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강아지를 가져온 아저씨, 굼뱅이를 파는 아줌마, 뽕짝테이프를 팔면서 연신 몸을 흔드는 청년, 땅바닥에 주저 앉아 메밀묵을 먹는 할머니, 진한 막걸리에 취해 휘청거리는 할아버지의 시뻘건 얼굴에서도 끈끈한 삶은 향기가 느껴진다.
할머니의 광주리는 산에서 캐온 냉이와 달래가 가득 담겨져 있다. 팔리든 안팔리든 별로 중요 않다. 아는 사람 만나면 그저 좋다. 그들과 수다를 떠는 자체만으로 행복한 표정이다.
북평장터에서 만난 민초들의 얼굴들은 이렇게 솔직하고 정겹다.
북평장터는 정조 20년 (1766년)부터 장이 섰으니 23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 역사와 명성에 걸맞게 북평장터는 강원도 최대의 장터다. 인근 강릉, 삼척, 정선뿐 아니라 충북 제천, 경북 내륙에서까지 손님이 몰린다. 북평이 이렇게 큰 장터가 서는 이유는 이곳이 영동지방의 교통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7번 국도가 남북으로 이어지고 , 태백에서는 38번국도가 이어지고, 정선에서 42번 국도룰 타고 고개를 넘으면 북평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터가 형성되는 면적만 3만여평이며 좌판이 설치된 곳만 해도 4천여평에 달한다. 해산물시장, 농산물시장, 의류시장, 잡화시장, 한약시장, 농기구 시장등으로 구분되어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이 조그만 마을에 전국의 장똘뱅이들과 시민, 인근 도시민까지 모두 집결하기 때문에 장이 서는 날(5일, 8일)이면 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 인파에 섞여 좌판에 널려 있는 물건을 구경하고 어깨를 부딛히며 활보하는 재미가 그만이다. 가격흥정이 끝나 서로 껄껄 거리며 주고 받은 미소는 삶의 바퀴가 굴러가는 모습이리라.
요즈음은 봄나물이 최고다. 5천원만 있으며 냉이와 달래등 백두대간 골짜기에서 캐온 봄나물을 시장바구니에 가득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으니 북평장의 가장 큰 볼거리는 어물전이다. 인근 묵호나 삼척등지에서 잡은 수산물을 이곳으로 직송해 오기 때문에 싱싱한 해산물을 만날 수 잇다. 대구, 명태. 민어, 가오리, 문어등이 좌판에 뉘여 신선한 빛깔을 내고 있다.
아주머니는 오징어와 가자미를 능숙한 손놀림으로 횟감을 만들어 즉석에서 그걸 맛볼 수 있다. 근처에 있는 건어물전을 둘러보는 것도 색다른 맛이다. 주인이 맛보기로 던저는 오징어포와 북어포를 낼름 받아 먹는 맛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정력식품을 파는 곳도 보인다. 나는 생전 처음 굼뱅이를 보았다. 주인한테 물었더니 간장질환과 폐질환에 특효약이며 암환자들이 마지막 희망을 거는 것이 굼뱅이라고 귀뜸해준다.
'쯧쯧..그래도 저걸 어떻게 먹어.'
걸쭉한 농담으로 손님의 시선을 끌려고 해쓰는 40대 아저씨는 정력식품을 파는 장사꾼이다.
"이거 하나 푹 고아 먹어봐..아줌씨가 좋아해"
자라는 목을 내밀고 탈출할려고 필사의 몸부림을 쳐보지만 주인이 발로 툭치는 바람에 또 다시 절망의 나락에 빠진다.
'불쌍한 자라'
백화점에서 반듯하게 정리된 신발을 보다가 이렇게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신발을 보니 시장의 맛이 난다.
"오늘따라 손님이 하나도 없네."
잡화를 팔고 있는 할아버지의 푸념소리가 저 멀리 까지 들린다.
나물을 다듬으며 연신 담배를 물고 있는 할머니
산에서 캐온 달래를 곱게 다듬어 팔고 있는 할머니의 미소에는 행복이 가득 묻어있다. 굵은 주름은 세월의 고단함이 패어 있고, 겨유 두 개만 남아 있는 이빨이지만 그 입가의 미소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달래를 캐느라 이리 저리 산을 헤메고 다녔을 할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할머니는 천원짜리도 잘 보이지 않아 지폐들 두 손에 잡고 하늘에 비춰 보고 있다.
"오래사셔요..할머니 "
"고마우이..젊은이"
그 무거운 과일상자에서 과일을 일일이 꺼내 이렇게 예쁘게 정리해 놓았다. 오늘 팔리지 않으면 또 다시 담아가야 한다.
북평장은 북평동번영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하루 5백원에서 5천원까지의 자릿세를 받는다고 한다.
초로의 할머니가 구두 한 켤레 신어보고 아이들 마냥 좋아하는 모습도 보인다.
싱싱한 양파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국밥집이 새로 오픈했다. 종이로 만든 화환이 줄지어 있어 촌스럽게 보이지만 시골장터에는 잘 어울린다. 바람풍선이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보지만 손님들의 시선은 예전만 못하다. 개업 떡 하나 먹어보라고 권하는 주인장의 얼굴에는 미래의 희망이 가득차 있다.
역시 장터에는 뽕짝음악이 빠지면 왠지 서운하다. 이름모를 가수의 얼굴이 박혀진 테이프에는 먼지가 잔뜩 끼었지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가락은 어깨가 들썩거리기에 충분하다.
봄이 왔나보다. 화훼시장에는 봄꽃이 가득하다.
항아리를 팔고 있는 할머니가 보인다. 아들이 트럭으로 항아리를 시장에 놓아주고 할머니가 항아리를 팔고 있다. 내가 사진을 찍으니까 아들이 어머니에게 외친다.
"엄마. 사진 찍으니까..V자 해봐."
때가 되니 배꼽시계가 여지 없이 울린다. 북평장터에서 가장 인기 있는 먹거리인 메밀묵밥을 먹으러 천막에 들어 갔다. 세월이 많이 좋아졌다. 예전에는 천막도 없이 노상에서 쪼그려 앉아 먹었다고 하니....
대접엔 시원스런 육수에 메밀이 가득 담겨져 있다. 거기에 양념장을 넣어 먹는다. 묵밥에 시원스런 열무가 있어 뒷맛이 깔끔하다.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시골장터에서 말아먹는 묵밥은 둘이 먹다가 한 사람이 죽어도 모를 일이다. (묵밥 2천원)
원래 5분의 할머니가 북평장터에서 메밀묵밥을 팔면서 북평의 맛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결혼식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 할머니 4분이 그 자리에서 돌아 가셨다고 한다. 유일하게 남은 할머니가 혼자서 메밀을 말고 싶겠는가? 장터에서 뒹굴던 동료들을 다 하늘로 보냈으니 시장에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보다 못한 며느리들이 대를 이어 할머니의 손맛을 보여주고 있다. 동해사람들도 그걸 참 고마워 하고 있다. 하마터면 200년 전통의 메밀묵밥의 맛이 사라질번 했으니 말이다.
강원도의 맛은 장터의 메밀묵밥이 보여 주고 있다. 사라질 것 같으면서 결코 사라지지 않은 생명력이 배인 것이 메밀 맛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전통과 역사가 소중한 것이다.
어렸을 때 시골 장터에서 찐빵 파는 가게가 있으면 괜히 머뭇거렸다. 그러면 할머니는 속옷 안쪽에서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어 찐빵을 시킨다. 속 모르는 손자는 접시에 담겨 있는 찐빵을 전부 먹어 버렸어요. 할머니는 그렇게 게걸스럽게 먹는 내 모습만 봐도 좋은가보다. 싱긋 웃으며 찐빵에 설탕을 묻혀 주셨다.
하얀 찐빵의 표면은 할머니 젖가슴처럼 따뜻합니다. 까만 팥고물 맛은 할머니의 꿈결처럼 달콤합니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회상하면서 찐빵을 삼켜보았다. 갑자기 왈깍 눈물이 나온다. 찐빵과 함께 할머니의 사랑도 함께 삼켰다.
"할머니.. 보고 싶어요."
장을 보고 난 노인들이 짐을 한 켠에 놓고 버스를 기다린다. 두리번 거리는 할머니도 있고, 담배를 물고 상념에 빠진 할아버지도 보인다 .따뜻한 봄볕을 맞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참 정겹다.
달래를 한봉지 팔고 너무나 흐믓해 하는 할머니
오징어를 다듬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에서 희망을 읽을 수 있다.
대형 할인마트와 상설시장의 무자비한 공세에 장터는 어렵사리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찾지 않으면 장터는 영영 기억속에 사라 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살아있는 유산인 것이다.
어쩌면 장터에서 보았던 소중한 얼굴들은 칠판에 갈겨 쓴 분필글씨일 수도 있다. 바람이 불고 시간이 지나면 지워질 수밖에 없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그 소중한 글씨가 분필가루로 휘날리게 해서는 안 되겠다.
그 옛날 향수가 담겨져 있는 장터를 자주 찾아가자.
거기서 왁짜지껄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자.
1. 장터- 동해시북평동일대 (4천평)
2. 장터개설-5일장 (매월 3일, 8일, 13일, 18일, 23일, 28일)
3. 북평장터 가는 길
서울 -영동고속도로-동해고속도로-7번국도 (삼척방향)-효가사거리-북평장터(2.7km 7분소요)
첫댓글 아! 그립다.. 학교끝나고 친구들과 항상 들르곤 했는데... 그중에서도 우시장에..... 옛날에는 큰도로가 확장되기전에는 도로가 좁아서 더 아늑했었지요... 지금은 도로가 많이 넓어졌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