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삶의 궤적에서 인식하는 시적 진실
--박종윤 시집 『발자국마다 고인 행복』
김 송 배
(시인.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1. 삶을 통해서 깊이 인식하는 생사(生死)
현대시의 창작이나 감상에서 근래(近來)의 경향을 살펴보면 삶과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하여 시인이 어떤 감응적인 메시지를 들려주는가에 청자(聽者)의 입장에서 귀를 기울이게 된다. 또한 한편으로는 시인이 착목(着目)한 모든 상황에서 시적으로 취택한 배경에 대한 그림이 어떤 형태로 발현되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현상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시법을 ‘들려주기(telling)’라 해서 화자가 상황 설정에서부터 결론에 이르러 주제에 상응하는 과정까지 어떤 어조로 작품을 적절하게 전개하는가라는 점에서 다양한 어휘와 화법(話法)으로 우리 독자들을 흡인시키려는 노력을 엿보게 한다.
또한 시인들은 작품의 전개에서 그 상황이 시대적, 혹은 환경적인 요소에서 어떻게 그림으로 색칠할 것인가를 ‘보여주기(showing)’로 이미지를 창출하게 된다. 이러한 몇 가지 관점으로 살펴본 박종윤의 시집 『발자국마다 고인 행복』에서는 그가 감응하면서 들려주는 화제나 보여주는 형상은 대체로 삶과 세월의 동행을 통해서 깊이 인식하는 인생의 제반 문제들이 망라하고 있음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일찍이 청록파 박두진 시인은 「시란 무엇인가에 대하여」란 글에서 시는 언제나 우리의 삶을 새로 출발하도록 고무하며 그 삶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게 할 것이라는 말로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새롭게 충전(充電)하도록 제언하는 '들려주기'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박종윤 시인도 이러한 삶에 대하여 작품 「인생 석양이 되어서야」에서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고/ 모여 가는 터전을/ 거울로 비춰보며/ 저녁노을이 되어서야 깨달았다”는 어조와 같이 그는 지나온 삶의 궤적(軌跡)을 통해서 삶의 질(qauality of lige)이나 인생을 각성(覺性)하게 되는 삶의 행로에 대한 회상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햇살 받으며 달그림자 밟으며
삶의 전사(戰士)들이 오간
빨강 보도블록
발자국 틈바구니에
놀라움이 살아가고 있다
블록사이
바람 길 틈바구니에
이름 모를
풀들이 고개 쳐들고
밟히며 고달픈 삶을
살고 있다
척박한
틈새 삶이지만
살아 가야기에
참고 견디며 고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너와 내가
하늘 아래
질긴 끈으로 이어진 삶이기에
거친 길을 함께
헤쳐 나가자꾸나.
--「무명초」 전문
박종윤 시인은 이 “무명초”를 통해서 “삶의 전사”로서 다채로운 풍상(風霜)을 “살아가고 있다”라고 들려준다. 그리고 그는 “고달픈 삶”과 “척박한 삶”을 견디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토로(吐露)하고 있어서 어쩌면 우리들의 보편적인 삶에서 감내해야 하는 현실 생활(real life)에 대한 고뇌의 일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결론적으로 “너와 내가/ 하늘 아래/ 질긴 끈으로 이어진 삶이기에/ 거친 길을 함께/ 헤쳐 나가자꾸나.”라는 어조로 우리들 모두에게 극복의 의지를 한 마디의 경종(警鐘)으로 울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소재에서 “무명초”라는 이름 없는 풀이 바로 자신을 비유하는 것으로써 보편적인 삶을 영위하는 민초(民草)들의 사유(思惟)가 진솔한 인생론으로 발전시키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난세엔 영웅이 칼을 높이 치켜들고
위기를 승리로
환호하는 군중 앞으로
늠름한 모습으로 다가선 용사
코로나19에 점령당한 지구
흰 가운 입은
주사기 치켜든 용사들이
전선으로 돌진했으나
밀리고 밀린 우울한 나날들
삶의 구석구석에서
애달픈 한숨 소리
안방에선
트롯트가 춤추고 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먹구름이 가득한 얼굴에
울리는 한 가닥 희망 가락이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애잔한 소리여.
--「트롯트 시대」 전문
그렇다. 박종윤 시인은 요즘 유행하는 트롯트를 들으면서 “코로나19에 점령당한 지구”의 현재 상황에서 “삶의 구석구석에서/ 애달픈 한숨 소리/ 안방에선/ 트롯트가 춤추고 있다”는 역설적인 언어로 우울한 날들의 비애를 교감하고 있어서 그가 탐색하는 삶의 진정한 면모는 “생과 사의 갈림길”이라는 이분법적인 현상에서도 한 가닥 희망의 가락으로 변전(變轉)되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코로나 괴질이 우리들의 삶과 생명까지도 위협하고 있을 때 어느 방송국에서 유행시킨 트롯트의 열풍은 이처럼 난세의 우울한 삶에 활력소를 제공한 사실은 “마음속으로 파고/ 애잔한 소리”를 위무(慰撫)의 방편으로 삶과 동행하는 지헤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작품 「아직 실버 젊은이」에서 “꺼져가는 열정에/ 젊은 피에 기름 부어/ 타오르는 예술 창작 열기로/ 삶의 예술혼을/ 활활 살려가고 있다”거나 「삼악산에 오르며」에서 “인간과 자연이/ 나와 네가 되어/ 서로를 품고 사는 삶이/ 영속(永續)하는 삶인데” 그리고 「언덕배기 노인이 투덜대다」에서도 “지팡이로 발을 끌고 오르내리며/ 바람구멍이 송송 뚫린/ 흙집에서 삶을 펼쳐왔다”는 등의 어조로 우리들 삶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2. 세월과 동행하는 애환의 현장
박종윤 시인은 그동안 삶의 여적(餘滴)에서 인식한 애환의 행보나 지향적 인생관 정립을 위한 회상의 심연(深淵)에는 세월이 언제나 동행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이는 그가 살아온 인생 체험에서 모든 삶의 방식이 이 세월(혹은 시간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섭리를 간과하지 않는다.
일찍이 프랑스의 소설가 생텍쥐페리는 그의 글 「인간의 대지」에서 “세월의 흐름은 보통 사람은 감지하지 못한다. 그들은 일시적인 안온한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명언으로 세월은 아마도 안온보다는 애환이 동행해야 그 진정한 의미를 느낄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동기간으로
네 송이 들꽃향기로 자랐는데
서로 다른 둥지를 틀더니
찌들은 세월의 조각배가 되었네
탁류에 떠밀려
시름과 고뇌를 안고
안으로 삭히며 살더니
병고에 허옇게 얼룩진 세월
어느 날
석별지정(惜別之情)도 나누지 못하고
훌쩍 하늘나라로 떠나니
둥지에 남은
가솔들의 애잔함만 그득하오
생의 끝점은 모두 한 곳이라기에
슬픈 마음을 다독거리며
훗날 재회의 날을 그리나
목메어 눈시울만 붉어지는 구려.
--「먼 길 떠난 형님」 전문
박종윤 시인은 먼저 이 시간성에서 지워지려는 형님과의 석별의 정에 대한 애잔함이 “탁류에 떠밀려/ 시름과 고뇌를 안고/ 안으로 삭히며 살더니/ 병고에 허옇게 얼룩진 세월”에서 그의 시심(詩心)은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가 세월에 대해서 “석별지정”이나 “둥지에 남은/ 가솔들의 애잔함”과 “생의 끝점” 그리고 “눈시울 붉어지는” 현상들은 그가 과거 생활에서 체험한 이미지들이 보여주는 삶(인생)의 단면에서 정감으로 적시한 어조로 일찍이 장자(莊子)가 말한 ”죽음을 보는 것이 삶과 같다“는 생존과정에서 창출하는 세월의 순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작품 「사랑의 온도」에서도 “땀방울로 얼룩진 무명옷을/ 걸치고 함께 한 세월은/ 소 힘줄보다 억세었으나/ 밤하늘 별빛처럼 고운/ 하트루비였다”는 동류(同類)의 세월과의 동행하는 사유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한 톨의 씨가 움터
마을 지킴이 당산나무가 되어 가듯
내일이 또 내일로
누에 꽁무니에서 뽑아내는 하얀 실로
이어진 나날들
주먹 불끈 쥐고 태어난 아이가
층계 따라 자라더니
아들 딸 낳아 부모가 되고
어느 날 거울에 비친
백발노인이 되었다
이어 되고 되더니 또 되고 되어
아침 동산 찬란한 햇살이
종일 밝은 광란을 부리더니
석양 무렵에 주황색 검정막을 쳐서
하루를 덮고
다음날도 그렇게 그리고 또 그렇게
실타래에서 실이 풀려나오 듯
내 이마에서 실금이 늘고
다음 날도 그렇게 그러더니
백발 숫자가 가난한 집.
--「세월」 전문
보라. 그는 주마등(走馬燈)으로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면서 추출하는 이 “세월”에서는 과거는 “누에 꽁무니에서 뽑아내는 하얀 실”처럼 흘러갔지만 “아들 딸 낳아 부모가 되고/ 어느 날 거울에 비친/ 백발노인이 되었다”는 상황 설정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석양 무렵”이나 “내 이마에서 실금이 늘고” 다시 “백발 숫자가 가난한 집”이라는 결론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토로하고 있어서 우리들 청자(聽者)의 공감의 영역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간의 개념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압축해서 말하지만 시인들은 과거의 시간(세월)의 획득에서 체험한 다양한 시적 발상이나 소재 그리고 주제를 연결시켜서 자신의 삶과 사유의 정점을 정리하는 습성을 이해하게 한다.
그는 작품 「7월이 오는 길목에서」 “열정, 땀 냄새로/ 범벅이 된 우리 젊은이들//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뽀얀 전운(戰雲)으로/ 갇혀 있으니// 어느 세월에/ 밝은 앞길이 보일러나// 오늘 밤잠도 설칠 것만 같구나.” 그리고 「사랑의 질」에서도 “고소하지만 속빈 강정이었고/ 보기 좋으나 끈끈함이 없는/ 부서지기 쉬운 사랑이다// 세월로 쌓은 정을/ 지루하다고 눈길 돌리는/ 찰나의 하트다”라는 어조로 세월이 제공하는 다변적인 메시지를 시적으로 잘 적용하는 그의 화법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3. 그리움의 진원지, 고향과 가족들
박종윤 시인에게서 불망(不忘)의 화두(話頭)는 그리움이라는 대명제에 천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리움의 매체는 대체로 회상에서 다시 재생하는 고향과 그곳에서 생성하는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 그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에서 발현하는 시적인 상황 설정이나 전개가 잔잔한 울림으로 현현되고 있다.
그는 우선 고향의 주변 환경에 심취하면서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 전부에게서 도출하여 시적인 소재와 주제를 탐구하는 시법을 응용하고 있다. 그는 그가 진실로 그리워하는 진원지가 고향이며 거기에서 동거해온 가족들에게서 애틋한 정감의 사랑, 가족애와 교감하려는 노력이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5월의 꼬리 자락에
진초록 빛
숲속에 빠져들었다
떡갈나무 잎에서
울 엄마
떡 찌는 냄새 풍겼고
산딸나무 꽃에서
배추꽃 흰 나비 떼를 보았다
빛, 냄새에 취하여
흰 나비가 되어
숲속에 들었다
언뜻언뜻
고향 길에
논두렁 밭두렁 오솔길만
아스라이 보이고
동네 아저씨 어깨에 걸친
쇠스랑도 얼핏 보였다
지금도
앞마당 깨죽나무 가지에
까막까치가 울어
동네 사람들 새벽잠을
깨우고 있을가
숲속에서
왁자지껄했던
해맑은 벗들의 웃음소리
고향의 숨소리를
들으며
실바람이
산양 몰고 가는 하늘을
바라보니
눈시울이 촉촉하다
지금 숲속에선
그리운 멍 흔적에
가슴이 아려온다.
--「긴 그리움」 전문
박종윤 시인은 지금 그 회상의 늪에서 “언뜻언뜻/ 고향 길에/ 논두렁 밭두렁 오솔길만/ 아스라이 보이고/ 동네 아저씨 어깨에 걸친/ 쇠스랑도 얼핏 보였다”는 시각적인 이미지에서 고향의 정경을 이해할 수 있으며 여기에서 “떡갈나무 잎에서/ 울 엄마/ 떡 찌는 냄새 풍겼고/ 산딸나무 꽃에서/ 배추꽃 흰 나비 떼를 보았다”는 형상은 농촌 상황이 우리들에게 ‘보여주기’의 형태로 작품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숲속에서/ 왁자지껄했던/ 해맑은 벗들의 웃음소리/ 고향의 숨소리를” 감지하는 그리움이 적시(摘示)되고 있어서 <그리움=고향>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공통으로 절감하는 것이 바로 그리움의 현장과 거기에서 생활터전으로 영위해온 우리들 부모들의 사랑이 근원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명절이
큰 발자국으로 성큼 다가오면
지워질 번했던
고향길이 활기를 띈다
가는 이나 맞는 이들
마음 둥지 안에서
기린 목이 된다
주름투성이 부모님은
동네 입구에 서서
그리움을 눈으로
끔뻑거리며 망부석이 된다
달려오는 손주들
끌어안고
볼을 비비대며
닫혔던 웃음보 터뜨리니
아팠던 허리, 무릎이 거짓말처럼 낫는다
고향 밤은 짧고
동네방네는 시끌벅적하다
명절은 우리 삶의 활력소다.
--「명절」 전문
다음은 고향에서 지냈던 고향-지워질 번했던 고향길이 활기를 띄는 “명절”을 맞이하면 더욱 그리움의 형태가 간절해지고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 애절하게 표면화한다. 그렇다. 박종윤 시인은 명절 때만 되면 “주름투성이 부모님은/ 동네 입구에 서서/ 그리움을 눈으로/ 끔뻑거리며 망부석이” 되는 상황은 아마도 이러한 고향 체험이 있는 독자들은 이해가 빠르게 가동해서 부모님과 자식 간의, 그리고 손주들까지도 사랑과 그리움의 범주(範疇)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온 동네가 밤새도록 시끌벅적한 명절은 결론으로 “명절은 우리 삶의 활력소다.”라고 단정하면서 그리움의 여운은 영원히 불망으로 남아있게 되는 아름다운 민족적 풍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가족 전체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내포(內包)한 화자의 어조는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그의 간절한 그리움에 우리는 숙연해지기도 한다.
-<할머니>∙호랑이가… / “아이, 무서워! 할머니 그 다음엔∼”/ 우리들은 가슴 졸였지만/ 눈 방울은 별빛 닮았었다(「아파트 숲 별빛」 중에서)
-<외할머니>∙“아이구, 우리 강아지 왔구나!”/ 팔 활짝 벌리고 뛰쳐나오셨던/ 입가 함박꽃만 덩그러니 핀/ 합죽이 우리 외할머니 (「강아지」 중에서)
-<부모와 자식>∙응달과 양달의 거리는/ 거기가/ 거긴 듯 보이는데// 부모 삶 온도차로/ 응달 자식들이/ 힘겨워한다.(「양달과 응달」 중에서)
∙자식은/ 일생동안/ 어버이 품속에서 허우적댄다// 무한(無限)은/ 시퍼런 색인 것을.(「무한 의 색깔은」 중에서)
-<아내>∙미소 띤/ 아내 얼굴/ 그냥/ 한 번 바라보고/ 저녁을 들었다.(「칠첨반상」 중에서)
∙아내가/ 굉음 청소기를 밀고 다니다가/ 쓰레기 모인 통을 보인다// 내 몸 부스러기들이 다(「이제 철들다」 중에서)
-<손자>∙네 아빤/ 너만 했을 무렵/ 내가 숨 가쁘게 살아왔기에// 눈을 지그시 감을 때만/ 내 앞에/ 아른거렸는데// 눈을 지그시 감아도 눈을 떠도/ 천연덕스럽게 조잘대는 개구쟁이 / 토닥거리고 싶은 너.(「손자」 전문)
∙조국이 오랜 세월/ 오열(嗚咽)하고 있었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두 동강난 산하를 묵묵히 바라보는/ 손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콘돌라를 타다」 중에서)
4. 자연 서정과 계절 감응의 시점
박종윤 시인은 서정적인 경지를 개척한 친자연의 순수서정을 지향하고 있다. 그의 서정은 자연 풍광을 기저(基底)로 해서 그곳에서 전개되는 자연 섭리에 순응하는 광활한 사유를 공존하는 시인이다.
그는 사계절에 따라서 자연환경의 오묘한 변화현상에 지대한 관심을 집중하면서 만유(萬有) 자연의 무쌍(無雙)한 표정에 대하여 조응(照應)하거나 감탄하면서 미적 수사(修辭-rhetoeic)로서 우리들에게 상황을 전해주거나 또는 자연 현장에 동화(同化)되어 우리 인간들에게 어떤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정감적 시법에 감동하게 된다.
하품 따라
늘어지게 기지개 켜는
흰 비행기가 하얀 실금을 그으며
봄나들이 간다
매화가 앞장서고
진달래 바짝 뒤따르며
개나리, 백목련이 나란히
거무튀튀했던 색을 밀쳐내고
치장하며 찾아 든다
땅 바닥에 바짝 웅크린 노란 민들레
옹기종기 제비꽃과 봄까치꽃
쑥쑥 자란 쑥을 캐어
끼니를 때우는 나물 뜯는 사람들꽃
길 따라 벚꽃이
흐드러지게 흩날리니
구경꾼들 활짝 열린 입에
벚꽃잎이 치아다.
--「봄」 전문
박종윤 시인은 우선 “봄”에 대하여 새 생명을 소생케 하는 신비한 생명력을 지상에 탄생시키는 섭리에서 그는 만물의 생존철학을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봄이라는 계절이 제공하는 현장에서 먼저 착목하는 정경이 바로 꽃들의 향연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화훼류는 매화, 진달래, 개나리, 백목련과 민들레, 제비꽃, 봄까치꽃, 쑥 그리고 벚꽃 등으로 총망라되어 봄의 향훈이 천지를 진동하는 낙원의 경지에 이르고 있어서 사계절 중에서도 봄이 적시하는 이미지는 더욱 활기 넘치는 우리들의 심저(心底)를 풍요롭게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프리지아꽃, 하와이 무궁화, 국화, 아카시아, 이파리 등등에서 봄과 상관하는 꽃들의 이미지가 자연과 친숙한 우리 인간들의 의식을 새 희망과 각오를 제공하는 계절 순환의 순정적인 서정성에 공감하게 한다.
참새 숨결에도 미동(微動)하던
여리디여린 잎이
가랑비 맞고 뇌성벽력에
턱밑이 보송보송
억센 털로 짙게 변하더니
현란한 가을이 오니
나뭇잎 속은 이미
붉게 타들어 가고
화려함 뒤에 오는
공허를 간직하고
바람결 따라 낙엽으로
나뒹굴다
눈이 오면 소복차림으로
눈을 감으며
눈 뜨는 봄이면
햇살이
영롱한 아침 이슬 새싹을
수(綉) 놓는다.
--「이파리 일생」 전문
이렇게 감득(感得)하는 자연 소재에서 박종윤 시인이 천착하는 주제는 그의 인생적인 지향점이 언제나 순수하고 정갈한 이미지, 즉 휴머니즘(humanism)의 창출이 그가 구가하려는 시적인 진실임은 확고하다.
그는 이 “이파리의 일생”을 통해서 자연의 변화에서 감응하게 되는 이미지는 우리 인간들에게 바로 “화려함 뒤에 오는/ 공허를 간직하고/ 바람결 따라 낙엽으로/ 나뒹”구는 이파리의 종말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를 숙고(熟考)하는 인생관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이파리는 가량비와 현란한 가을과 눈이 오는 계절 그리고 다시 “눈 뜨는 봄이면” 자연스럽게 그 일생이 생사고락과 같은 우리 인간들의 한생을 연상케 하는 시적 전개는 결론적으로 “공허”라는 허무의식으로 전환하는 비유가 인간과 자연은 일체(一體)라는 설득력 있는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작품 「오월 숲에서」 “진초록 숲정이 호수에/ 허우적대는/ 낯익은 나그네 영상”, 「사월에」에서 “찌든 삶도/ 자연에 눈길을 주고받으니/ 지금 발 디디는 곳이/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있었다.”, 「이 가을에」에서 “단풍은 가을 메신저/ 바람에 휙 던져 준 한 장의 서신/ 한 해는 붉으락푸르락/ 온 산에 온통 우리네 마음이 걸려있다” 그리고 「색채의 향연」에서도 “향연이 끝나면/ 낙엽으로 첩첩이 대지를 덮어/ 겨울 나는 풀벌레들의 이불이 되어주고/ 자신을 삭여 새 생명의 밑거름으로/ 엄숙한 시간을 맞는다.”는 등의 어조로 계절과 자연의 동행에서 획득하는 만물에서 우리 인간들과 교감하는 주제의 순수성이 잘 현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작품 「7월이 오는 길목에 서서」 「불볕 더위」 「오늘 우수란다」 「보름달」 등등에서 시간과 자연이 신비로운 조화(調和)로 인간과도 화해하는 시법은 박종윤 시인의 서정적인 안온한 순정미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5. 결-존재와 기원의 의지
박종윤 시집 『발자국마다 고인 행복』 읽기를 마무리한다. 그는 일찍이 교직에 출발하여 한평생을 봉사하면서 문학적 소양을 확립하기 위해서 수필과 시로 등단하여 오랫동안 활동해온 우리 문단의 중견 문인이다.
그는 이미 <시인의 말>에서 “평소 생활가운데서 애정 어린 눈길로/ 다양한 각도와 깊이로 보고 생각하며 느껴/ 누구나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호주머니에 넣고 여행을 떠나며/ 일하다 잠시 짬을 내어 펼쳐보는/ 詩를 쓰고 싶었습니다.”라는 소망과 기원의 의지로 그의 진정한 심중을 토로한 바와 같이 그는 지금도 “발자국마다 고인 행복”을 바탕으로 시를 위한 강렬한 메시지를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지그시 눈 감으면
내가 곧 물이요,
물이 내 자신이 된다.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境地)가 아니겠는가.
--「개울물 소리」 중에서
그는 우선 삶과 생존의 문제를 더욱 감미롭게 해소하는 해법을 찾기 전에 물이 된 자신을 향해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境地)가 아니겠는가.”라는 의문으로 자아(自我)의 존재 이유와 지향의식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명징(明澄)한 해답은 앞에서 시를 쓰고 싶었다는 간구(懇求)의 어조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그는 “내 노구(老軀)를/ 저 녹파(綠波)에 던져// 생기 넘치는/ 젊음을 되찾고 싶다.”(「곰배령 산마루에서」 중에서)의 “.....싶다”라는 확고한 기원의 의지로 자신의 소회(所懷)를 나타내고 있어서 그의 심안이나 심중을 이 시집 전체의 작품에서 예감할 수 있게 한다.
내 삶 깊숙이
이 향기를
맑고 곱게 간직하였다가
힘겨운 시름에 잠길 때
아 향기로
자신을 겹겹이 씻기고 싶다.
--「문주란」 중에서
그는 “나”라는 화자를 설정하고 문주란의 향기와 동일한 심지(心地)로 자아의 존재 와 대칭하는 시법이 진지하게 발현하고 있어서 그가 간절하게 소원하는 인생관이나 가치관은 시를 통해서 성취하려는 순정미가 넘치고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이러한 그의 서정적 자아 구현 노력은 모든 소재에서 명민(明敏)하게 시적 진실로 형상화하고 있어서 그 감명(感銘)은 더욱 배가(倍加)되고 있는 것이다.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