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5월13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 (홍보 주일)]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1-11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1,17-23
복음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5-20ㄴ
◈ [서울] 주님 승천 대축일 (홍보 주일)
2018년 나해 5월13일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아이에게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곳은 어디일까요? 엄마의 태중에
있을 때입니다. 엄마의 태중에서 아이는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놀고 싶으면 놀 수 있습니다. 양수는 아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해줍니다. 탯줄은 아이에게 먹을 것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아이는 또 다른 세상으로 나와야 합니다.
세상에 나온 아이는 중력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엄마와 연결된
탯줄을 끊고 스스로 숨을 쉬면서 홀로 서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신학생에게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곳은 신학교입니다. 같은 뜻을 가진
동료들이 있습니다. 신학을 배우면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양심성찰과 기도를 통해서 영적인 성장을 하게
됩니다. 돌아보면 제게도 신학교의 생활이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모판에 있는 벼는 때가 되면 논으로 나와야 하듯이 신학생들은
때가 되면 세상으로 나와야 합니다. 벼는 뜨거운 여름의 태양을
견디어내고, 험한 비바람을 견디어내야만 가을에 알찬 결실을
맺듯이, 세상으로 나온 사제들도 많은 유혹과 갈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만을 믿으며 주어진 소명을 다한다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제자들에게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것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지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표징을 보여주시고,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고,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고기를 주고,
빵을 나누어 주는 것 대신에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빵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제자들은 두렵고 떨리지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홀로 설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표징을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이웃을 위해서 십자가를 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홀로 섰던 제자들은 이스라엘이라는
모판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기적을 행하였고, 복음을 전하였고,
박해를 견디어냈고,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복음은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로 전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홀로 설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얻음에서 기쁨을 얻고, 현명한 사람은 버림에서
기쁨을 얻는다.” 저는 이 글을 고속도로의 화장실에서 읽었습니다.
화장실에 가는 사람은 좀 더 많이 버리기를 바랄 것입니다. 많이
비울수록 기쁨이 커지는 곳이 화장실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우리의
삶에서 더 많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많은 전쟁과 폭력은 더 얻으려는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소중한 생명을 죽이고, 애써
쌓아온 신뢰와 우정을 깨버렸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2티모 4, 7~8) 신앙인으로서 최선을
다하였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았음을 고백하는 이야기입니다. 과연
저는 사제로서, 신앙인으로서 바오로 사도처럼 이야길 할 수 있을지
물어봅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부끄러움이 가득한 삶입니다.
오늘은 ‘예수 승천 대축일’입니다. 비록 삶의 길이는 짧았지만 달릴
길을 다 달리신 예수님이십니다. 이어 달리기 선수처럼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로운 사명을 맡겨 주십니다. 예수님의
수난, 부활 그리고 승천은 제자들에게는 추억 만들기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추억을 만들어야 하는지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저 하늘만 바라보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문하는 추억은 3가지입니다.
첫째는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분열과 갈등을 넘어, 시기와
질투를 넘어서, 두려움과 걱정을 넘어서 참된 기쁨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참된 기쁨과 평화를 주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복음의 기쁨을 추억으로 만들어 가라고 하십니다.
둘째는 마귀를 쫓아내라고 하십니다. 마귀는 집요하게 우리들의
영혼을 찾아옵니다. 때로는 달콤한 유혹으로 우리를 끌어당깁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은 마귀가 자주 사용하는 미끼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게으름으로 유혹하기도 하며, 탐욕과 욕정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셋째는 병자들을 고쳐주라고 합니다. 육신의 병은 치유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교만의 병에 걸린 사람, 분노의 병에
걸린 사람, 시기의 병에 걸린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영혼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혼이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는 것이 육신의 병을 고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신념과 희망은
우리를 미래라는 항구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이란
‘KTX’를 타거나 ‘아시아나’를 타고 가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현재를
옹골차게 딛고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승천은
좌절과 두려움에서 희망과 신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과 함께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가야하겠습니다. 나의
삶의 자리에서 변화된 삶을 시작하는 것이 바로 ‘승천’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주님 승천과 서번트 리더십|전삼용 요셉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5월13일 주님 승천 대축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마르코 16,15-20ㄴ
주님 승천과 서번트 리더십
“유재석이 잘 되는 이유, 탈(脫)자아 리더십”이란 기사를
읽어보았습니다. 이와 덧붙여 “직장 내 유재석이 돼라! 유재석에게
배우는 직장인 리더십”이란 제목도 있었습니다.1991년에 데뷔하여
26년간 끊임없는 상승세를 보여 최근 10년 동안은 그의 상대가 없는
상태로 가장 사랑받는 연예인 1위를 지켜가고 있습니다. 기자는 그
이유를 ‘탈자아’, 즉 자기를 버리는 리더십에서 찾고 있습니다.
무대에 선 출연자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언제쯤
멘트 치고 들어가지?’ ‘의상을 좀 세게 입고 나올걸 그랬나?’
‘요새 저 친구랑 캐릭터 겹치는데...’ 등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유재석은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캐릭터를 잘 만들고
살려주려 하며 프로그램 전체의 진행과 구성에만 초점을 맞춰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자기를 버리고 동료들과 프로그램이 잘 되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위기가 쳐지는데 내가 지금 몸개그를 칠까?’라고 생각하면 어느새
동료들도 그의 정신에 녹아들어 자신을 버리며 그와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두가 자기가 아닌 프로그램 전체를
위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런 프로그램이 잘 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먼저 자신을 버리고 다른 이들을 높이려는 유재석의 마음이
모든 이들을 감동시켜 유재석이 원하는 대로 협력하여 주어 좋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요즘 가장 주목받는 이런 탈자아식 리더십을 일반적으로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라 부릅니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머슴 리더십’ 정도가 될 것입니다. 리더가 억누르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밑에 위치하여 떠받치며 감동을 주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이끄는 방법입니다.
사람들의 마음만 사로잡을 수 있다면 마치 체인이 무거울 때 맨 앞만
잡고 끌면 저절로 뒤도 다 끌려오는 원리와 같습니다. 이 리더십은
그린리프(Greenleaf)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제시한 개념이라고 하는데
그 모티브를 헤르만헤세의 소설 “동방으로의 여행”에서 얻었다고
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레오’(Leo)라고 합니다.
그는 동방으로 순례여행 하는 집단의 서번트, 즉 하인으로서 그들과
함께 여행하며 순례자들의 모든 일을 보살펴주는 사람입니다.
허드렛일뿐 아니라 순례자들의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것은 물론
불평이나 하소연을 마다않고 들어주고 격려해 줍니다. 레오는
그들에게 ‘공기’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레오가
갑자기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순례자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순례자들 중 한 사람이 레오를 찾아 나서게 되고
순례집단의 하인이었던 레오가 실제로는 동방의 한 교단의 최고
지도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교단은 자신들의 여행을
후원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들이 그 리더와 그 교단의
지지자들이 될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주님 승천의 의미는 주님께서 당신의 육체를 구원하셨다는 데
있습니다. 인간이 죄를 범하고 그 죄의 성향을 지닌 육체 때문에 더
이상 하늘에 살 수 없고 땅에 썩어 묻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육체의 욕망 안에 사는 영혼 또한 육체의 욕망 안에 갇혀 육체와 같은
운명을 맞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육체가
당신을 순종적으로 따르게 하심으로써 그 육체까지 부활하여 당신을
하늘까지 따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승천이 우리
육체의 욕망을 이긴 우리 모두가 미래에 가지게 될 영광스런 구원의
완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께서 어떻게 육체를 구원하셨을까요? 육체의 욕망은
아무리 강제적으로 억압하려 해도 되지 않습니다.
‘죄를 짓지 말아야지’하며 결심해도 육체는 그 결심에 동의하지 않고
계속 더 큰 죄를 짓습니다. 바오로는 우리 안에서의 이 싸움을 이기게
해 주시는 분이 오로지 주님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로마 7,23-25)
우리 육체 또한 주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 때문에 더 이상 죄의
욕망에 머물지 않고 하느님의 법에 순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께서 직접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우리의 발을
닦아주심으로써 우리 마음 안에 감사의 정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함으로써 우리를 따르게 하는 것이
서번트 리더십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발을 씻어줄
때의 그 물은 바로 ‘그리스도의 피인 성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희생이 감사의 정을 일어나게 하고 그분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
마음이 생기게 합니다. 그리고 그 감사의 마음이 그 피를 주시는
분의 뜻에 따라 우리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 하늘의 욕망을 따르게
만들어 자신을 구원하게 됩니다.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이 된 뉴욕
빈민가 출신 파월 장관의 이야기입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공장에서
어느 날 그는 다른 인부들과 함께 도랑을 파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삽에 몸을 기댄 채 회사가 충분한 임금을 주지
않는다며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서 한 사람은 묵묵히 열심히
도랑을 파고 있었습니다.
몇 해가 지난 후 다시 그 공장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을 때 여전히
그 사람은 삽에 몸을 기댄 채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지만 열심히
일하던 사람은 지게차를 운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 여러 해가
흘러 그곳에 다시 갔을 때 삽에 기댄 채 불평만 하던 그 사람은 원인을
모르는 병으로 장애인이 되어 회사에서 쫓겨났고 열심히 일하던 그
사람은 그 회사 사장이 되어있더라고 했습니다.
바로 ‘감사’를 입은 사람이 하늘로 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서 바로 이런 감사가 일어나게
하시기 위해 성체와 성혈을 주시고 성경의 가르침도 주십니다.
당신께서 베풀어주시는 이 모든 희생 안에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미사 중 참으로 감사가 일어 주님을 찬양하는 사람은 그 본성을
주님에 엮어 함께 하늘로 승천하게 될 것이며, 그렇지 못하고 여전히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것저것 더 청하다가 계속 땅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제주도 어떤 아파트에서 불이 났고 탈출 못하던 4명의 가족은 간신히
극적으로 소방대원들에게 구조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아들이 나오지
못했고 어머니는 오열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장비도 없이 불속으로
뛰어들려 했고 소방대원들이 말렸습니다. 아무리 찾아봤는데 다른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고 장비 없이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한 소방대원과 함께 산소를 나눠 마시며 다시 집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리고는 나머지 한 아이를 찾아 나왔습니다. 이제 그 아이는
아버지에게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자신도 게임을 하고 싶고 놀고
싶은 욕망도 있겠지만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갈
것은 뻔한 일입니다. 이것이 서번트 리더십이고 이것이 본성의
승천의 원동력이 되게 합니다.
내가 먼저 감사 때문에 주님의 뜻에 매순간 순종할 수 있게 되었다면
이제 누군가에게 감사의 정을 얻어내십시오.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감사해서 나를 따르게 하십시오.
내 뒤를 따라 그도 승천하게 될 것입니다.
- 수원교구 영성관장 전삼용 요셉 신부 -
◈ [수원] 예수승천은 우리를 위한 고양(高揚)/조욱현 토마스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5월13일 예수승천대축일
예수승천은 우리를 위한 고양(高揚)
예수님은 마침내 제자들의 곁을 떠나신다. 어떤 면에서 이 떠나시는
것 때문에 승천축일은 기쁨보다는 슬픔에 찬 축일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전례는 부활축일보다 더 기쁨에 차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층계송에도 나타나지만 ‘승천’은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입으시어 성부
오른 편에 앉으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 중에 우리와 함께
현존하시며 역사하시기 때문에 이를 기뻐하는 것은 마땅하다. 주님의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인성이 함께 영광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성 레오 교황은 승천축일 강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의
승천은 우리를 위한 고양(高揚)이요, 앞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이 자리하신 거기에는 그 지체인 우리를 위한 희망이 있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마땅히 기뻐해야 하며 열성을 다해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해야 한다. 오늘 우리는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확언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상에 들어간 것이다.”
제1독서: 사도 1,1-11: 예수께서는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다.
1독서에서는 축제의 의미보다는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입증할 권한을 사도들 안에 주실 성령의 임하심을 예고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신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전에 일러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오래지 않아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결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4-5.7-8절).
여기서 영광을 받으신 주님께서는 선물로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말씀이다. 교회는 이 성령의 불길 아래서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교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성령을 보내주시는 분은
바로 하늘에 오르신 그리스도이시다. 이 승천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욱 직접적으로 친밀하게 친교를 나눌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이제는 더 이상 물리적인 거리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도 부분적으로 천상적 존재로 변화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내재하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영광을 받으신 주님은 우리를
중재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제2독서: 에페 1,17-23: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당신의 오른 편에
앉히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어 하느님 아버지의 오른 편에 앉으심으로써
가지신 왕권과 권능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18-23절).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유산으로 물려받은 그 ‘축복’은 문맥상으로 보아
분명히 적의 모든 권세를 물리친 후 아버지 오른 편에 앉으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계획안에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 안에서 실현될 것이다. 즉
구원의 충만성은 이제 교회의 선교사명을 통해 완전하게 표현되고
교회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전해져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자신 안에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실현시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승천이
요구하는 것은 교회의 선교적 신장(伸張)이다.
복음: 마르 16,15-20: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사도들에게 나타나시는
내용이며, “선교사명”에 집중되고 있다. 예수님의 승천은 이런 면에서
선교사명을 정당화하고 자극하는 요소로 나타나고 있다. 오늘 복음은
선교사명을 주시면서도,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의 마음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뿐 아니라, 창조의 구조 자체에 새로운 관계를
이끌어 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이 정말 ‘모든 사람에게’
(15절) 선포된다는 조건하에 교회의 책임이 주어지고, 교회는 이러한
봉사활동을 통해 구원의 중재 역할을 하게 된다. 이제 교회는 삶으로
증거해야 할 의무가 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15절)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세상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무지렁이였고
말재주도 없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만민에게 가르치도록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을 파견하셨다는 것을 하느님의 권능으로 온
인류에게 증언하였다. 사도들이 이렇게 파견된 것은 하느님의
뜻이었으며 세상의 모든 이들이 자기의 창조주를 알아 뵙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복음 선포는 모든 나라와 도시에 있는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다. 그분의 섭리는 온 우주를 통틀어 펼쳐지고 있다. “너희는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16절) 신앙은 신경을 통하여 교육된다. 신경은 최대한
요약된 형태로 외우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믿어야 할 바를 간략하게
규정해 놓은 것이다. 우리 신자들은 그에 대한 설명을 들음으로써
성숙해지고, 겸손과 사랑의 튼튼한 토대 위에서 이해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베푸신 은총에 합당하게 감사드려야 한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19절) 부활절에는 주님의 부활이 우리 기쁨의
이유였지만, 이제는 그분의 승천 때문에 기뻐한다. 보잘것없는 우리
인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높이 현양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복을 누릴 수 있도록 부활하신 후
당신 제자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승천하셨다. 하느님께서 정해 놓으신
때가 완성되기까지 아버지 오른편에 계시기 위해 육체적 현존을
끝내셨다. 여기서 오른쪽은 장소적 개념이 아니다. 오른쪽이라는
것은 복됨의 의미이다. 인간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이 복됨 속에는
오른쪽만 존재한다. 이제는 하느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우리와 함께
계시는 참된 “임마누엘”이 되신다.
“제자들은 사방으로 나가 복음을 전하였다. 그리고 주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셨으며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전한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해 주셨다”(20절). “예수님의 부활의 참된
목적은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 데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제자들의 활동에 의해
이루어진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만이 제자들의 의구심을 극복시킬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권능과 통치권과 승리가
드러난다”(E. Schweizer, Il Vangelo secondo Marco,
Brescia 1971, p.400).
예수승천 대축일은 그리스도의 통치권에 대한 축일이며 교회의
통치권에 대한 축일이다. 교회는 즉 우리는 무엇보다도 복음
선포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며,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승리자이심을
실제로 드러내야 한다(2고린 2,14).
그리스도께서는 천상에 오르심으로써, 즉 아버지 오른편에 영광을
받으심으로써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천상에
오를 수 있는 즉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내는 축제는 이별에 대한 슬픔과 탄식의 축제가 아니라,
기쁨과 기다림의 축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바로 우리들의
고양(高揚)을 미리 당신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분을 닮음으로써 영광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더
유익하다”(요한 16,7)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제 제자들은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떠났다. 그들은 복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었다.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행한
기적들도 그분의 가르침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결국 기적을 행하시는
분도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복음을 전한다고
한다면,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복음
선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승천 축일을 맞이하여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고
복음을 전파하는데 따를 수 있는 온갖 악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에 주님의 말씀대로 독을 마셔도 죽지
않을 것이며, 마귀를 쫓아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주님과
함께하는 복음 선포에는 어떠한 두려움도 이기고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믿음으로 용감히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우리
되도록 은총을 구하면서 기도하자.
- 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수도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마르 16, 19)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5월13일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마르 16, 19)
내려오신 분이 올라가십니다.
하늘을 알려 주신 분이 하늘로 오르십니다.
하늘과 땅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늘을 보게됩니다.
하늘을 먹고 사는 우리의 삶입니다.
사랑은 하늘처럼 높고 높습니다.
사랑의 순간순간이 모여 하늘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돌아갈 하늘이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이 우리 여정의 전체가 됩니다.
사랑은 성숙되고 성장하듯 사랑은 하느님을 향합니다.
우리에게 하늘을 알려주시고 우리에게 하늘을 내어주신
하느님을 예수 그리스도처럼 알리고 선포하는 홍보 주일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사랑 때문에 내려오시고 오르셨듯이 홍보매체또한
하느님 사랑이 가장 큰 중심이 되어야합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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