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6월 19일- 따르릉~따르릉~갑자기 엄마의 핸드폰 밸 소리가 크게 내 귀로 들려왔다. 귀찮게 누가 이렇게 새벽5시에 전화하는 거지? 하고 봤더니 한국에 있던 아빠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나는 졸려서
그런지 전화를 받자마자 아빠한테 짜증을 냈다. 하지만 아빠는 빠른 목소리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씀하시곤
바로 전화를 끊으셨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침대에 누워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내가 한국에 있었을 때 할아버지한테 조금 더 잘 할 걸……추억이
조금 더 있었으면……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잠들지 못하고 아침이 밝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한국에서 외할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외할머니는 빨리 가서 센터에 새벽예배 중이던 엄마한테 알려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재빨리 준비하고 자전거를 타고 센터로 갔다. 내가 엄마한테
말했을 때 엄마는 놀라셨다. 그리고
아빠한테 전화를 거셨다. 그 동안에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큰엄마께서 오셔서 우리 엄마랑 얘기를 나누셨다. 그 날 우리는 빨리 비자를 하고 비행기
티켓을 사고 한국 행 비행기를 탔다.
우리는 한국에 20일 이른 아침에 에 도착했다, 그리고
또 5시간동안 차를 타고 고성으로 내려갔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검은색 옷으로 갈아 입고 들어갔다. 들어가서 우리가 2달동안
못 본 우리 아빠의 얼굴이 보였던 순간 나는 아빠에게 달려갔다. 우리 가족은 장례식은 처음이어서 뭐를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우리는 아빠가 하는 것을 보면서 서있었다.
우리는 장례식을 마치고 고성 시골에 2주 동안 있었다. 처음 4일 정도는 우리 큰 아빠들께서 오셔서 할머니네 집을 정리하셨다. 할아버지의
물건을 다 버리고 옷은 다 태우셨다. 나는 아빠한테 이것을 왜 하는 지 물어봤다. 아빠는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물건을 보시면서 외로움을 느끼실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그렇지 않도록 하기 위해
태우는 것이다 라고 얘기해주었다. 시골에서 잘 안 터지는 와이파이가 우리 할머니 집 옥상에서 잡혀서
나는 맨날 시간 날 때마다 옥상으로 올라가서 태국에 있는 친구들이랑 카톡을 했다. 그렇게 시골에서 회
먹고 우리 큰 아빠들이랑 고모랑 작은 아빠를 만나면서 2주일을 보냈다.
2주 후 우리는 서울에서 할 일들 때문에 이모네로 올라가게 되었다. 아빠는 할머니가 처음에 많이
외로우실 것 같은 생각에 큰 아빠랑 작은 아빠한테 계속 할머니 보러 자주 들르라고 얘기하셨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이모네로 올라갔다. 태국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동수, 다예, 그리고 건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너무 기뻐서 다예랑 동수랑 건우를 끌어 안았다. 다예랑
동수는 아직 방학 전이라 학교를 가서 아침에 예라랑 나는 계속 뒹굴 뒹굴 거리면서 티브이를 봤다. 그리고 6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는 동수랑 다예랑 놀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는 뒹굴 거리는 예라와 나는 보시면서 활동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시려고 하셨다. 때론 영화를 하루에
두 편을 보고 태국에 왔었던 선생님들을 만나고 동수랑 다예랑 가서 뮤지컬도 보고 그랬다. 다예랑 동수는
어쩔 때 우리랑 함께 하기 위해 학교나 학원을 빠지곤 했는데 그땐 마냥 좋아하기만 했다. 이런 모든
시간들이 나한테는 큰 추억이 되었다. 사촌들이랑 함께 재미있는 것을 많이 하고. 내 사촌 동생 다예랑 더 가까워 지는 시간들이 너무 좋았고 또 다예도 예라와 나를 너무 좋아해서 우리가 어딜
나갈 때마다 같이 따라가고 싶어 했다. 그래서 다예를 대리고 나가면 내가 꼭 책임 져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미안하지만 이것은 어쩔 때 나를 너무 힘들고 귀찮게 했다.
우리가 태국으로 오기 전에 할머니가 계신 고성 시골을 2박3일로
한번 더 갔다 왔다. 이번에는 동수랑 다예도 대려 갔다. 동수랑
다예는 2일 동안 학교를 빠지고 같이 갔다. 늦은 오후에
출발해서 12시에 도착했다. 다음 날 아침 할머니는 우리를
보고 놀라셨다. 그리고 기쁨이 우리 할머니 얼굴에 찾아왔다. 우리
엄마와 아빠는 시골에 올 때마다 하는 일들을 했다. 우리 엄마는 취나물 밭에서 열심히 풀을 뽑았다. 조금 일하다가 우리는 공룡발자국 박물관을 갔다. 먼저 박물관을 둘러본
다음에 밖에 있는 공원을 돌아다니면서 놀았다. 그 다음에 우리는 공룡 발자국이 있는 대로 갔다. 돌 위에 발자국 모양을 찾아 다니면서 선녀 탕도 찾고 조그마한 구멍으로 동굴을 넘어다니기도 했다. 이 기쁨을 잘 잊지 않게 사진도 많이 찍었다. 우리의 재미는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아빠는 우리를 우리 할머니네 집에서도 보이는 바닷가로 대려 갔다. 우리는 거기서 고동과 게랑 조개를 찾고 잡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집에 갔다 놓은 다음 너무 배고파서 나는 우리 큰 아빠에게 말해서 회를 먹게 되었다.
이번에 갔다 온 한국 여행은 나의 여름방학 계획에는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슬픈 이유로
가니까 조금 마음이 예전에 한국 나왔던 것만큼 재미있거나 기쁘지는 않았다. 앞으로는 더 좋은 이유로
갔으면 한다. 나는 우리 할머니가 많은 외로움을 안 느끼고 지내시길 기도했다. 너무 외로울 때면 하나님이 위로를 해줬으면
좋겠다. 우리 할아버지는 교회를 안 다니셨다, 그래서 너무
슬프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병원에 계셨을 때 우리 시골 교회 목사님께서 기도 하셨을 때 아멘 이라고
했다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모른다 할아버지가 어디 가셨는지. 그래서
우리 할머니라도 교회를 다니시고 천국에 가시면 좋겠다. 아직 안 믿으시는 우리 제일 큰 아빠도
빨리 교회를 다니시고 믿으시면 좋겠다. 앞으로 나는 우리의 모든 가족이
믿고 천국을 가도록 더 많이 기도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첫댓글 이번 한국에서 많은것을, 보고 듣고 배웠네^^
더 넓게 깊이볼수있는 유라가 되렴!!
감사합니다~
어린 나이에 슬픔앞에 놀랐을 유라 마음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생각이 드네요.
우리 함께 할머니의 믿음과 마음의 위로를 위해, 다른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요.
예쁜 자매 한국가서 이쁨만 받고 왔는 줄 알았더니 사촌들에게도 사랑을 베풀고 왔네요. ^^ 그 인기는 어디서나~ 가득~!
이 글을 읽으면서 유라 생각이 참 깊고 따뜻하구나 하고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어요. 좋은 글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할아버지에 대한 유라의 그리움과 사랑이 글에 잘 묻어납니다. 그리고 홀로 남아계신 할머니에 대한 염려 또한 글 속에 잘 담겨있습니다. 유라의 웃음속에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는 모습이 늘 사랑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유라의 글을 보니 한국에서의 시간들이 한 눈에 보이네~~ 할머니랑 아빠랑 할아버지 보고 싶어서
대전현충원에 갔던 이야기도 썼으면 더 좋았을 텐데... ^^
ㅎㅎ까먹었어ㅠㅠ
슬픈일로 갑작스런 방문 이지만 유라에게는 가족과 함께한 소중한 여행이라생각이 듭니다.
생각하는 마음이 참 예쁘네요.
ㅎㅎ감사합니다!!
유라의 글을 읽는 동안 마치 내가 그 곳에 있었던 것 처럼 풍경들이 지나갑니다.
기행문을 그렇게 현장감을 느낄 수 있게 생생하게 쓰면 잘 쓴 글이 되지요
ㅎㅎ제가 그렇게 잘썼는줄은 몰랐는데..감사합니다
유라가 한국에서 지냈던 생활을 보는 것 같아.
할머니를 위한 유라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거야.
정말 잘 썼다.
네 당연히 들어주시겠죠ㅎㅎ감사합니다 큰엄마~^^
언제나 자신의 느낌을 잘 표현하는 유라
이 기행문도 그런 느낌이 팍아팍 ^^ 드는데~
언제나 기쁜 일만 있었음 좋겠지만 우리에게 슬픈일들이 많구나
이런 일들을 겪으며 어른이 되어가는거겠지...
늘 자신의 일에 맘에 충실한 유라되길 바란다~
넵~~^^
유라가 글을 올린지 이제 알았어
짧은 시간 많은 일들이 있었네
유라의 예쁜 마음씨와 순수함이
선생님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주는구나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 멈추지 말고
나중에 간증으로 한 번 더 부탁해
유라리 쑤쑤
가족에 대한 소중한 마음이 잘 느껴지는구나,,
방학동안 유라의 마음과 생각이 한뼘만큼은 더 크고 넓어졌을것 같아
언제보아도 너의 그 환한 미소가 세상을 비추는 밝은 빛이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