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章 黃昏의 鬼氣!
남궁청운이 말하는 증조할아버지라는 사람은 기실은 그의 친 증조할아버지가 아니라 가문의 증조할아버지뻘이, 되는 사람으로 바로 남궁세가의 최고원로(最高元老)라고 할 수가 있는 남궁귀농(南宮歸農)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바로 어제의 대회의(大會議)에서도 그 남궁귀농은 몸이 편치 않다고 하고서 참석하지 않았던 상태였다.
남궁귀농은 현재 나이가 구십 이세에 달하는 고령(高齡)으로서 아마도 몸이 마음과 같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었다.
남궁청우는 가볍게 웃으며 다시 물었다.
"아니 어째서 자장가를 불러드린다는 말이냐?"
남궁청운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야 증조할아버지께서는 항상 늙으면 그저 죽어야지, 하면서 주무시는 것만을 좋아하시니 저로서는 그저 자장가를 불러드릴 수밖에요. 증조할아버지께서는 일단 주무시게 되면 고통을 느끼시지 못하는 것 같거든요."
(......)
남궁청우는 문득 웃으며 이렇게 물었다.
"알고 보니 너는 혹시 나에게 그 분을 문병해 달라고 온 것이 아니냐?"
남궁청운은 가볍게 안색이 변하더니 다소 어색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 헤헤, 사실은 먼저 가주님께 문안인사를 올리고 나서 그 뒤에 그런 말씀을 드리려고 했었죠. 만일 가주님께서 너무 바쁘셔서 그럴 수가 없으시다면 저로서는 어쩔 수가 없어요."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는 마침 내가 약간 한가한 시간을 맞추어서 왔구나. 내가 일부러 바쁘다고 핑계를 댈 리가 있겠느냐?"
남궁청운은 즉시 몸을 일으키며 남궁청우를 향해 정중하게 포권하며 말했다.
"가주님께서 이렇게 신경을 써주시니 저로서는 그저 가주님의 후의(厚意)를 증조할아버지께 전해드리는 수밖에 없겠어요.“
* * *
남궁세가의 내당이 넓은 계곡의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라면 원로원은 그 계곡의 울타리를 돌아서 좌측으로 가다 보면 하나의 작은 계곡이 나타나는데, 바로 그 부근에 수십 채의 이어지는 건물들로 위치하고 있었다. 당금의 남궁세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원로라고 할 수가 있는 남궁귀농의 처소도 그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 남궁귀농은 약간 소탈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직계가족들과는 떨어져서 지내고 있는 상태였다.
남궁청우는 이내 남궁청운의 안내를 받으면서 그쪽으로 향했는데 마침 사대호위가 쉬러 돌아간 상태여서 그들 단 둘이었다.
남궁청우의 복장은 그다지 특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직도 세가 내에서 그의 얼굴을 완전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으므로 그들 두 사람이 건물들의 사이로 돌아가도 그저 본척만척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남궁청우는 그러한 것에 개의하지 않고 그저 남궁청운의 안내를 받으면서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는데, 느닷없이 하나의 건물이 모퉁이를 돌아서 나가니 일단의 사람들이 약간 험상궂은 표정들로 앞길을 막는 것이었다.
뜻밖에도 그들은 바로 남궁청서와 막비, 그리고 호일지였다.
막비는 아직도 손목이 잘려진 부위에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남궁청우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지 그를 바라보는 시선(視線)이 곱지 않았다.
"아니, 대체 가주께서는 어디로 가시는 것이오?"
남궁청서는 다소 의아하다는 듯이 부채를 부치면서 그렇게 질문했다. 남궁청우 대신에 남궁청운이 앞으로 나서서 자신의 형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가주께서는 지금 마침 혼자서 증조할아버지의 문병을 가시는 중이예요. 형님은 어서 길을 비켜주세요."
(......)
남궁청서는 남궁청우의 얼굴을 건너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께서 가신다면 내가 감히 앞길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그런데 가주께서 정말로 혼자서 가신다는 말이냐? 만일 누군가가 도중에서 좋지못한 심정으로 습격이라도 하게 되면 어쩌려고?"
남궁청운은 웃으며 짐짓 자신의 주먹을 쥐어보였다.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이래봬도 무공(武功)은 형편없어도 마음만은 충성심(忠誠心)이 가득하여 설사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가주님을 위해 분골쇄신(粉骨碎身)할 테니까요."
남궁청서는 약간 기이(奇異)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나도 안심을 할 수가 있겠구나."
남궁청우는 문득 그들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어 말했다.
"너희들은 지금도 나를 보고도 감히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냐?"
막비와 호일지는 이제까지 그저 냉랭한 시선을 하고서 남궁청우를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그와 같은 말을 듣고서 마지못한 듯이 입을 열어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가주? 그런데 혹시 가주께서 우리의 사형을 죽이신 것입니까?"
막비(莫洩의 사형이라면 바로 다름 아닌 왕정안(王精安)을 말하는 것이었다.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대꾸했다.
"그는 나중에 스스로 죽어갔다. 너는 그 일에 관하여 좀 더 알고 싶으냐?"
(......!)
막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가주께서는 만수무강(萬壽無疆)하시기 바라오."
남궁청우는 웃으며 대꾸했다.
"어쩐지 그러한 일삿말이 오히려 가시가 돋쳐있는 것 같구나?"
옆에 있던 호일지(胡逸之)가 즉시 웃으며 말했다.
"흐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로서는 가주께서 정말로 만수무강하시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럼 저희들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요."
......
막비와 호일지가 남궁청서와 함께 물러가자 남궁청운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서 남궁청우를 향해 입을 열어 물었다.
"참, 가주께서는 저희 형님을 매우 싫어하신다면서요?"
남궁청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되물었다.
"아니다. 누가 너에게 그런 말을 하더냐?"
남궁청운은 눈빛을 영활하게 굴리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 다른 사람들이 제게 그런 말을 해준 것이 아니라 사실은 조금 전에 제가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해본 것이죠. 말하자면 가주께서는 저희 형님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 것 같았어요."
(......)
남궁청우는 웃으며 말했다.
"그건 네가 잘못 본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겉으로 보기와는 다른 경우가 있는 법이다."
남궁청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말을 받았다.
"그런가요? 하지만 저희 형님은 겉보기에도 그렇지 않았어요. 실로 조금 전에도 가주님의 안전을 생각해 주지 않았나요?"
남궁청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지."
(......)
남궁청우는 다시 물었다.
"하지만 가주님께서는 우리 형님을 좋아하신다니, 앞으로 우리 형님을 위해서 어떻게 해주실 거죠? 혹시 본가의 당주(堂主) 한 자리라도 주실 생각이신가요?"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대꾸했다.
"내가 그를 생각해 주겠다는 것은 그런 의미(意覆는 아니다. 반드시 본가(本 의 당주가 되어야만이 행복해지게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너는 그 말뜻을 이해하겠느냐?"
남궁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물론 이해할 수가 있어요. 가주님께서는 이미 그 사대호위에게 당주의 직위(職位)를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었기 때문에, 따라서 다시 우리 형님께 그와 같은 약속을 하실 수가 없다는 것이죠?"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대꾸했다.
"반드시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남궁청운은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럼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이죠?"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대답했다.
"사람에게는 적성이라는 것이 있다. 너의 형은 적성이 맞지 않기 때문에 보다 적성에 맞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
남궁청운은 문득 웃으며 말했다.
"저에게 한 가지의 좋은 생각이 있어요."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물었다.
"무슨 생각이냐?"
남궁청운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대답했다.
"그러니까...... 본가에 하나의 당(堂)을 더 만드는 거예요. 말하자면,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가 있는데 거기에 등사(騰蛇)가 없으리라는 경우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본가에 등사당(騰蛇堂)을 하나 만들어서 그 당주의 자리에 능력이 있고 통솔력이 강한 우리 형님을 시키는 거예요. 저는 뭐...... 그저 부당주의 직위라면 만족을 하겠어요. 그리하여 중앙의 등사당은 나머지 네 개의 당을 통솔하고 그리하여 나중에는 가주님께 보고를 드리는 것이죠. 즉, 우리 형님이 사당과 가주님의 사이에 서서 두 쪽을 다 편하게 해드리는 것인데, 그러한 제안이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
남궁청우는 잠자코 듣고 있다가 문득 미소하며 이렇게 되물었다.
"너는 언제쯤 나를 너의 증조할아버지께 안내할 생각이냐? 나는 비록 약간
한가한 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 무한정 남아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남궁청운은 그러한 남궁청우의 미소를 보자 왠지 안색이 가볍게 변해서 웃으며 대꾸했다.
"아차, 내가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실수를 했군요. 가주님 용서해 주
세요!"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대꾸했다.
"용서하고 말고가 없다. 나는 다만 네가 나의 이 말이 끝나는 순간까지 걸음을 옮기지 않고 수다를 떤다면 다시 나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구나."
남궁청운은 그 말에 약간 당황해져서 안색을 붉히면서 빠르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걸음을 옮기면서 말을 계속했다.
"가주님, 저는 수다쟁이가 아니에요. 가주님께서는 혹시 저를 정말로 수다
장이로 생각하고 계신 것은 아니겠죠?"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그를 따라가며 대꾸했다.
"너는 물론 계집아이가 아닌 사내아이이기 때문에 수다쟁이는 아닐 것이다."
(......)
남궁청운은 다시 물었다.
"하지만 계집아이라고 해서 다 수다쟁이는 아니잖아요? 말하자면, 가주님의 부인이신 그 가소저께서는 설마하니 수다쟁이는 아니시겠죠?"
(......)
남궁청우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서 남궁청운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보다도, 너는 지금 정말로 나를 너의 증조할아버지께 안내할 생각이냐, 아니면 그저 나를 데려와서 장난을 하려는 것이냐?"
(......!)
남궁청운은 일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꾸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죠? 물론 저는 가주님을 저의 할아버지께 안내를 하려는 것이예요. 제가 무슨 다른 잘못이라도 했나요?"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다시 말했다.
"네가 만약 나를 정말로 너의 증조할아버지께 안내를 하려는 것이라면 그쪽으 데려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아니냐? 너는 설마하니 벌써 가는 길을 잊어버렸다는 말이냐?"
남궁청운은 일순 크게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쿠! 이거 그만 제가 너무 말이 많다보니 그만 길을 헷갈리게 되었군요. 헤헤, 설마하니 가주님께서는 이러한 일로 저를 나무래지는 않을 것이죠?"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대꾸했다.
"내가 너에게 화를 낼 일이야 없겠지만, 만약 네가 다시 한번 그와 같은 엉뚱한 수작을 부린다면 나는 즉시 돌아가 버릴 것이다."
(......)
남궁청운은 이에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즉시 길을 바로 잡아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이윽고 다시 잠시의 시간이 흐르자 남궁청운은 문득 고개를 돌리면서 재차 입을 열어 물었다.
"설마하니 가주님께서는 제가 정말로 일부러 가주님께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으시겠죠?"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대꾸했다.
"그렇지는 않다. 너는 조금 전에 너희 그 형에게 전음입밀(傳音入密)로 네가 여기에서 조금 시간을 끌 테니까 그더러 빨리 가서 할아버지께 알리라고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어찌 네가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
(......!)
남궁청운은 그 얘기를 듣자 일순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깜짝 놀라서 안색이 변하면서 이렇게 되물었다.
"그, 그것은...... 설마하니, 가주님께서는 남의 전음(傳音)소리도 들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요?"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대꾸했다.
"무학이 깊은 경지에 들어서 있는 사람은 물론 남의 전음소리도 들을 수가 있다. 너는 나의 그러한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냐?"
남궁청운은 이미 안색이 완전히 새빨갛게 변하여 어쩔 줄을 몰라했다.
"저는...... 저는, 하지만...... 하지만 가주님을 해치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었어요."
(......)
남궁청우는 그를 돌아보았다.
"뭐라구?"
남궁청운은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대꾸했다.
"저는 오로지 가주님을 위해서...... 그러니까, 맞아요! 가주님께서 기왕에 그곳으로 가시니까 그곳의 사람들에게 증조할아버지께 알려서 미리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한 거죠. 그래서 나의 형은 전음으로 알았어, 네 능력(能力)껏 해봐, 하고 말했던 것이예요."
남궁청우는 남궁청운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헌데 너는 어째서 일부러 전음입밀의 수법을 썼다는 말이냐?"
남궁청운은 즉시 눈빛을 굴리면서 대꾸했다.
"그...... 그것은 바로 저의 습관이예요. 하, 항상 나중의 말은 한두 번쯤 전음으로 하는 습관이 있죠."
남궁청우는 그의 말을 자르면서 다시 물었다.
"그것은 너의 무공증진을 위해서냐?"
남궁청운은 눈빛을 굴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제가 그렇게 하면서 은근히 무공이 증진된 것 같았거든요. 가주님께서는 정말로 저의 이 말을 믿지 않으시는가요?"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대꾸했다.
"하지만 네가 말한, 나를 위해서 그랬다는 말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그들에게 내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어째서 나를 위한 것이라는 말이냐?"
남궁청운은 급급히 눈빛을 굴리면서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바로 가주님께서 나타나시면 그들이 놀라게 되니까, 그러니까 자칫하면 혹시 실수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요? 만일 그래서 어떤 불상사가 일어나게 되면 큰일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러한 것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했던 거죠."
(......)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말했다.
"알고 보니 실로 그와 같은 이유 때문에 갑자기 그와 같은 전음의 수법(手法)을 사용했던 것이었군. 하지만 너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내가 설령 갑자기 나타난다고 해도 그들은 그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설령 실수를 하게 된다고 해도 나에게는 피해가 없게 될 테니까. 따라서 너는 앞으로 다시는 그와 같은 짓을 하지 말아라, 알겠느냐?"
(......!)
남궁청운은 일순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 역시 제가 잘못 판단했던 것이로군요? 좋아요,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을게요."
순간 남궁청우는 문득 다소 딱딱한 표정을 하고서 다시 말했다.
"그러나 내가 지금 너를 한번 용서하는 것이지만 네가 아직도 나를 빨리 안내하지 않고 시간을 늦추고 있는 것이라면 정말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알겠느냐?"
(......!)
남궁청운은 그 말에 일순 안색이 가볍게 변하더니 즉시 두말하지 못하고 빠르게 남궁청우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황혼(黃昏) 무렵이어서 그런지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남궁청운의 연남빛 장삼에는 어딘가 귀기(鬼氣)가 어리고 있는 것 같았다.
* * *
남궁청우가 남궁청운의 안내를 받아서 남궁귀농(南宮歸農)의 처소로 들어섰을 때에는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는 무렵이었다.
전각(殿閣)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거실의 내부에는 굵은 황촛불이 밝혀져 있었고 또한 안쪽의 방에도 촛불이 밝혀져 있는 듯이 훤하게 보였다.
"아니, 모두들 어디에 갔을까?"
남궁청운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을 보고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물었다.
"정말로 그들이 이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었느냐?"
남궁청운은 눈빛을 영활하게 굴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예요. 제가 무엇 때문에 가주님을 속이겠어요? 만일 가주님께서 저의 속마음까지 안다면...... 그때는 아주 감탄하실 거예요."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다시 물었다.
"너의 어린 마음에 충성심(忠誠心)이 가득차 있으니 감탄할 것이라는 말이냐?"
남궁청운은 고개를 들고 바라보면서 웃었다.
"맞아요! 헌데 대체 그것을 어떻게 알았죠? 가주님께서는 혹시 저의 속마음까지 알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요?"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대꾸했다.
"물론이다. 나는 사실 너의 마음속을 잘 알고 있지. 너는 아직 그것을 몰랐었다는 말이냐?"
(......?)
남궁청운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일순 앙천대소(仰天大笑)를 터뜨렸다.
"하하하, 가주님께서는 저에게 농담을 다 하시는군요!"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다시 말했다.
"그건 그렇고, 나를 어서 너의 증조할아버지께 안내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남궁청운은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다른 사람들은 아마도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서 다른 곳으로 가버린 모양이니, 우리는 먼저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 좋겠군요...... 자, 어서 저를 따라오세요."
(......)
남궁청우는 남궁청운의 안내를 받으며 즉시 안쪽에 있는 하나의 방안으로 문을 열고 걸어 들어갔다.
과연 그 방안에는 지금 역시 굵은 황촛불이 밝혀져서 환하게 타오르고 있었고, 그 아래에 있는 침상위에는 한명의 백발의 노옹(老翁)이 누워서 잠을 자는 것 같았다.
역시 그 백발의 노옹은 바로 남궁귀농(南宮歸農)이었다.
남궁청운은 그것을 보자 밝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 증조할아버지께서는 지금 주무시고 계시는 군요!"
남궁청우는 그 말에 미소하며 천천히 그 침상의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그럼 우선 한번 진맥(診脈)이나 해볼까?"
(......!)
헌데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갑자기 천정에서 뭔가 바스락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침상위로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훌쩍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악!"
남궁청운은 그것을 보자 일순 깜짝 놀란 듯이 비명소리를 지르면서 황급히 남궁청우의 소매를 잡고서 뒤로 물러섰다.
그 느닷없이 천정에서 나타난 그림자는 알고 보니 온통 전신(全身)을 흑의(黑衣)로 감싼사람이었는데 손에는 한 자루의 단검(短劍)을 들고 곧장 침상 뒤에 내려섰던 것이었다.
그 흑의복면인(黑衣覆面人)의 두 눈에서는 그야말로 순간적인 살광(殺光)이 폭출하고 있었다.
남궁청운이 그것을 보고 놀라서 소리쳤다.
"앗! 저자가 증조할아버지의 목숨을 취하려고 해요!"
(......)
흑의복면인은 남궁청운의 말대로 즉시 단검을 휘둘러서 잠을 자고 있는 남궁귀농의 목을 베어갔는데 그때 느닷없이 괴이(怪異)한 일이 다시 벌어졌다.
"멈춰라!"
한줄기의 호통소리와 함께 다른 쪽의 천정에서 다른 한명의 백의인영(白衣人影)이 나타나더니 즉시 침상쪽으로 몸을 날리면서 그 흑의복면인을 공격해 가는 것이 아닌가?
남궁청운은 그것을 보자 순간적으로 안색이 변하면서 괴이쩍은 표정을 했다.
"아! 알고 보니 백호당주님께서 이미 우리들을 따라왔던 것이었군요?"
그렇다.
기실 나중에 다시 나타난 그 백의인영은 다름 아닌 백호당주인 가백령(賈百齡)이었으며 사대호위가 이미 쉬고 있는 것을 알고는 스스로 남궁청우의 주변에 숨어서 그를 호위(護衛)하다가 드디어 여기까지 따라오게 되었던 것이었다.
가백령은 본래는 가만히 숨어서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었으나 남궁귀농이 위험한 것을 보고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나타나서 흑의복면인을 공격해 갔던 것이었다.
(......)
그 흑의복면인은 가백령이 나타나서 갑자기 자신을 공격하자 문득 남궁귀농을 베어가던 단검을 회수하더니 즉시 신형(身形)을 날려서 반쯤 열려져 있는 창문을 통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가백령은 잠시 머뭇거렸으나 역시 그 흑의복면인을 놓칠 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즉시 뒤따라 밖으로 신형을 날리기 시작했다.
......!
남궁청운은 그것을 보자 즉시 남궁청우의 소매에서 손을 떼면서 말했다.
"안되겠어요! 제가 얼른 가서 사람들을 불러오도록 하겠어요!"
그런데 마악 남궁청운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어느새 남궁청우가 그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그만둬라. 지금 네가 밖으로 나가게 되면 혹시 위험해지게 될지도 모른다."
(......!)
남궁청운은 이에 안색이 창백해져서 놀라 소리쳤다.
"아니예요, 나는 사실은...... 사실은...... 빨리 이 손을 놓아줘요!"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그를 향해 물었다.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느냐? 갑자기 뒤라도 급하게 마려운 것이냐?"
남궁청운은 눈빛을 재빨리 굴리면서 다시 소리쳤다.
"그래요, 그래요! 나는 지금 마악 바지에다 쌀 것 같아요! 그러니 어서 이손을 놓아줘요. 아무리 무섭다고 해도 바지에다 쌀 수는 없잖아요!"
(......)
남궁청우는 그의 얼굴을 돌아보더니 미소하며 다시 말했다.
"여기에 오자마자 그렇게 갑자기 뒤가 마렵다니 이상한 일이로구나. 하지만 정말로 네 말처럼 다큰 녀석이 바지에다 실례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니, 어서 갔다 오너라!"
남궁청운은 남궁청우가 그와 같이 말하고 나서 손을 놓아주자 이내 두말 하지 않고 빠르게 거실로 나가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그 방안에는 남궁청우 한 사람과 침상위에 누워있는 남궁귀농만이 남
게 되었다.
그런데 남궁청운이 사라진지 불과 촌각도 지나지 않아서 창문사이로 가백령이 급히 다시 신형을 날려서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
가볍게 방안에 내려선 가백령의 안색은 이 순간 왠지 상당히 심각하게 굳어있는 것 같았다.
"가주님, 이 부근이 갑자기 이상합니다."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그에게 물었다.
"아니 뭐가 그리 이상하다는 말이오?"
가백령은 황급히 방안을 다시 한번 살피면서 대답했다.
"살기(殺氣)가 있습니다. 제가 밖으로 그자를 뒤쫓아 나갔을 때에 갑자기 이상한 살기가 강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고 급히 그자를 놔두고 되돌아 온 것입니다."
첫댓글 항상 고맙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