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광스님의 한국학에세이 |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한국 현상!

[춘수]

궁극의 세계로 가는 예술가에게
이 현실세계는 너무나도 속되고
욕망으로 가득찬 세계일지 몰라

세계적 예술가로 성장할 임윤찬
건반 위 삼매는 이미 경험했을 터

이제는 피아노 밖 번뇌 잘라 줄
취모검 하나 가져야 하지 않겠나
참선 명상의 세계를 만나 보시길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18살 최연소 나이로 우승 기록을 세운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6월30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캠퍼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이다시피 한 나를 처음으로 사로잡았던 음악가는 바흐였다. 출가한 이후에 한창 참선을 하며 모든 것을 새롭게 느껴가던 무렵 나는 ‘G선상의 아리아’를 바이올린의 G선 하나로만 연주하는 영상을 보고는 “이 곡은 바흐가 선정(禪定)에 들어서 작곡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흐에 관심이 생긴 뒤 나는 ‘샤콘느’라는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다. 교통사고를 1년에 4회, 2년에 6회 당하고 나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을 무렵 바흐의 ‘샤콘느’는 역경을 이겨내고 우울을 털어낼 수 있게 만들어준 일등공신이자 힐링의 음악이었다.

시간이 흘러 가수 송창식 선생을 만나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바흐는 선정에 들어본 사람이 아니었는지, 베토벤과 모차르트는 어떤 경지에 있었는지 말이다. 송 선생의 대답은 언제나 명쾌했다. 바흐에 대해서는 일대기가 자세히 밝혀진 바가 없어서 명상을 익혀서 수행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작곡을 하기만 하면 자연의 이법(理法)을 그대로 나타낼 수 있었을 만큼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는 것이다.

모차르트는 태어나면서 이미 천재로 태어난 생이지지(生而知之)의 경지여서 말을 붙일 필요도 없고, 베토벤은 아버지가 지독하게 공부를 시켜서 노력을 통해 최고의 경지에까지 도달한 결실체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문득 베토벤이 두보(杜甫)라면 모차르트는 이백(李白)의 이미지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렇게 또 클래식의 세계는 유행처럼 한 번 스쳐 지나가고 일상에 묻히고 말았다가 최근 불어 닥친 K-클래식 관련 뉴스 하나에 다시 온통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K-클래식’이라 불리는 한국인 돌풍

최근 임윤찬이라는 피아니스트 관련 보도를 접하게 되었다. 그는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나이인 18살로 우승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친구에게서는 몇 가지 특별한 요소가 엿보인다. 동네 상가 피아노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순수 국내파로 영재교육원에서 성장했다고 하는데 연주 장면 동영상을 보니 예사롭지 않은 천재의 광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준결승에서 전곡을 연주한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을 보니 이미 우승이 결정된 거 아닌가 싶었고, 결승 무대에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몰입의 절정을 보여 주어 콩쿠르가 아니라 자신의 연주회 같은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아주 섬세한 대목과 강렬한 부분에서의 강약 조절은 기가 막혔고 한 번 발동이 걸리면 밀어붙이는 기세는 대단하여 삼매 속에서 연주하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지휘자 마린 알솝은 결선 마지막 곡 연주를 마치고 나서 울컥하여 눈시울을 훔쳤는데 후일담에 의하면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하이라이트였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경연을 넘어서서 청년 음악가와 음악으로 하나가 되었던 순수한 순간이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이 등장했을 때 그는 이미 거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성숙해 있었고 완벽해 보였으며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웠다. 한국인이 클래식 장르에서도 이제는 세계적 수준에 안착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던 인물이 조성진이었다면 임윤찬은 그것과는 또 다른 어떠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클래식계에서 가장 한국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의 연주에는 백두대간의 용맥에서 터져 나오는 화강암의 거친 기운과도 같은 것이 터져 나오고 있음이 감지된다. 어쩌면 앞으로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가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임윤찬이라고 대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K-클래식’이라는 용어를 언론에서 쓰는 이유는 올해 상반기 40개의 국제대회에서 한국의 젊은 연주자 37명이 입상을 하였고, 그 돌풍의 정점에 임윤찬이 있어서이다. 한국의 청년들이 계속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어린 예술가의 놀라운 인터뷰

어눌한 말투의 임윤찬은 인터뷰에서 미성년자가 하기 어려운 말들을 내뱉는다. 이런 것을 보고도 전생이 없다고 할 수 있겠냐고 하고 싶을 만큼 그의 인터뷰 내용은 신선하고 재미있다. 아니 놀랍고 경이롭다.

산에서 피아노와 둘이 살고 싶은데 경제생활도 해야 하니 이렇게 콩쿠르도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하질 않나, 커리어를 쌓는 것에는 0.1%도 관심이 없지만 나의 수준을 점검해 보기 위해서 경연에 참가했다고 하는 등, 그의 말에는 도인의 초탈까지 엿보인다. 콩쿠르 우승이라는 것도 불과 석 달 짜리 밖에 안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고는 웃음이 터져 나오기까지 했다.

우륵의 가야금 연주에 담긴 깊은 정서를 상상하면서 연주를 한다고 하고, 단테의 신곡은 거의 외울 만큼 읽었다고 한다. 조용한 목소리에서 나오는 담담한 소감을 듣고 있자면 동서 문명을 오가며 자신의 세계를 펼쳐낼 만한 훌륭한 음악가 한 명이 우리 땅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반갑고 흐뭇해진다. 하루 종일 연습을 한다는 젊은 피아니스트는 이미 몰아(沒我)와 무심(無心)의 세계에서 살고 있으며, 무욕(無欲)과 절속(絶俗)의 경지에서 노닐고 있음이 느껴진다.

우리 땅에서 태어난 젊은 청년들은 이제 세계의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수준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어떠한 외래의 문명도 한국적인 방식으로 소화하여 다시 되돌려 줄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의 청년들이 세계의 문화를 주도한다고 했던 50년 전의 탄허스님의 말씀이 이렇게 현실이 되어 성큼 다가와 있는 것이다.

한국의 어린 천재들, 멘탈관리 중요

임윤찬의 연주 장면과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나도 이제 중년이 되어서 부모의 마음이 된 것인지, 쓸데없는 염려를 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눈에서 살짝 어두움을 찾아내어 혼자 마음을 쓰고 있는 것이다.

저 친구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욕심꾸러기 어른들에게 시달릴까, 수십 장의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서 별의별 일들을 겪어야 할 텐데 등등의 잡념들이 스쳐 지나간다. 천재의 광기와 순수한 몰입의 성향을 지닌 임윤찬에게도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의 양상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쳐버린 니체나 귀를 자른 고흐처럼은 절대 되지 말고 행복한 피아니스트로 흰머리가 성성할 때까지 피아노 건반에서 멋진 연주를 해주기를 바라는 기도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전해진 서적들에 의하면 앞으로 한국 땅에서 일만 이천 도통 군자가 나온다고 했다. 수많은 위대한 인물이 쏟아져 나올 텐데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자신보다 나은 후속 세대들을 맞이할 준비가 온전히 되어 있는 것인가 하는 반성의 사유가 불현듯 스쳐 지나간다.

외롭고 힘들지 모른다. 궁극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예술가에게 어찌 보면 이 현실 세계는 너무나도 속되고 욕망으로 가득 찬 세계일지 모른다. 소년등과(少年登科)는 부럽지 않다는 말이 있듯이 앞으로 임윤찬 군의 연주는 한국인마저 직관하기 어려울 만큼 전 세계의 관심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세계적인 예술가가 될 것이라 확신이 들지만 그만큼 그의 정신적인 건강과 마음의 관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앞으로 뒤를 이을 수많은 한국의 어린 천재들에게 적합한 마음수련과 멘탈 관리의 보편적인 프로그램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닦는 매뉴얼’이 필요하다

현대 한국사회는 고난에 빠졌거나 실패하여 낙오했을 때 ‘이렇게 어려움을 헤쳐 나가라’는 삶의 매뉴얼이 잘 마련되어 있지 않다. 한류 열풍을 시작한 K-팝의 어린 연습생들부터 K-클래식의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집중적인 훈련을 통한 인재양성 시스템은 세계가 놀랄만한 수준에 도달했다. 클래식에서의 폭발적인 한국 청년들의 돌풍에 대해 외국에서는 이미 ‘한국현상’이라는 이름으로 대서특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신화에 가려진 내막에는 반드시 성과주의와 실적주의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엄청난 수준에까지 이른 젊은 예술가들이 평생 행복하게 삶을 누릴 수 있는 국가적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좋겠고, 돈과 권력에 치여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길 바란다. 너무나 치열한 경쟁과 매 순간 기다리고 있는 긴장의 연속에서는 삶을 즐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종교를 떠나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참선과 명상의 세계를 반드시 만나게 되기를 발원한다. 인생이란 별것이 없다. 몇 살의 나이에 참선 수행에 뛰어들었냐가 중요한 것이다. 이미 건반 위에서의 삼매는 겪어 보았을 것이니 피아노를 떠난 세속에서 모든 번뇌를 잘라줄 취모검(吹毛劒) 한 자루는 간직하고 살게 되기를 바란다. 너무나 마음에 쏙 드는 청년을 알게 된 한 스님의 노파심절(老婆心切)이다.

[불교신문 3724호/2022년7월12일자]

라흐마니코프 피아노 협주곡 No.3
in D Minor, op.30

[설화수]

피아노 와 불교
조화로운 에세이
즐독합니다
감사합니다 ()

[예희]

잘 듣었습니다

임윤찬
듣을때마다
가슴이 먹먹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