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 필요한 일본 경제 VS. ‘분배’를 부르짖는 하토야마
이렇게 볼 때 일본은 현재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경제 성장이 필요한 나라이다.
일본 정부가 지고 있는 산더미 같은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서는
세수가 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
또 늘어나는 노인들을 먹여 살릴 수 있기 위해서도 방법은 경제가 성장하는 길뿐이다.
한 마디로 나라의 떡이 커져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경제 성장이 절실히 필요한 나라의 경제가 지금 선진국 중 가장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적인 하토야마 정권이 출범한 것은 일본에게
또 하나의 재앙이라고 봐 진다.
일본 정부는 지금 성장을 위해 매진해야 한다.
그런데 하토야마 신정부의 기본 노선에 성장을 위한 계획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분배에 더 신경 쓰고 있는 듯 보인다.
예를 들어 자녀를 가진 부부에게 정부가 아이 한 명당 월 1만3000엔씩을 지급하겠다,
고등학교 무상 교육을 하겠다는 식이다.
한 마디로 정부가 국민에게 더 퍼주겠다고 공약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에게 많이 나누어 주는 것이 나쁠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해야 할 시기에는 한 푼이라도 모아서 투자를 해야 한다.
어부가 고기를 많이 잡기 위해서는 그물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물을 만들려면 매일 매일 잡는 고기를 먹어 치울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식량을 비축해야 한다.
성장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작은 정부, 활력 있는 민간 부문’이다.
그런데 하토야마 정부는 도리어 ‘퍼주는 정책’을 천명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바로 아르헨티나 같은 포퓰리즘적 발상이다.
불행히도 하토야마 정부는 일본 경제를 일으켜 세울 어떤 비전이나 전략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자민당 정권의 20년간 무능에 식상해 있던 국민에게 개혁을 부르짖음으로써 정권은 잡았지만 무엇을 어떻게 개혁해서
어떻게 경제를 되살릴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은 별로 없는 것 같다
. 한 마디로 일본은 80년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같은 지도자가 필요한 상황인데
불행히도 엉뚱하게 카터 같은 사람을 지도자로 뽑아 버리고 말았다.
여기에 일본의 불행이 있다.
사라진 일본의 도전 정신
그런데 일본의 문제는 사실 더 근본적인 데 있다.
근본적으로 일본은 개혁을 이룰 수 있는 영적인 용기,
도전의 정신을 잃어 버린 나라처럼 보인다.
일본이라는 강대국의 역사는 19세기 중반 명치 유신이라는 거대한 도전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온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용감하게 나라를 전면적으로 개혁하면서 시작된 도전의 역사는 식민지 전쟁,
급기야는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만용으로까지 가기는 했었지만
그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패전 이후에도 눈부신 경제 발전으로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간 일본에는 그런 도전 정신이 사라졌다.
개혁하고 도전하며 곤경을 헤쳐 나가겠다는 국민적 투지와 용기가 증발해 버린 것 같다.
그 가장 웅변적인 예가 바로 일본이 1990년대 금융 개혁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90년대 초 호황의 거대한 거품이 일시에 꺼지면서 경제가 침몰하였다.
그러면서 거의 모든 금융기관들이 부실의 늪에 빠져 버렸다.
경제를 살리려면 금융기관이 살아야 하는데,
즉 부실은행에 대한 단호한 수술이 있어야 하는데 일본은 그 수술을 단행하지 못했다.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을 감행할 만한 정치적 리더십도 용기도 없었던 것이다.
이 수술을 착수하는 데 무려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고 그 사이 일본의 경제는 너무 심하게 멍들어 버렸다.
한국이 IMF 위기가 왔을 때 불과 1여년 만에 200여 개 금융 기관의 문을 닫으며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했던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일본 정부는 고통이 수반되는 금융 구조조정은 미루고
대신 고통이 수반되지 않은 경기부양책,
즉 돈을 푸는 일만 했다. 한 마디로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그 수술을 미룬 채 진통제만 맞고 10년을 버틴 것이다.
그 진통제 값, 즉 천문학적인 경기부양 자금이 누적된 결과가 바로
지금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국가 부채인 것이다.
이렇게 개혁을 이루는데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일본의 사회 분위기가 과감한 개혁을 이루기에 필요한
활력과 도전 의식을 키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는 활력과 역동성을 잃어버린 것 같다.
예를 들어, 일본은 경제 규모에 비해 벤처 기업의 활동이 가장 미약한 나라 중의 하나이다.
벤처가 요구하는 기존 관념의 타파, 혁신, 용기, 도전 같은 덕목을
일본 사회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일본 경제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
성장을 이루어야 하는데 이루고자 하는 의지도, 용기도, 청사진도 없어 보인다.
성장을 향한 비전을 가진 지도자도 없어 보인다.
일본 경제가 얼마나 풀기 어려운 숙제인가는 지난 1년 반 동안
재무장관이 무려 6번이나 바뀌었다는 사실이 웅변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일본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묘법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의 추락은 아마도 계속될 것이다.
일본이 겪는 불행은 결국 ‘폐쇄성’ 때문
일본이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나는 바로 일본의 폐쇄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은 한 마디로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선진국이다.
일본은 그가 가장 잘 나갈 때 세계를 향해 문을 열지 않고 단일 민족을 고집하며
도리어 더 안으로 기어 들어 갔다.
일본은 1980년대 가장 잘 나갈 때 세계 상품에 대해 가장 폐쇄적인 시장이었다.
모든 나라들이 일본에 물건 팔기 힘들다고 아우성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급기야 미국이 슈퍼301조라는 초강경 무기를 들이대면서
일본을 불공정 무역국가로 지정하고 강제로 일본 시장의 문을 열려고 했을 정도였다.
일본의 금융도 선진국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폐쇄적이었다.
심지어는 일본 증권 시장에 선물시장이 없었다.
선진국 투자가들이 선물 시장을 열라고 아우성을 해도
일본 대장성이 꿈쩍하지 않자 급기야는 싱가포르에 일본 주식에 대한 선물시장이 열리게 될 정도였다.
일본은 그것을 보면서도 태연했다.
일본이 잘 나갈 때 일본의 학자들은 도대체 외국에 가서 공부하는 것을 우습게 여겼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일본 대학의 박사들만 우대하고 외국 박사는 우습게 여겼다.
요즈음 일본 학회에 가보면 외국 박사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일본은 외국인들에게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주는데도 가장 인색했고
재일 한국인 동포들이 가장 큰 희생자이지만 정착해 사는 외국인에 대한 박대도 가장 심했다.
부자 나라 일본은 1985년부터 2005년까지 피난처를 신청한 난민 4800여 명 중
불과 410명 밖에 받아 들이지 않았다. 세계 최하위권이다.
일본은 또한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대외 원조에 가장 인색한 나라 중의 하나이다.
최근 워싱턴의 권위있는 싱크 탱크인 CDG(Center for Global Development)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일본은 선진 22개국 중 대외 원조액이 GDP 비율로 따졌을 때 꼴찌에서 두 번 째(0.18%)이다.
일본은 이처럼 잘 나갈 때 세계에 대해 폐쇄적이었다.
외국인에 대해 관대하지도 않았고
자기가 제일 잘 난 줄 알고 남을 받아들여 같이 살기를 거부했다.
국가의 번영은 ‘개방’과 ‘다양성’에서 출발한다
세계사를 보면 결국 세계를 향해 적극적으로 문을 연 민족은 성공한 반면
세계에 대해 문을 닫고 자기들이 제일 잘난 줄 알던 민족은
거의 예외 없이 쇠락의 길로 빠져 들어갔던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5000년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시기였던 당나라 현종 시대는 중국이 세계에 대해서 가장 개방적이었던 시절이었다.
1000년을 간 로마의 영화 밑뿌리에는 결국 이민족에게 로마의 시민권을 주고
그들과 더불어 살고자 했던 로마의 개방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100여 년 전 우리가 세계에 대해 폐쇄적이었던 그 대가를 우리는 아직도 민족의 분단이라는 형태로 비싸게 치르고 있다.
지금 북한의 문제도 결국은 폐쇄성의 문제이다.
중국이 아편 전쟁으로 서구에 패한 것도 근원적으로는
그 폐쇄성이 낳은 후진성 때문이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개방을 함으로써 아시아의 열강이 되었던 일본이 폐쇄성 때문에
이런 곤경에 처해 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미국 해병대가 신병들에게 작업을 시키면서 인종, 교육, 사회적 계급 등에 있어
이질적인 사람들을 섞어 놓았을 때 동질적 사람들을 모아 두었을 때보다 작업 능률이 훨씬 더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양성은 사람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고 활기를 불러 일으킨다.
그 차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긴 에너지가 활력과 역동성을 창출하는 것이다.
반대로, 동질성은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 근친상간도 사실 극단적인 동질성의 한 예일 뿐이다.
일본이 개혁을 이룰 용기를 잃고 계속 추락해 나가는 것은 근원적으로 민족적 역동성의 상실에서 온 것이고
그것은 바로 일본이 동질성을 고집한 데서 연유된 것이라고 나는 본다.
이렇게 볼 때 일본이 근본적으로 개방과 다양성 쪽으로 나라의 큰 방향을 틀어 국력에 걸맞게 세계와 다양성을 받아들임으로써
활력이 넘치게 되지 않는 한, 일본이 경제 성장에 필요한
개혁과 혁신의 물꼬를 트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지금 잘 나가고 있다.
마치 일본의 80년대를 연상하게 한다.
그래서 한국은 일본에서 배워야 한다. 잘 나갈 때, 진정 문을 열고 세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시장을 열어 글로벌 스탠다드를 기준으로 세계 사람들과 당당히 경쟁하겠다고 각오해야 한다.
더 이상 단일 민족, 백의민족을 외치는 것은 그만 두어야 한다.
그것은 더 이상 자랑이 아니다.
국내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버려야 한다.
대외 원조도 국가적 위상에 걸맞게 규모를 늘려 나가야 한다.
관대한 나라, 포용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국수주의적 편견과 아집을 버리고 진정 세계국가, 세계시민이 되고자 결단해야 한다.
이제는 단일 민족이 아니라 세계 민족이 되는 나라가 이기는 나라이다.
아니 항상 이기는 나라였다.
전성철 IGM 이사장
지난주 도쿄 출장길에 만난 일본의 유력 일간지 간부는 "일본 정치가 이제야 겨우 한국을 따라잡았다"고 했다. 자민당의 50여년 장기집권이 무너진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우리는 한국 정치를 '3류'라 하지만, 그래도 정권교체 경험만큼은 일본보다 11년 빨랐다. 이게 일본 눈엔 부러웠던 모양이다.!
서점에서 펴본 극우 성향 시사지('SAPIO')엔 일본의 스포츠가 왜 한국에 밀리는지 '개탄'하는 특집이 실렸다. 몇몇 잡지는 김연아를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고, 신문들은 일본 전자업계와 삼성전자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고 대서특필한다. 정치·경제에서 스포츠까지, 일본은 내놓고 한국을 '라이벌'로 삼고 있었다.
10년 전쯤, 내가 도쿄 특파원 시절 보았던 TV 방송에 이런 장면이 있었다. 한 교양 프로그램에서 일본 고교생들에게 지도를 주면서 한국이 어디 있는지 찍어보라고 했다. 그 결과를 보고 나는 경악했다. 한국의 위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었고, 심지어 아프리카 언저리를 짚는 학생까지 있었다.
일본 고교생의 지리 실력이 형편없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때만 해도 일본 사회는 오만한 경제대국이었고, 한국은 안중(眼中)에도 없었다. 평균적인 일본인이 가진 한국 이미지를 요약하면 '성수대교가 무너진 개도국' 정도 됐다. 일본 총리 부인이 한류 팬임을 자처하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드나, 불과 몇년 전까지만도 우리 위상이 그랬다.
내 기억으로 일본이 한국을 라이벌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일본이 아날로그 성공체험에 취해 있는 사이, 우리는 디지털 혁명에 성공적으로 올라탔다. 한류 붐이 있었고, IMF 사태 덕에 강해진 대기업들의 약진이 더해졌다. 그 짧은 기간에 일본의 턱밑까지 따라붙었으니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그렇다고 우쭐할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성장 전략은 일본 하던 것을 그대로 쫓아가는 방식일 뿐이었다. 우리의 아버지 세대들은 일본의 돈과 기술을 들여오고 일본식 제도와 노하우를 베껴다 압축 성장을 이뤘다. 그렇게 40여년을 열심히 뛴 결과 일본과의 격차를 가시권 안으로 좁힐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한·일의 국력 경쟁은 게임의 룰 자체가 달라지게 된다. 일본이 우리를 라이벌로 여기는 순간, 일본을 벤치마킹하는 기존 방식은 유효하지 않게 됐다. 거대 일본이 정색하고 달려들 때 과연 이겨낼 역량이 되는가. 일본 '추격'은 성공했지만, 일본을 넘어설 수 있는 '추월'의 전략이 있는가.
얼마 전 방한한 전신애 전(前) 미 노동부 차관보의 진단이 의미심장하다. 미국 정부의 인재 정책을 오래 담당했던 그는 "한국의 '지적(知的) 에너지'가 일본을 능가했다"고 잘라 말했다(주간조선 인터뷰). "일본 젊은이가 어디 뉴스에 오르내리는 일이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 글로벌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단연 한국의 젊은 세대다. 한국의 청년들은 수학·과학 올림피아드의 상위권을 휩쓸고, 비보이(브레이크댄스)·e스포츠·온라인게임에서 세계를 리드한다. 가수 '비'로 상징되는 한류 전사, 김연아·여자 골퍼들로 대표되는 스포츠 전사들은 일본의 경쟁자들을 압도하고 있다. 과거의 일본은 실용적 혁신성으로 가득 찬 나라였다. 일본의 구(舊)세대는 컵라면과 워크맨과 가라오케를 창안해내며 세계의 이노베이션을 주도했다. 그러나 화려했던 아버지 세대에 비해, 일본의 젊은 세대는, 패기도 창의성도 그만 못하다. 차세대 인재 경쟁력은 분명 우리가 앞선다.
까마득하게 앞서가던 일본을 이 정도까지 따라잡은 것은 아버지 세대의 분투 덕이었다. 불가능해 보이던 '일본 추월'을 이뤄내느냐는 이제 다음 세대의 몫이 됐다. 우리는 다음 세대의 활약에 기대를 걸어도 좋을 것 같다.
한국을 라이벌로 보기 시작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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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훈 사회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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