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물 자체가 찬란한 공연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세계 최고의 공연이 무대에 오르는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Opera Garnier(프랑스 최고의 오페라 극장으로 건축가의 이름을 따 오페라 가르니에라 부른다)는 그 자체로 찬란한 예술이다. 외관부터 눈부시다. 지붕 중앙에는 하프를 들고 있는 아폴로상이 상징처럼 박혀 있고, 지붕의 양쪽에는 흡사 날개 달린 황제를 연상시키는 황금색 청동 조각상이 고고한 아우라를 풍기며 자리한다. 내부는 더욱 눈부시다. 살아 움직일 듯 섬세한 표정의 대리석 조각상, 거대한 벽화로 가득한 내부 풍경은 과거 나폴레옹 시대로 순간 이동을 한 듯 몽환적이다. 8000kg에 이르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비추는 통로를 지나 공연장 안으로 들어설 때의 느낌은 아직도 선연하다. 붉디붉은 2200여 개의 객석, 그리고 돔 천장을 받치고 있는 섬세한 조각의 황금색 기둥! 그 위압적 ‘공기’는 그곳을 찾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이게 한다. 황제를 위한 별도의 관람석까지 갖춘 이곳은 현재 발레 전용 극장으로 운용되고 있다. 파리 시민이 가장 환호하는 작품은 연말에 선보이는 <호두까기 인형>. 2008년 ‘파리행’을 계획하고 있는 독자라면 눈 내리는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에서의 발레 공연을 염두에 두시길. 오페라 가르니에 홈페이지 www.operadeparis.fr 글 정성갑 기자 | 사진 협조 프랑스 관광성
2 고귀함과 화려함의 하모니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음악 축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라고.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음악’을 물었다면 훨씬 소박한 답을 했을 것이다. 산해진미를 다 맛본 사람도 죽기 전에는 어머니의 밥상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그러나 ‘음악’이 아닌 ‘음악 축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음악 연회장, 잘츠부르크. 천국의 고귀함과 지옥의 탐욕스러움을 동시에 지닌 묘한 동네로 음악 팬이라면 한 번쯤 꼭 찾아봐야 할 곳이다. 매년 여름에 열리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올해도 7월 26일부터 8월 31일까지 이어진다. 프로그램은 크게 오페라*콘서트*연극 공연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오페라다. 오페라 프로그램의 양적*질적 급성장은 1956년부터 33년간 이어진 카라얀 체제하에 완성됐다. 모차르트 하우스(2006년 개관)와 더불어 잘츠부르크 오페라의 주 무대인 페스티벌 대극장Grosses Festspielhaus(1960년 개관)은 카라얀 시절, 페스티벌의 상업적 팽창을 대변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나 역시 2005년 8월 8일, 이곳에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첫 경험을 치렀다.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 피리>(연출 그레이엄 빅*지휘 리카르도 무티)의 시대 배경은 과거가 아닌 ‘오늘’이었다. 한 예로, 자라스트로 왕의 성은 어둠이 없는 ‘태양의 나라’가 아닌 실버타운으로 설정됐다. 1991년 이후 자라스트로 역으로 다섯 번째 잘츠부르크 무대에 오른 르네 파페 역시 태양의 나라 왕이 아닌, 청렴하고 연륜이 묻어나는 재야 정치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처럼 연출가의 시각에 따라 무대 위의 시대와 장소는 변하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모차르트의 음악! 언제나 그래 왔듯이 새 잡이 파파게노와 그의 연인 파파게나의 신나는 이중창으로 현실 세계는 다시 환상 세계로 변한다. 입 모양만으로 조용히 “파파파파파~” 노래를 따라 부르며 나는 온몸으로 느꼈다. ‘모차르트는 진짜, 진짜, 진짜 천재야!’ 잘츠부르크의 주요 프로그램은 축제가 시작되기 전 일찍이 매진된다. 보고 싶은 공연이 있다면 미리 부지런을 떠는 수밖에 없다. 올해는 죽음만큼 강한 사랑을 테마로 <돈 조반니>, <푸른 수염 영주의 성>, <로미오와 줄리엣>, <오셀로> 등 7편의 오페라가 잘츠부르크 무대에 오른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홈페이지 www.salzburgfestival.at 글 박용완(<월간 객석> 기자) | 사진 협조 오스트리아 관광청
3 러시아의 자부심 마린스키*볼쇼이 발레단
어쩌면 당신은 발레 팬이 아닐지도 모른다. 거식증이라도 걸린 듯 깡마른 젊은 처자들이 우스꽝스럽게도 우산 뒤집어놓은듯한 치마를 입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에 별반 감흥이 없을 수도 있고, 마법에 걸린 백조라든지 왕자 공주 이야기가 태반인 발레의 내러티브가 영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으며, 아니면 이 유럽 태생의 고급 예술이 낯설어 멀게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린스키(흔히 키로프 발레단이라 부른다)와 볼쇼이는 문외한이라도 거부하기 어려운 발레의 진수, 절정의 클래식을 보여준다. 플루트로 연주하는 ‘에델바이스’처럼,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의 기타 선율처럼 고매한 지식 없이도 누구라도 빠져들 수 있어 친숙하면서도 깊은 뿌리가 느껴지는 클래식을 말이다.
이 두 발레단을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이 생각난다. 이어 붙인 듯 긴 팔다리, 칼날로 깎아놓은 듯한 절제된 움직임, 긴 선들이 교차하며 뿜어내는 에너지에, 수십 번도 더 본 <백조의 호수>와 <지젤>을 보면서 마치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넋을 잃고 말았다. 키로프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100여 년 전 안무가 프티파가 초연한 곳답게 군더더기 없는 절정의 짜임새를 자랑했고, 볼쇼이 발레단의 <스파르타쿠스>는 발레가 여성적인 예술이라는 생각을 한 방에 날릴 만큼 드라마틱하고 강렬한 춤과 에너지로 압도했다. 날 선 칼날처럼 정확하고 날카로운 테크닉을 보여준 주역 무용수들은 물론이고, 한 명의 호흡으로 춤추는 듯 일사불란한 군무의 아름다움도 세계 제일이다. 종종 뉴욕에서 그들이 공연하는 발레 갈라 쇼를 보면, 전막이 아닌 짧은 2인무에서 어떡하면 저렇게 자신만의 스타일과 에너지를 뿜어낼까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춤을 보여준다. 기회가 생긴다면, 이 두 발레단의 갈라 공연보다는 <백조의 호수>나 <지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전막 공연을 꼭 보기를 권한다. 갈라 쇼가 종합 선물 세트처럼 스타들의 테크닉 정점을 확인할 기회이기는 하지만, 2시간을 넘어서는 대형 발레 안에 담긴 발레의 힘을 만끽하려면 단연 전막 발레를 봐야 한다. 자그마한 머리 장식 하나부터 압도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무용수들의 손끝 놀림까지, 전통과 거장의 숨결이 살아 있는 발레를 보는 것은 인생에서 그리 흔치 않은 기회이므로. 마린스키 발레단 홈페이지 www.mariinsky.ru 볼쇼이 발레단 홈페이지 www.bolshoi.org 글 제환정(무용 칼럼니스트) | 사진 협조 중앙일보 문화사업단
4 속속들이 일본, 그러나 세계에서 각광받는 가부키
가부키歌舞伎는 가장 일본다운 대중 예술이라 일컬어진다. 독특한 분장과 화려하고 정교한 의상, 움직임, 연주, 노래, 극 진행, 소재까지 속속들이 ‘일본’이다. 일본에는 도쿄의 가부키자歌舞伎座, 교토 미나미자南座, 오사카 신가부키자 新歌舞伎座 등의 가부키 전용 극장이 있다. 가부키는 이 세 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했는데 도쿄에서는 남성적인 역사물 ‘아라고토荒事’가 발달했고 교토와 오사카에서는 남녀의 사랑을 소재로 한 ‘와고토和事’ 작품을 주로 상연한다. 규모는 가부키자가 가장 크지만, 교토의 아름다운 전통 유흥가 기온 지역에 있는 미나미자南座는 가부키가 최초로 공연된 곳이라는 점에서 더 매력적이다. 번역가이자 도서출판 시유시 대표인 여상훈은 “가부키는 볼 때마다 아주 재미있습니다. 남성적인 활극 느낌이 강한 <가나데혼주신구라.名手本忠信藏>도 유명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미나미자에서 본 <소네자키신주曾根崎心中>랍니다. 일본인도 꼭 한번 볼만하다고 꼽는 작품이죠. ‘신주’는 사랑을 위한 동반 자살을 일컫는 말로, 소프 오페라보다 강도를 백배쯤 높인 스토리에 가슴이 미어지는 대사로 가득한 작품입니다”라고 가부키를 본 소감을 말했다. <소네자키신주>는 2005년 서울 국립극장에서도 상연했다. 일본의 인간국보 ‘나카무라 간지로中村雁治郞’가 창단한 가부키 극단 ‘지카마쓰자近松座’와 일본 최대 가부키 제작사인 ‘쇼치쿠다이가부키松竹大歌舞伎’가 함께 만든 작품이다. 나카무라 간지로는 18세기의 전설적 가부키 배우 사카타 도주로坂田藤十郞가 200여 년 만에 부활했다고 할 만큼 최고로 추앙받는 배우다. 가부키에서는 작품 이상으로 어떤 배우가 출연하느냐가 중요하다.
가부키를 관람하는 재미에서 ‘마쿠노우치幕の內 벤토’를 빼놓을 수 없다. 관객이 막간에 먹는 도시락으로 알려진 이 도시락은 막 안쪽에서 스태프들이 먹던 도시락에서 유래했다. 검은깨를 뿌린 주먹밥이나 흰밥에 반찬 가짓수가 여타 도시락보다 조금 많은 것이 특징이다. 관광객을 위해 30분짜리 짧은 공연도 하지만 이왕이면 2시간 정도 상연하는 <소네자키신주>를 마쿠노우치 벤토를 먹으며 관람하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관람 태도도 엄숙하지 않다. 함께 환호하고 박수치며 편안하게 볼 수 있다. 미나미자 홈페이지는 따로 없다. 일본 교토부京都付 홈페이지(www.pref.kyoto.jp/visitkyoto/en/theme/others/m_minamiza)에서 미나미자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가부키자 홈페이지 www.kabuki-za.co.jp 글 성현수 기자 | 사진 협조 국립극장
5 먹다 말면 두고두고 후회할 ‘잘 차린 한 상’ 완창 판소리
판소리에는 진솔한 삶이 담겼다. 어려운 상징이나 매끄러운 형식미 없이도 많은 것을 함축한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판소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판소리를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다. 누구나 <춘향가>, <흥보가> 한 대목씩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 앞과 그 뒤가 어떤지 궁금하지 않은가? 다 아는 이야기라고? 그러나 판소리의 재미는 이야기 흐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판소리 사설의 해학 넘치는 말맛은 음식으로 치자면 입에 착착 붙는 ‘감칠맛’이다. ‘종종종’ 발끝으로 달려가는 듯한 자진모리부터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인연처럼 질기게 늘어지는 진양조까지 거침없이 펼쳐지는 장단은 찬 음식, 더운 음식을 제때, 제 온도에 딱딱 맞춰 먹는 것처럼 맛깔스럽다. 이 거나한 한 상을 받을 수 있는데도 겨우 한 입만 먹다니! 정말 아깝다. 그 진짜배기 맛은 잘 차린 한 상 받아놓고 느긋하게 갈비짝도 뜯고, 저냐도 한 점 먹고, 국물도 한술 뜨고, 밥그릇 싹싹 비운 사람만이 안다. 안 먹은 이만 손해다. 판소리 다섯 마당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청춘 남녀의 희롱과 애끓는 사랑, 통쾌한 반전이 있는 <춘향가>. 그중 ‘사랑가’나 ‘쑥대머리’ 같은 대목은 특히 잘 알려져 있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 이야. 어화둥둥 내 사랑~”으로 시작하는 사랑가 중중모리 대목. 좋아하는 이에게 무엇을 줄까 물어대는 풋내기 도령과 이것도 저것도 싫다고 앙탈부리는 꽃다운 처자가 벌이는 사랑의 줄다리기. 듣다 보면 피식 웃음이 나면서 은근한 재미에 쏙 빠져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이어 부르는 완창 판소리는 길다. 짧게는 3시간, 길게는 대여섯 시간 동안 공연한다. 창자唱者에게도 청자聽者에게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볼수록, 들을수록 재미있다. 판소리 관객은 입 딱 봉하고서 겨우 박수만 치지 않는다. 고수도 추임새를 넣지만 관객도 추임새를 넣는다.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절로 “얼쑤!” 하고 신명이 나는 것이다.
이 신명 나는 잔치 ‘한 상’을 오랜 세월 잘 차려온 곳이 국립극장이다. 1985년 국내 최초 완창 판소리 상설 공연을 시작해 올해로 23년째를 맞는다. 그동안 명창 190여 명이 기량을 펼쳤으며 7만여 명의 관객이 이를 관람했다. 작년 6월 공연은 더욱 특별했다. 동초제의 대모, 명창 오정숙이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변함없는 기량으로 <춘향가> 완창 공연을 펼쳐 갈채를 받았다. 12월 제야 완창 공연은 판소리계의 스타인 명창 안숙선이 <흥보가>로 많은 관객을 불러 모았다. 조선시대 판소리는 야외 공연이었다. 그에 걸맞게 8월, 한여름 밤 선보이는 심야 완창 판소리 공연은 천장이 밤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하늘극장’ 무대에서 선보여 더욱 운치 있다. 올해도 3월에 시작해 12월 ‘제야 완창’ 공연까지 매월 소리판이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려진다. 명창의 완창 판소리, 진수성찬을 놓치면 후회한다. 국립극장 홈페이지 www.ntok.go.kr 글 성현수 기자 | 사진 협조 국립극장
6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인도를 준다 해도 셰익스피어와 바꾸지 않겠다”던 영국인들의 말을 오만으로 받아들인 적이 있다. 하지만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공연을 본 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항상 새롭게 해석되는 그 대단한 깊이와 넓이라니! 세상에서 단 한 편의 연극만 볼 수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대답은 셰익스피어다. 그것도 셰익스피어가 태어나 눈을 감은 고향 스트랫퍼드어펀에이번Stradford-upon-Avon에서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가 상연하는 것으로 말이다. 한국말로 하는 연극도 지루한데, 영어로 된 연극이라고? 그의 주요 작품이라면 줄거리 정도는 알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오랜 연습을 거쳐 무대를 휘어잡는 최고의 연기, 때로는 고전적으로 때로는 초현실적으로 만들어지는 무대, 같은 레퍼토리지만 연출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처럼 바뀌는 해석력이 관람객을 감동시키는 것을 넘어 기절시킬지도 모른다.
이른 아침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스트랫퍼드어펀에이번으로 향하자. 우선 셰익스피어의 생가와 박물관을 둘러본 후 조금 늦은 점심을 먹고, 백조와 오리가 떠다니는 강가에서 잠시 바람과 햇살을 즐 기자. 해가 떨어질 무렵 트리니티 성당의 셰익스피어 묘소에 가서 잠시 상념에 빠진 후 이른 저녁을 먹고 공연장으로 향하자. 2007년부터 극장이 대대적인 공사를 시작하는 바람에 에이번 강변 옆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은 2010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기에 요즘엔 코트야드 극장Courtyard Theater에서 공연이 열린다. RSC의 주요 레퍼토리는 우리가 잘 아는 <햄릿>, <맥베스>,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 <헨리 5세>, <리처드 2세> 등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로렌스 올리비에와 비비언 리, 리처드 버턴 등으로 시작해 케네스 브래너, 에마 톰슨, 헬렌 미렌, 폴 배서니 등 영어권 배우 중 ‘연기 좀 한다’는 소리를 듣는 배우 대부분은 RSC 출신으로, 운 좋으면 이들이 무대에 선 모습을 볼 수 있다. 7시 30분부터 시작되는 공연이 끝나면 10시가 훌쩍 넘는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열심히 역으로 달려 런던행 마지막 기차를 탄다. 런던에 도착 하면 자정. 셰익스피어와 더불어 숨 가쁘게 보낸 하루는 공연 팬이라면 인생의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기에 부족함이 없다!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홈페이지 www.rsc.org.uk 글 김은령(<럭셔리> 편집장) | 사진 협조 RSC Press Office
7 바그너 순례자들의 성지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년)는 이탈리아 오페라와는 성격이 다른 독일 음악극Musikdrama의 창시자로, 바이에른 군주 루트비히 2세의 후원을 받아 독일 동부의 소도시 바이로이트에 그의 음악극을 공연하는 전용 극장을 지었다. 1876년에 극장을 개관하면서 4부작 <니벨룽의 반지>를 초연했고, 1882년에는 이 극장의 특이한 음향 시설을 고려해 작곡한 <파르지팔>이 무대에 올랐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매년 7월 25일에 시작해 8월 28일에 끝나며, 이 기간 동안 객석이 2000석에 달하는 이 극장에 연 5만4000여 명이 찾아온다. 독일 유학 시절, 베를린이나 뮌헨 등지에서 바그너 음악극 공연을 더러 보면서도 굳이 바이로이트에 가보지 않은 것은 바이로이트 극장이 한때 ‘히틀러의 전용 극장’으로 불릴 만큼 나치와 친밀했던 터라 정치적 반감이 커서였다. 그러나 지난 8월, 드디어 최초의 바이로이트행을 결행해 <파르지팔>의 전주곡을 들었다. 그 순간 그 유명한 ‘바이로이트 사운드’의 신화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극장 바닥과 의자는 모두 나무로 만들었으며, 특히 오케스트라가 위치한 피트는 계단식이 어서 뒤로 갈수록 높이가 낮아진다.
무대 아래 그 깊은 심연에서 비단에 감싸인 듯 아련히 들려오는 금관악기의 부드럽고 영롱한 울림, 무대 위를 보려 하는데도 저절로 눈을 감게 만드는 그 황홀하고 정교한 소리는 중간 통로도 없이 일렬로 붙여놓은 좌석의 숨 막히는 불편함을 완전히 잊게 했다. 1925석을 꽉 메운 청중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잡아낼 기세다. 맨 앞자리에 앉았다가 그 섬뜩한 기운에 뒤를 돌아본 순간, 비밀 종교 의식에 참여하는 듯한 청중의 ‘집중력 포스’는 바이로이트 사운드보다 더 엄청난 전율을 선사했다. 옷 자랑과 사교에도 관심이 많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청중과는 달리 오로지 음악만을 숭배하는 그들의 마력에 이끌려 나는 올해도 바이로이트에 간다. 일생에 한 번의 체험만으로는 너무 아쉬워서! 바이로이트 홈페이지 www.bayreuther-festspiele.de 글과 사진 이용숙(음악 평론가)
8 세계 3대 오케스트라 현지 시즌 공연
베를린 도심 한복판의 광활한 정원, 티어가르텐Tiergarten. 이곳 산책로의 동남쪽 끝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본거지인 필하모니 홀이 자리 잡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피에르 불레즈 지휘로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제9번을 들은 뒤, 포츠담 광장 근처 가까운 숙소를 뒤로하고 걸었던 스산한 늦겨울의 티어가르텐은 그렇게 황량할 수 없었다. 하지만 걸음을 내디딜수록 세기말 데카당의 한 작곡가가 말년에 느낀 허무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알려진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뉴욕 필하모닉의 시즌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휴가 시즌인 여름에는 대부분의 오케스트라가 페스티벌에 참가하거나 해외 투어를 하기 때문이다. 시즌은 대체로 9월에 시작하여 6월에 끝이 난다. 진지한 음악 애호가라면 07/08 시즌의 베를린 필 공연을 눈여겨보는 것이 좋다. 전임 상임지휘자인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오랜만에 베를린 필의 포디엄에 복귀해,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협연으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연주하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화려한 두 거장의 만남이다.
조금 색다른 음악회를 찾는다면 화려한 오케스트라 홀로 이름 높은 빈 무지크페라인Musikverein의 일명 ‘황금 홀’에서 열리는 신년 음악회나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호스트인 무도회ball에 참가해보는 것도 귀중한 경험이 된다. 빈 필하모닉의 신년 음악회는 매년 1월 1일 열리며, 1년 전에 티켓 추첨을 마감하니 2009년 신년 음악회에 참석하려면 서두르는 것이 좋다. 무도회 역시 매년 1월에 열리며, 올해는 1월 24일 밤 10시에 시작해 새벽 5시에 끝난다. 무도회에서는 오스트리아 출신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환상의 밤>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빈 스타일 왈츠에 맞추어 19세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뉴욕 필의 본거지인 에버리 피셔 홀이 위치한 맨해튼 서부의 링컨 센터는 뉴욕 필 외에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상주하며 발레, 재즈, 영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뉴욕 필의 명성은 최근에는 조금 퇴색한 감이 없지 않다. 상임지휘자 로린 마젤이 음악계에서 이미 퇴물 취급을 받는 데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상임 자리를 내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휘계 ‘늙은 여우’의 뒤안길을 같이하고 위로해주기 위해 올 6월 24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질 말러 교향곡 제8번의 고별 연주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홈페이지 www.berliner-philharmoniker.de 빈 필하모닉 홈페이지 www.wienerphilharmoniker.at 뉴욕 필하모닉 홈페이지 www.newyorkphilharmonic.org 글 이정엽(음악 칼럼니스트, KAIST 교수) | 사진 협조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9 수준 높고 예민한 오페라 팬의 선택 라 스칼라 극장
세계 최고의 오페라 하우스를 꼽으라면 의견 일치를 보기 어렵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관객이 모이는 오페라 하우스라 하면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을 첫손에 꼽는 데 별 이견이 없다. 이탈리아는 오페라를 발전시킨 벨칸토 발성의 근원지. 라 스칼라 극장은 그들의 자존심이다. 1년에 10여 편의 오페라가 세계 최고의 캐스팅으로 무대에 오르고, 무대 위 가수들은 수준 높은 관객에게 즉각적인 심판을 받는다. 관객은 무대를 향해 때로는 10여 분이 넘는 박수와 “Bravo!”라는 환호를, 때로는 토마토를 던지며 “Va via(꺼져)!”라는 야유를 서슴지 않는다. 이런 단호한 반응 때문에 가수에게는 힘든 무대이자 영광의 무대다. 턱시도와 드레스, 보석으로 한껏 멋 부린 관객의 복장은 오스카상 시상식장을 방불케 한다. 이런 모습은 그들의 오페라에 대한 열정을 짐작케 하며, 뜨거운 현장감 자체가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1778년 개관한 라 스칼라 극장은 오페라의 거장 베르디와 푸치니 그리고 수많은 세계적인 성악가가 데뷔한 역사적 무대다. 이탈리아 유학 시절인 1992년 이곳에서 본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내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았다. 날카로운 눈빛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카르도 무티Ricardo Muti가 지휘한 이 공연은 생생하게 가슴속에 남았다. 마리아 칼라스의 환생으로 착각할 만큼 외모와 목소리, 창법이 흡사한 소프라노 틴치아나 파브릭치니, 지금은 너무 유명해진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의 라 스칼라 데뷔 작품으로, 화려한 파리 화류계가 배경인 <라 트라비아타>의 1막 무대와 주인공들의 완벽한 목소리, 가슴을 파고드는 음색의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내가 역사적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라 스칼라 극장의 2008년 시즌 오페라 작품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것은 베르디의 젊은 시절 걸작인 <맥베스Macbeth>.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 바리톤 레오 누치와 소프라노 비올레타 우르마나가 출연하고, 한국 출신 테너 이정원이 데뷔하는 무대다. 곧 매진될 오페라 <맥베스>의 티켓과 밀라노행 비행기 티켓을 서둘러 구입하는 것은 인생의 다른 무엇으로도 맛보기 어려운 감동과 추억을 간직하는 첫걸음이다. 라 스칼라 극장 홈페이지 www.teatroallascala.org 글 이지은(성악가, 소프라노)
10 인간이 내는 천상의 소리 그레고리안 성가
신이 태초에 인간에게 준 악기인 ‘목소리’. 어떤 악기의 도움도 없이 인간의 소리로만 연주하는 그레고리안 성가는 영혼을 울린다. 직접 들으면 그 생각은 더 확실해진다. 그레고리안 성가란 7세기경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여러 교회의 찬트chant를 모아 집대성한 단선율의 성가로 클래식 음악의 뿌리라 할 수 있다. 구전되다 서기 1000년경 4선 악보가 탄생한 후 수천 곡이 새로 작곡됐고, 지금까지 불린다. 1998년 네덜란드 틸부르흐 음대 고음악과 학생이던 나는 독일 접경 지역인 네덜란드 발스Vaals의 베네딕토 수도원을 방문했다. 수도원의 하루 첫 미사는 새벽 5시에 시작하며, 매일 여덟 번씩 미사를 드린다. 수천 곡의 그레고리안 성가를 거의 외는 수도사들은 영성이 풍부한 소리로 노래했다. 20대 젊은이부터 80대 노수도사까지 서로 다른 보이스 컬러가 묘하게 어우러졌다. 엄청난 소리의 울림, 아름답고 경건한 그 소리는 맑은 듯 어두운 듯 울려 퍼지며 감동과 경건함을 느끼게 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성스럽고 아름다운 소리와 모습 그리고 분위기…. 가톨릭 신자가 아니기에 더욱 경외감과 신선함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수도사들의 성가는 미사 때만 직접 들을 수 있다. 그레고리안 성가 음반으로 유명한 솔렘 수도원은 프랑스 곳곳에 있으며 비교적 개방된 편이다. 그러나 현장의 생생한 경험은 세상의 복잡한 문제에서 물러나 관조하며 마음의 평안과 더 큰 감동을 준다. 베네딕토 수도원 홈페이지 www.benedictusberg.nl 글 조석원(그레고리안 앙상블 ‘브와믹스’ 음악감독)
11 거대한 ‘돌 항아리’가 주는 감동 베로나 오페라 축제
저녁 9시, 짙은 어둠이 내리면 2세기 초에 건설한 로마 시대의 유적은 낭만적인 오페라 극장으로 변신한다. 은은한 조명이 내부를 밝히고, 2만5000여 명의 관중은 미리 받은 촛불에 불을 밝힌다. 사람들의 함성과 환호가 장대비처럼 쏟아지고 공연은 장대한 서막을 올린다. 그곳에 앉아 공연을 보면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의 저자 박종호가 기술한 ‘소리의 감동’을 온 감각으로 이해하게 된다. “저녁 9시경 유럽의 여름 해가 늦게 기울기 시작하면 낮 동안 그렇게 뜨거웠던 아레나의 거대한 석회암이 식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 큰 아레나는 하나의 거대한 돌 항아리 같은 기능을 하게 되는데, 석회암의 좋은 공명은 멋진 음향을 제공하게 된다.” 거대한 돌 항아리가 연출하는 선율은 과학과 문명이 만든 어떤 브랜드의 그것보다 우월하다. 자막 없이 이탈리아어만으로 노래하는데도 우물처럼 깊고 풍성한 아리아가 가슴에 와 박힌다. 레퍼토리는 이탈리아의 대표적 오페라 작곡가인 베르디와 푸치니의 것으로 채워진다. <아이다>,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나부코>(이상 베르디 작품), <투란도트>, <라보엠>(이상 푸치니 작품) 등 우리가 기꺼이 편애해 마지 않는 오페라 명작 대부분이 리스트에 포함된다. 매년 6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펼쳐지는 세계 최고의 오페라 공연을 위해 세계의 공연 마니아들은 서둘러 베로나에 입성한다. 올해 86회를 맞는 ‘베로나 오페라 축제’는 오는 6월 20일부터 8월 31일까지 펼쳐진다. 베로나 오페라 축제 홈페이지 www.arena.it 이탈리아 관광청 775-8806 글 정성갑 기자
12 음악과 휴양으로 눈부신 천국 스위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지난해 41회를 맞이한 스위스의 ‘몽트뢰Montreux 재즈 페스티벌’은 전 세계 재즈 팬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재즈 축제다. 레만 호수 동쪽 연안에 자리한 휴양지 몽트뢰에서 열리는데, 80개의 유료 공연과 280여 개의 무료 공연이 펼쳐진다. 호반 주위로 크고 작은 무료 무대가 세워지고 여행자는 호수의 한쪽을 공유하며 천국 같은 시간을 만끽한다. 열혈 재즈 마니아들은 메인 공연이 이루어지는 콘퍼런스 건물 안의 스트라빈스키Stravinsky 오디토리움이나 마일스 데이비스 Miles Davis 홀, 카지노 극장을 찾는다. 이곳에서 열리는 메인 공연의 티켓은 10만 원 이상으로 고가인데도 일찌감치 매진된다. 미처 티켓(페스티벌의 홈페이지를 통해 국내에서 미리 예매해야 한다)을 구입하지 못한 이들은 공연장 밖 페스티벌 스트리트의 오프 밴드 공연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페스티벌 행사장 내에서는 일반적으로 현금을 쓸 수 없고 재즈 머니jazz money라는 코인과 현금 카드만 통용된다. 시내 이곳저곳을 거닐다 보면 배낭 하나 둘러메고 햄버거로 끼니를 해결하며 ‘재즈의 바다’에 푹 빠져 있는 청춘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확언컨대 재즈는 그들의 가장 배부른 식량이 될 터이다. 축제는 매년 7월 보름간 펼쳐진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홈페이지 www.montreuxjazz.com 글 김광현(월간 <재즈 피플> 편집장) | 사진 협조 Montreux Jazz Festival Foundation 2007
13 태양보다 눈부신 예술 태양의 서커스
‘서커스’란 단어에서 구슬픈 공중 곡예를 떠올릴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앞에 ‘태양의’란 수식어가 붙으면 얘기는 달라진다. ‘구글’, ‘애플’ 등과 함께 ‘세계 초일류 브랜드 100’으로 꼽히는 공연은 연간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전대미문의 성공을 기록하고 있다. 2006년 우리나라를 찾은 <퀴담>이 그중 하나인데 총 6개의 투어링 쇼 중 가장 강력한 매혹은 단연코 다. 서커스는 1500만 갤런의 물로 가득 찬 거대한 수영장을 무대로 펼쳐진다. 80여 명의 곡예사는 현란하고 역동적인 몸짓을 펼치며 허공을 가르고 물속을 유영한다. 그 안에서 다이빙, 수영, 서커스는 꿈결처럼 섞인다. 근육질의 몸은 공중 곡예를 펼치며 물속으로 수직 하강하고, 허공을 향해 뱅글뱅글 솟구쳐 올라간다. 총 150여 명 스태프 전원이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소지했는데, 이 중 14명의 스태프는 공연 내내 물속에서 상주하며 마술과도 같은 ‘물빛 곡예’를 돕는다. 12명의 주요 스태프가 실제 올림픽 참가자들이란 사실은 공연을 더욱 감동적으로 만든다. 그중 몇몇은 금메달을 목에 건 이들이니 그들의 몸짓은 꽃보다 아름답다.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Bellagio에 있는 ‘O’ 전용 극장에서 공연 중. 슬롯머신보다 이곳을 먼저 찾아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자명하다. 한편, 오는 10월 29일 ‘태양의 서커스’는 또 하나의 매혹적 작품을 들고 우리나라를 찾는다. 이미 15개국에서 900만 명의 관객이 찾은 <알레그리아Alegria>. 노인이 젊음을 되찾고 왕이 광대가 되는 환상의 세계가 잠실종합운동장 광장 내 빅탑에서 펼쳐진다. 마스트엔터테인먼트 541-3150 글 정성갑 기자 | 사진 협조 마스트엔터테인먼트
14 전 세계 예술가들의 대축제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
매년 8월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는 전 세계 예술가가 모여든다. 연극, 영화, 음악, 미술, 책 등 여러 분야의 축제를 망라한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s’이 열리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중심은 ‘프린지 페스티벌Fringe Festival’.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이 처음 열린 1947년, 초청받지 못한 몇몇 배우가 축제 ‘언저리fringe’에서 공연을 시작한 것에서 출발했으나 지금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축제가 됐다. 기네스북에도 오른 지구상 최대의 축제이며, 매년 그 기록을 갱신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1999년 <난타>가 참가해 국내 일반에 알려졌으며, 작년에는 <보이첵>과 <브레이크 아웃>같은 국내 공연단의 신체극physical performance이 참가해 대규모 극장 무대에 오르고, 평단의 호평을 받았을 뿐 아니라 상까지 거머쥐어 더 널리 알려졌다.
아마추어부터 유명 예술가까지 해마다 수천 명이 자유롭게 참여하는데, 에든버러 최대 규모인 어셈블리홀(840석)을 비롯한 200여 개 공연장뿐 아니라 거리에서도 수많은 공연을 볼 수 있다. 기간 중 상연되는 작품 수는 2000여 편. 세계 각국에서 모인 관람객 수도 엄청나다. 작년 축제 기간 동안 판매된 티켓 수만 해도 약 170만 장이다. 이 축제에서 호평받은 작품은 특히 참신함과 독특함이 돋보여, 이후 세계 여러 나라 유명 극장에 초청되어 인기리에 상연되는 일이 다반사다. ‘페스티벌 속 페스티벌’이라고도 일컫는 오로라노바 극장에서 상연하는 작품을 보는 것도 좋고, 거리의 젊은 예술가들이 선보이는 퍼포먼스를 유유히 즐겨도 좋다. 오로라노바 극장의 공연은 전통적으로 인기가 높아 미리 예매하고 이른 아침부터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은 필수다. 올해는 8월 3일에서 25일까지 열린다. 에든버러 페스티벌 홈페이지 www.edinburghfestivals.co.uk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홈페이지 www.edfringe.com 글 성현수 기자 | 사진 협조 에든버러 페스티벌 공식 웹사이트
15 자작나무 숲 속 음악회 아스펜 음악제
고산증후군을 견디기 힘든 경우가 아니라면 세계 모든 음악가들은 아스펜에 가고 싶어 한다. 일상의 번잡함을 털어버리고 여름 내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음악에만 푹 빠져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스펜을 방문한 것은 2005년 7월 초. 서울에서 LA, 덴버를 거쳐 아스펜에 도착하자 거의 자정이 가까웠다. 한여름인데도 로키 산자락을 가로지르는 밤공기는 제법 쌀쌀했다. 아스펜의 매력은 시내 레스토랑이나 호숫가, 산 정상에서 수준 높은 라이브 연주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아스펜은 하늘을 찌를 듯 숲을 이룬 사시나무에서 이름을 따왔다. 1880년대 은광銀鑛으로 번성했으나, 1893년 은 가치가 폭락하면서 폐광촌으로 전락했다. 그 후 스키를 비롯한 레저 관광 도시로 탈바꿈했다. 아스펜이 부자의 휴양지로 자리 잡은 것은 스키장 때문만은 아니다. 1949년 7월 막이 오른 ‘아스펜 음악제’ 덕분이다. 정말이지 돈만 있으면 이곳에 별장을 마련해놓고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주말 연휴나 휴가때 마다 찾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구 6000여 명의 작은 도시지만 매년 여름 아스펜 음악제를 찾는 관광객은 10만 명이 넘는다. 9주 동안 350회의 크고 작은 음악 행사가 열린다. 1949년 제1회 아스펜 음악제는 핀란드 건축가 에로 사리넨이 자작나무 숲 속에 설계한 대형 텐트에서 열렸다. 2000년에는 2050석짜리 ‘베네딕트 뮤직 텐트’를 개관했다. 콘크리트 위에 철제 빔을 세우고 그 위를 테플론 입힌 유리섬유로 덮었다. 객석이 벤치형이어서 음악회인데도 티셔츠, 반바지 차림도 어색하지 않다. 청정 자연 속에서 세계 정상급 연주를 즐길 수 있어 해마다 여름이 다가오면 아스펜의 추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아스펜 음악제 홈페이지 www.aspenmusicfestival.com 글 이장직(중앙일보 음악 전문 기자) | 사진 협조 아스펜 음악제 공식 웹사이트
16 세상에서 제일 ‘웃긴’ 축제 몬트리올 희극 페스티벌
캐나다 몬트리올은 매년 여름이면 도시 전체가 ‘하하’, ‘깔깔’ 하는 소리로 가득하다. 세계 최대 규모의 코미디 축제 ‘몬트리올 희극 페스티벌Just for Laughs Festival’ 때문이다. 1983년 처음 개최해 올해로 26회째를 맞는다. 초창기에는 출연자가 30명 남짓, 관중도 5000여 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출연자만 수천 명에 이르고 관중도 100만 명을 넘어선 지 오래다. 빌 코스비, 제리 사인필드 같은 유명 코미디언도 참여한다. 스탠드업 코미디, 단막극 등 쇼의 종류는 다채롭다. 실내 공연장뿐 아니라 거리에서도 1000여 가지 쇼를 선보인다. 축제의 마스코트 로즈Rose와 빅터Vitor는 축제 기간 내내 거리를 돌아다니며 어릿광대 역할을 한다. 2001년과 2003년, 이 축제에 다녀왔고 올해 정식 무대에 서는 개그맨 김영철은 “무대 위의 쇼는 아무리 재미있어도 영어를 잘 모르면 남들 웃을 때 따라 웃을 수밖에 없죠. 하지만 거리의 수많은 퍼포먼스는 언어와 관계없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많으므로 오히려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어요”라고 조언했다. 이름보다 ‘미스터빈’이라는 캐릭터로 더 유명한 로완 앳킨슨도 올해 축제에 초대됐다. 기간은 7월 10일부터 20일까지. ‘대체 얼마나 웃기기에 그래?’라든가 ‘어디, 웃길 테면 웃겨봐!’ 하는 닫힌 마음이 아닌, 아무 거리낌 없이 내키는 대로 한껏 웃어댈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이라면 더 신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아나, 이 열흘 동안 웃어대다 보면 ‘동안 시술’보다 더 효과가 있을지. 몬트리올 희극 페스티벌 홈페이지 www.hahaha.com 글 성현수 기자 | 사진 협조 Just for Laughs Festival Press Office
17 영원한 감동 세계 4대 뮤지컬
뮤지컬은 경계境界의 산물이다. 국경을 초월하고, 역사 이야기와 드라마, 오페라와 대중가요, 발레와 브레이크 댄스 등 소재, 형식, 표현의 경계를 마구 넘나들며 대중의 입맛에 꼭 맞는 유전자를 찾아낸다. 출연진 또한 세계를 넘나든다. 경계를 넘나드는 이러한 유연성이야말로 뮤지컬의 매혹이요, 생명력이다. 이 매력적인 예술 장르를 가장 농밀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곳은 세계에 두 곳, 런던의 웨스트엔드와 뉴욕의 브로드웨이다. 런던 웨스트엔드가 정통 연극의 중심지라면 뉴욕 브로드웨이는 그야말로 상업 시장의 결정판. 웨스트엔드의 관객들이 서사성 강한 작품을 선호한다면 브로드웨이는 미국적인 뮤지컬, 즉 철저히 흥행을 계산한 쇼를 올린다. 뮤지컬의 정수를 맛보려면 단연코 세계 4대 뮤지컬, 즉 <캣츠>,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을 봐야 한다. 이 중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작품은 <캣츠>! 섹시하게 허리를 돌려대며 세상의 모든 여자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반항 고양이 럼텀터거나, 쌍으로 노는 말썽쟁이 몽고제리와 럼플티저 등은 모두 우리 중 누군가를 대변한다. 고양이를 통해 사랑을 가르치는 이 놀라운 창의력의 뮤지컬은 이미 180회 이상이나 리바이벌되며 뮤지컬의 클래식이 되었다. 1985년 10월 8일 런던 바비칸Barbican 시어터에서 처음 무대에 오른 <레미제라블>의 감동 또한 절절하다.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만큼 대규모 군중 신이 백미다. 군중이 부르는 음악은 객석을 박차고 당장 혁명의 시간에 동참해야 할 듯한 충동을 불러일으킬 만큼 선동적이다. 1992년 미국 대선 때 빌 클린턴이 이 작품에 등장하는 ‘하루 더One day more’라는 곡을 선거전에 이용한 것도 이런 이유(정치인들은 참으로 영악하다)에서다. <타임아웃> 뉴욕판 최신호에서는 2시간 55분에 이르는 공연에 엉덩이와 귀가 마비될 수 있다고 무례한 경고를 하기도 했는데, 어쨌든 뮤지컬은 1987년 브로드웨이 첫 공연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브로드허스트Broadhust 시어터에서 건재하다.
탄탄한 스토리를 토대로 비교적 단순하게 무대가 이뤄지는 <레미제라블>에 비하면 역시 <오페라의 유령>은 무대 기술과 규모가 압도적이다. 6000개나 되는 구슬로 만든 샹들리에가 관객들 머리 위로 총알처럼 떨어지는 순간이나, 안개 자욱한 오페라 극장의 지하 수로水路로 주인공을 태운 곤돌라가 움직이는 장면들 하나하나가 공연 내내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위키드>, <영 프랑켄슈타인> 같이 걸출한 대작이 쏟아지는 뉴욕의 극장가에서 지금도 탄탄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마제스틱Majestic 시어터에서 상연되고 있다. <캣츠>가 막을 내린 이후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최장수 중이다.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등 수많은 뮤지컬을 제작한 영국의 뮤지컬 기획자 캐머런 매킨토시Cameron Mackintosh가 제작한 <미스 사이공> 또한 꼭 한번 볼만하다. 특히 실제 사이즈로 제작한 소품 헬기가 굉음과도 같은 프로펠러 소리를 내며 무대에 등장하는 신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이미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모두에서 공연하지 않지만 명작은 영원히 죽지 않으니 곧 ‘부활’할 것으로 믿는다. 글 강소영(W 호텔 PR 매니저) | 사진 협조 클립서비스
18 브로드웨이의 감동을 먼저 보다 오프 브로드웨이
새로운 뮤지컬을 보기 위해 1년에도 수차례 뉴욕에 간다. 그때마다 브로드웨이와 더불어 내가 정석처럼 찾는 곳이 오프 브로드웨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대자본을 낀 상업 연극으로 변모하는 데 대한 반발로 생겨난 또 하나의 무대. 브로드웨이보다 ‘판’이 작은 것이(통상 객석 수가 300석 미만) 아쉽지만, 흥행성과 작품성만은 브로드웨이의 그것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눈앞에서 배우의 땀방울 하나까지 자세히 볼 수 있다는 것은 오프 브로드웨이의 최고 매력. 함께 웃고 함께 울다 보면 완전 연소한 듯 마음 한 구석이 뿌듯해진다. 더불어 신선하고 창의적인 발상, 진심으로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신선한 감동을 준다. 무엇보다 내일의 ‘스타’를 미리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오프 브로드웨이의 커다란 장점. <시카고>, <렌트> 등 수많은 작품이 오프 브로드웨이를 거쳐 세계의 별로 떠올랐으니 이만하면 그곳에 발걸음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평균 40여 편이 넘는 작품이 동시에 올라가는데 개인적으로 ‘강추’하는 작품은 한국에서도 <아이러브유>라는 제목으로 공연된 바 있는 다. 43번가에 위치한 웨스트사이드Westside 시어터에서 공연되는데 남자 2명, 여자 2명의 배우가 등장해 우리 주변의 ‘친근한 사랑’을 고밀도의 유쾌함과 재치를 가미해 ‘맛있게’ 풀어나간다. 1996년 처음 공연된 이래 무려 12년 동안 끊이지 않고 공연(오프 브로드웨이 역사상 최장 기록)되고 있는 스테디셀러 작품이니 그 웃음과 감동의 무게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프 브로드웨이는 브로드웨이의 외곽 지구에 주로 자리하지만 소극장은 브로드웨이 곳곳에도 쉼표처럼 자리하고 있으니 그대여, 젊고 신선한 오프 브로드웨이의 숨결을 살아생전 놓치지 마라. www.playbill.com에 들어가면 브로드웨이는 물론 오프 브로드웨이의 공연 일정과 티켓 가격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글과 사진 김춘수(오디 뮤지컬 컴퍼니 대표)
19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록 그룹 U2
2004년 시카고에서 열린 U2의 공연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이 공연은 2004년 발표한 새 앨범 의 발매 기념 투어였다. 그들의 공연은, 외형적으로는 스타디움 공연의 모범이며 대형 공연만이 보여줄 수 있는 거대한 스케일과 화려한 무대 장치 그리고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변화무쌍한 연주 동선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시카고 공연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스타디움 전체를 무대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2층과 3층 난간에 모두 LED 조명을 설치하고, 무대 앞에서 객석으로 설치한 조명이 U2가 아닌 관객을 향해 일제히 화려한 빛을 발하는 순간 관객들은 미쳐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곡 중간 중간 관객의 참여를 통해 완성되는 의도한 브레이크, 거기에 일제히 부응하는 리액션과 후렴구의 합창은 의도대로 현실이 되는 놀라운 연출력을 보여줬다.
내 좌석은 무대에서 거의 200여 미터나 떨어진, 그것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위치. 이런 저주받은 좌석에서 이 정도로 공연에 빠져드는 일은 전무후무하리라 생각한다. 심지어 공연이 끝난 후 래리 뮬런 주니어(드러머)가 스틱을 객석에 던지는데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그 먼 거리에서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을 정도로 혼미한 상태였다. 정말 놀라운 것은 그런 혼미함이 무대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객석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정말 좋은 공연은 무대보다 객석이 달아오른다고 생각했는데, 그 현장의 분위기가 딱 그러했다. 물론 객석을 달아오르게 하기 위해서는 무대 위 열정은 필수다. U2 공연이 아주 볼만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특히 보노는 음악의 내용을 담아 아예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한 곡의 느낌을 소리로 전달하는 것뿐 아니라 시각으로, 때로는 그 이상의 무엇으로 전달해줬다. 여기에 천부적인 연주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천재 기타리스트 에지, 연주하는 모습 그 자체가 하나의 강렬한 느낌이 되는 래리 뮬런에 더해 큰 움직임 없이도 관객들의 마음을 둥둥 울리는 아담의 베이스 연주까지 보태면 진정 이 공연이야말로 ‘록 음악의 완성’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U2의 공연은 그런 공연이다. 완벽한 무대 연출, 더욱 완벽한 연주, 눈부신 스타 뮤지션, 그들과 하나가 되어 죽어버리겠다며 달려드는 환장한 관객들이 함께 만드는 공연은 정말 ‘죽인다’. U2 홈페이지 www.U2.com 글 탁현민(공연 연출가,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 사진 협조 유니버셜 뮤직
20 정적인 듯하나 광적인 공연 엘턴 존 콘서트
피아노 연주는 음반으로 들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콘서트로는 자칫 지루할 수 있다. 피아노 음악의 전형은 감미로운 선율이기 때문에 열기와 변화가 생명인 공연장에서는 매력이 조금 덜하다. 그러나 서(Sir) 엘턴 존의 경우는 이런 선입관을 완전 정복한다. 비록 차분하게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하지만 그의 무대는 록의 통쾌함이 지배한다. 2004년 9월 엘턴 존 내한 공연 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악조건 속에서 엘턴 존은 그의 파워와 에너지를 실증했다. 그랜드 피아노에 앉아서, 때로 일어서서 노래하는 단순한 포맷인데도 무대와 객석은 잠실벌을 삼킬 정도의 열기를 내뿜었다. 어느 공연이든 ‘Bitch is back’을 시작으로 ‘Bennie and the jets’, ‘Daniel’, ‘Someone saved my life tonight’, ‘Philadelphia freedom’으로 진행되는 그의 레퍼토리 대부분은 피아노가 중심이다. 그러나 록 밴드 반주가 아니면 어려울 만큼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그의 콘서트가 엄청난 파괴력을 과시하는 것은 다름 아닌 ‘노래’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히트송 나열만으로도 관객과 격렬한 피드백이 이뤄진다. 어느 나라를 가든 공연 현장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기성세대들을 볼 수 있는 것은 변화무쌍한 무대 연출 때문이 아니라, 추억과 그리움을 자극하는 노래 때문이다. 하긴 레퍼토리가 풍부하다면, 노래를 믿는다면 그리고 그걸로 관객이 즐거워한다면 굳이 쇼를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음악 평론가 출신 영화감독 캐머런 크로는 엘턴 존 공연을 ‘진실한 공연’이라 일컬었다. 물론 섬세한 관객이라면 피아노의 넓은 음역을 커버하는 묘기처럼 능란한 손놀림과 ‘Rocket man’ 같은 노래에서 보여준 보컬 애드리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무대는 의외로 단출하고 평범하다. 중간에 세트가 바뀌는 일도 없다. 그가 취하는 제스처라고는 무대 앞 관객들과 악수를 나누는 정도. 뚱뚱한 몸, 붉은색 옷을 입고 손을 흔드는 모습은 분명 자극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관객이 공연의 재미와 변칙을 만들어준다. 내한 공연에서 후반부에 관객들이 자리를 박차고 무대 앞으로 뛰쳐나가 스탠딩 공연으로 변질(?)해버린 것이 이를 말해준다. 밴드가 아닌 솔로 팝 가수 가운데 엘턴 존말고도 흥분하면 무대에 눕기도 하는 록의 두목 브루스 스프링스틴, 화려한 의상과 분장으로 쇼 요소를 강조하는 데이비드 보위, 볼거리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마돈나가 ‘보고 싶은 공연 0순위’에 꼽힌다. 이들에 비하면 엘턴 존의 무대는 정적靜的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관객이 받는 느낌은 피아노의 울림으로 인해 상당히 역동적이다. 어쩌면 ‘경제 공연’의 역할 모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아노 연주자라면, 작곡가라면, 음악 팬이라면 엘턴 존 콘서트는 티켓을 훔쳐서라도 한번은 가야 할 관람 필수 공연이다. 엘턴 존 홈페이지 www.eltonjohn.com 글 임진모(대중음악 평론가) | 사진 협조 유니버셜 뮤직
21 열정과 환상, 거리를 뜨겁게 달구는 제 3세계 음악과 춤
아르헨티나, 브라질, 쿠바…. 아직도 머나먼 환상처럼 느껴지는 이 나라들의 이국적이고도 뜨거운 리듬에 빠져본 적이 있는가. 이들 음악은 누구든 팍팍하고 밋밋한 현실을 단숨에 벗어나게 해준다. 거리에서 탄생한 음악답게 정열과 여유가 뒤섞인 ‘특별한 공연’을 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 격식 있는 대형 공연장보다 거리의 음악이 오히려 더 사랑스럽고 역동적이다. 아르헨티나 산 텔모 거리는 항상 탱고 공연이 펼쳐지는 곳. 그 거리에 도착했을 때 반도네온과 콘트라베이스의 4분의 2박자 선율이 흘러나왔다. 금세 어디선가 남녀 한 쌍이 나타나 고혹적인 포즈로 사람들을 유혹했다. 때로는 아찔한 숨결이 귓가에 속삭이는 듯했다. 탱고 전용 홀뿐만 아니라 광장에서, 심지어 좁은 골목에서도 이 ‘육체의 시’는 멈추지 않는다. 인간이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몸짓이라는 탱고, 그리고 그 춤의 원천인 탱고 음악. 그 몸짓과 선율의 조화가 이곳에서는 일상이다.
탱고 공연이 즉흥적으로 연출된다면, 지구상 최대이자 최고의 축제라는 브라질 리우 카니발은 화려한 종합 무대 예술과 상상력의 극치라 할 수 있다. 거리에 쏟아져나온 벌거벗은 무희의 모습을 보는 것은 일부분. 쉬지 않고 밀려드는 각양각색으로 치장한 댄서들과 어마어마한 조형물의 행진은 지금 있는 곳이 현실 세계인지, 환상의 세계인지 분간할 수 없게 만든다. 그곳에 가득한 삼바 음악은 심장을 울리고 있었다. 흑인들의 암울하던 지난날, 유일한 해방구인 삼바 축제가 그 힘든 세월을 딛고 세계 최고의 축제로 거듭나기까지 그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모른다. 삼바 축제는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닌 인간 본능을 짧은 시간에 응축해 보여주는 삶의 카타르시스다.
아직도 배급표로 빵을 사는 사회주의 국가 쿠바. 넉넉지 않은 생활이지만 쿠바인은 음악과 춤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삶을 표현한다. 쿠바 거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축제다. 거리 곳곳에서 아무렇게나 연주하는 듯한 노인들의 모습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재현 같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콩가와 봉고 소리, 지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살사 댄스에 넋을 잃다 보면 쿠바가 공산주의 국가라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음악에 취해 있고 춤에 길들여 있다. 너무나 멀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모두 가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번쯤 꼭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곳에 가면, 그 거리에서 그들의 음악과 춤에 빠져들면 삶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글 대자부大字夫(월드뮤직 가수 ‘나M’ 기타리스트) 사진 협조 대자부, 블로거 Orangebleue, 뭉그니의 여행 이야기
22 세계 최고의 연극 축제 아비뇽 페스티벌
두 개 언어, 연극과 아비뇽Avignon이 결합할 때 그 안에는 무수한 시간의 강이 흐르는 느낌이다. 연극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존재한 최초의 ‘의미 있는 몸짓’이고 프랑스 남부의 소도시 아비뇽은 ‘아비뇽 유수’로 상징되는 역사의 도시가 아닌가. ‘환상의 궁합’이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실제 아비뇽은 연극 무대를 위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교황청까지 내놓는다. 교황청은 ‘아비뇽 페스티벌’의 주요 무대로 역사의 성城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공연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교황청에서의 공연은 꼭 한 번 관람할 만하다. 높이가 50m에 이르고, 성벽의 두께가 4m에 이르는 ‘철옹송의 요새’에서 자유로운 창작의 몸짓을 관람한다는 것 자체가 큰 감동이다. 세계에서 가장 견고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로 추앙받는 성은 그 자체로 번뜩이고, 올리브 나무 가득한 정원을 지나 성의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아비뇽 시가지는 아비뇽을 가르는 론 강과 더불어 눈부신 매력을 뿜어낸다.
1947년부터 시작된 아비뇽 페스티벌은 연극은 물론이고 발레와 드라마, 콘서트 등도 자유롭게 선보인다. 하여, 도심 곳곳에는 꿈틀꿈틀 약동하는 젊음과 열정이 공기 되어 둥둥 떠다닌다. 공연이 펼쳐지는 공식*비공식 무대는 무려 100여 곳. 전 세계에서 모여든 50만 명의 관람객이 떼 지어 다니니 그 흥겨운 분위기만으로 페스티벌은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축제 시기는 매년 7월(한 달 동안). 인근의 프로방스 하늘에도 더욱 농익은 태양이 걸리는 계절이니 이왕 먼 길을 떠난 김에 고흐가 사랑한 프로방스를 마음에 담고 와도 좋겠다. 아비뇽 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 www.festival-avignon.com 프랑스 관광성 776-9142 글 정성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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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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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올려주신 글들
고맙고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됩니다.
회장님 동행 중국어 강사에 지원하셨는데 좋은 소식도 기원합니다.
오백억님 오래만이네요,
저의 글을 보고 조금이나마 공감하셨다니,
저도 기분이 참 좋네요.
일단 지원은 했고,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해서 존경하는
멘토옆에서 좋은 기운을 받으면서 일해보고 싶습니다.
기회는 준비되여있는자한테 온다고 했죠,
더욱더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화이팅~!!
좋은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좋은일만 있으시길
기원할게요~~~^^
네,,좋은 주말저녁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