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면접 가던 날
윤여희
남편이 입사 면접을 보러 서울에 가는 날이다. 남편이 나가자 그만 널브러지고 말았다. 직장 상사가 출장간 느낌이랄까? 남편은 한 회사에서 삼십 년 근무하다 퇴직한 후 몇 회사를 더 다니다 퇴직한 지 일 년이 넘었다. 식사를 하고 나면 얼른 일어나 빈 그릇을 싱크대에 넣어주고 과일 준비할까 커피 내려줄까 묻는 자상한 남편이다. 재활용 쓰레기도 처리 해주고 장도 열심히 봐다주는 엉덩이 가벼운 남편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24시간을 함께 생활하는 것이 나도 모르게 신경이 쓰였나보다. 사십여년간 단하루도 어긋남 없이 월급을 갖다준 사람이다. “이제 쉬면서 악기를 배우면 어떨까요? 합창단에 가입해도 좋을 것 같은데요. 카메라를 한 대 살까요?“ 나의 모든 제안에 고개를 흔든다. 좋아하는 일은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가족의 생존을 위해 일만 해온 사람이라서 인생에 플랜 B가 없다. 이제라도 여유롭게 살면 좋으련만 참 딱한 사람이다. 지나가는 말처럼 “삼 년만 더 일하고 싶은데 지난번 오라는 회사에 갈 걸 그랬나?”라며 일에 대한 열망을 표현한다. 주도적으로 일하고 흡족한 결과가 나와야 행복해하는 남편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헤드헌터로부터 낯선 회사의 면접 일정을 통보 받았다. 이것저것 생각할 일이 많아진 남편은 말이 없어진다. 신경이 예민해진다. 분위기를 띄워 보려는 요량으로 실없는 농담을 해본다. 평생 큰 소리 한번 낸 적이 없는 남자이지만 마음으로 내게 눈을 흘긴다. 마음이 뜨끔하다.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다. 더운 날씨이지만 목감기라도 걸리까봐 에어컨 사용도 자제하고 식사도 정성껏 차린다. 남편의 기분을 살피며 그룹에 대한 정보도 검색해서 슬쩍 밀어주고 도움 될만한 서적도 안내해준다. 정장으로 준비할지 캐주얼로 준비할지 물어본다. 취업에 대한 결정은 본인의 선택이지만 불합격은 자존감에 큰 상처가 되므로 준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취업할 시기에는 취업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두 딸이 밥벌이를 시작하여 이제 마음고생은 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일흔 살을 바라보는 남편 취업 뒷바라지를 해야하다니. 대학 졸업반인 딸은 여기저기 구인 광고를 검색해서 9월에 입사 원서를 내고 12월에 발표할 때까지 마음을 졸였었다. 서류 통과를 하면 실무 면접, 그룹면접, 임원 면접까지 산 넘어 산이었다. 예고되지않은 면접 일정은 당황스러웠다. 더구나 다른 회사와 면접일이 같은 날짜이면 어디로 가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그래도 신입사원은 자신이 가고 싶은 회사를 선택하고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준비하면 된다. 그리고 간절하게 기다리던 합격 통지를 받으면 연수시간에 업무를 익히고 회사의 지시를 따르면 된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사전 정보 없는 회사에서 연락이 온다. 경력 많은 남편의 취업 준비는 신입사원 취업 준비와는 비교되지 않을만큼 긴장된다. 면접 방법도 다양하다. 회사 대표와 식사를 하거나 때로는 골프장에서 면접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심층 면접을 어렵게 통과하면 진짜 치열한 협상이 남아있다. 직책과 연봉에 대한 줄달리기가 시작된다. 중국회사로 취업할 때는 스카웃 비용과 연봉, 집과 차량 제공 그리고 출장시 비행기 좌석을 비즈니스석으로 할 것인지 이코노미석으로 할 것인지까지도 통역을 통해 오랜 시간 동안 협상하느라 진이 빠졌었다.
남편과 대학 시절부터 교제한 나는 첫 번째 직장부터 남편 취업을 지켜보았다. 친구들 남편은 모두 한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상태다. 지난번 취업시에는 남편의 다섯 번째 취업 턱이라며 친구들에게 밥을 사기도 했다.
남편이 퇴직한 후 나는 친구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남편과 한 몸처럼 지내다보니 친구들과 함께 다니던 여행을 하기도 어려워졌다. 모임에서 운전기사 역할을 하는 내가 친구들은 아쉬웠는지 내 남편 취업 시키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야한다고 하여 모두 웃었다.
제주 집과 청주 집을 오가며 은퇴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데 취업이 되면 나는 또 어느 지역으로 가게 될까? 서울로 중국으로 이것저것 챙겨 남편을 찾아다녔었다. 보따리 인생이 다시 시작되려나? 취업을 기대해야 하는지 그냥 이대로 지내기를 희망해야 하는지 마음이 갈피를 잡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