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구원
2024. 6. 2. 성찬예배
오늘은 주님 모시고 출애굽기 12장 말씀을 더듬어보면서 ‘오늘의 구원’이라는 제목으로 주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출애굽기 12장 22절과 23절을 잠깐 읽어드리면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오늘의 구원에 대해 세 가지로 요약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받으시는 영원하고도 유일한 제사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제사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2절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주님이 죄를 위했다는 말씀은 그리스도는 이 세상 과거, 현재, 미래에 살아가는 모든 주의 백성의 죄를 위하여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공생애를 시작하려고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세례 요한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는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아무 피나 흘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의 피 흘림이 없으면 인생은 죄 사함이 없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2장에 주님은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우리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피 바른 문밖으로 나가지 말라” 죽음의 천사가 애굽 사람의 집들을 사망으로 징계할 때 그것을 보러 나가지 말고 어려움을 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는 우리에게 유일한 피난처시요, 거처가 되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을 하신 예수님, 또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말씀하십니다. 피 바른 집 문밖으로 나가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사망의 피해를 보고 죄값을 치르는 그 현장을 우리가 굳이 볼 필요는 없습니다. 어린 양의 피 바른 문밖으로 나가지 말라! 계시록 11장 말씀에 보면 큰 성은 영적으로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는데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어느 거룩한 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아니고 죄인들이 살고 있는 해골의 골짜기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 소돔 같고 애굽 같은 이 땅의 죄인들을 구속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댓가로 하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집은 어린 양의 피 바른 집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심판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보면 피 바른 집 문밖으로 나가지 말되 한 사람이라도 나가지 말라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한 사람, 그 당시에 장정들만 해도 육십만인데 유아들이나 여성들을 포함하면 적어도 이백만 내지 삼백만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냥 뭉뚱그려서 제사를 지낸 것이 아니라 식구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분량만큼 어린 양을 잡고 여유가 있다면 이웃들도 함께 모여서 유월절 제사를 지냈습니다. 한 가정, 한 가족 그 한 사람을 주님은 소중히 보십니다. 도매금으로 대충하는 것이 아니고 나 한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피 흘리신 나의 주님이십니다. 요한복음 6장 39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나 한 사람을 위한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죽음의 사자는 애굽 사람을 두루 치러 다닐 때에 그 어린 양의 피를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는 곳에는 심판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영어로는 ‘pass over’ 그래서 유월절 절기가 되었지요.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의 덕망을 보고 선한 일, 착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넘어간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이 땅에서 많은 고생을 하고 불쌍한 사람이기에 구원받는다. 그것도 아닙니다. 이 사람은 정치 경제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람이어서 죽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넘어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넘어가신 것은 어린 양의 피를 보고 넘어가셨습니다. 이사야 1장 18절 말씀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시켜 주신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같이 우리의 수치와 허물과 죄를 가려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은혜는 속에서 솟아나는 생명으로 양털 같이 우리의 옷이 되십니다.
둘째, 성령을 따라 주님을 취하라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불에 양고기를 구워 먹으라는 것입니다. “날로 먹지 말라” 신앙생활을 자기 멋대로 자기 생각대로 해버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종교생활, 종교행사를 하기 위해서 여기 모인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영원한 구원을 찬양드리고 오늘 나의 구원되신 예수님께 감사드리고 오늘 새롭게 성령님 안에서 주님을 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였습니다. “물에 삶아서 먹지 말라” 감정을 불어넣어서 뜨거운 찬송과 함께 감정적으로 신앙 생활하는 것, 주님 싫어하십니다. 차라리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는 감히 주님의 은혜를 받을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만 긍휼을 베풀어주십시오’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처럼 고개를 숙이고 주님께 아뢰고 다가설 때 주님은 그의 구주와 주님 되시듯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오늘의 구원도 그와 같은 은혜의 방식으로 성령님 안에서 주님을 만나도록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찬식 때 “나를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주님을 기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성령님 안에서 주님을 먹는 것입니다. 구경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의 주님, 나의 생명, 나의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나의 주님, 나의 사랑, 나의 생명이기 때문에 주님을 성령님 안에서 취해야 될 줄 압니다.
“무교병을 먹으라”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떡입니다. 우리가 분병할 때 예수님의 부활의 떡을, 부활의 살을 의미하는 무교병을 성령님 안에서 먹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역할을 할 힘을 얻은 것입니다. “어린 양을 먹되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의 머리, 주님의 생각을 나의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정강이를 먹듯이 성령님 안에서 주어지는 주님의 능력, 오늘 나의 능력입니다. “내장을 먹으라” 주님의 심장을 품은 사람이 주님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없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요, 주님의 마음을 품고 이 세상을 바라보며 저 멸망 당하는 애굽 사람들, 저 큰 성 바벨론에서 멸망 당하고 있는 이웃들을 보며 주님의 이슬 젖은 가슴으로 기도하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할 줄 압니다. 또한 “쓴 나물과 먹으라” 고난의 쓴 나물이지요. 애굽에서는 맛보지 못한 고난을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겪게 되었습니다. 고난을 각오하고 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자기 부인하면서 따르는 자가 주님의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하나님의 이 큰 유월절 구원을 받았음에도 조금 후에 홍해를 만났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악한지, 비겁한지 하나님의 큰 구원과 그 감격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오늘 조그마한 삶 속에 주님을 추구함이 계속되어야 가능할 줄 압니다. 오늘의 구원을 위해서도 주님이 꼭 필요합니다. 큰 구원 한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날마다 조그마한 일 속에 주님이 함께하시기를 바라고 조그마한 일에 신실하게 섬기는 삶 속에서 구원의 길은 계속되어야 될 줄 압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을 계속 추구해야지요. 그것이 성령님을 따라 주님을 취하는 길입니다.
마지막 셋째, 근신함과 깨어 있음
오늘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오늘의 근신함과 깨어 있음이 꼭 필요하다고 말씀드립니다.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찌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마음에 허리를 풀지 말고 마치 이 땅은 뛰듯 날듯 천성 가는 순례의 길을 바삐 걸어야 될 줄 압니다. 성도는 엉덩이가 무거워서는 안 돼요. 천국 가신 목사님과 심방길을 갈 때나 여행을 갈 때 주님과 함께 여유 있게 지내는 시간들도 있었지만 어떤 때는 분초를 나누어서 근신하며 깨어 지내는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목사님은 혼자 계시더라도 오른손을 꽉 쥐고 계셨어요. 주님 놓칠까봐 주님의 뜻을 구하면서 허락 속에 움직이고자 하시던 아름다운 모습이셨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우리 예수님은 다른 모습이 아닌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십자가의 흔적을 갖고 계시는 모습이십니다. 그 양손에 못 자국에 있고 허리에 창 자국이 있고 발에도 못 자국이 있는 그 주님이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시고 마지막 날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심판의 권세를 받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주님은 세상 끝날 뿐만 아니라,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과거 뿐만 아니라 오늘 문제 많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오늘 구원의 길의 주님이십니다. 오늘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는 권세 있는 주님이십니다. 당신의 백성을 한 사람이라도 잃어버리지 않고자 책임지고 주님으로 서주시는 우리의 사랑, 우리의 왕, 나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