시키고도 남을 만큼 많은 핵무기를 만들어 놨잖아?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나 같은 미물을 다스리지 못하면서 핵무기로 어쩌겠다는 거야?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유익한 거지.
- 너로 인해 인간 사이의 불신이 깊어진 것 같은데.
▲ 그렇다면 미안해. 허나 “세상에 믿을 x 없다”는 말을 누가 하는데. 인간들이 나를 막겠다고 하는 행동 모두가 인간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더군. 누가 나한테 걸린 사람인지 모르니 모두를 걸린 사람으로 일단 의심하고 보겠다는 거지. 마스크를 쓰는 것, 악수 대신 팔꿈치 치기, 구두치기 인사를 하는 게 다 그런 거 아냐?
- 남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의심해야 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불신 사회가 됐다는 거지.
▲ 하기야 발병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나에게 걸렸는지 알 수가 없지. 걸렸으면서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자기 살자고 남을 의심하는 것이니 ‘불신사회 조장’ 어쩌구 하며 나를 탓하지 말라고.
- 세계 패권을 다투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도 들어 있긴 하지만 G20의 강대국들이 너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이던데?
▲ 무기개발에 퍼부은 돈의 100분의 1이라도 나를 막는 데에 썼더라면 나도 꼼짝을 못했겠지. 돈 가지고 엉뚱한 짓을 한 업보 아니겠어? G2라는 미국과 중국이 나의 공격에 최대 피해자가 된 이유를 새기라고. 한심하게도 사람들은 나에게 대비한다고 생필품 사재기하더군. 미국에선 총을 사려고 줄을 섰고. 나를 총으로 죽이겠다는 거야?
- 한국에선 마스크를 사려고 매일 약국앞에서 줄을 서는데.
▲ 매우 안타깝지. 핸드폰 자동차를 각각 수천만, 수백만 대 만드는 나라에서 어쩌다 천과 재봉틀만 있으면 되는 마스크 하나 충분히 못 만드느냐고? 하기야 한국은 기다려서라도 살 수 있지만 없어서 못 사는 나라도 많더군. 그래서 한국은 인구 전체가 마스크를 차는 나라가 됐고, 그런 국민들의 열성 덕에 나를 잘 다스린 나라라고 칭찬을 듣더군. 나를 원망하지 말고, 그런 것으로 위안을 삼으셔.
-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는 어떻게 생각해
▲ 자기편이라고 너무 친한 척 하지 말고, 자기편 아니라고 너무 미워하지 말라는 거야. 인간 사이는 좋을 땐 간을 빼줄 듯하다 돌아설 때 원수가 되기가 다반사 아냐? 서로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도 있는 게 좋은 거지. 그렇게 다져진 관계가 건강하고 오래가는 법이니까.
- 사회적 거리 2m만 떨어지면 너로부터 안전한 거야?
▲ 말할 때 침이 튀는 거리가 2m라던데 물리적 거리가 중요한 게 아니지. 한국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사회라고 하잖아. 나도 인간이 침을 튀기며, 입에 게거품을 물고 큰 소리로 떠들면 여기저기 달라붙기 좋지. 소통도 중요하지만 조용한 목소리로, 때로는 눈빛으로, 때로는 침묵으로 소통하는 법도 익혀두라는 얘기로 이해해줘.
- 노약자 치사율이 매우 높던데 노인한테 가혹한 것이 아닌가?
▲ 나는 누구를 공격할 때 남녀 노소 강약을 차별하지 않아. 공격거리 안에 있으면 누구에게든 달라 붙지. 노약자 치사율이 높은 것도 노인일수록 건강에 더 조심하라는 뜻일 뿐이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노인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했더군. 그런 게 차별이지.
- 네가 온 목적은 달성될 것이라고 보나?
▲ 그게 그리 쉽겠어? 미국과 중국이 나의 원산지를 놓고 서로 싸우는 것만 봐도 알만하잖아.
지난달 26일 나를 잡기 위해 열린 G20 정상 간의 사상 첫 화상회의에서 좋은 말들을 많이 했더군. 역시 정치꾼들이다보니 고작 돈을 왕창 풀자는 것 외에 뾰족한 얘기는 없더군. 내가 할 걱정은 아니지만 뒷감당이 될지 모르겠어. 어떻든 인간들이 불신과 적대를 깨고 양보와 협동의 정신으로 뭉쳐서 나와 대적하지 않는 한 나는 인간에게 패배하지 않을 거야.
- 이런 판국에 미사일 발사하는 북한은 어떻게 생각해?
▲ 한심하지. 나 같은 미물보다도 생각이 모자란 거지. 총도 아닌 미사일로 바이러스를 잡겠다는 발상이 아니겠어. 주민 수천 명을 격리시켰다고 하면서도 감염자가 없다고 시치미를 떼고 있으니, 얼굴도 두껍지. 북한의 집권자에게 나의 맛을 보여 주는 수밖에 없겠어.
- 신천지는 어때?
▲ 종말론을 근거로 교세를 키워온 종파라지? 세상의 종말에 14만4,000명만 구원을 받는다니 그게 믿어지는 얘긴가. 세상이 혼란스러우면 그런 종파들이 기승을 부리게 되니 조심하라고 일찍이 성인들도 말했지. 서울시장이 그들을 반사회적 집단이라고 했던데 나의 얘기를 대신했더군.
- 언제 갈 거야?
▲ 백신을 개발한다고 나라마다 난리던데 한 곳에서라도 성공하면 나도 갈 거야. 내가 간다고 너무 좋아하지는 말아. 없는 동안 내가 놀고 있을 거로 생각하면 큰코다칠 거야. 다시 올 때는 훨씬 세질지도 몰라. 더 치명적인 것은 공기전염기술로 무장할 수도 있어. 그 때는 마스크도, 손 씻기도 소용없을 거야. 그렇다고 숨을 안 쉴 수도 없을 테니.
- 얘기를 듣고 보니 “서로 믿고 살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하러 온 예언자 같군.
▲ 인간이 그걸 알면 인간과의 전쟁에서 내가 불리해지지만, 인간의 몸에 기숙하는 입장이니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겠군.
[퍼온 글] / 출처; 2020년 04월 02일 (목)에 받은 자유칼럼그룹의 e메일 / 필자소개; 임종건(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앙은행의 중앙은행
외환위기 당시 강경식 경제부총리는 “펀더멘털은 튼튼하다”고 했다가 온갖 비아냥을 들었다. 따져보자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부 부채가 GDP의 11%에 불과했다. 그 덕분에 대규모 공적자금 동원이 가능했다. 기업부채비율이 치솟았지만 산업경쟁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구제금융 이듬해부터 경상흑자로 전환할 수 있었던 이유다.
당시 문제는 달러 부족이었다. 국고에 돈이 있어도 ‘세계통화’ 달러가 아니면 소용이 없다. 억울해도 그게 1944년 브레턴우즈 회담으로 틀이 잡힌 전후 국제질서다. 영국 대표 케인스가 당시 담판장에서 세계 단일통화 도입을 제안했지만 ‘뜨는 해’ 미국에 의해 거부당했다. 대신 미국은 거대한 자국 시장을 동맹국에 완전 개방하고, 해군력으로 국제무역의 안정성을 보장하겠다는 대담한 제안을 통해 달러 시대를 열었다.
해외로 달러가 무제한 공급돼야 유지되는 시스템 하에서 미국 중앙은행(Fed)의 역할 증대는 자연스럽다. 달러를 풀면서 가치도 유지하는 과업을 무난히 수행한 덕에 Fed는 ‘아우라’를 지니게 됐지만, 1914년 출범 이후 한동안은 혹평 받았다. 뱅크런(대규모 자금유출)과 금융위기에 무기력했기 때문이다. Fed의 엉뚱한 통화긴축정책이 ‘작은 공황’을 대공황으로 만들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환골탈태는 1979년 취임한 폴 볼커 의장 시절부터다. 그는 미국 경제의 골칫거리 인플레이션을 잡아냈다. 후임 그린스펀은 ‘골디락스’를 이끌었다.
2년 전 제롬 파월 시대가 시작됐다. 정통 경제학자 출신이 아닌 파월은 존재감이 약했지만 코로나 쇼크를 맞아 놀랄 만큼 과감한 통화정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규모 ‘통화스와프 협정’으로 달러를 풀더니, 그제는 각국 중앙은행을 상대로 ‘달러 RP(환매조건부채권)거래창구’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통상 중앙은행이 시장을 상대로 하는 RP거래를 세계의 중앙은행들을 상대로 열어 달러 가뭄을 해소한다는 묘책이다.
달러가 ‘고픈’ 우리로서는 안전판이 생겨 다행스럽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달러 지키기’라는 미국의 속내가 읽힌다. 코로나 쇼크가 통제불능이 되면 달러 패권도 위험해진다. 각자도생이 시작되면 새로운 질서에 대한 요구가 봇물처럼 터질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 세상은 확실히 지금과는 상당히 다를 것이란 심증이 더 굳어진다.
[퍼온 글] /출처; 한경닷컴 / 백광엽(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2020.04.02 00:12
코로나 무기명 채권?
1997년 12월은 ‘참담한 달’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후 “이제 선진국”이라고 외친 김영삼정부. 11월 터진 국가부도 사태로 그달에는 식량 수입마저 걱정해야 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태국이 부럽다”고 했다. 왜? ‘상하의 나라’에는 사시사철 바나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으니.
재정경제원이 ‘돈의 출처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무기명 채권을 발행하기로 한 것은 그때다. 그달 5조원 규모의 발행 계획을 발표했다. 이듬해 3조8744억 원어치를 팔았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1993년 전격 도입된 금융실명제. 빛을 보지 못한 ‘구린 돈’은 장롱 속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논란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얼마 전까지 가・차명 계좌를 당연시했으니 이해할 만했다.
무기명 채권은 22년 만에 부활할 모양이다. 여당의 일부 의원들은 이 채권 발행에 군불을 지핀다. “국난을 극복할 최선의 방법”이라며. 그런 걸까.
금융실명제 27년. 지금 ‘숨은 돈’은 1990년대 말 비실명 자금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금고와 가상화폐 지갑에 감춰진 돈은 십중팔구 범죄자금이다. 무기명 채권을 발행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범죄자금 세탁의 길은 활짝 열리고, 범죄의 족적은 지워진다. ‘n번방’, ‘박사방’, 라임펀드 사건…. 권력형 비리 의혹도 수두룩하다. 물론 상속・증여세를 면하려는 자금도 모이겠지만.
무기명 채권을 발행하지 않으면 돈을 조달할 수 없을까. 외환위기 때와는 다르다. 한국은행은 주요국 중앙은행을 뒤따라 위기의 불 끄기에 나섰다. 환매조건부 채권(RP) 매입 방식으로 돈을 무제한 풀기로 했다. 금융회사・공공기관의 자금이 말라 멀쩡한 기업을 부도낼 일은 없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물론 은행이 책임을 면하려고 딴지를 건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댓글이 붙었다. “라임펀드로 빼돌린 돈 파킹하고 숨기는 데 무기명 채권이 제격.” 왜 여당내에서 황당한 제안이 나오는 걸까. 경제전문가 집단인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관료를 B급쯤으로 여기는 걸까.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말도 모르는가.
[퍼온 글] /출처; 세계일보 / 강호원(세계일보 논설위원) / 2020-04-01 23:31:14
‘사쿠라 정치’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하고 속삭이던 노래 ‘벚꽃 엔딩’이, ‘벚꽃이 피나 봐요 이 겨울도 끝이 나요’라고 흥얼거리는 ‘봄날’에 순위가 밀렸다. 두 유행가 노랫말마따나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벚꽃잎은 춘심을 뒤흔드는 마력이 있다. 화신이 예년보다 열흘 넘게 일찍 북상해 서울에도 은은한 벚꽃 내음이 화사하다. 하지만 올봄 전국 대부분의 유명 벚꽃 축제는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됐다. 4월 첫날인 오늘부터 오는 11일까지 서울 여의도 국회 뒤편의 벚꽃길 등 많은 도로가 통제된다. 아쉽기 그지없다. 하지만 소메이요시노자쿠라의 나라 일본도, 포토맥 강변의 체리블라섬 페스티벌이 유명한 미국도 마찬가지라는 사실로 위안 삼을 일이다.
벚꽃은 겨우내 두툼하고 어두운 롱패딩을 벗어던질 시간임을 알리는 전령이다. 그의 수명은 길지 않다. 4∼5일에 불과한 천수조차 다 누리지 못하는 때가 많다. 가벼운 비바람에도 스러진다. 화무십일홍…. 소설가 고 손소희가 그랬듯이 벚꽃은 한 송이나 한 가지, 아니 한 그루로 봐서는 신통할 게 없다. 수천수만의 나무가 구름같이 어우러져 꽃을 피워야 멋있다. 꽃은 꽃인데 저 혼자는 주목받지 못하고, 같은 종끼리 군화(群花)를 이뤘을 때 비로소 뭇 연인들의 배경이 되어 추억 사진첩에 담긴다.
100시간 남짓한 벚꽃의 한평생,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시점은 따로 있다. 봉오리 시절도 아니고, 갓 개화한 무렵도 아니다. 활짝 피었을 때보다도 더 아름다운 때가 있다. 다섯 장의 꽃잎이 제각각 바람 따라 춤추듯 날아가는 시간이다. 자신을 버리면서 남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장관이다. 이를 사람들은 산화(散花)한다고 한다. 일본의 선승 료칸(良寬)의 하이쿠(俳句・일본 전통의 짧은 시구)가 연상된다. ‘지는 사쿠라/ 나머지 사쿠라도/ 지는 사쿠라’.
벚꽃의 일본말 ‘사쿠라(櫻)’는 외래어로 우리말에 건너와 전혀 다른 뜻으로 자리 잡았다. 다른 속셈을 가지고 어떤 집단에 속한 사람, 곧 변절자를 가리킨다. 특히, 여당과 야합하는 야당 정치인을 이르는 말이다. 지난 연말 여당에서 ‘위헌 선거법’을 만들 때 가담한 이들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보름 뒤 총선이 끝난 뒤에도 이들 사쿠라는 지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인가.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라. 피고 지는 벚꽃에게서 겸손과 순리를 배워야 할 시간이다.
[퍼온 글] /출처; 문화일보 / 황성규(문화일보 논설위원) / 2020년 04월 01일(水
거리는 '길이' 보다 '시간'으로 표현한다?
[과학을 읽다]
일상에서 거리를 표시할 때는 '미터(m)'나 '킬로미터(㎞)'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실제 대화에서는 이런 단위보다 시간을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m나 ㎞가 불편하기 때문일까요?
평소 직장 동료와 나누는 대화의 일부입니다. '거리'를 포함한 대화인데, 일상적 대화와 정확하게 거리를 알려주려고 노력하는 대화를 구분해보면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게 될 겁니다.
"집에서 지하철까지 얼마나 걸려?(집에서 지하철까지 거리가 얼마나 돼?)"
"걸어서 5분 정도(집 출입문부터 지하철 입구까지 거리는 600m 정도 돼)."
"출근 하는데 얼마나 걸려?(집에서 회사까지 거리가 얼마나 돼?)"
"지하철 타고 30분, 지하철까지 10분? (집 출입문부터 지하철 입구까지 1.2㎞ 정도 되고, 지하철로 1개역 지나는데 평균 2분 걸리니까 15개 역을 지나게 되지. 지하철의 평균 속도가 50~60㎞/h로 계산하면, 역 하나 간 거리는 대략 1.5~2㎞ 정도 된다고 볼 수 있지. 지하철 출구에서 회사까지 5분 걸리니까 600m, 그러면 회사까지 24~32㎞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
어떤가요? '걸어서 몇 분', '지하철로 몇 분'이라고 표현하면 간단한데 거리로 정확하게 표현하려니 복잡해지고, 거리의 개념도 불분명해집니다.
서울-부산 간 거리는 얼마일까요? [사진=구글 지도 캡처]
그래서 우리는 일상에서 '집에서 지하철까지 5분' 또는 '출근하는데 1시간'이라는 축약된 표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리는 시간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이해가 쉽다는 말입니다. 과학적으로는 거리는 속력과 시간의 곱으로 얻을 수 있는 값이기 때문이지요.
'거리 = 속력 x 시간'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리의 단위인 m나 ㎞로 거리를 표현하는 것보다 시간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쉽고, 이해도 빠릅니다.
정확하게 묻고, 정확하게 알려준다고, "출근 거리가 얼마나 돼?"라는 물음에 "집 출입문부터 지하철 입구까지 1.2㎞이고, 지하철로 24.6㎞를 타고 와서, 지하철 출구에서 회사까지 600m지. 그래서 도합 26.4㎞야."라는 대화를 나눈다면, 서로 답답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4만㎞ 정도인 지구의 둘레에 대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고 가정해보면, 어떤 식으로 표현을 해야 상대방이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거리는 시간으로 표현할 때 더 쉽게 이해됩니다. 경부고속도로를 주행 중인 차량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시속 100㎞인 자동차로 달리면, 400시간이 걸립니다. 하루에 10시간 운전을 하고, 고속도로로만 달린다고 가정했을 때 지구 한 바퀴를 도는 데는 40일이 걸리게 됩니다. 이 거리를 단순히 "4만㎞"라고 표현하기보다 "자동차로 40일 동안 가야 해" 또는 "시속 100㎞ 속도의 자동차로 하루 10시간씩 40일을 달려야 해"라고 표현한다면 더 쉽게 이해하겠지요.
언론에서 주로 사용하는 표현이 이런 표현입니다. 이동하는 수단의 속력을 덧붙여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도와주는 것이지요. 흔한 표현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500㎞' 같은 표현입니다.
평소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동차로 5시간 거리'라고 하고, 명절 때 교통체증을 표현할 때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평소 자동차로 5시간 거리인데, 지금은 8시간 정도 걸립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지요. 거리는 시간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퍼온 글] / 출처; 아시아경제 / 김종화(아시아경제시문 기자) / 2020.04.01 06:30
여행 제한만으로 전염병 못 막는 이유
[사이언스프리즘]
입출국 90% 강력히 제한해도 / 확산 시간 늦추는 효과 있지만 /
감염 최종 규모는 크게 못 바꿔 / 지역 내 방역 노력 병행되어야
여행 제한이 코로나19의 전염에 미치는 효과를 살펴본 논문이 학술지 사이언스에 지난 6일 발표되었다(doi:10.1126/science.aba9757). 미국 노스이스턴 대학교의 베시피아니 교수를 포함한 여러 연구기관의 연구자들은 감염병 확산 모형 중 하나인 SEIR 모형을 이용했다. 감염이 안 된 S상태의 사람은 전염력이 있는 I상태의 사람에 의해 감염되면 E상태가 된다. E상태의 사람은 감염은 되었지만 아직 다른 사람에게 전염을 시키지는 않는데, 잠복기가 지나 전염력이 있는 I상태로 바뀌면 S상태의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다. I상태에 있는 감염자는 결국 R상태로 바뀐다. 확진 판정을 받아 병원에서 격리치료를 받는 사람, 치료 중 사망한 사람, 그리고 면역이 생긴 사람을 모두 아우르는 R상태에 이르면 더 이상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이 매일 서로 활발히 왕래하며 살아가는 작은 마을을 떠올려보자. 이처럼 집단 안의 사람들이 자주 고루 섞이는 상황을 가정하면, S상태의 사람이 감염되는 확률은 I상태에 있는 사람이 몇 명인지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각 상태에 있는 사람의 숫자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네 개의 미분방정식으로 기술하는 것이 바로 SEIR 모형이다. 논문의 저자들은 전 세계 약 200개 국가 이곳저곳의 3200개 집단 하나하나를 위에서 설명한 SEIR 모형으로 기술했다.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사람들이 이동하는 과정도 저자들은 모형에 포함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전 세계 항공망과 육상 교통 데이터에서 추출한 사람들의 실제 이동 정보를 이용했다. 이런 방식의 모형을 메타인구 모형(metapopulation model)이라 한다. 2013년 사이언스에 출판된 다른 논문에서도 마찬가지의 방법을 이용해 감염병 확산 시뮬레이션 결과를 얻고, 이를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H1N1 독감의 현실 전염 경로와 성공적으로 비교하기도 했다.
중국이 우한시에 강력한 여행 제한을 시작한 날은 1월 23일이다. 병원에 수용되지 않은 많은 감염자가 이미 중국 안 여러 곳으로 퍼져나갔으며, 우한시에 대한 강력한 봉쇄의 효과는 중국 내 전염을 3~5일 지연시키는 정도였다는 것이 논문의 결론이었다. 또한, 중국의 강력한 봉쇄 정책으로 2월 중순까지 전 세계로의 전염은 무려 80% 감소 효과가 있었다고 추정했다. 감염병 확산의 이론 모형을 이용하면, 여행 제한 정책이 어느 정도의 장기 효과가 있을지를 다양한 시나리오를 적용해 추정해 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입출국을 90% 정도로 강력히 제한하는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에서조차도, 대규모 확산이 시작하는 시간이 늦춰지는 효과는 있지만 확산의 최종 규모를 크게 바꾸지는 못한다는 결론을 논문은 얻었다.
감염병 확산 이론 모형을 이용한 기존의 많은 연구도 마찬가지의 일관된 결론을 보여준다. 국가 간 사람들의 이동을 강력히 제한해도, 전 세계로 전염이 확산하는 것을 막기는 어렵다. 어떤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국경을 넘으려는 소수는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가 간 여행 제한의 중요성은 외부로부터의 전염을 전면적으로 막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전염에 대비해 각 국가가 방역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시간적 여유를 제공한다는 면에 있다. 감염자의 조기 발견과 물리적 거리두기 등으로 지역 내 전염을 줄이는 노력이 없다면 출입국 제한의 확산 방지 효과는 제한적이다.
90% 정도로 강력한 여행제한을 실시해도 전염의 최종적인 규모가 크게 줄지 않지만, 같은 정도의 여행제한이 지역 내 감염률의 50% 하락과 동반한다면, 전염의 최종 규모가 크게 줄어든다는 결론을 논문은 얻었다. 논문 저자들이 제안한 효율적인 방역의 방법이 우리나라의 노력과 비슷한 면이 많다. 가능한 한 이른 시기에 감염자를 찾아내 이들을 격리 치료하는 노력과 함께, 사람들 사이의 거리두기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이러한 노력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여행제한만으로는 최종 전염의 규모를 줄이기는 어렵다. 비슷한 정도로 출입국을 제한해도 나라마다 전염 확산의 속도가 다른 이유다.
[퍼온 글] / 출처; 세계일보 / 김범준(성균관대 교수 물리학) / 2020-04-01 23: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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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의 맛 세상]
코로나 사태로 '한국식 공유형 상차림' 문화 퇴출될 가능성 높아
지금 식문화 100여 년 전 등장… 최초 조선 요리점 '명월관'이 효시
먹고 싶은 메뉴 골라 먹고 음식 쓰레기 문제 해결 기회 될 수도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대부분의 모임이 연기되거나 취소된 가운데 드물게 남은 저녁 식사 자리였다. 본 요리에 앞서 반찬이 나오기 시작했다. 남도식 한식당답게 갈치속젓, 갓김치, 물김치, 꼬막무침 등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반찬 7~8가지가 흐뭇하게 딸려 나와 식탁을 덮었다.
갈치속젓을 조금 집어 먹으려는 순간, 함께 자리한 여성 한 분이 수저통에서 숟가락을 반찬 가짓수대로 꺼내더니 반찬 그릇마다 올렸다. 흡사 미니 한식 뷔페 같은 광경이 식탁 위에 펼쳐졌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반찬에 개인 젓가락 갖다 대지 말고 이 숟가락으로 개인 앞접시에 덜어 먹으라'는 뜻이었다. 평소 "뭘 그렇게 유난 떨고 그러냐"며 찌개마저 국자 대신 숟가락으로 떠먹던 남성조차 군소리 없이 반찬들을 공용 숟가락으로 앞접시에 옮겨 담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 사회의 식문화와 식사 에티켓은 엄청난 변화를 맞을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침을 통해서 전파된다고 확인됐으니, 상에 올라온 음식을 함께 나누는 식습관은 퇴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물론 서양도 가정에서는 음식을 나눠 먹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마른반찬은 물론이고 찌개나 전골 같은 국물 음식까지 각자의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해 함께 먹는 '한국식 공유형 상차림'은 외국인들에게 낯설고 당혹스러운 경험이다. 이미 한국인 중에서도 위생적이지 못하다며 꺼리는 이가 상당수이나 '한국 고유의 전통' '나눠 먹지 않으면 정(精)이 생기지 않는다' 운운하며 부정적으로 보는 이도 많아 바꾸기 어려웠다. 코로나 사태는 공유형 상차림 반대파가 판세를 뒤집을 결정적 기회를 제공했다.
/ 일러스트=이철원
모든 음식이 커다란 상 하나에 차려져 나오는 '공간 전개형 상차림'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국 전통 잔치 상차림은 독상(獨床) 차림이었다. 궁궐에서 열렸던 각종 연회를 기록한 그림을 보면 모든 참석자 앞에 각종 음식이 1인분씩 담긴 소반이 하나씩 놓여 있다. 여럿이 둘러앉을 수 있는 커다란 교자상에 음식을 모두 담아 내는 한정식(韓定食)은 1900년대 초 '명월관(明月館)'에서 유행시켰다. 명월관은 우리나라 최초 조선 요리점. 대한제국 황실 궁내부(宮內府)에서 잔치와 여기 필요한 기구를 관리하던 주임관(奏任官) 안순환이 1909년쯤 서울 광화문 지금의 동아일보사 자리에 문을 열었다. 명월관은 '임금이 자시는 음식을 그대로 맛볼 수 있다'며 대단한 화제가 됐고, 명월관에서 규격화한 한정식은 전국적으로 확산하며 한식 서빙의 전범(典範)으로 굳어졌다. 이것이 요즘 한국의 공유형 상차림이 됐으니, 그 역사가 길어봐야 110여 년에 불과한 것이다.
한식 상차림이 공유형으로 바뀐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 거의 같은 시기 유럽에서 나타났다. 과거 프랑스에서는 요즘 국내 한정식집처럼 여러 요리를 한 상에 차려 냈다. 이를 '프랑스식(式) 서비스'라고 한다. 화려하고 호사스러운 잔치일수록 이런 상이 여러 차례 나왔다. 그러다 1890년대 음식이 순서대로 1인분씩 제공되는 '러시아식 서비스'로 바뀌었다. 겨울이 혹독하게 추운 러시아에서 음식이 식어 맛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식사 제공 방식. 이것이 프랑스에서 유행하면서 러시아식 서비스가 서양 고급 레스토랑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우리가 아는 전통이란 건 의외로 오래되지 않은 경우가 상당수이며, 쉽게 사라지거나 바뀌기도 한다. 코로나처럼 엄청난 재난 앞에서 상차림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쉽게 바뀔 수 있다.
고급 한식당에서는 1인분씩 담아내는 방식으로 갈 가능성이 높지만, 손이 많이 가고 그만큼 인건비가 더 들기 때문에 대중식당에서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앞서 저녁 모임처럼 음식마다 작은 숟가락이나 집게를 딸려 내는 방식이 더 현실적일까. 함께 먹되 각자 1인상을 받는 구조가 대세가 된다면, 먹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반찬을 주문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어차피 요즘은 식사비를 각자 '더치페이'하는 경우가 흔하니, 자기가 먹기 싫은 반찬에 대해서는 돈 내지 않고 먹은 반찬만 지불하는 방식을 손님들이 더 선호할 수도 있다. 한식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온 음식 쓰레기와 재사용을 없애는 기회일 수도 있다. 어떤 방향이건 코로나 사태는 한국 외식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초대형 변수가 됐다.
[퍼온 글] / 출처; 조선일보 / 김성윤(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 / 2020.04.02 00:19
모용수(牟溶洙,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 졸업) / 사랑합니다._Oil on canvas_130.0x130.0cm_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