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추녀끝을 안고 있는 시월마지막주
문득 뒤돌아보니
얇아진 햇살이 계절과 사투를 한다
혼자만의 지리산종주를 올해가 다 가기전에
하고 싶다
곧 지리산능선길 대부분이 통제가 될 것이고 종주구간
또한 11월 중순부터 내년 5월중순까지 통제되기에
마음이 급해졌다
한달동안 내 가을을 반납한 시간이 그래서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많은 산이 있다
많은 그 산이 날 유혹한다
그러나
늘 나의 가슴을 설레게하는
지~리~산
우리나라 국립공원 중에도 가장 크고 넓다는
이 산을 다시 밟아보는 것이다
여러 지리산길 중
홀로 지리산 주능선을 타고 싶다는 생각은
몇 년 전부터 했었지만 번번이 기회가 날 비켜갔다
불쑥 다가 왔다가
연무되어
점점 멀어져 간 나의 소망이 옆지기씨 응원으로 지원으로 허락으로
일사천리로 산장을 예약하고
차편과 여러준비를 차근차근 내 목록에 적어 내려갔다
혼자 지리산종주를 한다고 하니
주위에선 위험하니 생각을 달리 하라는 분이 있는가하면
기왕 할 것 같으면 화대종주(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를 해 보라는 분도 계셨고
날이 점점 추워지는데 내년 따뜻한 날 날잡아 해보라는
걱정스런 마음으로 염려해주신 분도 계셨다
이런 이웃의 마음을 담아 혼자만의 지리산종주길을 시작한다
짐을 줄이자
짐을 줄려야해
그래야 종주길이 한결 편하고 즐거울 수가 있다고 믿었고
혼자 걷는다는 것은 많은 부분 혼자 감당해야하고 감내해야하며
혼자 해결해야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상황이 되든 어떤 상황에 부딪히든
혼자만의 몫이기에...
배낭의 무게를 최대한 줄어야한다는 생각으로
산행을 하면 언제나 내 배낭의 일순위인 과일을 제일먼저 제외 시켰다
그리고 2박3일 지리산에 내 마음을 내 몸을 태우는 동안 옷은 한 벌이면 충분하다고 믿고
하산해서 갈아입을 옷만 준비했다
그리고 준비한 일용할 양식과 간식으로 먹을 행동식이 선택되었다
이렇게 많은 고민과 많은 생각으로 배낭을 꾸렸지만
결국은 구례에 도착해서 귤을 사고야 말았다
3일동안 과일을 먹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자가운전이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성삼재까지 가는 길은 길고도 험난한 일정이었다
내가 사는 경상도와전라도를 잇는 길이 이렇게 어렵고 힘든일인가
대구 서부정류장까지 옆지기씨가 시간을 만들어 태워 주었다
밥 굶지 말고 구례에 가서도 맛있는 음식 사먹고
종주를 하다 좋은 사람 만나게 되면
하산해서 점심도 대접하라며 여비까지 두툼하게 챙겨준다
대구서부정류장에서 한시간을 기다려
남원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2시간 후
남원에 도착해서 다시 한시간 가까이 기다려
구례가는 버스를 탔으며
그 후 또 다시 한시간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구례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먼저 성삼재가는 버스시간을 확인하고
찜질방을 찾았다
걸어서 20분정도 걸린단다
택시를 탈까 고민하다
그래 기왕 걸으려고 온건데
걸어서 가자
찜질방에 도착하여
최종적으로 배낭을 점검하고
무게를 확인해보니 15kg이다
지난번 종주길보다는 한결 가볍다
일찍이 잠을 청했으나
쉬 잠이 오지 않는다
머리만 땅에 닿으면 잠을 자는 잠보인데도
영 잠을 청 할 수가 없었다
밤새 뒤척이다 새벽을 맞았다
일찍이 서둘러 구례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서울 용산발 구례역 기차를 타고 도착한 많은 사람들이
첫버스를(04시발) 기다리고 있다
지리산종주 나만의 특별한 여행이라 생각했지만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당연한 일정처럼 보여졌다
간신히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고 눈을 감았다
몇분이 흘렀나 잠을 깨우는 버스기사분의 목소리가 들린다
곧 지리산종주의 첫걸음인 성삼재에 도착합니다
잊으신 물건이 없는지 다시 한 번 살피시고 안전한 산행을 하십시오
현재 성삼재 기온은 영하 10도입니다
캄캄한 새벽 칠흑같은 어둠으로 드리워져 있는 성삼재에 내리는 순간
칼날 같은 바람과 온 몸을 꽁꽁 얼릴 것 같은 추위가 도사리고 있었다
날센 바람이 내 등짝을 후려친다
긴장과 동시에 설렘의 마음이 부서져 내리고
공포와 후회스러움이 교차한 순간이기도하다
내가 미쳤지 이시간이면 따뜻한 아랫목에 단잠을 자고 있을..
무슨 영광을 보자고 이처럼 무모한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과 혼자라는 외로움이 주는
묘한 감정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다
체감온도 영하20도 수없이 겨울산행을 했지만
가을속에 겨울을 느끼는 것과 겨울속에 겨울을 느끼는 것은 분명 차이가 많다
추워도 너무 춥다
노고단은 또 얼마나 추울까?
추위에 약한 나는 부르르 몸을 뜬다
삼삼오오 랜턴을 켜고 걷는다
나도 이들의 뒤를 밟으며 따라 걷는다
40분이 지났나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하니
대피소안은 그야말로 전쟁속같은 분위기다
여기서 아침을 준비해서 먹고 출발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준비해간 즉석 비빕밤을 해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옆사람들은 삼삼오오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아침을 준비한다
된장 찌개을 끓이는지 표고버섯에 양파까지 준비해왔다
내가 갖고 온 자연산송이를 꺼내 된장찌개에 넣어주며
자연산송입니다 아마 한결 맛이 좋을 거예요 했더니
이 귀한 걸 왜 찌개에 넣는냐고
여기저기서 한 번 먹어 보자는 분이 많다
한봉지를 꺼내 나눠주고 있는데
나이 지긋한 남자분이 나도 한 번 먹어 봐도 될까요 하신다
산행준비를 할 때 송이를 몇봉지 준비 했다
일등품 송이는 따로 배낭 깊숙이 넣어 뒀는데
그 봉지를 꺼내 어르신께 좀 드렸다
이래저래 어수선한 분위기가 잦아들즈음
어느 노부부께서 말을 건네신다
마음이 참 이쁩니다
곁에서 날 지켜보고 계셨던 것이다
혼자 왔나요
그렇다고 하니
그럼 함께 동행하잖다
얼마나 반가운 말인가!!!
가평에 사신다는 낼 모레면 칠순이 된다는
아름다운 부부와 그렇게 인연이 되어
지리산종주를 혼자가 아닌 함께함의 동행이 되어 주었다
우리 적어도 지리산에 있는 동안 같은 동지인데 통성명을 해야되지 않겠냐며
이름이 뭔냐고 물으신다 그래서 그때부터 내 이름을 이쁘게 불러주신 분
호칭를 어떻게 부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언니라 하란다
그래서 언니 동생되었다
평소 난 사람을 잘 못 사귄다
근데 산에만 오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금방 만나게 되니
참 신기하고도 희한안 일이다
"난 정말 오기 싫었어'
"왜요?"
"지리산이 얼마나 좋은데요!"
"이나이에 얼마나 고단해,
남편이야 본인이 좋아서라지만 난 싫어"
"정말 오기 싫었나보다'
이런저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며 노고단고개에 도착했다
정말정말 춥다
장갑을 껴도 손끝이 시리다
얼굴은 근방이라도 동상이 걸릴 것만 같다
춥다 춥다를 연발하며
임걸령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날씨가 추우니 걸음도 빠르다
바람소리는 마치 태풍이 휘몰아 칠 때 바다의 파도소리 같다
내가 동해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느낌이다
언니 바람소리가 성난파도소리 같이 들리지 않나요
그렇게 들린단다
문득 산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해봤다
대간을 탈 때 길을 잃어 헤메다가 어둠을 헤치며 길을 찾던 그 때의 기분 같다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걸었다
체온을 올리고 체온을 유지하려면
무조건 쉬지 않고 걸어야한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는가
지리산에서 가장 물 맛이 좋다는 임걸령에 도착했다
샘에서 물한모금을 마시고 햇살 따스한 곳을 찾아 몸을 녹이며 잠시 쉬었다
이제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지리산 주능선 자락이 눈에 들어오고
단일 산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높은 지리산전체의 조망이 보인다
삼도봉에서 바라본 남해바다
산자락 넘어넘어에 보이는 것이 운해같다
처음엔 구름이겠거니 했었는데
같이 동행한 어른께서 남해바다의 다도해란다
지리산자락에서 바라본 바다
누구나 볼 수 없는 이런 풍광이 또 나를 사로잡는다
지리산산장 중에 물이 가장 풍부한 곳이 연하천산장이다
점심을 준비하려고 하니 동행한 부부께서 점심을 같이 준비하겠다고 하시며
내 몫까지 라면을 끓이신다
그 후 난 지리산종주를 하면서 한 번도 내 손으로 식사를 준비하지 않았다
식사 때마다 나를 챙기시며 보듬어 주신다
정말 나의 큰 언니같다
연하천에서 점심을 먹고 물을 보충
오늘의 목적지 구간인 벽소령으로 향했다
벽소령중간지점에 있는 형제봉이란 바위다
바위와 바위 사이를 지나니
거짓말같이 날씨가 맑아지고 바람이 조금 잦아들었다
어느새 벽소령산장에 도착했다
빨간우체통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다
그리운이에게 편지 한통 쓰고 싶다
내 가슴이 통통하게 살이 오른
지금
풍경까지 접어
데워진 마음마저
대롱대롱 전하고싶다
벽소령산장에서 하루밤을 지내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방을 배정받고 저녁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가 밖에 한 번 나가보란다
노을이 너무나 멋지고 이쁘단다
정말 보기드문 노을풍경이다
난 버릇처럼 카메라를 들고 하늘빛 노을을 한장 한장 담아 보았다
카메라에 다 담기에는 벽소령의 저녁노을이 너무도 찬란하고 찬란했다
지리산종주 2일째다 오늘의 목적지 장터목산장으로 향하고 계시는
아름다운부부
일흔이라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배낭크기가 자그마치80리터짜리다
어르신께선 산행 경험이 20년이 되고 지리산계곡계곡과 자락자락을 잘 알고 계셨다
지리산을 얼마나 사랑하고 사랑하면
그렇게 오기싫어하는 부인을 끝까지 설득해서
산행을 함께하겠는가
지리산종주를 하기까지 무려 4년동안의 시간이 필요했었단다
꼭 한 번은 마음으로 손을 잡으며 걷고 싶으셨는가 보다
이렇게
지리산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민족의 성산이라고 부를 만큼 그 의미가 남다른 산
역사적인 것을 배제하고도 사랑받을 자격을 골고루 다 갖춰진 산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또 한가지 내가 복이 많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동행한 언니는 지역에서 숲해설공부를 하고 계셨다
나무에 관한 것도 많이 알거니와 설명을 그렇게 재미나게 상세하게 해주신다
언니
전 구상나무와 주목나무가 제 눈에는 같아 보입니다라고하니
구상나무의 특색과 주목나무의 특색을 알기 쉽게 간단하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신다
소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상록침엽교목이라고
구상나무는 우리나라 제주도 지리산 덕유산에 분포되어 있고
암수 한그루이며 잎끝이 두갈래로 갈라져 있다고
주목나무는 암그루 수그루가 따로 있어 빨간열매을 맺으며
우리나라 태백산 소백산 등지에서 분포한다는
설명을 해주신다
열매가 있으면 주목나무
열매가 없으면 구상나무라고 보면 된단다
상수리나무, 졸참나무,신갈나무,떡갈나무는 모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도토리나무
상수리나무는 옛날 임금님 수라상에 묵을 올린 것에 유래하여 상수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졸참나무는 도토리중에도 열매가 가장 작다하여 붙여진 이름
신갈나무는 짚신을 만들 때 신갈나무잎을 이용했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
떡갈나무는 떡을 찔 때 떡갈나뭇잎이 방부제 역할을 한다고 떡갈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으면서 산행을 하니
힘들지도 지겹지도 않다
선비샘에 들러
물한모금 다시 축이고
어디선가 한번즈음 만난듯한
풍경과
마음속으로 올라오는 한 줄기
가느다란
나만의 전유물인 미소가 피어 오른다
지리산산장중에 가장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세석산장
세석평전은 철쭉이 많은 곳이다
봄이 되면 분홍꽃으로 덮힌 산장을 볼 수가 있다
내가 보기에는 지리산산장 중 가장 아름다운 산장이 아닐까싶다
장터목산장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부지런한 걸음으로 세석산장은 눈으로만 담기로 했다
식물의 생성과정을 보면
이끼가 생기고 그리고 고사리과 그리고 일년초 풀
관목과 교목 순으로 분포가 되었단다
관목은 무엇이고 교목은 무엇인지
지리산 길목마다 나무이름이 달려 있는데
꼭 관목이니 교목이니하며 설명을 해놓고 있다
관목은 밑에서 부터 여러 줄기로 뻗어 있고
교목은 줄기가 밑에서 부터 한줄기로 되어 있다한다
예를 들면 소나무는 교목에 속하고 진달래는 관목에 속한다나..
오늘은 완전히 식물 공부하는 날이 되었다
걸다보면 걸음을 멈추고 잠시 쉬어가픈 곳이 있다
이곳은 지난 9월에 옆지기씨와 종주하면서도 한참이나 바라본 풍경이다
앞에 보이는 것이 한신계곡과백무동계곡이다
내 마음의 갈증을 해소하는데는 등산만한 운동이 없다
산행계획을 잡을 때만해도
가을산을 상상하며
지리산에 가면 단풍을 마음껏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티비에선 올해 단풍이 작년에 비해 열흘정도 늦다는 소식도 들었겠다
시월말경이라도 반야봉 영신봉 연하봉마다
가을 단풍이 절정은 아니어도
빠알간 노오란 잎들로 능선이며 안부을 장식하고 있을거라 생각했었는데
지리산은 이미 깊은 겨울에 들어서서 상고대의 수정같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갈 볕에 말라버린
나뭇잎도
허공중에 맴도는
갈 바람도
지리산의 펄럭이는
새털구름사이로
모든
공존하는 공생의
고만고만한 고민들과
그만그만한 옭아진
삶들은
그저
한낮 하품하는 장터목의 넋살이 되어진다
10월의 오후가
모두의 아픔들을
어루만지는 순간
비로소 상쾌한 그대로의 오후이고 싶다
늦은 점심을 먹고 아름다운부부께서
천왕봉을 오르고 싶단다
낼 바로 아침을 드시고 하산할 계획이신가보다
그래서 나도 따라 나섰다
배낭없이 산을 오르니 내 어깨에 날개가 달린것 같다
장터목까지 오는 동안 아름다운부부께선 가끔 사랑싸움도 하시고
이렇게 서로의 추억을 만들어 주기도 하며
어르신은 어르신대로 언니는 언니대로 나에게 살며시 흉도 보곤했다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어르신이지만 내 눈엔 정말 귀여운 부부같다
우리부부도 이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제석봉에 도착하니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잿빛하늘이 지리산과 입맞춤을 하고 있다
푸른하늘은 온데간데 없고
근방이라도 비를 뿌릴 태세다
그래서 겸손함을 배우는 것이다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과
자연속에 그저 작아져가는 난
해미속 같은 삶에
묵종(默從)을 배우는 것이다
숲으로 구만리 하늘를 가리고
통곡의 폭포에서 물맞는 여자
오호라 지리산 너로구나
떠도는 산 바람에 그리움이 사무치고
허기진 가슴팍 무섭게 떠미는
오호라 지리산 너로구나
내 등짝 떼밀어 만 골짜기 우뚝 선
지리산 지리산 너로구나
*백무동 가는길 중에서*
하늘로 통하는 문 통천문이라 했던가
철계단을 밟고 또 다시 철계단을 밟으면
우리나라 삼대계곡 중 하나인 칠선계곡이 한눈에 조망이 된다
제주의 탐라계곡과
설악산의 천불동계곡
그리고
지리산의 칠선계곡을 삼대계곡이라고 하지
흔히 사람들은 그 중 으뜸으로 손꼽는다면
단연 칠선계곡이 최고라한다
난 아직 이 계곡을 가보지 못했다
내년쯤 가 볼 수 있으려나...
날씨가 참 요상타
적막한 능선에 다시 노을을 보여준다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의 정다움과
어둠이 앞질러 지리산을 모조리 거두어 놓는다
기다림의 언약이다
색칠하지 않아도
남겨진 여백은 자연스럽게
하늘이 되고 산이 되고 나무가 된다
오를 때의 풍경과 내려올 때의 풍경은 여실히 다른 느낌이다
언제나 처음인 언제나 첫걸음같은 신선함이 있다
고사목과 어우려진 구상나무
척박한 땅에 이처럼 푸른 잎사귀는 무심한 마음과 막막할 것 같은
일상의 걸음을 희망으로 바꾸는 마력을 보인다
천왕봉 정상석에 서있다
언제나 시끌벅적한 이곳에 고요가 뻗쳐있다
지리둘레의 800리의 제일 높은 곳
남원시를 시작으로 구례, 하동,산청, 함양을 끼고
중봉을 비롯하여 제석봉 하봉 반야봉 연하봉 촛대봉
무려 이십여봉을 끼고 있는 지리산의 큰 형님 천왕봉
민족의 애환도 다 거두어 들릴 만큼의 오지랖을 갖고 있는
명실상부 모든이의 어머니가 된다
이제 서서히 지리산이 잠을 잔다
지리의 그품에
나도 잠들고
바람도 잠들며 구름도 지리의 봉에 앉아 쉼의 시간이 된다
어둠이 깊을 수록 세상은 자유롭다
바다도 온통 길게 늘어진 어둠이 도배해 놓았다
다시 본 일출
새벽 3시에 일어나 습관처럼 하늘을 쳐다봤다
그리 촘촘하지 않았지만 별빛에 빛나는 하늘을 보고
오늘도 여전히 일출을 볼 수 있겠다 생각했다
일출시간에 맞춰 천왕봉으로 오르려고 신발 끈을 매고 있는데
어르신께서 일찍이 일어나시어 날 배웅해 주신다
아침일찍 하산하려고 한다고
일출을 보고 오면 못 볼것 같아 얼굴이라도 보고 가야 될 것 같다 하신다
악수를 하면서 며칠 정말 고마웠다고
건강하시고 늘 안산하시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어제 저녁밥을 먹으면서 언니주머니에 살며시
하산하시면 점심이라도 사 드시라고 작은 성의를 표현했다
사실 참 많이 망설이고 망설인 일이다
꼭 점심이라도 대접하고 싶었지만
일정이 달라 그렇게 할 수는 없고
어떻게 하면 고마움의 마음을 전할까 싶어
많이 고민했었던 일이다
고맙게도 내 뜻을 알고 내 마음을 받아 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어르신께서 산행20년동안 이런 일은 처음이라 하신다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운 일이였다면
그 얼마나 고운인연이며
선연의 맺음인가
작은 햇살이 온통 지리를 밝힌다
골짜기마다 깊숙하게 햇살을 넣어준다
이 햇살을 받아 지리산은 또 그렇게 살을 찌우겠지
양지바른 언덕길엔 이미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다른이는 일출을 어떻게 담았을까?
다른이의 가슴에는 어떤 모양으로 지리의 일출을 기억할까?
꽤나 진지한 표정은 처음 일출을 본 나의 과거의 모습이다
지리산종주길 2박3일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다
때로는 인사로 끝나는 인연이 있었는가하면
가평의 아름다운부부님 같이 깊은 인연도 있었으며
광명시에서 오신
노오란 윈드스토퍼를 같이 입으시고 산행하신
부부님도 고마웠다
제석봉에서 주신 포도
정말 달고 맛있었다
장터목산장에서 만난 수녀님
중산리에서 성삼재로 종주를 하신단다
성삼재에서 구례로가는 버스 시간를 나에게 물었고
마침 카메라에 찍어놓은 버스시간표가 있었기에
알려 줬었지
난 수녀님에게 곶감을 수녀님은 나에게 귤을 물물교환하 듯
서로의 마음을 전했었지
또
천왕봉에 오른 다음 내려오면서 만난
청주의 대학생도 기억에 남는다
장터목에서의 저녁시간 이런학생이 있는데
버너와 코펠을 가져 오지 않았다고 혹 밥이 넉넉하면 이 남학생의 저녁을 챙겨주고 싶다고하니
어서 찾아 같이 먹자고 하시어 저녁을 같이 하게 되었고
이 학생은 써리봉을 거쳐 치밭목산장으로 해서 그리고 대원사를 날머리를 잡았다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사람이 없듯이
인성 또 한 올 곧고 바른사람을 많이 만난다
그리고
내 옆자리에서 같이 하루밤을 잤던 부산아가씨도 기억난다
일출을 보러 천왕봉으로 같이 올랐고
내려 오면서 우연하게 알게 된 고민들
같이 마음 아파했다
난 백무동으로 아가씬 중산리로 하산
혼자 내려가는 뒷모습이 짠하다
집에 도착하니 한 통의 메시지가 와 있다
아줌마~잘 내려가셨나요? 전 가다가 길친구 만나서 무사히 내려 왔어요
만나서 너무 반가웠어요^^
비록 짧은 만남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행복을 줬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싶다
많이 보듬고 살아야지
내 기도의 의미처럼
백무동으로 하산하면서 참샘에서 목을 축이고 내려오니
700고지 정도에서 단풍을 만나게 되었다
지리산엔 여름이 있고 가을이 있으며 겨울이 보였다
이상하게도 이번 산행은 운도 복도 좋은 날
원 계획은 중산리로 하산해서 부산으로 다시 집으로 가야하는 코스였으나
장터목산장에서 오천사람을 만나 그 분들 덕분에
차로 편하게 집으로 올 수가 있었다
아쉬움이 있었다면
그 동안 내 손이 되어준 사연 많은 스틱을 잃어 버렸다는 거다
백두대간도 이 스틱으로 했고
소백산이며 한라산이며 태백산이며 지리산까지
동행의 물건이었는데 참 아쉽다
금강산은 빼어나긴 하나 장중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장중하나 빼어나지 못하다
수와 장은 서로 양립 할 수 없는 속성을 가졌다
수와 장을 택한다면 당연히 장을 선택할 것이다
장중함은 얼른 눈에 띄지 않지만
그것에서 오는 감동이 더딘 것일지라도
가히 근본이라 말하리
봄산 어딘들 향기로운 풀 없으랴마는
하늘가까운 천왕봉 다만 좋아서
빈손으로 왔으니 무얼 먹을건가
은하십리 맑은 물 먹고도 남으리
*남명 조식선생의 한시*
지리산
내 다시 만난다면
칠선계곡에서 만나고 싶다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노래했지만
그 무죄의 계곡에 들고싶다
가슴 언저리에 그리움이 켜켜이 쌓이는 날
이 푸근한 마음이 다시 조급해지는 날
지리산과 함께한 향기가 겹겹이 짙어지는 날
그리고
마음이 가장 깨끗해 지는 날
그 날이 돌아오면 계곡을 부르고 싶다
"착오"보다는"시행"에 더 큰 의미를 두며 살고있다는
이혜영님의 글이 생각난다
아주 오래전 지리산을 다녀왔는데 아직도 새벽녁 병풍처럼 둘러있던 산새, 감이 익어가던 마을, 푹푹 나뭇잎으로 발이 묻혔던 기억이 문득문득 나곤합니다. 하지만 다시 예전과 같은 산행은 못할거 같아요. 넘 힘들었던 기억이..^^ 너무도 훌륭한 사진과 글로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이글을 내내 읽고 가슴이 벅차네요. 나 또한 남편하고 그 아름다운 노부부님들에 느낌으로 한번쯤 지리산 자락 걷고 싶어지네요.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마음까지 느껴지고 ~~~
감동이네요..저도 생에 못 할 줄 알았던 화대종주를 우연한 기회에 접했죠....감동이 한꺼번에..다시금 가슴이 두근거리네요...ㅎㅎ
저도 산을 무지좋아하는 한사람으로서 예전에 산에대한 열정이 넘쳐날때 혼자서도 해마다 종주를했던 추억이
생각나네요~~마치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지난 시월 27일 28일에 저두 중산리에서 천황봉으로해서
백무동으로 하산했는데 안마주쳤을까요? ㅎㅎ..넘 잘 읽고 갑니다. 사진으로 떠나는 여행에 사진올려있어요~~~
한참을 읽어 내려 왔네요.. 많은 상념에 젖어들게 해주시니, 귀한 여행글 잘 보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감동이였어요... 지리산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