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베이비부머
윤여희
국민연금 수급증서가 배달 되었다. 나는 출생 신고가 늦어 친구들보다 2년 늦게 수급자가 되었다. 이십여년 꼬박꼬박 납부한 결과물이다. 열심히 일하여 연봉이 높아지면 근로소득세는 많아지고, 아끼고 절약하여 차곡차곡 모으면 재산세를 내야한다. 징벌적 과세니 이중과세제도라느니 불평하며 내던 세금 혜택을 드디어 받게 되었다. 소득은 없으나 각종 모임의 회비 그리고 소속된 NGO단체의 후원금 등 매달 나가야 할 돈이 꽤 된다. 연금이라야 기초연금 수준이지만 생산활동을 하지않는 내게 도움이 될것 같다.
그런데 연금의 종류가 노령연금이라고 적혀있다. 내가 늙었다고?
젊은 시절 나는 손이 빨라 끓이고 지지고 볶고 30분이면 7첩 반상을 차려 낼 수 있었다. 이제는 행동이 굼떠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못한다. 일상에서 사용하던 단어조차 머리에서 맴돌 뿐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수영장에서 만난 네 살 꼬마도 내게 할머니라고 부르는 현실인데 노령연금이란 단어에 마음이 불편하다. 나의 모순과 이중성에 웃음이 나온다. 체격은 성인만큼 자랐지만 자신이 주도적으로 뭔가 하기에는 제약이 많아 반항하는 청소년 같은 마음이다. 아직 건강하여 세계 어디든지 여행 갈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 많음에도 주류에서 밀려난 소외감은 제2의 사춘기 같다.
엄마의 칠순 생일에 옷을 사러 백화점에 갔었을 때 엄마가 내 귀에 대고 조용하게“저 옷은 너무 할머니 같지 않니?” 하시던 그 마음. 정년이 없는 직책임에도 이제 나이가 되었다며 직장에서 물러나야했던 남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 것 같다.
나이는 인정하지만 노인이란 현실을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그 이유는 생각이 고루하고 고집불통에 꼰대라고 불리는 노인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인 것 같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종업원에게 반말하고 소리 지르는 진상 손님이라고 노실버존도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고독과 질병, 빈곤이 노인 문제라고 노인복지시간에 공부했는데 내가 그 대상이 된다는 말인가. 훌륭한 건강보험 제도 덕에 급격하게 장수 국가가 되면서 철학자 김형석 교수와 정신과 의사인 이시형 박사 등 몇 분을 제외하고는 바람직한 노인의 모델이 없다. 에릭슨의 발달단계에도 노년기에는 인생을 정리하고 돌아보면서 삶의 의미에 대해 음미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하여 삶의 통찰과 지혜를 얻는 단계라고 한다. 수명 혁명의 시대. 돌봄이 필요하지 않은 건강 수명이 길지만 질병과 친구삼아 가야 할 노년기는 더욱 길다. 60년대생 베이비부머는 860만명.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이끌던 60년대생들은 교육 수준이 높고 급변하는 사회를 겪었으며 디지털 문화를 경험한 세대로 파워 컨슈머로 분류하고 있다. 은퇴 후에도 사회활동과 여가. 소비 생활을 즐기기 위해 자신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소비의 주체가 되는 엑티브시니어는 마케팅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베이비부머가 은퇴하여 산업 현장을 떠나면 산업계의 우려가 커진다는 기사도 있다. 또한 베이비부머는 자식들에게 유산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과 늘어난 수명으로 노후에 대한 걱정이 늘어 지갑을 닫고 오히려 저축을 늘리고 있다는 기사도 있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로 정작 자신은 고독사를 걱정하는 세대라고 한다. 처음 맞는 장수사회에서 베이비부머를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루하루 살아내기에 바빠서 노인이 되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준비하지 못한 나이. 처음 살아보는 60대의 정체성이 혼란스럽다. 청소년이 가치관을 확립하고 어떤 직업을 선택할지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갭이어(gap year)가 필요하듯 노인에게도 갭이어가 필요할 것 같다.
한국의 노인 기준 연령은 왜 65세 일까? 생활이 풍요로워지고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수명은 길어졌는데 1981년에 제정된 노인 연령기준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1980년대 평균 수명은 65.69세 였고 2021년의 평균 수명은 83.6세가 되었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국제 연합은 물론 경제 협력개발기구나 유럽 연합도 노인 인구를 65세 이상으로 정의 하고 있다고 한다.
지공거사라 부르는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을 상향해야 한다는 사회적 이슈가 있으나 선거가 끝나면 다시 조용해진다. 2020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노인 실태조사에서 노년이 시작되는 연령을 70,5세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노인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상향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고 있으나 보건 복지제도와 일자리 등 해결해야 할 어려움이 많은가 보다. 출산율 감소와 급속한 노령화가 사회보장 비용 부담이 늘어 세대간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한다. 2055년이면 국민연금이 고갈된다고 연금 개혁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5년이면 내가 납부한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데 본의 아니게 내가 젊은이들에게 짐이 될 수도 있겠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늙지도 젊지도 않은 엉거주춤한 나이가 되었다.
어느 유명 강사는 현재 나이에서 17살을 빼야된다고 한다. 1994년 중위연령이 28.8세였으나 2024년 중위연령은 46.1세가 되었기 때문이란다. 주도적으로 인생 2막을 시작해야 할 나이라고 강조한다. 아이들 양육에서 조금 자유로워진 40대에 새로 공부를 시작하고 전문상담교사, 사회복지가 1급, 청소년 상담사자격을 취득하였다. 열심히 공부하여 보람되게 일하고 이제 은퇴하였는데 다시 시작하라고 한다. 그럼 인생 3막을 시작해야하나?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밀려드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산적이기보다는 취미나 여가 활동으로 한정되어 있어 막막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르신” 실버“ ”시니어“ 등으로 노인에 대한 호칭을 사용하지만 영국이나 미국은 은퇴시기를 넘긴 사람을 예우해서 골든에이지(Golden Ages)라고 한다고 한다. 한 사람의 노인이 사망하면 도서관 한 개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 시대인 현재에는 노인이 젊은이에게 길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설 늙은 나는 늙은 나이라는 뜻의 노령이라는 단어에 심술이 난다. 굽어지는 어깨를 펴며 허공에 대고 객기를 부려본다
”너희는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