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야장천 세월은 잘 도 간다!
어언 그 무더웠던 여름 지나 가을로 접어드는가 싶었더니 이제 남은 달력도 달랑 두 장,
이 가을 가기 전에 대학동기들 야유회가 37명이나 참석하는 성황을 이루었다.
이 나이에 누군들 무탈무병하게 지날 수가 있겠는가만은,
나는 금년 여름 개도 안 앓는다는 여름감기에 혼이 빠져 두어달 지내야 했고
요즈음도 툭하면 감기기운이라 며칠 전부터는 아예 감기약 미리 먹고 비타민 씨를
매끼 식사 때마다 챙겨먹으며 혹 야유회에 나가지 못할까봐 노심초사 사나흘 지났더니,
거뜬하게 어제 아침 8시에 죽전 간이 정류장에 나설 수가 있었다.
젊은 시절 처자식 데리고 고생고생 해가며 만리포 해수욕장엔 두어 번 가본 적이 있으나
태안반도 안면도 천리포는 난생 처음 밟는 곳이라 만사제패 가보고싶어 이렇게 조심조심하며
애물단지 몸동아리에 공을 들였던 것이다!
더구나 평소 한 동네 옆집에 사는 여초에게 <천리포수목원>창설자 <민병갈>(밀러)선생 얘기를
들어오던 차라 꼭 가보기로 작심을 한 것이다. 죽전에서 11명이나 탔다.
날씨 좋고 멤버 좋고 차비 안 들고. . .이런 좋은델 왜 안 오는 동문들이 있는지!
하기야 그럴 나이다. 맨 들려오는 소리가 누가 어디가 아프다, 수술했다, 디스크다, 관절염이다 해서
거동이 시원치 못한 친구들이 많은가 보다!
과부사정 과부만이 안다고 했던가, 우리의 슬픔은 우리만이 아는 것. . .
안 나타나는 친구들 하회가 궁금하다! 김00 동문이 암수술을 받으며 고통 속에 세월을 보낸다는
이야길 김00 동문에게서 들으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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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갈!
그는 한국에 나무에 미쳐 한 평생 장가도 안 들고 돈만 생기면 땅 사고 나무 사고. . .
모든 정혼을 천리포 수목원 만드는데 쏟은 기인열전 중에 들어갈만치 미친 사람이었다.
이젠 고인이 된지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수목원을 둘러보며 <한 사람의 힘이 이렇게 큰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람은 무언가에 미쳐 사는 게 행복일지도!
무언가 한 가지에 미친자라야만 큰 일을 해낸다는 사실을 역사에서 흔히 볼 수가 있는데,
천리포 수목원이 그런 표상의 하나이다. 이것저것 탐나는 것이 많아 기웃거리기만 하다
중도반단으로 끝나는 게 우리네 대다수의 인생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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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갈,
그는 미쳐도 옳게 미쳤다. 이런 큰 일을 해냈으니! 이런 감회는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이런 내말에 맞장구를 치는 <우당>은 영화에 미치고 음악에 미치고. . .
나는 무엇에 미쳐 살고 있는 것일까? 역시 중도반단인 것 같아 허전하기만 하다.
그런데 무엇에 미치는 것을 건강에 안 좋다, 오래 못 산다, 괴퍅하다. . .
등등의 이유로 몸사리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미친다는 건 상궤를 벗어나 힘든 삶이 되고 주변을 불안케 하는 면이 많아 내키지 않아 하는 것이다.
헌데 생명이란 무언가 가치있는 일에 미쳐야만 그 값어치를 다 하는 게 아닐까!
심신이 안락하게 그날이 그날로 10년이 간들, 100년이 간들 편하게만 살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스의 유명한 문인"카잔챠키스"는 어떤 노인네가 나무를 심으며
<앞으로 이 나무와 함께 10년을 더 살려는 징표로 심는다!>라는 말을 듣고는
<나는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심정으로 오늘을 산다!>라 하지 않았던가!
무엇에 미쳐 <내일 죽을 듯이 오늘을 열심히 사는 모습>이야말로 의미있는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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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갈 선생이 집무실로 쓰던 건물이 지금은 외래인 숙박시설로 단장 중!
민병갈 선생은 1921년 미국 펜실바니아 주에서 출생, 본명은 Carl Ferris Miller
(이름이 - er로 끝나는 것으로 보아 유태계미국인일 것이다)
1945년 미해군 통역장교로 한국에 입국, 그후 한국이 좋아
한국은행, 증권회사 등에서 근무하다 1979년에에 완전 한국으로 귀화.
1962년부터 천리포 수목원 조성에 힘쓰다 2002년 향년81세로 별세.
한국사랑이 우리보다 더했다! 그가 여초와 함께 쌍용증권에 근무할 적에
필자도 몇 번 만나적이 있는 증권투자의 귀재로 거기서 번돈을 모두 수목원조성에 쏟아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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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을 한 시간 가까이 둘러보고 이런델 와서 한 두어달 조용히 파묻혀 글이나 쓰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일어 돈 계산을 해보니, 하루 5만원 씩 한달이면 방값만 150만원. . .
한달 받는 국민연금은 50만원, 감당이 불감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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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초와 관해, 그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잔잔하기가 명경알 같다. 그만치 날씨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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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오랜만에 보는 바다풍광에 넋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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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을 둘러보고 나오는 동문들의 구부정한 모습들이 초로를 넘어 중로로 접어든다는 느낌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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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횟집의 점심, 대하, 꽃게탕, 전어구이에다. . . .
김00 동문이 양주 한 병을 가져와, 감기 때문에 술 안 마시겠다고 작심한 범초가 또 대취하는
빌미를 주었으니 그 아니 감사한가! 막걸리에 양주 타고 소주에다 맥주 타 폭탄주 . . .청탁을 가리지 않으니
취기가 금방 올라 앞에 앉은 강00 여사(입학동기 195명중 여성동문이 두명, 그중 한분)에게
약속했던 별호를 지어주었으니,
이름하여 <求也> 라!
백석 시인이 자신의 애인별호를 <자야 子夜>라 한데서 감을 잡았으나
<밤夜>를 넣기는 뭣해서, 이름자 중 <求>를 따고 어조사 <也>를 넣어
<무엇인가 구하고 또 구하는>, 정성이 갸륵한 여인상을 나타내고자 했다.
돈독한 "크리스챤"이니 <구하고 또 구하리라!> <기도하고 또 기도하리라!>
일맥상통하질 않는가! 또한 부르기 쉽고. . . .
앞으로 강00 님을 <구야>라 부르시기를! 동문들에게 선포했다.
본인은 좀 뜨아한 표정이나 자꾸만 부르다보면 좋아질 것이외다!
막 횟집에서 나와 거나하게 취한 모습, 그래도 다들 단정하질 않은가!
좌우 양쪽 덩치들은 나의 후임동기회장으로 기금모으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동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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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해변 정취는 복잡하지 않아 바람 한결 시원하고
잔잔한 다이몬드 파문을 일으키는 파도는 은빛으로 다가오고. . .
이웃 아낙네들 복분자주 한 잔 얻어마시고
농짓거리 한 마디하고 떠나는 길손
손들어 답례한다!
할미바위 할배바위 날 오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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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지 해변의 "오션월드"송림 속 "테라스"는 음주방담하기 딱 좋은 곳이나 시간이 없으니. . .
맨 왼쪽 앞이 <구야>님!
求也秋心은 如春香香이요 (구야님의 추심은 춘향의 향기를 닮았고)
凡楚酩酊은 求晩秋情이라!( 범초의 취한 마음은 만추의 정을 그리노라!)
사랑도 했다 미워도 했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
소낙비 사랑에는 한없이 웃고
미움이 서릴 때는 너털 웃음 웃으며
지나온 기나긴 세월은 돌지 않는 풍차여!
우리 세대, 참 일도 많이 했고 애환도 많았다.
망망대해 굽이쳐 흐르는 서해대교,
사통팔달 고속도로! 서산 간척지 지평을 넘고 . . .
그게 다 우리 당대의 피땀 어린 징표가 아니던가!
이리 치이고 저리 볶이고, 이제 나이 들어 골병든 몸동아리
돌지 않는 풍차로다!
돌고도는 물레방아 부럽기도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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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을 볕 한 나절은 꿈처럼 흘러갔다!
봄가을 대학동기 야유회는 회비가 없다.
범초가 1990년대 2년간 동기회장을 하며 동기들을 닥달질하여 모아놓은(범초 임기중 1억원을 모음)
기금이 2억원 가까이 되어 그 돈으로 일찍 고인이 된 자식들 대학까지 장학금, 경조사 비용,
야유회 비용으로 쓰기 때문이다. 당시 기금 미처 못내 나한테 욕 얻어먹은 친구들이 부지기수!
그러나 필경 모두 협조를 잘 해준 덕에 이제 우리는 이렇게 놀러 다니기가 수월해 진 것 아닌가!
범초가 일생일대 잘한 일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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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초.
첫댓글 범초님 잘 보고 갑니다. 좋은데 다녀오셨군요.
다 보라매 같은 분들의 덕분이지요!
하루의 짧은 나들이시지만 선생님의 삶이 녹아든 정취가 확연히 느껴집니다. 건강이 더 좋아지셔서 더 많은 활동하시고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좋은 글 변함없이 이어 주시길 기대합니다.
한길님, 오랜만입니다. 오래 묵은 친구들이라 웬만한 허물은 그냥 묻혀버린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와 멋쟁이셔요.. 인생은 이렇게 즐겁게 살아 한다는 것 깨닫는 오후입니다. 행복하세요^^ 황혼의 아름다움이 물들어 가는 가을입니다^^
누구나 다 가끔은 즐거운 때가 있겠지요! 한 세상 살아보니, 어쩜 욕망(욕심)이 적을수록 즐거운 시간이 많은 것 같아요!
마지막 사진, 완전히 빠~알갛게 물 들이지 못하고 아직은 누런색이 희끗희끗 남아 있는 가을잎도 보기에 좋아 보입니다~~~~^^*
이런 자연 속에 살 날을 기다리는 범초 인생입니다!
범초님의 글과 하시는 일은 모두 모범답안 같아요, 너무 멋지고 통쾌하고 글은 유려하고 인생의 깊은 맛을 오롯이 느껴져서 정감이 절로 솟습니다,고맙고 감사한마음 가득입니다, 늘 건강 잘 지키시길 빕니다~
수향님, 오랜만입니다. 인생의 멋과 맛을, 이 범초가 제대로 알고 사는 것인지. . .노력은 합니다만,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아서. . . .!
우리나라 최고의 지식인으로서 대한민국을 발전시키는데 일조를 하셨을 동기분들 이실 겁니다. 치열하게 살아오신 범초님의 앞날은 건강하시고 평안하고 여유로운 삶이 되셨으면 합니다. *^^*
많이 아는 것 같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아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을 때도 많아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