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도 여긴 10도.. 5억년 세월이 빚은 '땅속 궁전'

[양정 권기식]

정성원 기자 입력 2021. 08. 06. 03:05 수정 2021. 08. 06. 07:26

강원 삼척

2021년 8월 3일 강원도 삼척시 대금굴을 찾은 시민들이 관람 마지막 장소인 천지연을 살펴보고 있다./김지호 기자

지난 3일 오후 찾은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매표소를 지나 모노레일을 타고 10분가량 능선을 오르자 ‘동양 최대 석회암 동굴’이라는 환선굴 입구가 나타났다. 해발 500여m. 폭 14m, 높이 20m 동굴 입구부터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날 삼척의 낮 최고기온은 32.8도.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릴 정도였지만, 환선굴 속은 시원하다 못해 으슬으슬할 정도로 추웠다. 홍성훈 대이동굴관광센터 담당은 “동굴 내부의 평균 기온은 10.2도에서 14도 정도”라고 말했다.

2021년 8월 3일 강원도 삼척시 대금굴을 찾은 시민들이 관람 마지막 장소인 천지연을 살펴보고 있다. /김지호 기자

5억3000만년 전 고생대의 신비를 간직한 환선굴에선 물과 돌, 세월이 빚어낸 석순과 종유석의 장관이 숨 가쁘게 이어졌다. 마리아상(像)을 닮은 석순, 길이 20m로 거대한 도깨비 방망이 모양 종유석 등 기묘한 동굴 생성물이 시선을 압도했다. 지난 1997년 일반에 개방한 환선굴은 전체 길이가 6.2km이지만, 1.6km 구간만 개방한다. 굴 내부는 폭이 최대 100m, 높이가 최대 30m에 달한다.

◇5억3000만년 전 ‘지하 궁전’

강원도 삼척시는 ‘동굴의 고장’이다. 백두대간 덕항산(해발 1071m)에서 갈라진 두 줄기 험준한 산맥이 오십천 계곡을 끼고 협곡을 이루며 신기면 일대에 석회 동굴 지대를 형성했다. 지난 196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곳에는 환선굴 외에도 대금굴, 관음굴, 사다리바위바람굴, 양터목세굴, 덕밭세굴, 큰재세굴 등이 있다.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는 피서 철에 하루 6000여 관광객이 이곳을 찾았고, 최근에도 3500여 명이 방문한다.

삼척시 대금굴/삼척시 제공

환선굴이 웅장함을 자랑한다면, 대금굴에선 지하 세계의 아기자기함을 엿볼 수 있다. 8m 높이에서 물줄기를 쏟아내는 비룡폭포와 백두산 천지 모습을 닮았다는 천지연은 관광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중력 법칙을 무시하고 동굴 벽면에 수평 방향으로 자라난 곡석(曲石)도 눈길을 끌었다.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박민호(43)씨는 “지하 세계에 궁전을 꾸며놓은 자연의 위대함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지난 2007년 일반에 개방한 대금굴은 많은 물이 솟아나 ‘물골’이라고도 한다. 전체 1.6km 구간 중 0.8km를 일반에 개방했다. 모노레일을 타고 동굴 내부 140m 지점까지 들어가 관람할 수 있다. 홍성훈 담당은 “대금굴은 지금도 성장하는 활굴(活窟)이라서 동굴 생성물을 관찰하기 좋다”고 말했다. 하루 입장객은 680명으로 제한한다. 입장권은 인터넷 예매(daegeumgul.co.kr)로 판다.

삼척시 환선굴로 향하는 모노레일/김지호 기자

삼척시는 동굴 관광 특화 도시로 변신을 추진하고 있다. ‘동굴은 살아있다! 삼척 케이브파크’를 주제로 오는 2024년까지 국비 등 120억원을 들여 대이리 동굴 지대 일대에 야영장과 물놀이 공간 등 관광 시설을 조성한다. 보고 지나치는 곳이 아닌, 머물면서 휴식하고 즐기는 체류형 관광지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동굴 속 명상이나 숲속 캠핑 등 힐링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한명석 삼척시 관광과장은 “문화 생태 공원 기능을 확대하고, ‘살아있는 동굴’이라는 점을 부각해 동굴 도시의 위상을 되살리겠다”고 말했다. 김양호 삼척시장은 “크고 작은 동굴 82개가 곳곳에 있는 삼척은 우리나라 대표 동굴 도시”라며 “케이브파크 프로젝트를 통해 삼척을 동굴 관광의 메카로 키워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선엔 화암동굴, 평창 백룡동굴도

강원도 정선과 평창에도 자연의 위대함을 만날 수 있는 동굴이 있다. 정선군 화암면 화암동굴은 석회암이 물에 녹아 만들어진 석회 동굴이다. 1934년 금광인 천포광산 갱도 작업 중 발견됐고, 1993년 일반에 공개됐다. 바닥에서 솟아오른 석순과 동굴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이 붙어 형성된 하얀 빛깔의 석주(石柱) 등 다양한 동굴 생성물을 만날 수 있다. 2019년 천연기념물에 지정됐다. 천연 석회암 동굴과 인공 갱도를 돌아볼 수 있어 교육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굴 안에 있는 ‘꿈꾸는 정원’에선 화려한 미디어 아트가 펼쳐지는 등 볼거리도 가득하다.

평창군 미탄면 백운산 산자락에 있는 백룡동굴은 국내 최초 생태 학습형 체험 동굴이다. 총길이는 약 1.8㎞. 관광객이 동굴 바닥을 기어 다니고, 물웅덩이를 통과하며 온몸으로 동굴을 느낄 수 있다.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해 조명을 설치하지 않아, 안내인을 따르며 헬멧에 달린 랜턴 불빛에 의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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