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 때문에 고단하고 힘들었지만 내게 빅 이벤트가 있었다.
<주역을> 읽은 것이다. 스스로 자랑스럽다.
책을 읽는 것은 즐겁다. 가장 적은 수고와 비용으로 멋진 여행을 하니까. 여행을 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돌아와도 된다. 덤으로 오만과 편견과 무지의 두꺼운 얼음을 깨는 도끼가 되기도 한다. 나의 책읽기는 깊은 해석을 구해서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포로롱 나비처럼 가볍게 날면서 글을 핥는다.
유학의 마지막 공부가 주역이라 한다. 주역 강의를 들으려면 열 번은 예습해야 한대서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지인이 <대산 주역강의>를 선물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겨보았다. 처음에 주역 입문이 나온다. 주역의 역사와 유래, 태극, 양의, 삼재, 오행, 사상, 하도와 낙서 이야기가 나온다. 어라~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다.
주역은 오천 년 전에 중국 땅의 복희씨가 64개의 괘를 만들었고, 이어서 문왕과 주공과 공자가 각각 괘사와 효사와 십익전을 지어서 완성한 유학 최고의 경전이자 철학서이고 수양서이다. 괘사를 지은 사람은 주나라 문왕이다. 문왕이 은나라 서쪽에서 어진 덕을 베풀어 천하의 민심이 문왕에게 쏠리자, 은나라 폭군인 주왕이 문왕을 유리옥에 가두었다. 문왕은 7년간 유리옥에서 고통을 감내하면서 64개의 괘사를 지어 세상을 아름답게 문식했다. 나는 코로나 시기에 금족하면서 주역을 매일 한 시간씩 읽었다. 문왕의 노고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내게는 감동적인 사건이다. 이해 가지 않는 부분은 강중강중 뛰어넘었다. 이솝 우화에서 여우가 나무 높이 달린 포도가 손에 닿지 않자 신포도라고 중얼거리며 지나가듯.
요즘은 코로나가 창궐하는 위험한 시대이다. 주역에서 위험한 시대에는 밖으로 나가지 말고 문을 닫고 겨울잠 자듯 칩거하면서 바름을 굳게 지키라고 한다. 주역에서는 이것을 '嘉遯(아름다운 은둔), 혹은 甘節(달콤한 절제함)'이라고 한다. 겨울이 오면 봄이 돌아오고,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밝아오는 이치에서 코로나도 머잖아 사라질 것이므로.
주역에 中正, 元, 正 吉 信, 巽, 順, 孚라는 유학적 가치가 계속 나온다. 이것은 새옹지마, 음지변양지변하는 세상살이에 피흉취길하는 방법이다. 주역의 도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隨時變易以從道 때에 따라 변역하되 도를 따르라’가 되지 싶다. 이때 주역의 道는 中正이다.
주역 계사전에 내 마음에 쏙 드는 글이 있다. "樂天知命 安土敦仁 하늘을 즐거워하고 명을 알며, 거소에 편안히 해서 인을 돈독히 한다." 좋은 글은 바라만 보아도 좋은 향기를 풍긴다. 심산유곡의 지초처럼.
주역 첫 번째 괘는 중천건괘이다. 중천건괘사는 “乾 元亨利貞 건은 원형이정이다”
원형이정은 하늘의 네 가지 덕이다. 내게 원형이정은 하늘이 베푸는 공평무사한 덕으로 봄여름가을겨울, 생로병사의 무한 순환으로 읽혔다. 그것은 바로 낳고 낳는 천지자연의 이치를 단도직입적으로 간명하게 나타낸 명문이다. 이 괘사를 보고 무릎을 쳤다. 태산같이 무겁게 느껴졌던 주역의 무게가 스르륵 가벼워졌으니까. 주역이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주 대자연의 진리를 글로써 엮은 것이구나. 공자님도 ‘乾 元亨利貞’이란 글을 보고 탄복하여 주역을 더 이상 손대지 않고 부연설명으로 십익을 지었다고 했다. 나와 공자님이 수천 년의 사이를 두고 이렇게 통한다는 것이 짜릿하다.
경복궁에 교태전이 있다. 왕비의 침전이다. 후궁의 침전도 아니고 왕비의 침전에 어울리지 않게 왠 嬌態교태? 라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交泰이다. 주역 11번째 地天泰卦에서 나왔다. 지천태괘는 상괘가 땅이고 하괘가 하늘이다. 원래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지만 그렇게 있으면 천지가 사귀지 못한다. 하늘 기운이 아래로 내려오고, 땅기운이 위로 올라가야 천지가 서로 사귀어 통하게 되어 태평한 세상이 된다. 즉 지도자의 겸손과 헌신으로 민중을 하늘처럼 떠받들면서 섬길 때 태평성대가 온다. 지천태괘사에 “天地交泰 后以 裁成天地之道 하늘과 땅의 사귐이 태이니, 임금이 이로써 천지의 도를 재단하여 이룬다.”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인가.
나의 호는 靜心이다. 정심이란 호는 직지사불전한문승가대학원에서 강의하신 이광호 교수님이 지어주신 것이다. 그분은 전 연세대 철학과 교수님으로 퇴계학의 일인자이시다. 교수님은 주역으로 靜心을 설명하셨다.
“팔괘는 차례로 乾,兌,離,震,巽,坎,艮,坤으로 하늘, 못, 불, 우뢰, 바람, 물, 산, 땅을 상징합니다. 8괘를 상하로 중복하면 64괘가 되고 이것이 바로 주역입니다. 이름과 호를 지을 때 첫 글자를 상괘, 다음 글자를 하괘로 삼아 해석합니다. 획수로 괘를 정하지요. 1획은 乾, 2획은 兌,.. 8획은 坤 등이지요. 靜心의 靜은 16획으로 8의 배수이니 坤, 心은 4획으로 震괘이며, 상괘가 坤이고, 하괘가 震인 괘가 24번째 地雷復괘가 됩니다. 복괘는 되돌아옴을 의미합니다. 봄이 오면 다시 꽃이 피듯이 회복과 재생을 상징합니다.”
고요한 마음. 우찌하면 처음의 그 고요한 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인적 없는 이른 아침 물안개 곱게 피어오르는 호수, 소슬한 가을바람에 만월의 빛이 내리는 도량을 생각해본다.
동짓달은 復달이다. 음으로 가득한 달에서 처음으로 하나의 양이 땅속에 생겨서 우레가 울리듯 양이 점차 커지게 된다. 추위의 한가운데 있지만, 땅속에서는 이미 양의 기운이 차오르는 달이 동짓달이다.
새해에는 코로나가 물러가고,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그때 무엇을 할까?
무엇보다 요양원에 계시는 엄마를 만나서 태산 같은 은덕을 맘껏 보답하고 싶다.
그리고 그리운 사람을 맘껏 만나서 부둥켜안고 함박웃음을 활짝 터뜨리고 싶다.
첫댓글 -()-
고맙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 보내세요!
_((()))_
고맙습니다.
일일신 우일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동지가 지나면서 새로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네요.
정말 빅이벤트네요.
이리저리 휩쓸리며 주역 강의를 웬만큼 들었는데 지금은 완전 꽝입니다.
사교활동으로 끝나버렸어요.ㅎ ㅎ
주역 강의를 들으셨군요.
부럽습니다.
저도 한 때 들으려 가려고 했었는데
인연이 닿지 않았어요. 좋은 스승과 도반을 만나면 그 또한 지복입니다.
_()()()_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소중한 인연을 잊지 않겠습니다.
_()()()_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봄날이 멀지 않았지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네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늘 청안하시기를 빕니다.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책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시는 능력이 감탄스럽습니다
언제나 과찬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사진 올린 대산주역강의란 책이 절판되어서 2권부터는 개정판을 샀는데요,
처음 책과 같지 않아서 아주 섭섭했어요.
@정행심 늘 개정판은 좋다고 만들어도 성에 차지 않지요
저 역시 개정판은 늘 그랬어요
암튼 수행과 공부를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으십니다
@연꽃 향기 바람되어 수행과 공부와 선행을 두루 행하시는 보살님,
덕분에 반야암오솔길이 반짝반짝합니다.
고맙습니다 ()
고맙습니다.
늘 여여하시고 늘봄같으시기를요~
_()()()_
감사합니다.
맑고 고운 천상의 향기가 퐁퐁 납니다.
_()()()_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봄비같은 포근한 마음으로~
와 대단하십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