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鳳凰)은 동아시아의 신화 및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이다.
용과 학이 교미하여 낳은 상서로운 새라고 한다.
봉황은 합성어로 수컷은 봉(鳳), 암컷은 황(凰)이라고 하는데, 쌍으로 만나면 금실이 매우 좋다고 한다.
성군(聖君)이 출현하거나 세상이 태평성대일 때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봉황의 크기는 1m 이상 되고, 머리는 닭, 턱은 제비, 목은 뱀, 다리는 학, 꼬리는 물고기를 닮았다고 한다.
깃털은 원앙, 등은 거북, 발톱은 매를 닮았으며, 오색찬란한 빛으로 빛나는 몸을 가졌다.
다섯 가지의 아름다운 울음소리(五音)를 내며, 오동나무에 거주하며 산다.
중국에서 태평할 때에 단물이 솟는다고 하는 샘인 예천(醴川)을 마신다.
그리고 천년에 한번 열리는 대나무의 열매만을 먹고 산다.
360 종류의 새들의 군주와도 같은 상서로운 존재로 봉황이 날면 많은 새들이 그 뒤를 따라 난다.
봉황이 죽으면 많은 새들이 탄식하며 슬피 운다고 한다.
봉황은 살아있는 벌레를 먹거나 해를 입히지 않고, 살아있는 풀 위에 앉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는 천자(天子)의 궁문(宮門)에 봉황을 장식하여 봉궐(鳳闕), 봉문(鳳門)이라 하였다.
또한 천자의 수레에 장식하여 봉거(鳳車), 봉련(鳳輦), 봉여(鳳輿)라고 하였다.
천자의 도읍 장안을 봉성(鳳城), 궁중의 연못을 봉지(鳳池)라 하여 천자를 미화하는 상서로운 상징이었다.
나아가서는 모든 경사스러운 일에 봉자(鳳字)를 썼다.
높은 벼슬을 봉경(鳳卿), 좋은 벗을 봉려(鳳侶), 아름다운 누(樓)를 봉루(鳳樓)라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봉황을 특히 신조(神鳥)라 하여 새들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고 쳐서 신성시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임금의 상징으로 삼아 현 왕조 시대가 태평성대임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대통령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장, 상패, 휘장, 한복에서 봉황을 볼 수도 있다.
(상상의 새 봉황)
청풍에 주변 금수산이나 월악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라하기 그지없는 해발 531m의 비봉산이 있다.
하지만 비봉산은 청풍도호부에서 청풍을 진호(鎭護)하는 주산(主山)으로 정하여 제사하던 진산이었다.
비봉산은 1530년에 발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인지산(因地山)이라고도 했다.
1750년경에 발행된 해동지도에는 인지산이 비봉산으로 등장하며 이후 지도에는 모두 비봉산으로 표기된다.
삼백여 년 전 월봉(月峰, 1679~1746)이라는 고승이 비봉산 봉정암에 들러 산을 둘러보게 되었다.
사방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아도 마치 한 마리의 봉이 날아가는 것 같아 비봉산으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1863년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봉우리가 험준하면서도 단정하고 오묘하며 산 위에 용천이 있다고 하였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통합되어 지금은 청풍초등학교 교가만 불리지만 교가에도 봉황의 흔적이 남아있다.
동편이 높이 솟은 금수산 아래 봉황새 날개 펼쳐 춤을 추던 곳.....
통합 전 청풍중학교의 교가에도 봉황의 흔적이 남아있다.
장엄타 우뚝 솟은 저 비봉아래.....
우리나라에는 계족산이라는 산이 많다.
말 그대로 계족산은 닭발처럼 생긴 산이다.
충주에 가면 댐을 막은 곳에 계명산이라고 있는데 원래 이름은 계족산으로 정말 닭발처럼 생겼다.
영월에도 계족산이 있는데 영락없이 닭발 형상이다.
대전에도, 통영에도 계족산이 있다.
그 계족산만큼 비봉산도 여러 곳에 있다.
제일 유명한 비봉산으로는 경남 의성군에 해발 671m의 비봉산이 있다.
경기도 안성에도 372m의 비봉산이 있고 안양에도 비봉산이 있다.
강원도 양구에도, 정선에도 비봉산이 있다.
전남 광양에도 비봉산이 있다.
하지만 어느 비봉산도 청풍의 비봉산 만큼 나는 봉황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교리방향에서 본 비봉산 전경)
(경북 의성의 비봉산)
청풍의 비봉산 모습을 근거로 봉황이 날아가는 곳을 추정해보니 직선으로 날아간다면 바로 서울이다.
같은 일직선상에 여주도 있고 서울 뒤편에는 고려의 도읍지였던 개성(개경)이 있다.
(비봉산의 봉황 모양)
(봉황이 날아가는 방향)
고려시대에 왕사였던 청공이 군으로 승격시켜 주어 그 감사의 표시로 개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조선시대 왕후였던 청풍김씨가 도호부로 승격시켜 주어 고맙다고 한양을 향하고 있는 것일까?
또 아니면 주변을 온통 물바다로 만들어 놓은 것을 따지기 위해 서울을 향하고 있는 것일까?
수 백 만년 동안 그 모습을 하고 있는 봉황은 언제나 호수 위를 날아 오를까?
도곡리 방향을 제외하고 물로 들어차 마치 섬처럼 고립된 비봉은 아무 말이 없다.
첫댓글 원래에는 매에 가까워 비매산이라고 불릴 뻔 했는데 매보다는 봉황이 훨씬 격이 높아 비봉산이 되었겠지요.
학교 다닐때는 무심코 비봉산에 많이 갔었는데..........
그 봉황이 나이가 들어서인지 머리부분이 점점 훤해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슬퍼집니다.
비봉산중에 가장 봉황을 닮은것에 동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