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업과(因緣業果)는 톱니바퀴 물림과 같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인과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인과를 알아라. 인과를 두려워하라. 인과응보를 믿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인과라는 말을 깊이 새겨서 부끄럽지 않고 후회 없는 인생이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인과(因果)는 원인과 결과를 말합니다.
어떠한 사물이나 일에도 일어난 원인이 있으며, 그 원인에 따라 결과가 생깁니다.
즉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고 하는 것이 인과의 이치입니다.
사람의 행위에 따라 좋은 업인(業因)을 뿌리면 반드시 좋은 열매가 맺어지고,
나쁜 업인에는 악의 과보(果報)가 따릅니다.
이것을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라고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선인낙과(善因樂果) 악인고과(惡因苦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속담에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하였으며,
덕은 닦는 대로 가고 죄는 지은 대로 간다고도 하고, 고운 일을 하면 고운 밥을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화엄경』에 보면 문수보살이 보수보살에게 묻습니다.
“불자여, 사람은 똑같이 흙, 물, 불기운, 바람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다 같이 나와 내 것이 없는 터인데,
어찌하여 사람은 어떤 사람은 괴로움을 받고, 어떤 사람은 즐거움을 받으며, 어떤 사람은 단정하고,
어떤 사람은 추악하며, 어떤 사람은 현세에서 과보(果報)를 받고,
어떤 사람은 후세에 가서야 과보(果報)를 받게 되는 것입니까?”
이에 보수보살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그 행위를 따라서 과보(果報)의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맑은 거울이 그 대하는 사물의 모양에 따라 비추는 모습이 각기 다른 것과 같습니다.
업의 본성(本性)도 이와 같아 밭에 뿌려진 씨가 각기 스스로 느끼지 못하지만, 저절로 싹을 틔우는 것과 같으며,
환술사(幻術師)가 사거리에서 여러 몸을 나타내는 것과도 같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열반경』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선악의 보(報)는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과거, 현재, 미래 삼세의 인과가 휘돌아 없어지는 일이 없으니
생을 헛되이 보낸다면 후회해도 소용없으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인과를 부정하면 불자가 아닙니다.
인과를 부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만을 그르치는 것이 아니라
남까지 악으로 끌고 가므로 큰 죄악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과는 인연업과(因緣業果)를 줄인 말입니다.
인(因)은 원인 즉 씨앗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연(緣)은 연지(緣地) 곧 씨앗이 뿌려지는 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밭이 없으면 자랄 수가 없습니다.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토양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연(緣)입니다.
불가에서는 인연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설법명안론』에는 한 그루의 나무 그늘에 쉬고
한 하천의 물을 쓰는 것도 전생으로부터의 인연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속담에서는 치맛자락만 스쳐도 보통 인연이 아니라고 하면서 인연의 소중함을 강조합니다.
씨앗이 촉이 트고 잘 자라려면 토양이 좋아야 하듯이,
연줄이 좋아야 좋은 원인이 성숙하여 훌륭한 열매를 맺고 빛을 낼 수가 있습니다.
모든 현상은 원인과 조건에 의해 상호관계를 맺음으로써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 어떤 현상도 독립적이며 자존적인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인연을 중시해서 사소한 인연도 예사롭게 여기지 마시고 굳게 맺어서 승화시켜 보시기 바랍니다.
업(業)은 밭에 뿌린 씨앗이 결실을 볼 때까지 가꾸는 행위와 같습니다.
그 행위가 선이냐, 악이냐에 따라 선과(善果)가 될 수도 있고 악과(惡果)가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인과 연과 업이 쌓이면 결과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인과는 연과 업의 과정을 잘 거쳐야만 좋은 결과를 맺게 됩니다.
사람들은 인과 과만 따지지 연과 업은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과정이 옳아야 과도 제대로 갖출 수가 있습니다.
인과의 이치는 엄연해서 조금도 흩어지지 않는 것을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합니다.
인과의 법칙은 어길 수 없습니다. 인과는 철칙입니다.
지금부터 80여 년 전에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어느 마을에 이(李)씨 성을 가진 갑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감나무가 80주가 넘어서 감이 매우 흔했는데 그의 어머니는 너무나 인정이 없고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이라
감이 물러서 떨어지는 것이 있어도 누구 하나 주워가지 못하게 하고 밤낮으로 지켰습니다.
나이 70세가 넘어서도 꼭꼭 쌀독을 지키며 며느리에게 쌀독 근처에 가지 못하게 하고,
또 돈이 생겨도 아들이 참견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저 할머니는 재물밖에 모르는 할머니라고 하였답니다.
할머니가 나이가 들어 죽자, 아들은 좋은 묘(墓)터를 구하지 못하여
우선 감나무 밑에 가매장(假埋葬)을 해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죽은 지 3개월이 좀 넘어서 며느리가 밥을 지으려고 쌀독 뚜껑을 열어보니
그 속에 한 자쯤 되는 뱀이 있었습니다.
기겁해서 쫓아내고 쌀을 꺼내어 밥을 지었습니다.
지은 밥을 빈소에 올리려고 하니 얼마 전에 쌀독에서 보았던 그 뱀이 혼백(魂魄) 상자 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 부자가 상식(上食)을 하고 곧 묘소로 가보니
묘소에 조그마한 구멍이 하나 뚫려 있는데 그 뱀이 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릴 때 들은 말 중에, 죽은 혼령도 팔도 구경을 하면 좋은 곳에 간다는 것이 기억났습니다.
어느 날 이 부자는 상자 하나를 잘 마련하여 뱀 구멍 앞에 두고,
어머님 뱀이 되었거든 이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제발 들어가십시오. 하였습니다.
얼마 뒤에 뱀이 나와 곧 상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부자는 이 상자를 들고 팔도를 유람하였습니다.
금강산이 좋다 해서 금강산을 유람시키던 중 유점사에 이르렀습니다.
유점사 주지 스님께 말씀드리니 천도를 해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49일간 기도를 지극히 하여 49재를 올려드리니 그만 그 속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며칠 후 이 부자의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더니,
내가 살아서 욕심을 많이 내고 남에게 베풀 줄 모르고 좋은 일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못하여 뱀의 몸을 받았다.
그러나 너의 그 정성과 유점사 스님의 법력으로 부처님께서 인도하셔서
좋은 곳에 태어나니 그렇게 알고 안심하여라. 하였습니다.
이 부자는 그제야 어머니가 천도 된 줄 알고 집에 돌아와 불사(佛事)와 선행(善行)으로 여생을 바쳤다고 합니다.
이렇듯 어김이 없는 것이 인과의 법칙입니다.
『법구경(法句經)』에서 말씀하시기를 설사 백천 겁을 지날지라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아니하고,
인연이 모여 만날 때에는 많은 과보(果報)를 돌려받느니라. 하였습니다.
인과는 바로 오는 수도 있지만, 몇 달 후 또는 몇 년 후에 나타나기도 하고,
심지어는 몇 생후에 또는 몇 겁 후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당장 과보(果報)를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세세생생 언젠가는 반드시 응보가 있게 될 것입니다.
살다 보면 흔히 신세타령 팔자타령을 합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이놈의 신세, 개보다 못한 내 신세야! 하며 땅을 치고 대성통곡하기도 합니다.
팔자나 신세는 자기가 지은 인과의 응보입니다. 인과는 누구에 의해 받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업(業)을 만들어서 얻는 것이고,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받는 것입니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요 자작자수(自作自受)한 것이 바로 오늘의 나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 가지 업은 스스로 지어서 받는다고 하시면서.
만약 전생의 인과를 묻는 자가 있거든 동서고금(東西古今)의 현인달사(賢人達士)를 보라.
그들은 전생에 복을 지었기 때문에 현인이 되고 달사(達士)가 되었느니라. 하셨습니다.
남보다 성공하는 것도, 출세하는 것도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한 복을 짓고 덕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도 세세생생 원력을 세워 남다른 보살행을 하였기에 부처가 될 수 있었습니다.
- 무여 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