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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오씨 대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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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댁 손자 글방 스크랩 흥법사 옛터 (興法寺址)
오대댁손자 추천 0 조회 100 07.09.14 11:16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전국에 남은 옛 절터는 충청도 700여, 경상도 600여, 전라도 200여,

경기도 160여 곳 하여 모두 2,000여 군데다. 그 중 원주 문막 일대

인접한 세 곳 절터를 비교하면 법천사는 발굴을 하고 있어 먹물티-

학구적인 분위기고, 거돈사는 정비가 되어 돈 들인 티가 난다면,

이번 글 주제-흥법사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글자 그대로 폐허 (廢墟)다.

 

…쓸쓸함에 완벽히 취하고 털어내려면 폐사지 만한 곳이 없다..

 

…. ‘절정 고독’을 맛보기엔 연말이 좋다지만 12월 추운 날씨엔 오돌오돌 떠느라

그 고독도 즐기기 힘들다. 그래서 절터에는 떠들썩한 연말 분위기가 엄습하기 전,

적당히 춥고 적당히 쓸쓸한 지금 가야 한다.

 

인터넷에서 위와 같은 글을 읽었다.

이런 사람들도 있을 것이나…

도시에서 사람으로 에워 싸여 있어도 외롭긴 마찬가진데

굳이 찾아 다니며 맛 볼 것 까지야

 

비록 흙으로 돌아 간 옛터지만 몇 조각 남은 돌멩이에서 그 시절을

머리 속에 그려보는 것도 불역낙호(不亦樂乎)-또한 즐겁지 아니할까?

필자는 이런 기분으로 다닌다.

 

 

흥법사 옛터 가는 길

 

문막에서 42번 도로를 타고 원주 쪽으로 약 1km 가다가 간현(艮峴) 관광지와

오크밸리 팻말을 보고 따라 들어간다. 오크밸리라고 이쪽으로 써 있는가 하면

반대 방향으로도 또 써 있어 헷갈리니 간현관광지만 보고 가야 한다.

 

 

 

지도-흥법사 옛터 가는 길.

그림 상 원주 쪽으로 가면서 좌회전해야 할 것 같지만, 길은 우회전하여

42번 도로 밑으로 들어가게 나있다. 5km 가서 간현관광지 나오면

섬강(蟾江)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간다. 흥법사 표지가 없어 물어 보아도

동네 사람들이나 또 면 사무소 조차 그런 절터가 관내에 있는지 잘 모른다.

김제남 사당 묻는 것이 오히려 빠르다.

 

 

사진: 섬강에 걸린 다리.

섬강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약 3km 가면 김제남 사당이 나온다.

흥법사는 사당 맞은 편으로 좌회전하여 농로 같이 좁은 길로 들어 간다.

 

 

김제남 사당

 

 

김제남(金悌男)은 둘째 딸이 1602년 선조대왕의 계비-인목대비(仁穆大妃)-가 되어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에 봉해진다. 작위 이름은 다 연고를 따라 짓는 것이니

 김제남이 연안(延安) 김씨라서 연흥(延興)이 되었을 것이다.

 

부원군의 영화도 잠깐 광해군 시절 그 유명한 폐모살제(廢母殺弟)-

어머니를 폐하고 동생을 죽일 때, 그 어머니가 바로 딸이고 동생이 외손자인

김제남은 실로 참혹한 변을 당한다.

 

1613년 김제남은 영창대군을 추대하려 한다는 이이첨(李爾瞻)의 모함을 받고

사약을 받지만, 옛날에는 죽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어 1616년 폐모(廢母)-

인목대비를 폐서인 할 때 부관참시(剖棺斬屍)마저 당한다.

 

1623년 인조반정 후 관작(官爵)이 복구되고 왕명으로 사당이 세워졌다.

이 사당 뒤편 가까이 산소가 있다는데 부관참시(剖棺斬屍) 된 시신을

어떻게 다시 묻었는지 궁금하긴 하다. 시호(諡號)는 의민공(懿愍公)이다.

 

 

김제남 신도비(神道碑)

사당 맞은편으로 난 흥법사 가는 길 초입 느티나무 옆에 신도비가 있다.

 

 

사진 : 김제남 신도비 전경

 

능이나 산소의 석물을 보다 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석수(石手)야 기능공으로

별 철학이 없었을 것 같은데 석물을 보면 그 주인공의 인생이 어느 정도 나타나 있다.

 

 

사진 : 김제남 신도비 귀부(龜趺)

딸 덕에 호강 잠깐 누리는가 하더니만 그만 횡액(橫厄)을 입은 김제남을 생각하면

거북이도 용머리를 앞으로 당당히 들지 못하고 뒤로 돌린 것일까?

 

 

 

사진:신도비 머리돌. 여의주를 다투는 두 마리 용의 표정이 익살스럽다.

그러고 보면 받침돌의 거북이도 애교를 부리느라 머리를 뒤로 꼬는 겔까?

중국 황제의 용은 발톱이 5개, 우리나라는 3개 라고 하는데 저 용의 발톱이

3개 인지 4개 인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에도 더러 오조룡(五爪龍)이 나온다).

신도비 제액 글씨-전서(篆書)는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이 썼다.

 

흥법사 옛터 (興法寺址)

 

김제남 신도비를 지나 차 두 대 마주 비끼기 힘든 좁은 시멘트 도로를

1km 가면 밭 사이로 석탑(石塔)이 보이는 곳이 흥법사 터다.

 

 

사진: 밭사이로 보이는 흥법사 탑

 

밭 사이로 언뜻 별 대단찮아 보이는 (그러나 보물 464호다) 삼층석탑이 있다.

그리고 깨진 돌 조각만 나뒹군다.

 

 

사진 : 흥법사 옛터

(사진에 보이지 않지만) 나직한 뒷산에서 흘러 나온 좌청룡과 우백호가

아늑하게 감싸고, 앞에는 섬강(蟾江) 이어서 안산(案山) 그 뒤로 먼산이 겹겹이 둘러 있다.

 

 

 

사진: 섬강찍은 위치는 영동고속도로 섬강대교 (사진 위쪽 다리) 아래로

흥법사 앞은 아니다. 그러나 흥법사에서 그리 멀지 않다.

 

 

흥법사 삼층탑

 

 

흥법사지 삼층석탑 (興法寺址 三層石塔), 보물 제464호,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2층으로 된 기단(基壇) 위에 3층의 몸체가 있다. 신라 석탑 같이 보이나 고려시대 탑이다.

상륜부(相輪部)는 위쪽은 없어지고 노반(露盤)만 남았다. 비례가 잘 맞지 않고 신라석탑과

비교할 때 미학적으로 못 하다. 이를 두고 고려가 신라 보다 퇴보한 것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신라 때 왕경(王京)에 모든 힘이 집결되었다면 고려는 지방으로

확산된 것으로 중앙과 지방을 비교하니 촌티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전체적 문화역량은 오히려 커졌다 하는 견해도 있다.

 

 

사진 : 탑신의 문(門) 모양 조각

탑이건 부도건 무덤에서 출발하였고 또 형태는 목조가옥을 흉내 낸 것이라

지붕 돌은 기와 추녀를 닮아 있고 몸돌에는 문이 새겨져 있다.

 

금당(金堂) 터

 

 

흥법사지 뒤에 폐가(廢家)가 한 채 있고 그 뒤 밭 주인의 집이 있다.

폐가(廢家)가 바로 철불(鐵佛)을 모셨던 옛 금당(金堂) 터라고 한다.

 

 

 

사진: 흥법사지 밭주인 집

평범한 시골 농가 치고는 대문 앞 석축이 예사롭지 않으니

아마도 옛 흥법사 석물을 가져다 쌓았으리라.

 

흥법사와 진공대사탑비(眞空大師塔碑)

 

흥법사가 언제 창건되고 없어졌는가는 알 수 없다. 다만 기록으로 미루어

신라 말에 세워져 조선 초까지 있다가 임진왜란 때 없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절터 서북쪽 모퉁이에 진공대사탑비(眞空大師塔碑)가 남아 있다.

 

 

 

보물 제463호,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보통 비(碑)는 받침돌인 귀부(龜趺), 글씨가 새겨 진 몸돌-비신(碑身),

지붕돌 또는 머리돌-이수(이首) 이렇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이 비는 가운데 몸돌이 없이 위, 아래-귀부와 이수로만 되어 있는데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탑비의 주인공인 진공대사는 신라말 고려초 사이 고승으로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 와 고려 태조의 왕사가 되었다. 태조 23년(940) 대사가

입적(入寂)하자 태조는 직접 비문을 짓고 당 태종 글씨를 모아 새겼다.

당 태종 글씨 집자(集字)로 이름나 일찍부터 선비들이 즐겨 탁본(拓本)한

모양이다. 조선 초기 서거정(徐巨正) 시에 “법천사의 뜰에서 탑을 시로 읊고,

흥법사의 대 앞에서 비석을 탁본하네 (法泉庭下詩題塔 興法臺前墨打碑)”

라는 구절이 있으니 그때 까지도 탁본 한 듯 하다.

 

그렇게 탁본하다가 (실재는 모른다. 다만 전해오는 이야기다) 비를 그만 깨뜨린다.

네 조각이 난 (탁본하다가 깨지는 데 왜 네 조각 씩이나 나는지 의심스럽다)

비신(碑身)은 한 동안 경복궁 회랑에 있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진 : 진공대사비 비신. 당 태종의 글씨 집자로 왕희지(王羲之) 체다.

 

 

 

사진 : 진공대사비 머리돌

구름문양 사이로 새겨진 아홉 마리 용이 금시라도 움직일 듯 하다.

 

 

진공대사탑(眞空大師塔)

 

탑비(塔碑)가 있으니 당연히 탑이 있어야 한다.

탑은 탑비 없이도 있을 수 있지만 탑비야 탑에 딸린 것 아닌가?

 

그러나 진공대사탑은 흥법사 옛터에 없고 국립 중앙박물관에 있다.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이 경복궁에 있고, 거돈사 원공국사 승묘탑이

중앙박물관 앞에 있게 된  사정과 비슷하다.

 

일제 강점기 초- 1910년 대 어떤 사정인지 (밝혀지진 않았지만 짐작은

할 수 있는 일로…. 나라가 송두리째 넘어가는 데 탑이 대수인가?)

일본인 ‘곤도’의 서울 집 정원에 있다가 그 뒤 소유권이 또 넘어 간다.

1934년 경부터 총독부박물관의 뒤뜰-지금 경복궁 구내에 두다가

용산으로 옮긴 중앙박물관을 따라와 그 바깥 회랑에 야외전시하게 되었다.

 

 

 

사진: 중앙박물관 바깥 회랑의 진공대사탑(眞空大師塔), 보물 365호

(집 마당에 이런 탑 두면 멋은 있겠다)

 

이 승탑(僧塔)은 신라 신덕왕(神德王)과 고려 태조의 왕사(王師)를

지낸 진공대사(眞空大師) 충담(忠湛 869-940)의 묘탑이다.

…………….

이 탑과 함께 발견된 석관을 통해 고승의 시신을 화장 뿐 아니라

매장도 했음을 알 수 있다.- 안내판에서

 

위 안내판은 진공대사가 신라 신덕왕의 왕사도 지낸 것으로 쓰고 있지만,

다른 기록에는 당나라에 유학하고 918년에 돌아 왔다고 하니 917년에 죽은

신덕왕의 왕사가 될 새가 없다. 고려태조의 왕사만 지냈을 것이다.

 

용어가 탑, 승탑, 묘탑, 부도등 여러 가지로 나오고 모두 어원은 쓰투파-STUPA 이나

현재 한국 불교에서 관례적으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면 탑(塔),

스님의 사리를 모시면 부도(浮屠)라고 하니 부도로 통일함이 어떨지?

 

특이한 것은 앞에 위 진공대사탑 또는 부도 옆에 있는 석관(石棺)이다.

부도 또는 탑 자체가 무덤으로 보통 화장하고 난 사리를 모시는데

위 안내판 설명대로 매장도 한 모양이다.

 

 

사진 : 진공대사 석관

인터넷을 뒤져보면 유물함으로 설명하는 글들이 많다.

 

이 탑(塔) 옆에 놓인 석관(石棺)은 경문(經文)등 그와 관련된 유물을 담았던 석함(石函)이다….

 

필자는 전문가가 아니라 끼어 들 수 없지만 저렇게 (사진같이) 생겼으면 (棺)이 맞는 것 아닌지?

 

부도 (또는 승탑)은 전형적 8각 원당(圓堂)형이다.

 

 

 

사진: 진공대사탑

 

하대(下臺)에는 두겹으로 된 연꽃, 북 모양 중대석(中臺石)에는

용이 구름 속에 노닐고, 상대(上臺)에 다시 두겹 연꽃이 새겨져 있다.

탑신은 목조 건물을 그대로 모방하여 문을 새기고 팔각 모퉁이 마다

기둥이 있다. 귀가 들린 기와 지붕 모습 옥개석에는 서까래와 기와와

심지어 와당(瓦當-막새)까지 나타나 있다.

꼭대기는 8각형 보개(寶蓋)까지 남아 있을 뿐 그 위는 없어졌다.

 

 

전 흥법사 염거화상탑 (傳興法寺廉居和尙塔)

 

중앙박물관 바깥 회랑에 진공대사탑과 나란히 전흥법사염거화상탑이 있다. 

전(傳)이 붙은 것은 흥법사에 있었다고 전(傳)해지나 미덥지 않다는 뜻이다.

1914년 경에 파고다공원으로 옮겨졌다가 현 위치로 온 것은 확실하나

그 전에 어디 있었는지는 모른다. 일본인들이 파고다 공원으로 옮길 때

원래 있던 위치를 흥법사지로 적었으나 아무래도 아닐 것 같다는 이야기다.

 

 

 

사진 : 염거화상탑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 신라부도(新羅浮屠)다.

속에서 금동탑지(金銅塔誌)가 나와 세운 연대가 확실하니 신라 문성왕 (文聖王)  6년(844)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석조 부도 중 가장 오래 되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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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9.15 11:40

    첫댓글 금방이라도 승천할것같은 조각 옛 자취 보면 볼수록 정이가는 진정한멋은 바로 이런데서..제자리를 찾아 보존되어야 하는데 우리의 문화가 이렇게 왜곡되어 버리는 이유는 안타깝기만 합니다 진정한 행복을 느끼시며 그 안에서 쉼취 되는 마음을 또한 아무나 할수 없는일이기도 하구요 덕분에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스크랩 해갑니다,

  • 07.09.15 21:14

    좋은글 자로 고맙습니다 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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