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은 김부인 뒤를 따라
으리으리한 솟을 대문을 들어선다
키 만큼 높이 자란 해바라기들이
정열의 화신인 듯 대접사발 같은
송이 송이에 태양을 안고 서 있는
화원이 첫 눈에 들어 왔다"
김자옥의 낭랑한 음성이 MBC 방송
전파를 타고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흘러 나온다. 숨 죽이며 귀를 쫑긋
세우고 라디오 곁에 다가가 이야기
듣기에 정신 팔려 있다. 1975년
모깃불 뭉글 뭉글 오르던 여름 밤, 유년시절의 기억이다. 김자옥의
"사랑의 계절, 찔레꽃 김말봉"
노초 김말봉은 부산 중구 영주동서
태어나 동래여고 수료 3년후 서울
정신여학교에 편입해 졸업후 황해도
재령 명신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 서양 신문화를 공부하고자
일본 다카네 여숙에 입학 고등교과
과정을 재 수학한 후, 교토의 도시샤
대학 영문과를 졸업한다. 그녀는
성격도 호탕했지만 생김이 글래머
체구에 왜녀들과는 다른 지적 성숙이 매력으로 풍기는 조선의 몇 안 되는 신여성을 대표하는 여자였다.
일본 고위직의 자식인 도부카와
마사시란 자가 김말봉에게 흑심을
품고 식민 민족의 여자는 정신도
육체도 지배종인 일본인이 요구하면
다 응해야 한다며, 강제로 겁탈하려
하자, 김말봉은 저고리옷을 벗으며
"나는 조선의 황녀나 마찬가진데,
일본 천황 이토 유키오 딸, 황녀에게
똑같은 성적 노리개로 대할 수 있다면
나를 가져라" 하고 속옷마저 벗으니
마사시는 무릎을 꿇어 사죄하며
일본서 대학 마칠 때 까지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 강단있는 여기백이
있었다고 한다.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치고 나가 구름 속에 나부낀다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보더라"
"그네" 라는 시 한편을 들고 김말봉은
1946년 경남여고 교감으로 재직중인
사위 금수현의 사택을 찾아가 자기시에
음률을 넣어 노래를 만들어 보자,
제안한다. 사위 금수현은 15분만에
작곡을 해서 음악주보에 올리고
서울로 전파되니, "그네"가 국민 애창
가곡이 된다. 금수현은 동래여학교를
졸업, 피아노 전공이던 김말봉의 의붓 딸, 전혜금과 결혼해서 금난새를 낳고,
금난새는 서울예술고, 서울음대를 졸업
베를린 국립음대 한스 마틴 레벤스타인
교수의 제자로 1977년 졸업후,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쿨에서 4위로 입상, 정식
오케스트라 마스타가 되어 KBS 교향
12년을 지휘하고 수원시향서 복무,
클래식의 대중화에 노력하는 현대
음악사에 쥬피터같은 빛나는 별이다.
1932년 부산 중외일보 신춘문예에
보옥 필명으로 단편 "망명녀" 가 당선
본격, 작가 생활에 돌입하여 중외일보
기자생활도 했던 신문에 35년 "밀림"
연재 37년 찔레꽃 김말봉을 각인한다.
그녀의 작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애욕적 갈등을 흥미와 성적 호기심,
남녀 사랑의 애정이 편중된 연애소설
이였지만 순수문학을 비판, 삶의 고충,
애환적인 대중문학을 표방한다.
남성편력도 있었던 김말봉은
이석현과 4개월 동거하다, 돌연
중외일보 기자생활 하던 때, 전상범과
서울로 밀월 도피한다. 이석현과는
혼인신고도 안했다며 사랑을 찾는다
라며 세간 손가락질도 무시하며
후처로 전상범과 결혼하나, 사별후
또다시 셋째 남편, 갑부이며 중외일보
사주였던 이종하의 세번째 부인으로
들어 앉아 불온의 천재시인 이현우
의붓 어머니가 된다. 남녀 혼인 생활도
사랑만 가지고 유지 될 수 없다.
경제적인 안정, 또 속 궁합이 맞아야
성격차이라는 거짓의 변명을 밀추고
잠자리에서 사랑의 만족도를 그녀,
김말봉은 작품에서 말하듯 신여성이 아니면 언급 할 수 있는 그 당시, 여성
권익의 사회적 환경은 아니였기에
한국전쟁이 끝나고, "승무" 청록파
지훈 조동탁 추천에 의해 문단에 등단한 이현우는 "끊어진 한강교"
라는 전쟁후 세대의 우울과 실존적
의식부재를 술 이라는 어지러움으로 표현, 천재성의 시 문학을 보여준다.
시 문학의 3괴 김관식 천상병 이현우.
"기욤 아폴리네르"는 "미라보 다리"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른다 고 말하나,
"끊어진 한강교" 아래 나의 청춘의 고독을 싣고 강물은 흐른다던, 이현우!
극작가 신봉승은 절망의 강가에 선
에뜨랑제, 화가 하인두는 절망의 호곡,
허무의 가락! 이현우 시를 평한다.
김말봉의 의붓 아들은 경제적으로
불우하거나 피폐 없이 알콜중독으로
천재성은 불타고 가을과 사자, 흑묘 대화, 항구시초등 21편의 빛나는 서글을 남기고 80년 초에 흔적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의 지인들은
이현우가 술에 취해 노숙자 처럼
떠 도니 신군부의 의해 삼청교육 속에서 사망 했을 거라 추정한다.
54년 최초 여성 개신교 장로가 된
김말봉은 여권신장을 위해 사회활동
계몽운동에 매진 한다. 야당 최초
여성 당수인 박순천, 박시연 등과
함께 중구 묵정동, 용산 원효로
위치한 성매매 공창의 폐지운동에
적극 앞장서고 56년에 조선일보에
연재한 "생명" 이라는 소설을 끝으로
62년 2월 9일 폐암으로 파란의 청춘,
욕망의 사랑, 흰 눈 쌓여 빗질하는
싸리나무 같은 가정사와 불멸의 작품, 찔레꽃을 남기고 사망한다.
"한번 구르니 나무 끝에 아련하고
두 번을 거듭하니 사바가 발 아래라
마음에 일만 근심 바람이 싣어가네"
- 풍운유서(찔레꽃 김말봉)중 -
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