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음악소리와 함께 머리를 여러색으로 곱게 염색한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컵을 닦는 리듬을 그 노래 소리로 맞추고 흥얼 거리며
따라 불렀다.
"그놈의 TV 좀 끄면 안되냐? 애들이라고 다들 대가리나
염색을 하지 않나...너도 염색 좀 풀러"
아버지께서는 칵테일을 만드시고는 노래를 흥얼 거리며
컵을 닦는 나에게 한소리 하셨다.
"아버지 저도 이제 27살이예요. 주민등록증도 나오고
군대도 갔다 왔서요. 제가 좀 하고 싶은대로 좀 하게 해주세요"
나는 양옆에 흔들거리는 붉은색 머리카락을 살짝 보고
아버지에게 말대답을 하였다.
정말로 나는 이제 27살...장가가도 되는 나이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나의 염색된 머리를 보시면
다 뽑아 버린다고 하지 않나 하는 협박을 하시지만
나는 언제나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머리를 염색할 뿐이다.
"우리 가게에서는 머리 염색한 사람을 받아주지 않어"
윽...이제는 돈으로 협박을...
"하지만요 아버지 이렇게 돈도 조금 주고 사람 많은 이곳을
누가 올까요? 그리고 민영이도 붉은 머리카락이라고요. 안그래?"
나는 고개를 돌려 내 옆에서 같이 컵을 닦고 있는 동생을 보며 말했다.
나이는 이제 20살, 하지만 결코 얼굴은 10대 같은 이 귀여운
소년은 나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다.
귀여운 얼굴을 한 붉은색 머리카락에 갈색 눈동자를 가진
동양인이 아닌 소년.
어쨌든 아버지는 나의 말에 화가나신 듯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말씀을 꺼내셨다.
"민영이는 원래 빨간색이니 어쩔수 없잖어"
"민영이 검은색으로 염색시키...헉..."
나는 갑자기 날라오는 컵을 피하고는 잽싸게 바깥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런때 계속 바에 있으면 아마 장례 하나 치르 겠지....
"휴우......"
이 좁은 뒷골목은 넓은 도로보다는 약간 어두워서
내가 즐겨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가만히 쪼그려 앉아서 큰 도로를 바라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틈틈이 노란 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군복입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미군부대 근처이니 그럴 수밖에...
그리고는 담배에 불을 붙여 깊이 들이마셨다.
"형"
바로 뒤에서 밝은 목소리가 들리었다.
고개를 돌리자 민영이의 갈색 눈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 여긴 왜?"
"아빠가 나중에 이야기 할테니 빨리 오래"
"칫 알았어. 가자,가자"
나와 같은 아니 나처럼 염색한 머리가 아닌 진짜 붉은 색 머리카락을
가진 민영이는 내 말을 듣고는 앞장 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민영이의 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깊게 담배를 한모금 빤 뒤
바닥에 비벼끄고 자리를 일어섰다.
"응차, 어라? 눈?"
갑자기 설탕 같이 달콤해보이는 눈송이가 온 시야를 가득 메웠다.
"벌써 이렇게 추어졌나? 눈이 올정도로?"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하고 나서야 이제 내일이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9년하고 9개월.....그리고 9년하고 한달인가?"
하늘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복하려는 듯 소복소복 쌓이는
눈송이가 나에게는 옛 추억을 생각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민영이의 뒤를 한걸음 한걸음 따라가면서 나의 마음은 과거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씩 걸어나갔다.
내가 가장 슬펐던 18살 그리고 가장 기뻤던 18살로......
"자자 예전에 로마가 전쟁을 나가면 야누스 신전에는 문이 열렸지요.
그런데 그 야누스의 신전은 언제나 문이......"
언제나처럼 지겨운 시간이다.
"야, 야, 주영아"
"왜?"
선생님의 지루한 수업을 깨버린 뒤에서 들리는 작은 목소리에
나 역시 조용히 답하였다.
"오늘 도망가고 당구장에나 가지 않을래?"
"다..당구장? 당구장이란 말이지......흐음...."
당구장이라는 커다란 유혹은 나의 굳센 공부를 향한 집념을
흔들리기에는 충분했고 그런 나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내 뒤에 녀석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우리 당구계의 풍운아, 마세이의 신동 박주영님께서
이렇게 회피를 하면 우리 당구계는 누가 지키나?
좋아 좋아. 돈은 내가 낼께"
아부와 함께 돈도 필요 없다는 말에 공부를 하겠다는
굳건한 신념의 벽은 빨간공, 하얀공이 몰려와 남김없이 부셔버렸다.
"그럼 가자"
친구는 씨익 웃으며 나의 어깨를 툭툭치더니 엎드려 자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선생님의 수업 대신에 야간 자율학습 도망가고
당구장에 갈 생각만이 머리 속을 지배했다.
"똑똑"
"예 들어오세요"
갑자기 들려오는 앞문 여는 소리.. 그리고 들어오시는 담임선생님.
그리고 선생님은 들어오시자 마자 나를 찾았다.
나는 잘못한 것이 있는지 없는지 곰곰이 생각하며 복도로 나왔다.
흰머리가 희긋 희긋 보이는 선생님은 안경 뒤에 숨켜진
슬픈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셨다.
"주영아...."
"아...예?...예"
"너한테 너무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되어서 미안하지만....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너무나 쉽게 나왔다.
'주영아 밥먹고 학교 가야지'
'으악! 엄마 나 늦었어요. 그냥 매점에서 사먹을께요'
'자. 그럼 이 돈이라도 가지고 가렴'
'고맙습니다. 다녀올깨요'
'잘 다녀와라'
바로 11시간 전의 대화였다. 평소와는 다를것이 하나도 없는.....
분명히 어떠한 것도 없었다. 다른 이상한 어떤것도...
"선...선생님 농담이시지요? 어떻게 말도 안되게 그렇게
건강하셨는데....에이, 갑자기 그런 말씀을..."
분명히 입에서는 쾌할하게 말을 하고 있고 목소리에도 웃음기가
베어나왔다.
'맞어 분명히 농담일꺼야. 방금 내가 당구장 간다는 것을 들어서
놀리시려는 걸꺼야...'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안심을 하려고 하였지만 이미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고 눈에서는
눈물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너희......어머니께서 오늘 장에 가시다가 차에 치이셨단다"
선생님의 아마도 한치의 오차도 없을 사실 전달에 나는
두눈에 빗물처럼 눈물이 흘러 나왔다.
'안돼..안돼...거짓말이야...전부 거짓말이야..'
그리고 가방을 싸들고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심장이 마치 망치로 때리듯 가슴을 후려쳤고 옆구리는 심한
통증을 호소하였다.
이렇게 열심히 달려본 적이 없지만 지금 나에게는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였다.
'너무.....너무 느려......너무..... 좀만 더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나는 미친 듯이 되세기며 더욱 빨리 움직이려 노력했다.
조금만 더 빨리 팔을 흔드려해도 조금만 더 빨리 다리를
움직이려해도 마치 쳇바퀴에서 열심히 앞으로 달리는,
맛있는 도토리를 향해 제자리에서 끝없이 달리는 다람쥐처럼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집에는 가까워져갔다.
이렇게 일찍 집에가면 엄마가 왜 이렇게 일찍 왔냐고
한소리 하실게 뻔했다. 그러면 어떻게 말하지? 선생님이 장난을
치셔서 그랬다고 말해드릴까? 아니야 아니야..그냥 꼬옥
안아드려야지... 정말로 꼬옥 안아드려야지...
나는 그렇게 눈물로 얼굴에 물칠을 하며 정신없이 달렸다.
하지만 나의 상상은 여지 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집에 도착하자 회사에 계실 아버지는 나를 슬프게 맞이해주셨다.
3일 장을 마치고 여러 조문객과 함께 엄마를 곱게..아주 곱게
화장을 하고는 한강에 뿌렸다.
엄마가 장을 보러 가시려고 준비하신 수첩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갈비찜의 재료가 가장 위에 적혀 있어
이미 마른 눈물샘을 다시 한번 마르게 했다. 그리고 몇일이 지났다.
엄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빠와 나는 항상 빵과 계란으로
아침을 먹는 식생활로 바뀌어졌다.
아빠는 빵을 힘없이 먹고 있던 나를 보고는 무겁게 닫혀있던
입을 여셨다.
"주영아..."
아버지께서 나를 부르시는 것이 왠지 너무 조용했다.
텅비고 어두운 우리집과 너무도 어울렸다.
"예. 말씀하세요"
"내가...미안하지만...내가 너무 힘들구나...
그래서 오늘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 주영아...조금 쉬고 싶구나"
"예, 괜찮아요. 너무 걱정 마세요"
'전혀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예요.
다 제가 아침을 안먹고 학교가니깐 엄마가 걱정해서 맛있는 것
준비하시려고 하시다가 그렇게 된것이니까요...다 제 책임이예요'
항상 엄마는 숫기가 없으셔서 엄마말고
다른 여자와 손 한번 못잡으신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말씀하시고
또 그런 아버지를 놀리시기도 하셨다.
그러한 아버지에게 엄마가 없어진 지금 아무 의욕도 없어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더운 여름이 오고 또 낙엽이 지는 가을이 왔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거의 6개월이 지났다.
이렇게 살아오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인간은 정말로
망각의 동물이다.
만약에 엄마가 계속 돌아가셨다는 것이 처음처럼 남아있었다면
우리 가족은 전부 자살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인간을 과연 어떻게 생각해야하는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 가족 역시 조금씩 활기를 되찾아갔다.
그러는 도중 아버지는 재기의 발돋음을 하셨다.
"바(bar)?"
토스트를 야금야금 먹고 있을 때 아버지는 자신의 새로운 직장을
이야기 하셨다.
"그래 바"
"술집 말하는 거예요?"
"술집이라기 보다도...왜 있잖어 바랜더 있고 칵테일 마시는 곳"
"그것도 술집이기는 한데..."
"어짜피 회사에 다니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많고 또 예전에
대학 다닐때부터 회사 다니기 전까지 아르바이트도 하고
지금 꽤 준비도 되어있고 하니"
"아버지 좋을 대로 하세요. 그건 그렇게 그러면 조금 집안에
여유가 있겠네요"
"놀은 만큼 일해야지. 잘 부탁한다 주영아"
"저도요"
그리고 남은 주스를 한꺼번에 마신 후 가방을 들고 학교로 향했다.
몇일 후 아버지는 미군부대쪽 에서 바를 차리시고
그때 아침에 말한 것처럼 집안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일을 하시면서 엄마의 관한 생각을 조금이나마
덜하게 되었고 나 역시 다가오는 고등학교 3학년을 준비하며
슬픔의 샘에서 벗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런 3개월간에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고
나 역시 학교에서 적응을 해갔다.
"주영아, 주영아"
"왜?"
수업필기를 하던 중에 뒤에서 다시금 들려오는 소리에 대답을 하였다.
"이 추운 12월의 겨울, 이 삭막한 계절에 우리 함께 오늘 같은
토요일을 이용해 따뜻한 당구장에서 우리의 불타는 우정을
확인함으로 추위를 이겨내보지 않을래?"
친구의 빼어난 말솜씨에 나는 잠시 웃음을 입에 머금고는 답하였다.
"이런 추운 12월의 겨울에도 여기 나와 같은 불타는 젊음으로
공부에 전념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있기에 전혀 춥지않구나. 친구"
"아잉 그러지 말고"
"안돼. 그리고 오늘 수업 끝나고 아빠가 일하시는 일터로 오라는
호출이 있으셔서 말이야"
"우욱....친구의 우정이 여기 이곳에서 이렇게 흔들리는구나"
그리고 나는 냉정하게 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수업필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아버지의 바로 향했다.
미군부대가 있는 이곳의 땅을 밟으며 나는 참 구경거리가 많다고
생각했다.
90년대에 들어선지 어인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세계화니 뭐니
하지만 아직 외국인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은 곳곳에 수많은 외국인....
조금은 긴장한 체로 두세 번 가본 적이 있는
아버지의 바 'Dear Heaven'으로 향했다.
엄마를 생각해서 지은 이름이지만 이것은 나와 아빠만이
아는 사실이고 다른 사람은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마약파는곳을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뭐 그런 것 정도는 상관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직 3시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에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고
오직 아버지만이 나를 반겨주셨다.
"어서와라"
하얀 와이셔츠와 검은색 조끼와 바지를 입으신
아버지는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겨주셨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볼수 없었던 환한 미소로..
"예 근데 무슨 일이예요?"
"그..그게 말이다, 아! 먼저 밥이라도 먹자"
"아, 그렇게 해요"
아버지는 뭔가 당황한 듯 하면서 이것저것 꺼내시며
간단한 식사를 준비하셨다.
햄버그를 만드신 아버지는 내가 밥먹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시고는
한 말씀하셨다.
"주영아 머리가 긴 것 같은데 오늘 짜르지 않을래?"
"머리요?"
왼손을 머리로 올려 쓰다듬어 보았다.
그렇게 긴가?
"그럼 그렇게 하지요"
나의 대답에 아버지는 약간의 미소를 띄우며
"그래 밥먹고 가자꾸나"
밥을 먹고 도착한 곳은 상당히 커다란 미용실이었다.
이미 여러 사람이 자리에 앉아있었고 우리가 들어오자
한 아주머니가 다가오셨다.
"어서 오....아....안녕하셨어요"
"아..예.."
아버지는 쑥쓰러우신 듯 머리를 긁적이셨고 나는
그 아주머니가 누군가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바로 엄마.......
"아...아버지"
"아...인사드려라 이 가게 주인이신 분이야"
"그..그래요? 안녕하세요"
나는 조금 긴장된 눈으로 그 아줌마를 바라보았다.
그러한 나를 귀엽다는 눈으로 바라보신 아줌마는
나를 의자에 앉히고는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한 반정도 잘랐을 때였을까?
뒤에서 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엄마, 나 놀다 올께요"
그 소리에 살며시 눈을 감고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던
나는 거울을 통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붉은 색 머리카락을 가진 10살정도의 소년을...
"그래, 차 조심하고 빨리 갔다와."
"예, 엄마"
모자(母子)관계? 나는 조금 의외라는 눈으로 거울을 통해
머리를 잘라주시는 아줌마를 바라보자 그러한 나를 보시고는
한번 씨익 웃어주시고 다시 머리를 잘라주시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얕은 잠에 빠져들었다.
조그마한 내가 보였다. 나는 엄마의 무릎위에 앉아 책을 읽었고
그러한 나에게 엄마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하지만....하지만...엄마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단지 뿌연 외형만 가진 엄마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더욱 자세히 보기위해서 다가가려 했지만 다가갈수 없었다.
조그마한 나만이 엄마의 무릎에 앉아 책을 읽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만....조금만....더.....'
조금씩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엄마의 얼굴이
다 떠올랐을 때 엄마의 얼굴은 미용실에서 나의 머리를 잘라주시는
아줌마의 얼굴로 보여졌다.
닮기는 했어도 내가 알고 있는 엄마의 얼굴은 아니었다.
그리고는 나의 눈이 떠졌다.
"덥니? 갑자기 왜 이렇게 땀을 흘리고 그래?"
뒤에서 지켜보시던 아버지는 담담한 말투로 나에게 물었다.
아버지에 말씀에 나는 나의 꿈이 들킨 것만 같아 쑥쓰러워지며 말했다.
"아...아무 것도 아니예요....저 먼저 집에 갈께요.
그리고 머리 잘라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황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당황하는 아버지를 뒤로 한 체.....
집에가는 버스 안에서도 나는 엄마의 얼굴을 떠올릴려고
노력을 했지만 엄마의 얼굴에 계속 해서 아줌마의 얼굴이 겹쳤다.
'아무리 시간이 지났더라도....아니지...겨우 8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엄마의 얼굴을 잊는 바보는 아니야'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계속해서 엄마의 얼굴을 그리려 노력했다.
그리고 버스는 집으로 향했다.
이미 하늘은 검게 물들어져가고 있고 그러한 어두운 하늘을
밝히기 위해 주위 여러집들은 불을 켜고 저녁을 맞이 했지만
오직 우리집만이 그러한 어둠과 동화되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슬픈 느낌이 몸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집을 열고 들어가 불을 켜고 TV도 켜고
볼륨도 높였다.
마치 바깥에 '우리집에도 사람이 살고 있어요' 라고 알리듯
그렇게 TV볼륨을 올렸다.
그리고 바깥에도 들을수 있을 정도로 볼륨을 높였을 무렵
나는 TV위에 올려놓은 가족 사진을 바라보았다.
가장 최후의 엄마의 모습이 남겨진 작은 사진........
입학식에서 찍은 이 사진 속에서는 아버지와 엄마는 활짝 웃고 있었다.
나만 뾰로룽한 체 왜 이 나이에 부모님과 함께 가야하는 얼굴이냐고....
나는 잠시 입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생각이 났다.
비슷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차이는 있다.
속으로 다행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전에는....전에는 이러지 않았었다.
엄마의 얼굴만 보아도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뚝 떨어졌는데......
지금은 왠지 담담한, 그러한 느낌이다.
역시.. 변해버린 것일까?
갑자기 내 자신이 싫어졌다.
소파에 누어서 고개를 파 묻었다.
그때 얼굴에 눈물 한방울이 떨어졌다.
그 눈물은 엄마를 그리워해서 흘리는 눈물인지 아니면
내 자신이 못나서 우는 눈물인지는 구분하지 못했다.
.
.
.
"주영아, 주영아, 그렇게 자고있니? 잘려면 가서 침대에서 자"
"아....10...10....분만...요....."
"뭔소리 하는 거야, 가서 잘려면 방에서 자!"
"아! 아! 예,예"
갑자기 들리는 큰소리에 나는 벌떡 일어나서 방으로 향했다.
근데..방에서 자라고?
나는 황급히 시계를 쳐다 보았다.
지금 시간은 10시 30분 아직 밤?
아...나는 소파에서 잤구나...그렇지.......나도 모르게...
"그런데 가게는요?"
"아, 오늘 하루 쉬기로 했다"
"그래요?"
"그래. 그건 그렇고 밥 먹을래?"
"예"
갑자기 배에서 들리는 기이한 소리에 나는 자다 일어나
식탁에 앉아 얌전히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식탁에 올라오는 것은 식빵 위에 올려진
계란 프라이와 딸기잼.
나는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은 후 빵을 먹기 시작했다.
빵을 거의 다 먹었을 무렵 가만히 지켜보시던 아버지는 입을 여셨다.
"주영아"
"아, 예?"
"오늘 너에게 할말이 있구나..."
"뭔데요? 말씀해보세요?"
"나말이다...재혼하기로 했다"
"예에?"
이제는 쪼가리만 남겨진 작은 빵조각이 식탁으로 떨어졌다.
"그...미용실의 있잖니,머리 잘라주던 사람...그 사람이랑 말이다..."
나는 당황한 체로 아버지의 말씀을 계속해서 들었다.
원래 그 아줌마는 미군인과 결혼하기로 했는데
미군인이 결혼하기 직전에 병으로 죽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남은 것은 그 아줌마의 아들뿐...
그래서 그 아줌마의 아들이 머리가 그렇게 붉은 색이었던거구나....
어쨌거나 나는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언젠가는 재혼하실 날이 오리라 믿었다.
하지만 너무 이른 것이 아닌가?
그렇게 말씀 하시고는 나의 답변을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에게 실망을 드리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예. 괜찮아요. 저도 이제는 제대로 된 밥이 먹고 싶었거든요"
나는 억지로라도 환한 웃음을 드리며 답변했다.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 저 먼저 잘께요. 아까 자다 일어났더니
아직도 피곤해서요"
크게 기지개를 켜며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나는 엄마 꿈을 꾸었다. 그 엄마가 진짜 내 엄마인지 아니면
그 아줌마인지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시 아침이 밝았다.
아버지는 연신 기분이 좋으신지 싱글거리시며 한편으로는
조금 쑥쓰러워 하는 모습이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기분을 이해하는 척하며 나는 단지 아들이니깐
아버지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
재혼하시는 아버지...
조금 이른 것 같지만 곧 하신다고 하시니 조금만더
나는 남은 시간에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
크리스마스가 이제는 몇일 안남았지만 학교에서는 이제 곧 3학년으로
올라간다고 이번 겨울 방학을 매번 수업의 반복이었다.
그러한 수업이 드디어 끝나고 몇일이 안되는 짧은 방학이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곧장 집에 오는 길에 하늘을 바라보았다.
입안에서 나오는 입김사이로 보이는 붉디 붉은 하늘에는
구름 한점 껴있지 않은 맑은 날씨였다.
전혀 내 마음 속과는 정반대의 하늘...
나는 다시 답답함을 느꼈다.
그리고 난 올해에 들어서 단 한번도 눈을 맞어본 적이 없는
아스팔트 도로를 밟으며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이 멀리서 보일 때 평소와는 다른 우리집을 발견했다.
이 시간에는 아무도 없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집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다.
나는 당황해하며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나의 새엄마 되실 분과 그의 아들...
"주영아, 어서 와라."
갑자기 나를 보고 친한 척 하시는 그분을 보고 나는 황급히
내 방으로 들어갔다.
"주...주영아..."
그분의 말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이렇게 멋대로 흘러가니 너무나 혼란스러워졌다.
"이건...이건 아니야...."
도저히 엄마 사진을 옆에 두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너무 울어서 그런가? 어젯밤에 사진을 껴안은 체 밤새 울면서
잠이 들었는지 거울을 바라보자 눈이 팅팅 부은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늘부터 방학인지라 오랜만에 해가 저 높게 떴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혼자 있고 싶었다. 그때 문뜩 생각이 떠올랐다.
"여행...떠나볼까?"
집 안에는 바의 문을 닫고 집에 오셔서 주무시는 아빠만 계셨다.
나는 얼마 있지 않은 돈을 챙기고 몇몇 옷가지를 챙긴 뒤 집을 나섰다.
여행 갔다온다는 짧은 글을 남기고...
그리고는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날 오후 나는 다시 돌아왔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가려니 너무나 쑥쓰러워서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아버지 얼굴보기도 죄송했고 새엄마의 얼굴도 보기 너무 미안했다.
왠지 나 혼자 고집을 피운 것 같았다.
솔직히 아버지가 더욱 힘드셨을 것이다.
왜 나는...그렇게 바보처럼 행동해야 했던 것인지....
분명히 아버지에게 재혼하지 말라고 했으면 안하셨을 것이다.
그냥 아버지만을 위한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허락하고
그리고 새엄마가 들어오니 싫다고 집을 나간
내가 너무나 바보스러웠다.
나는 아버지의 바로 가서 사과하기로 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가게문을 막 여셨겠지.
그리고 나는 미군부대 근처에 dear heaven으로 갔다.
막상 들어가려 했지만 겁이나서 바 근처의 뒷골목에서 서성였다.
아버지가 분명히 화가 많이 나셨을꺼야....
아니, 그것말고 내가 가서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하는 것인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문득 뒤에서 무언가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자 어떤 꼬마 아이가 지나가는 것을 느꼈지만
그냥 아무 일도 아닌 것이기에 다시 생각에 빠졌다.
"눈?"
어느덧 하늘에서는 한송이 한송이의 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올들어 처음 내리는 눈은 대지에 따뜻한 이불을 깔아주었고
사람들은 다들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그때 다시 뒤에서 바사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떤 소리가 흘러나왔다.
"혀...형......."
나는 깜짝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 돌아보니 한 아이가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어설프게 머리에 검은색 염색약이 이곳저곳에 덕지덕지 묻은
내 동생될 아이가...
"형.....형.....미안해.....나 때문에 엄마 미워하지 말아줘....
나 이제부터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다닐테니깐
이제 엄마 미워하지 말아줘.....흑흑..."
어이 없이 자신때문이라 울고 있는 아이.
너무나도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아이의 눈에서 비춰진 나는 겨우 머리카락 때문에 가출한 바보처럼
보인것인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 때문에 어린 아이는 얼마나 자신을 미워했을까?
나는 살며시 껴안아 주었다.
"너 때문이 아니야.....다 내가 바보라서 그런거야...내가..."
그리고 나는 잠시 후 미용실에 들어갔다.
"엄마, 다녀왔습니다."
"주...주영아"
내가 돌아온 것에 돌아온 것에 놀란 것일까?
아니면 엄마라고 처음 불러준 것에 놀란 것일까?
나로써는 알길이 없었다.
단지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어느덧 시간이 흘러 집에 가려고 할 때, 생각해보니
이제 내 동생 될 아이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물어보니 이름을 민영이로 바꿨다고 한다.
집에 가니 민영이가 있었다.
민영이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했다.
"혀..형아"
그러한 민영이를 보고 무릎 위에 앉혀서는 입을 열었다.
"난 절대로 너를 미워하지 않아. 넌 내 하나밖에 없는 동생인 걸."
그리고 나는 그렇게 엄마와 동생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는 아빠에게 귀를 잡히며 엄마의 미용실에
끌려갔다.
"이녀석 머리좀 빡빡 밀어주구려"
"아야아야 그만 좀 해요. 아빠."
"이놈이 어디서 말대꾸야 넌 가출한 다음에 기껏 돌아와서
머리를 그딴 식으로 염색해?"
"가출한게 아니라니까요. 여행이에요. 여행."
"조용히하고 어서 앉어"
엄마는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웃음을 참지 못하셨다.
결국에는 난 미용실 의자에 앉힌 체로 머리가 빡빡 밀렸다.
면도기가 지나갈 때마다 떨어지는 붉은색 머리카락...
그렇게 나는 민영이에 대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하루만에 끝이 났다.
마음만을 담겨둔 체.........
"퍽"
"앗 차가워"
갑자기 정신을 차리게 만든 것은 내 얼굴 앞에 다가온 작은 눈덩이.
"거봐 형이 그렇게 다른 생각하니깐 눈 맞는 거라구"
"너어.."
나는 갑자기 놀라게 되어서 복수하듯이 눈덩이를 모아서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영이는 재빠르게 가게로 들어갔다.
하늘에는 아직도 눈이 내린다.
"엄마, 저와 아빠는 영원히 엄마를 잊지 않을 거예요"
얼굴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나도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dear heaven이라 써있는 간판에도 눈이 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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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붉은머리 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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