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에 대한 추측 - 이승우(李承雨, 1959 ~ ) 바른♥국어
[줄거리] 등장인물은 넷이다. 어느 날 우연히 폭설로 인해 여관에 묵게 된 법률가, 종교학자, 건축가, 연극배우가 자신들이 여행하면서 보거나 듣거나 경험한 것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차례대로 하나씩 하게 되었다.
건축가의 차례가 돌아왔을 때, 그는 한때 번창했던 에게 해 일대의 눈부신 문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미노스의 미궁에 대한 자신의 남다른 관심을 드러낸다. 그의 고백이 발단이 되어 좌중의 분위기가 새롭게 변한다. 그 미궁은 누가 어떤 필요에 의해 건축했을까. 그곳에서는 무슨 일들이 일어났을까. 이 의문에 대한 각자의 견해들이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하는데 이 책의 거의 대부분은 그러니까 그날 밤에 그들이 나눈 대화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기록인 셈이다.
먼저 법률가의 견해, 그는 그리스 신화가 미노타우로스라고 하는 식인괴물을 가두기 위한 목적으로 이 궁전을 만들었다고 전하는 사실에 먼저 주목한다. 말하자면 이 특이한 양식의 건축물은 중형을 선고받은 죄수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기 외해 만들어진 감옥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종교학자는 견해, 그는 종교학자답게 이 미궁을 일종의 신전으로 이해하고 싶어 한다. 미궁그곳에는 미노타우로스, 즉 신적 존재가 살기 때문이다. 미노타우로스가 괴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미노타우로스가 신성한 존재이기 때문에 미노타우로스는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했다.
건축가의 견해, 미궁을 설계하고 지은 다이달로스에 주목하여 미노스의 미궁은 다이달로스의 예술가적 야심에 의해 축조된 하나의 ‘예술작품’일뿐이라고 주장한다.
마지막 연극배우의 견해, 그의 설명은 연극배우답게 훨씬 구체적이고 상세하다. 미노스의 미궁은 사랑에 빠진 왕비 파시파에와 다이달로스가 미노스 왕 몰래 사랑을 나눌 그들만의 은밀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재주를 발휘했다고 주장한다.
[이해와 감상] 소설 속의 소설 : 이 작품은 소설 속에 장 델뤽의 「미궁에 대한 추측」이라는 소설의 내용이 등장하는 액자 소설의 형식이다. 소설 쓰기에 대한 소설이자 일종의 메타 소설(소설에 대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장 델뤽의 소설 「미궁에 대한 추측」은 실재하는 책이 아니라 작가가 상상해 낸 가상의 책이다. 가상의 책을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책처럼 다루는 이러한 방식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 쓰기 방식을 연상시킨다.
신화와 현실의 중첩 : 이 소설은 가상의 작가 장 델뤽의 가상 소설 「미궁에 대한 추측」을 소개하는 번역자의 서문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런 낯선 형식은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인 신화와 현실의 중첩이 변형된 것으로, 이 중첩은 어떤 사건을 신화적 보편성에 근거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등장인물]
*나(작가) : 실제 작가인 이승우의 분신. 일인칭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작품 속에 직접 등장해서 가상의 책 「미궁에 대한 추측」에 대해 분석적으로 소개하는 인물
*장 델뤽 : 가상의 책 「미궁에 대한 추측」의 저자로 작가가 만들어 낸 상상 속의 인물
*연극배우 : 장 델뤽의 소설에 등장하는 네 명의 주인공 중 하나. 미궁에 대한 법률가, 종교학자, 건축가의 견해를 모두 듣고 연극배우 특유의 상상력을 발휘해 마지막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힘. 미궁을 파시파에와 다이달로스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밀회(密會)의 장소로 추측할 만큼 낭만적인 성향의 소유자
[핵심 정리]
*갈래 : 단편 소설, 소설가 소설, 메타 소설
*시점 : 일인칭 주인공 시점
*주제 : 그리스 신화 속 미궁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
*이승우(李承雨, 1959 ~ ) 1981년 <한국문학>에 「에리직톤의 초상」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새로운 작품 세계를 모색하기 위해 실험을 멈추지 않는 진지한 작가의 모습을 보여 준다. 주요 작품으로 「생의 이면」,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심인광고」 등이 있다.
[문제]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앞부분 부분 줄거리] 장 델뤽의 소설 「미궁에 대한 추측」에 등장하는 인물은 건축가, 법률가, 종교학자, 연극배우 넷으로, 이들은 폭설로 인해 닷새 동안 한 여관에 묵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각 ‘미노스의 미궁’에 대한 추측을 제시하게 된다.
먼저 법률가의 견해. 그는 그리스 신화가 미노타우로스라고 하는 식인(食人)의 괴물을 가두기 위한 목적으로 이 궁전을 만들었다고 전하는 사실에 가장 먼저 주목한다. 그리고 신화가 역사적 사건을, 사실 그대로는 아니지만, 은유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을 전제한다.
미노스왕 시절의 크레타에는 절대 왕정이 수립되어 있었고, 무적의 함대를 가지고 바다를 제패한 미노스왕은 주변 일대에 여러 속국(屬國)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신화는 ㉠아테네가 크레타의 식민지였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지 않은가. 최초의 발굴자 에번스는 특히 ㉡미궁이 발견된 크노소스가 정치, 경제의 중심지로서 인구가 약 8만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그쯤 되면 사회를 어지럽히는 흉악범들이나 보안 사범들도 상당히 늘어났을 것이라는 추측이 자연스럽다. 또 자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크고 작은 소요를 일으키는 식민지 국가의 열혈 당원들도 꽤 있었을 것이다. 거기다 전쟁 포로들까지 합치면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할 숫자가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 특이한 양식의 건축물은 중형을 선고받은 죄수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감옥이었을 것이다. 법률가는 덧붙인다. 어쩌면 크레타섬에서는 사형 제도라는 것이 따로 없었을지 모른다. 이 건물이 말하자면 사형틀이나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죄수들은 이곳에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세상 구경을 할 수가 없었을 테니까. 크노소스 말고도 크레타섬 일대의 다른 지역에서 이와 유사한 양식의 건축물이 더 발견되었다는 점이 이 추측을 지원한다.
종교학자는 견해가 다르다. 그는 종교학자답게 이 미궁을 일종의 신전으로 이해하고 싶어 한다. 지중해 일대를 장악하여 역사 이래 가장 강력한 왕국을 건설한 미노스왕은 전체 백성들을 하나로 통합할 모종의 상징체계를 필요로 했고, 숙고(熟考-깊이 생각함) 끝에 정교한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 제공하기로 결정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해석의 출발점이다.
이 경우 미노타우로스는 괴물이나 죄수의 총칭이 아니라 신적 숭배의 대상이 된다. 미노타우로스는 실재했을 수도 있고, 실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상관없다.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와 경외(敬畏)의 대상인 미노타우로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게 하는 것이다. 종교는, 초월적 존재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문제인 세계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있어도 없고, 믿는 자에게는 없어도 있다. 실은 그것이 신의 정체다.
그렇다면 미궁은 왜 미궁이어야 했을까. 그 곳에는 미노타우로스, 즉 신적 존재가 살기 때문이다. 미궁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 왜 그랬을까. 그곳에 들어가면 다시는 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풍문(風聞-소문)이 그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더 분명하고 확실한 대답은 그곳에 미노타우로스가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노타우로스는 가까이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존재다. 왜? 그는 사람과는 다른 존재니까. 그에게 노출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미노타우로스가 괴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미노타우로스가 신성한 존재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에게 신성한 것은 곧 두려움의 대상이고, 그것에 접촉하는 것은 불경(不敬-경의를 표해야 할 자리에서 무례함)이다. ‘신을 본 자는 죽는다.’ 종교학자는 강조한다. 미궁은 신적 숭배 대상인 미노타우로스를 더욱 신비화하고 성스럽게 하기 위해 고안된 특별한 양식의 신전이었을 것이다. 아테네의 젊은이들이 미노타우로스에게 제물로 바쳐졌다는 전언(傳言-전설)이야말로 이 미궁이 종교적인 목적으로 건축되고 활용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지원하는 결정적인 증거다. 아마도 크레타섬의 군주는 미궁 안의 신성한 존재로 하여금 반인반우(半人半牛)의 형상을 갖게 하여 더욱 신비감을 더하고, 또 그에게 인신공양(人身供養-옛날 제사에서 공양의 희생물로 인간을 신에게 바치는 일)을 받게 함으로써, 일반인들의 공포심을 증폭시켜, 보다 효과적으로 통치하려 하였는지 모른다.
다음은 건축가의 견해. 그의 해석은 유별나다. 그는, 앞서의 법률가나 종교학자가 그런 것처럼 건축가답게 상상한다. 그에 의하면, 미궁은 창의력이 분출하는 한 예술가의 작품이다. 그는 다이달로스라는 이름의, ㉣신화 속에서 세공인으로 나오는 인물을 부각시킨다. 그는 누구였을까. 실마리를 거기서부터 찾아보자고 그는 제안한다. 다이달로스는 누구였을까. 그의 이름에는 ‘교묘한 공인(工人)’이라는 뜻이 있다. 그는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갇혀 있던 미궁에서 밀랍(꿀벌이 벌집을 만들기 위해 분비하는 물질)으로 날개를 만들어 붙이고 탈출하는 데 성공했던 인물이다. 그는 장인이었고, 발명가였으며, 또 비범한 예술가였다. 미궁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발견된 모든 신상(神像)들과 조각들이 아마도 그의 작품이었을 것이다. 그의 특별한 재능은 왕이 곧 법인 그 나라에서 그의 위상을 매우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과학자일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예술가였기 때문에 실용성과는 상관없는 건물을 짓고 싶은 욕망을 품었을 것이라고 상정해 보자.
예컨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할 때가 가까웠음을 감지한 늙은 예술가는 군주에게 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에 봉사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애 최후의 걸작을 만들고 싶었다. 그는 쓰임새를 염두에 두지 않은 작품을 구상했다. 그리고 그를 신임한 군주는 그에게 그 복잡하고 특별하고 쓸모없는 건축물의 설계와 건설을 허용했을 수 있다. 안정된 사회 분위기와 최강대국을 만들어 놓은 미노스왕의 여유와 허세가 ㉤그 정도의 도락(道樂-취미 같은 것에 즐기어 빠짐)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다이달로스는 그 자신의 남은 인생을 이 필생의 작업에 걸었을 것이다.
미궁의 비밀을 발설한 죄로 아들과 함께 자신이 만든 미궁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신화적 발언은 어쩌면 그가 스스로 자신의 최고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 그 작품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돌려서 말한 것이 아닐까. 그는, 말하자면 한번 들어가면 누구도 밖으로 나올 수 없는(심지어는 그 자신조차) 정교하고 교묘한 건축물을 설계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자신이 그곳에서 빠져 나오지 못함으로써 그 건물이 본인의 의도대로 완성된 ⓐ완벽한 작품임을 자신과 세상에 증명해 보인 것이 아니겠는가.
이 건축가의 추측을 연장해 나가면, 우두인신의 괴물 미노타우로스에게 정기적으로 희생된 아테네의 젊은이들은 이 신기하고 복잡한 건물에 달라붙은 믿을 수 없는 단서 조항(들어가면 나오지 못한다는)에 콧방귀를 뀌며 의심을 표명했던 일단의 모험심 많은 젊은이들로 해석할 수 있다. 들어가는 곳이 있으면 나오는 곳도 있다고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고, 그렇게 큰소리쳤을 것이다. 그러나 미궁 속으로 들어간 그들 젊은이들은 영영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질되어 미궁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흉악한 괴물이 산다는 식으로 구전(口傳-말로 전함)되었을 것이다.
건축가의 해석은 법률가나 종교학자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나(서술자, 주인공, 작가 이승우가 만든 허구적 대리인)는 그 세 인물들의 견해 속에 들어 있는 뛰어난 상상력의 자유로운 발산에 매료되었다. 그렇지만 마찬가지로 매력적이고, 인상적인 생각이 하나 더 준비되어 있다. 네 명의 인물 가운데 가장 많은 대사를 부여받고 있는 이 마지막 인물은 연극배우이다. 그의 설명은 연극배우답게 훨씬 구체적이고 상세하다.
그(연극배우)는 한 편의 재미난 드라마를 상상해 낸다. 미궁은 무얼 하는 곳이었고, 그것은 누가 무엇 때문에 만들었을까. 그도 건축가와 마찬가지로 다이달로스라고 하는 장인을 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설정한다. 그가 설정하는 또 한 명의 주인공은 미노스왕의 부인인 파시파에다. 신화 속에서 포세이돈의 황소에 반해 다이달로스에게 도움을 청하고, 다이달로스의 도움을 받아 ⓑ황소와 사랑을 나누고, 그 결과 황소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괴물을 낳았다고 전해진 여자다.
그런데 연극배우는 이 파시파에의 연인으로 황소 대신 다이달로스를 지목한다. 파시파에가 사랑한 ‘포세이돈의 황소’는 바로 다이달로스였다는 것이다. 다이달로스의 풍부한 예술적 기질과 현실 밖의 세계에 대해 자주 관심을 기울이는 그의 자유분방한 정신은 ⓒ정복자이고 무사인 남편과는 사뭇 다른 인상을 주었을 것이고, 만일 그녀가 그전부터 남편에 대해 불만이 많기라도 했었다면, 의외로 쉽게 다이달로스에게 빠져들었으리라고 추측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녀가 황소를 사랑한다고 알려진 것은 그렇다면 무슨 연고인가. 그것은 다이달로스가 밤늦은 시간에 왕의 아내인 파시파에를 만나러 갈 때 자신이 직접 만든 ⓓ황소 가면을 뒤집어쓰고 왕궁을 출입했기 때문이라고 연극배우는 해석한다. 그가 소의 모형을 만들어 왕비에게 씌워 준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쓰고 다녔다는 것이다. 아무리 조심을 했다 하더라도 밀애를 위해 왕궁을 드나드는 이 황소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 사이에 ⓔ황소 머리를 한 괴물에 대한 소문이 들끓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그 괴물이 용모가 아름다운 젊은 남녀들만을 잡아먹는다는 식으로 확대되기에 이른다. 가만 놔두면 잠잠해질 것으로 기대했던 소문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악성으로 변해 가고, 크노소스만 아니라 크레타섬 전체로 퍼져 나가고 만다.
1. 위 글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이 글은 장면마다 주인공이 다른 옴니버스식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② 이 글의 두드러진 특징은 신화와 현실이 결합하여 변형되고 있다는 것이다.
③ 서술자 ‘나’는 가상의 책 「미궁에 대한 추측」에 대해 분석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④ 작품 안에 있는 서술자는 자신의 견해와 해석을 주로 말하는 형식으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⑤ 이 글은 소설 속에 장 델뤽의 「미궁에 대한 추측」이라는 소설의 내용이 등장하는 액자 소설의 형식이다.
2. 위 글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생각에 대해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법률가 : 미궁을 죄수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한 감옥이다.
② 종교 학자 : 미궁을 신적 숭배 대상인 미노타우로스를 모시는 신전이다.
③ 건축가 : 미궁을 창의력을 분출하는 예술가 다이달로스의 마지막 걸작이다.
④ 연극배우 : 미궁을 파시파에와 다이달로스가 사랑을 나누기 위한 비밀스러운 장소이다.
⑤ 나 : 미궁에 대한 뛰어난 상상력을 지닌 네 명의 견해에 매료되나 건축가의 견해는 다른 견해보다 구체적이고 상세하다고 평가한다.
3. ‘연극배우’의 견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이달로스와 파시파에이다.
② 포세이돈의 황소에게 반해 다이달로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③ 황소 머리 괴물은 결국 다이달로스가 황소 가면을 썼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④ 장인인 다이달로스와 미노스왕의 부인인 파시파에는 몰래 사랑을 나누는 연인 관계였다.
⑤ 황소 머리 괴물이 용모가 아름다운 젊은 남녀들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 소문이 확대된 것이다.
4.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 서술자 ‘나’가 신화를 바탕으로 해석하고 있다.
② ㉡ : 서술자 ‘나’가 에번스의 견해를 인용하여 추정하고 있다.
③ ㉢ : 미노타우로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게 하려는 주체는 크레타섬의 군주이다.
④ ㉣ : 다이다로스를 부각시킨 주체는 건축가이다.
⑤ ㉤ : 실용성과는 상관없는 미궁을 짓는 것이다.
5.ⓐ~ⓔ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 : 누구도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정교하고 교묘한 건축물로서의 미궁
② ⓑ : 소설 <미궁에 대한 추측>에 나오는 미노스왕의 부인인 파시파에
③ ⓒ : 파시파에의 남편인 미노스왕
④ ⓓ : 다이달로스가 자신의 신분을 속이기 위해 썼던 것
⑤ ⓔ : ‘황소 가면’으로 인해 생긴 것
6. 다음에 제시된 <보기>는 이 소설의 마지막에 나온 말이다. 이를 근거로 올바르게 감상한 학생은?
<보기> 우리의 정신은 종종 이색적인 경험을 통해 고양되기도 하는 법이다. 상상력이란, 이를테면 다이달로스가 그의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만들어 달고 미궁을 빠져 나왔다고 하는 그 밀랍의 날개와 같은 것이다. 이 책이 부디 독자들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 주기를. 그리하여 미궁과 같은 이 세상을 빠져 나가 시실리의 풍요롭고 자유로운 하늘로 날아갈 수 있게 되기를……
① 산해 : 신화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하나의 현상을 다양하게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그런 경험은 우리의 정신을 고양시키지.
② 유민 : 신화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은 모든 현상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는 인간의 한계를 느낄 수 있었어.
③ 형수 : 신화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면서 그 이면에 있는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신화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④ 수빈 : 우리가 상상력만 발휘한다면 현실의 문제를 다 해결하고 헤쳐 나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어.
⑤ 지환 : 신화를 해석하는 것은 해석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모두 달라. 그것은 모든 사람의 생각이 다 나름대로 타당하다는 것이지.
<정답> 1①-이 글은 장면마다 주인공이 다른 것이 아니라 미궁에 대한 네 사람의 견해를 ‘나’가 분석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2⑤-나는 연극배우의 견해가 가장 구체적이고 상세하다고 평가한다. 3②-이 내용은 신화에 제시된 내용이지 연극배우의 생각이 아니다. 4②-서술자 ‘나’의 추정이 아니라 에번스의 추정이다. 5②-소설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화에 나오는 내용이다. 6①-이 소설의 주제 파악 문제이다. 이 소설의 주제는 ‘그리스 신화 속 미궁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이다.
[지문] 일찍이 에게해 주변에서 번창했던 한 위대한 문명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 준 사람은 하인리히 슐리만과 아서 에번스였다. 그들이 이 지역에 대한 발굴을 시작하여 황금 가면과 사자문과 양손에 뱀을 든 여신상을 보여 주기까지 인류는 에게 문명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19세기 중엽, ‘호머’를 단순한 이야기꾼으로서만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한 위대한 역사가로 믿었던 한 남자, ‘호머에게 미친’ 슐리만의 집념이 에게 문명의 유적들을 땅 속에서 끌어냈다. 트로이가 맨 처음 햇빛을 보고, 이어서 미테네도 그 역사의 어두운 지하실로부터 모습을 드러내었다.
‘미노스왕이 9년 동안 통치하였다’고 호머가 기록하고 있는 위대한 도시 크노소스는 에게 해 남단에 위치한 크레타섬의 중심지였다. 그런데 이 섬을 발굴한 사람은 슐리만이 아니라 아서 에번스였다. 그는 1900년부터 크노소스의 발굴을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크고 복잡하고 이상한 건물을 발견했다. 전설적인 미노스왕이 다스리던 크노소스 궁전으로 밝혀진 이 건물은 완만한 경사면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 때문에 이쪽에서 보면 1층인 곳이 다른 쪽에서는 3층이기도 하고, 어떤 쪽에서는 4층으로 보이기도 했다. 건물 한가운데 직사각형 모양의 넓은 정원이 있었으며, 그 정원을 둘러싸고 수많은 크고 작은 방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1층만 해도 방의 수가 백 개가 넘었다. 그 방들 가운데는 제실(祭室)과 집무실과 아틀리에,(화가·조각가·건축가 등의 작업장) 또는 창고 같은 식으로 그 용도를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훨씬 많은 방들은 무얼 하는 곳이었는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많은 방들이 무엇 때문에 필요했을까, 하는 질문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훨씬 의심스럽고 이상스러운 것은 그 건물 내부의 한없이 좁고 길고 꾸불꾸불한 통로와 턱없이 많은 계단들이었다. 그 안에서 길은 길을 만나 길이 된다. 방향 감각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고, 마침내는 어디가 들어왔던 곳인지, 어디가 나가는 곳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이 한없이 복잡한 구조의 건물에, 그래서 ‘라비린토스(미궁-들어가면 나올 길을 쉽게 찾을 수 없게 되어 있는 곳. 미로)’라는 이름이 붙여졌던 것이다.
이 미궁(迷宮)의 존재는 수세기 동안 그 방면의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유발시켜 왔다. 나(서술자, 주인공) 역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지금으로부터 4,000년이나 전의 것인, 흡사 함정과도 같은 이 건물은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이 건물을 만든 사람은 누구였으며 이 건물 안에서 산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 까마득한 과거의 한 시절에 이곳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정말로 왕이 이 미궁에서 살았을까. 만일 그랬다면 그는 이 복잡하고 도무지 들고 나는 방향을 종잡을 길 없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크레타섬의 군주였다. 그가 무엇 때문에 이런 불편을 감내하려 했을까. 그에게 무슨 괴상한 취미라도 있어서 신하들과 숨바꼭질 놀이 같은 걸 하며 놀았단 말인가. 그러려고 이런 건물을 설계했단 말인가. 어딘지 장난스럽고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그런 해석을 무조건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그것 역시 미궁의 수수께끼에 대해 해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자유로운 추측 가운데 하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가정은 미노스왕이 강력한 군주였다는 사실과 그가 다스리던 크레타섬이 당시 지중해 일대에서 최고로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는 사실로부터 약간의 지원을 받는다. 그 두 가지의 조건들은 외부 세력으로부터 위협을 받지 못해 무료해진 이 절대 군주로 하여금 무언가 색다르고 자극적인 놀이를 강구하게 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생략 부분 줄거리] 미궁의 존재에 대해 명쾌하게 기술해 놓은 원전이 없는 데다 워낙 오래 전의 일이다 보니, 미궁의 수수께끼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들이 제기되었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미궁에 대한 추측>이라는 책은 내가 유럽 여행 중에 우연히 발견한 책으로 미궁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을 품어 온 한 호사가가 미궁의 비밀을 풀어 보겠다고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해 본 기록 중의 하나이다. 이 책의 근거로 그리스 신화에서 전하는 미노스왕의 미궁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이 신화에 나오는 미노타우로스는 머리가 황소이고 몸뚱이는 사람인,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 괴물이다.
괴물은 위험했다. 신화(神話)는 이 괴물이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전한다. 미노스왕은 그의 아내인 파시파에가 그런 것처럼 다이달로스를 찾는다. 다이달로스는 자신의 직업과 상관없이 이 왕의 가문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아 하는데, 그것은 상담자, 또는 조언자의 역할이다. 왕은 다이달로스에게 이 괴물을 가두어 둘 건물을 짓도록 지시한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아무도 나올 수 없는, 미로와 미로로 이어진 건물, 그 안에 우두인신(牛頭人身)의 괴물을 가둔다. 미궁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계속 전하는 신화에 의하면, 미노스왕은 아테네 여행 중 갑자기 변을 당한 자기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 아테네를 공격하는데, 그 싸움에서 이긴 왕은 아테네인들에게 9년마다 한 번씩 미소년과 미소녀 일곱 명씩을 바치라고 요구한다. 이 열네 명의 소년과 소녀들은 미궁에 갇힌 미노타우로스에게 인신공양(人身供養-옛날 제사에서 공양의 희생물로 인간을 신에게 바치는 일)으로 제공된다. 그런데 어느 해 이 일곱 명의 소년들 속에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가 자진하여 섞인다. 그리고 이 용감한 아테네의 왕자는 사랑에 빠진 미노스의 공주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미노타우로스를 무찌르는 데 성공한다.
신화는 테세우스를 처음 본 순간 공주의 마음이 흔들렸다고 말한다. 그녀는 속국(屬國-다른 나라의 지배하에 있는 나라)의 왕자에게 한눈에 반해 미궁의 설계자 다이달로스를 조른다. 미궁에 들어가서 살아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다이달로스는 단순한 세공 기술자가 아니다. 그는 매우 특별한 존재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딸이 모두 다이달로스에게 의지한다.
다이달로스는 망설임 끝에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되는 그 미궁의 비밀을 공주에게 알려 준다. 실타래의 한 끝을 미궁의 입구에 묶어 놓고 풀면서 들어간 다음 그 실을 되감으면서 나오면 그곳을 어렵지 않게 빠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테세우스는 공주가 알려 준 방법대로 하여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미궁을 빠져 나온다. 그리고는 아리아드네 공주와 함께 배를 타고 아테네로 도망쳐 들어간다. 아마도 그녀는, 조국 또는 혈육과 사랑 사이에서 망설임 없이 사랑을 택한 최초의 여자였으리라. 한편 왕의 명령을 어기고 미궁의 비밀을 발설한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자신이 만든 미궁에 갇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생략 부분 줄거리] 장 델뤽은 필로크로스라고 하는 한 역사가의 견해를 소개한다. 당대 최고의 용사에게 황소라는 뜻의 타우로스라는 이름이 부여되었는데, 그의 초인간적인 힘에 대한 외경심이 반인반우의 괴물을 상상하게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장 델뤽은 그의 해석이 미노타우로스를 설명하는 데는 설득력이 있지만, 미궁의 존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 주지 못한다고 지적하면서, 미노타우로스보다 미궁이 더 중요함을 분명히 한다. 그의 소설의 등장인물은 건축가, 법률가, 종교학자, 연극배우 넷으로, 이들은 폭설로 인해 닷새 동안 한 여관에 묵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각 미노스의 미궁에 대한 추측을 제시하게 된다.
먼저 법률가의 견해. 그는 그리스 신화가 미노타우로스라고 하는 식인의 괴물을 가두기 위한 목적으로 이 궁전을 만들었다고 전하는 사실에 가장 먼저 주목한다. 그리고 신화가 역사적 사건을, 사실 그대로는 아니지만, 은유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을 전제한다.
미노스왕 시절의 크레타에는 절대 왕정이 수립되어 있었고, 무적의 함대를 가지고 바다를 제패한 미노스왕은 주변 일대에 여러 속국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신화는 아테네가 크레타의 식민지였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지 않은가. 최초의 발굴자 에번스는 특히 미궁이 발견된 크노소스가 정치, 경제의 중심지로서 인구가 약 8만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그쯤 되면 사회를 어지럽히는 흉악범들이나 보안 사범들도 상당히 늘어났을 것이라는 추측이 자연스럽다. 또 자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크고 작은 소요를 일으키는 식민지 국가의 열혈 당원들도 꽤 있었을 것이다. 거기다 전쟁 포로들까지 합치면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할 숫자가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 특이한 양식의 건축물은 중형을 선고받은 죄수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감옥이었을 것이다. 법률가는 덧붙인다. 어쩌면 크레타섬에서는 사형 제도라는 것이 따로 없었을지 모른다. 이 건물이 말하자면 사형틀이나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죄수들은 이곳에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세상 구경을 할 수가 없었을 테니까. 크노소스 말고도 크레타섬 일대의 다른 지역에서 이와 유사한 양식의 건축물이 더 발견되었다는 점이 이 추측을 지원한다.
종교학자는 견해가 다르다. 그는 종교학자답게 이 미궁을 일종의 신전으로 이해하고 싶어 한다. 지중해 일대를 장악하여 역사 이래 가장 강력한 왕국을 건설한 미노스왕은 전체 백성들을 하나로 통합할 모종의 상징체계를 필요로 했고, 숙고 끝에 정교한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 제공하기로 결정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해석의 출발점이다.
이 경우 미노타우로스는 괴물이나 죄수의 총칭이 아니라 신적 숭배의 대상이 된다. 미노타우로스는 실재했을 수도 있고, 실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상관없다.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와 경외의 대상인 미노타우로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게 하는 것이다. 종교는, 초월적 존재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문제인 세계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있어도 없고, 믿는 자에게는 없어도 있다. 실은 그것이 신의 정체다.
그렇다면 미궁은 왜 미궁이어야 했을까. 그 곳에는 미노타우로스, 즉 신적 존재가 살기 때문이다. 미궁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 왜 그랬을까. 그곳에 들어가면 다시는 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풍문이 그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더 분명하고 확실한 대답은 그곳에 미노타우로스가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노타우로스는 가까이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존재다. 왜? 그는 사람과는 다른 존재니까. 그에게 노출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미노타우로스가 괴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미노타우로스가 신성한 존재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에게 신성한 것은 곧 두려움의 대상이고, 그것에 접촉하는 것은 불경(不敬-경의를 표해야 할 자리에서 무례함)이다. ‘신을 본 자는 죽는다.’ 종교학자는 강조한다. 미궁은 신적 숭배 대상인 미노타우로스를 더욱 신비화하고 성스럽게 하기 위해 고안된 특별한 양식의 신전이었을 것이다. 아테네의 젊은이들이 미노타우로스에게 제물로 바쳐졌다는 전언이야말로 이 미궁이 종교적인 목적으로 건축되고 활용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지원하는 결정적인 증거다. 아마도 크레타섬의 군주는 미궁 안의 신성한 존재로 하여금 반인반우의 형상을 갖게 하여 더욱 신비감을 더하고, 또 그에게 인신 공양을 받게 함으로써, 일반인들의 공포심을 증폭시켜, 보다 효과적으로 통치하려 하였는지 모른다.
다음은 건축가의 견해. 그의 해석은 유별나다. 그는, 앞서의 법률가나 종교학자가 그런 것처럼 건축가답게 상상한다. 그에 의하면, 미궁은 창의력이 분출하는 한 예술가의 작품이다. 그는 다이달로스라는 이름의, 신화 속에서 세공인으로 나오는 인물을 부각시킨다. 그는 누구였을까. 실마리를 거기서부터 찾아보자고 그는 제안한다. 다이달로스는 누구였을까. 그의 이름에는 ‘교묘한 공인(工人)’이라는 뜻이 있다. 그는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갇혀 있던 미궁에서 밀랍(꿀벌이 벌집을 만들기 위해 분비하는 물질)으로 날개를 만들어 붙이고 탈출하는 데 성공했던 인물이다. 그는 장인이었고, 발명가였으며, 또 비범한 예술가였다. 미궁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발견된 모든 신상들과 조각들이 아마도 그의 작품이었을 것이다. 그의 특별한 재능은 왕이 곧 법인 그 나라에서 그의 위상을 매우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과학자일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예술가였기 때문에 실용성과는 상관없는 건물을 짓고 싶은 욕망을 품었을 것이라고 상정해 보자.
예컨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할 때가 가까웠음을 감지한 늙은 예술가는 군주에게 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에 봉사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애 최후의 걸작을 만들고 싶었다. 그는 쓰임새를 염두에 두지 않은 작품을 구상했다. 그리고 그를 신임한 군주는 그에게 그 복잡하고 특별하고 쓸모없는 건축물의 설계와 건설을 허용했을 수 있다. 안정된 사회 분위기와 최강대국을 만들어 놓은 미노스왕의 여유와 허세가 그 정도의 도락(道樂-취미 같은 것에 즐기어 빠짐)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다이달로스는 그 자신의 남은 인생을 이 필생의 작업에 걸었을 것이다.
미궁의 비밀을 발설한 죄로 아들과 함께 자신이 만든 미궁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신화적 발언은 어쩌면 그가 스스로 자신의 최고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 그 작품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돌려서 말한 것이 아닐까. 그는, 말하자면 한번 들어가면 누구도 밖으로 나올 수 없는(심지어는 그 자신조차) 정교하고 교묘한 건축물을 설계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자신이 그곳에서 빠져 나오지 못함으로써 그 건물이 본인의 의도대로 완성된 완벽한 작품임을 자신과 세상에 증명해 보인 것이 아니겠는가.
이 건축가의 추측을 연장해 나가면, 우두인신의 괴물 미노타우로스에게 정기적으로 희생된 아테네의 젊은이들은 이 신기하고 복잡한 건물에 달라붙은 믿을 수 없는 단서 조항(들어가면 나오지 못한다는)에 콧방귀를 뀌며 의심을 표명했던 일단의 모험심 많은 젊은이들로 해석할 수 있다. 들어가는 곳이 있으면 나오는 곳도 있다고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고, 그렇게 큰소리쳤을 것이다. 그러나 미궁 속으로 들어간 그들 젊은이들은 영영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질되어 미궁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흉악한 괴물이 산다는 식으로 구전(口傳-말로 전함)되었을 것이다.
건축가의 해석은 법률가나 종교학자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나는 그 세 인물들의 견해 속에 들어 있는 뛰어난 상상력의 자유로운 발산에 매료되었다. 그렇지만 마찬가지로 매력적이고, 인상적인 생각이 하나 더 준비되어 있다. 네 명의 인물 가운데 가장 많은 대사를 부여받고 있는 이 마지막 인물은 연극배우이다. 그의 설명은 연극배우답게 훨씬 구체적이고 상세하다.
그(연극배우)는 한 편의 재미난 드라마를 상상해 낸다. 미궁은 무얼 하는 곳이었고, 그것은 누가 무엇 때문에 만들었을까. 그도 건축가와 마찬가지로 다이달로스라고 하는 장인을 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설정한다. 그가 설정하는 또 한 명의 주인공은 미노스왕의 부인인 파시파에다. 신화 속에서 포세이돈의 황소에 반해 다이달로스에게 도움을 청하고, 다이달로스의 도움을 받아 황소와 사랑을 나누고, 그 결과 황소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괴물을 낳았다고 전해진 여자다.
그런데 연극배우는 이 파시파에의 연인으로 황소 대신 다이달로스를 지목한다. 파시파에가 사랑한 ‘포세이돈의 황소’는 바로 다이달로스였다는 것이다. 다이달로스의 풍부한 예술적 기질과 현실 밖의 세계에 대해 자주 관심을 기울이는 그의 자유분방한 정신은 정복자이고 무사인 남편과는 사뭇 다른 인상을 주었을 것이고, 만일 그녀가 그전부터 남편에 대해 불만이 많기라도 했었다면, 의외로 쉽게 다이달로스에게 빠져들었으리라고 추측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녀가 황소를 사랑한다고 알려진 것은 그렇다면 무슨 연고인가. 그것은 다이달로스가 밤늦은 시간에 왕의 아내인 파시파에를 만나러 갈 때 자신이 직접 만든 황소 가면을 뒤집어쓰고 왕궁을 출입했기 때문이라고 연극배우는 해석한다. 그가 소의 모형을 만들어 왕비에게 씌워 준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쓰고 다녔다는 것이다. 아무리 조심을 했다 하더라도 밀애를 위해 왕궁을 드나드는 이 황소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 사이에 황소 머리를 한 괴물에 대한 소문이 들끓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그 괴물이 용모가 아름다운 젊은 남녀들만을 잡아먹는다는 식으로 확대되기에 이른다. 가만 놔두면 잠잠해질 것으로 기대했던 소문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악성으로 변해 가고, 크노소스만 아니라 크레타섬 전체로 퍼져 나가고 만다.
그 일로 민심이 흉흉해지고 사회가 불안해지자 왕은 온 나라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 괴물을 잡아내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온갖 칼 쓰는 무사들과 힘깨나 쓴다는 용사들이 달려들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다. 온 나라 안이 더욱 시끌시끌해지고, 백성들의 불만은 높아만 간다. 울화통을 끓이고 있는 왕에게 누군가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는 미궁을 만들어 괴물을 가두라고 진언한다. 그 진언자는 누구였을까. 아마도 다이달로스 자신이라는 편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그 소문 속의 괴물의 존재를 믿지 않는 단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그였다. 그런데도 그는 짐짓 그 소문을 그대로 믿는다는 태도를 취한다. 그의 제안은 자신의 왕국이 혼란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 왕에 의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생략 부분 줄거리] 왕이 누가 그런 건물을 설계할 수 있느냐고 묻자 다이달로스는 자기가 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아울러 괴물까지 그 건물 안에 잡아넣겠다고 장담한다. 계략을 묻는 왕에게 다이달로스는 입 밖에 내어 말하면 계략의 마력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대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왕은 다이달로스의 말을 믿고 필요한 경비와 장비와 인력을 지원하겠다고 말한다.
이 견해를 경청하면, 다이달로스가 미궁을 만든 것은 그의 예술가적 욕구 때문이 아니다. 라비린토스는 다이달로스의 예술혼의 산물이 아니라, 이 연극배우의 상상에 의하면, 사련(邪戀-떳떳하지 못한 연애)의 산물이다. 그는 그가 섬기는 군주의 아내와의 허락되지 않은 사랑을 나눌 그들만의, 은밀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재주를 발휘했다. 어쩌면 그 미궁 건설이라는 아이디어는 애인인 파시파에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모른다.
어쨌거나 다이달로스는, 자기 말고는 누구든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밖으로 나올 수 없는 복잡한 건축물을 설계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제 그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통로를 이용해 그곳에서 마음 놓고 애인을 만난다. 미궁이 완성된 후 황소 머리를 한, 식인의 괴물에 대한 소문은 잠잠해지고 나라는 다시금 평온을 되찾는데, 그것은 그 황소머리를 한 괴물이 미궁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괴물이 산다는 미궁 근처로 접근하는 사람도 없었으므로 소문은 곧 사그라들었던 것이다.
연극배우는 여기서 자신의 드라마를 멈추지 않고, 테세우스에게로 자신의 상상을 밀고 나간다. 그렇다면 미궁 속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나왔다는 테세우스는 누구였으며 실제로 그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연극배우는, 미노스왕과 파시파에의 딸인 아리아드네 공주(신화 속에서 첫눈에 테세우스에게 반해 그에게 미궁의 비밀을 가르쳐 주었다고 나오는)가 테세우스가 아니라 바로 다이달로스를 사랑했을지 모른다고 추측한다. 그렇게 가정을 세우면 자신의 드라마를 그럴듯하게 완성시킬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리하여 그의 드라마는 비극을 향해 달려간다. 다이달로스를 사랑했던 아리아드네는, 자신의 사랑을 받아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다이달로스는 냉담하기만 하다. 그로서는 어머니와 딸을 함께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낙심해 있던 아리아드네는 우연한 기회에 다이달로스가 그녀의 어머니인 파시파에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분노에 사로잡혀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아리아드네는 그 비밀을 아버지인 미노스에게 일러바치는 대신 오래 전부터 자기에게 사랑을 갈구해 온 테세우스에게 말한다. 그리고 약속한다. 미궁 속에 들어가 다이달로스를 죽이면 그대의 사랑을 받아들이겠노라고. 테세우스는 용기를 내어 미궁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는 다이달로스를 처치했다는 증거로 황소 가면을 들고 나온다. 테세우스는 파시파에까지 죽일 수 없었다. 아리아드네도 그것까지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파시파에는 다이달로스와 함께 미궁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애인과 함께, 애인 곁에서 죽는 쪽을 택했다…… 연극배우의 드라마는, 얽히고설킨 남녀 간의 애증으로 얼룩져 있고, 모든 러브스토리가 그러한 것처럼, 비극으로 끝이 난다.
[생략 부분 줄거리] 장 델뤽은 네 명의 등장인물 가운데 어느 편을 들지도 않고, 무슨 결론을 이끌어 낼 생각 같은 것도 없었다. 차라리 그 네 사람의 입을 통해 말해진 상이한 해석들이 모두 나름대로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어느 한쪽 의견에 공감을 표하고 싶을 것이고, 지난해에 미궁에서 새로 발견된 벽면의 선문자 B가 해독되면서 ‘역사적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지만, 고고학자들에 의해 드러난 역사적 사실에 집착하는 것은 이 책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 아닐 것이다. 아울러 작가는 오히려 네 명의 등장인물 중 어느 하나가 아니라 이 책의 저자인 장 델뤽의 손을 들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집어 든 당신의 정신이 낡은 관념으로 너무 딱딱하게 고정되어 있지만 않다면, 저자와 함께 4천 년 전의 크레타로 상상력의 여행을 떠나 보는 것은 매우 색다르고 흥미 있는 경험이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의 정신은 종종 이색적인 경험을 통해 고양되기도 하는 법이다. 상상력이란, 이를테면 다이달로스가 그의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만들어 달고 미궁을 빠져 나왔다고 하는 그 밀랍의 날개와 같은 것이다. 이 책이 부디 독자들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 주기를. 그리하여 미궁과 같은 이 세상을 빠져 나가 시실리의 풍요롭고 자유로운 하늘로 날아갈 수 있게 되기를……
너무 장황해진 느낌이다. 이 책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미리 말해 버림으로써 혹 독자들의 호기심을 빼앗지나 않았는지 걱정된다. 만일 그랬다면, 그것은 전혀 나의 의도가 아니었음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기 바란다.
바른♥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