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에 있는 조선전기 학자 요수 신권(樂水 愼權, 1501~1573)이 건립하여 풍류를 즐기며 제자를 가르치던 누정으로 위천 물가의 수승대 건너편 솔숲에 부속건물 없이 홀로 세워진 1동의 중층 정자이다. 2005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거창신씨 요수종중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1542년 구연재와 남쪽 척수대 사이에 처음 건립하였고, 신권은 이곳에 은거하여 조숙(曺淑, 1504~1583), 이정(李桢, 1512~1571), 성팽년(成彭年, 1540~1594)과 강학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그 뒤 재건되었으나 수재로 무너지자 이를 피하기 위해 1805년 후손들이 구연 서원 건너편 자연 암반 위에 이건하였다. 상량문에는 1800년대 후반에 수리한 기록이 있으며, 최근 2009년 단청보수가 실시된 바 있다. 후손 신복명의 「요수정기」를 위시하여 기문 3편, 신권의 「원운」 2편, 「퇴계 선생 수승대 화답시」 등 모두 32편의 시가 중방에 걸려 있다.
부속건물 없이 집터만큼 넓은 너럭바위를 주춧돌로 삼아 12개의 기둥을 세워 지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의 겹처마로 된 팔작지붕의 누정으로, 하부 기둥은 둥근 원목을 자연 형태 그대로 사용하여 건축미를 극대화하였고, 기둥 밖의 네 모퉁이에 활주를 세워 하중을 분산시켰다. 배면에 1칸의 방을 들인 것이 특징이며, 마루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고, 마루 끝에는 계자난간을 둘러 걸터앉게 하였고, 마루 가운데에 판자로 한 칸의 온돌방을 만들어 놓고 배면을 제외한 3면에 문을 냈다. 또한 굴뚝을 뒤축 축대로 냄으로써 그 묘미를 더하였고, 지붕 용마루 밑에 암키와와 수키와 한 벌로 덧댄 눈썹이 특징을 이루고 있다. 이는 용마루 아래 물이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인데, 함양과 거창 지역의 누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건축양식이다. 종보가 있는 5량 가구로 기구의 짜임이 견실하고, 네 곳의 추녀에는 정연한 부채살 형태의 서까래를 배치하여 세부장식에서 격조 높은 정자 건물의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요수정'이란 이름은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에서,
智者藥水仁者藥山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에서 가져왔다.
정자의 주인 신권(愼權)은 그 이유를 시로 적어 현판으로 남겼다. 요수 신권(1501~1573)은 선교랑(宣敎郞) 훈도(訓導)를 지냈으며,구암 이정, 갈천 임훈과 여러 날에 걸쳐 학문, 시문을 주고 받았다. 인조 연간에 후손 신경직이 성팽년의 후손 성경창 등과 함께, 신권이 1540년에 세워 제자들을 가르쳤던 향교 근처에 사우를 건립하여 신권‧성팽년을 향사하였는데, 1694년에 구연서원(龜淵書院)으로 명명되었다. 그 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에 훼철되어 아직 복원되지 않고 있으며, 서원 터에 사적비와 신권을 위한 산고수장비(山高水長碑)만 남아 있다. 구연서원 관수루(龜淵書院 觀水樓)는 현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2호로 지정되어 있다.
요수정의 앞에는 그 생김새가 마치 거북과 같아 구연대 또는 암구내라 불리는 커다란 바위 수승대가 자리하고 있는데, 수많은 현인들과 은사들이 찾았다 하여 모현대라 부르기도 했다. 옛날 삼국시대 백제에 속해 있을 때 사신들을 전별하던 곳으로 처음에는 근심 수, 보낼 송자를 써서 수송대(愁送臺)라 했는데, 이 지역이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대라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할까 근심하며 전송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1543년 퇴계 이황은 수승대에서 15리 정도 떨어진 영승마을에 살던 장인 권질의 회갑연에 참석차 근처에 왔다가 동갑내기인 신권의 수승대가 있는 요수정에 들르고자 했다가 갑작스러운 사정이 생겨 방문하지 못했는데, 수승대의 내력을 듣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수승대(搜勝臺)라는 새 이름을 지어 보냈고, 이에 신권은 화답시를 짓고 바위에 수승대(搜勝臺)라는 각자를 새겼다. 여기서, 퇴계 이황은 '寄題搜勝臺'에서 수승대와 요수정의 경치를 다음과 같이 읇었다.
搜勝名新換。逢春景益佳。
'수승(搜勝)'이라 새 이름이 되어, 봄맞이 경치 더욱 더 아름답네.
遠林花欲動。陰壑雪猶埋。
저만치 숲 속엔 꽃망울 터지려는데, 그늘진 이 골짜기 눈에 뎦혔네.
未寓搜尋眼。唯增想像懷。
여기 같이 할 안목 여적 못 찾으니, 떠오를수록 회한만 더 더해지네.
他年一尊酒。巨筆寫雲崖。
언제 술 한 동이 두고 큰 붓 들고 구름 속 절벽 그려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