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9- 경남 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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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땅과 불. 바람의 화음 경남 합천 굽이굽이 산길마다 山寺의 숨결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경상도에는 바위로 된 산봉우리가 불꽃처럼 솟아있는 형태의 산이 없다. 오직 합천의 가야산만이 바위봉우리가 줄줄이 이어져 마치 불꽃이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듯하여 지극히 높고 수려하다” 라고 하였다. 명산에는 풍수 지리적으로 기가 세어 명당에 유명한 사찰이 있다고 한다. 삼라만상이 모두 잠들어 있는 새벽에 산사로 가는 길은 안개와 만나는 행복한 들판의 어울림이 있어 아름답다.
가야산에 안긴 해인사… 약수암 국일암 등 15개 암자 차례로 반기고 일주문·봉황문·해탈문 지나니 국내 최초·최고 비로자나 불상 미소 매화산 중턱 청량사엔 신라말기 석조여래좌상·삼층석탑이 그대로 [해인사 가는 길] 계곡 중간 지점에 만들어 놓은 현대식 석불과 석탑은 홍류동 경관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계곡을 거슬러 해인사로 오르는 길은 처음에는 필시 오솔길이었을 것이나. 자동차 도로를 만들면서 아스팔트길로 만들어 걸어가는 사람들의 오솔길은 아예 없애 버렸다. 그러나 주차장과 매표소 부근에서 해인사 경내로 이어지는 도로는 보행자와 자동차를 분리하여 걸어가는 사람들이 풋풋한 산죽 향기와 정자에서 쉬어 가는 즐거움을 느끼도록 배려한 해인사 스님들의 넉넉한 마음이 묻어난다.
[해인사] 보일 듯 말 듯 돌아가는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약수암. 국일암. 지족암. 희랑대. 백련암 등이 손짓을 한다. 일주문 앞을 지나쳐서 석종형 모양에 홍제교라고 써놓은 다리를 건너면 유서 깊은 홍제암이다. 홍제암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이곳에 은거하던 사명대사가 광해군 2년에 속세 나이 예순일곱으로 입적하였는데. 광해군은 스님의 열반을 애도하여 자통홍제존자(慈統弘濟尊者)라는 익호를 내리고 이곳에 스님의 비를 세웠다. 그 뒤로부터 스님의 익호를 따라 이 암자를 홍제암이라 하였고. 뒤편 언덕배기에는 평범하면서 명문이 없는 사명대사의 석종형 부도가 있다. 발걸음을 옮겨 해인사 본사로 향했다. 일주문 입구에는 예전에는 연못이 있어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무지개를 그리곤 했는데 지금은 없어져 버려 아쉽다. 해인사 일주문의 정면에 걸려있는 伽倻山海印寺(가야산해인사)의 편액은 일제 강점기에 글씨로 꽤나 이름을 날렸던 근대기의 서예가였던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이 쓴 것이다. 일주문을 지나 쭉 뻗은 전나무가 도열하듯이 서있는 흙 길을 잠시 걸으면 두 번째 문인 봉황문이다. 이 문은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어 천왕문이라고도 불린다. 봉황문을 나서면 제3문인 해탈문이다. 일반 사찰의 불이문에 해당하는 곳으로 완전한 불법의 세계는 주·객. 세간과 출세간. 선과 악. 옳고 그름. 나고 죽음 등 대립하는 상대적인 것들을 초탈한 불이법문의 세계로 나아감을 뜻한다. 지난 6월 법보전에 있는 쌍둥이 비로자나 불상의 개금불사를 위해 복장유물을 개봉하였다. 확인해 본 결과 9세기 통일신라 목조불상으로 서기 883년 제작된 국내 최초. 최고 비로자나불상이다. 보경당에서는 내달 8일까지 100일 친견 대법회가 열리고 있어 옻칠을 한 비로자나 불상의 은은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볼 수 있다. 종각에서는 젊은 스님이 웅장한 법고와 범종을 쳐서 사시(중식)를 알리고 있었다. 절 집에서 식사를 해보는 것도 일반인에게는 특별한 체험이다. 쌀밥과 미역국. 호박나물. 콩나물. 총각김치로 차려놓은 식사는 정갈하고 담백하다. 스님 50인분과 일반신도 100명분의 식사를 준비한다는 해인사의 공양간 출입문에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출입을 금지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돌계단을 따라 대적광전을 뒤로 하고 고려 팔만대장경이 보존되고 있는 장경판전으로 갔다. 관리를 맡고 있는 분에게 화재 예방에 대한 시설을 물어보니 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 했다. 팔만대장경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다. 6·25당시 폭격으로 한 줌의 재로 사라질 뻔했던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두 군인 장지량 중령과 김영환 대령이 있었다. 당시의 상황으로는 어려운 폭격 명령을 거부하고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두 분의 이름이 팔만대장경과 함께 우리 모두에게 오래도록 기억되었으면 한다.
[청량사] 신라 말기 옛 절의 자취는 찾아보기 어렵고 여러 해 불사를 하여 깨끗함이 살아있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대웅전에는 손 모양이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석조여래좌상이 완전한 모습으로 있고. 앞마당에 있는 삼층석탑과 석등이 엄연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석등 옆 요사채 마당에 있는 주렁주렁 매달린 붉은 홍시를 대나무 장대로 따먹어도 스님은 온화한 미소만 보낸다. 지금은 아이들 군것질거리도 안 되는 홍시를 들고 먼 비슬산이 가깝게 다가오는 툭 트인 풍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답답한 마음까지 툭 트여지는 것 같다.
[월광사터 동서삼층석탑]
[합천 박물관]
[맛집] 입력 : 2005-11-16 / 수정 : 2005-11-16 오후 2:54: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