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김택근 선생님
우리의 전통무용의 역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민간신앙과 함께 자연과 더불어 함께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바와 같이 무악에 기예가 뛰어난 민족으로써 그 맥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으며 모든 문화의 모태가 종교적 의식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우리 제주 무용의 원류를 찾는다면 제주의 토속적인 무속신앙에서 제의식 절차상의 무당들의 굿을 진행하는 과정의 춤사위를 무용의 시조라 할수 있겠다
제주의 무용은 무속속에서 그 영향을 받았다 할 수 있으며 굿제의식상에 신을 좌정시키고, 신을 즐겁게 하여 인간의 안녕과 지역의 평안을 기원하는 굿절차 상의 춤사위들을 엿볼 수 있다 ,
이처럼 무용이야말로 인간의 사상과 느낀 감정을 신체에 결합시켜 육체를 통하여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창작예술이며 다른 분야의 예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과 자연의 순리 속에 융화시키는데 밑거름이 되어왔다
제주무용의 역사를 살펴보면 1956년 10월 23일 신성여자중학교에서 문총제주도지부가 결성되면서 문총산하에 무용분과가 분류되어 조직되었고, 무용분과위원으로 (고) 송근우 선생(제주여고 무용교사) 취임되었다, 그러나 제주문총 자체가 운영상 매우 열악하여 문총주최 "제주문화재가 1958년 제1회부터 제3회까지 도내에서 무용분과를 비롯한 각 분과마다 주관이 되어 열려 왔으나1960년 제3회로 그 맥이 끈기는 아픔을 맞게 된다,
그 이후 1962년 5월17일에는" 5,16 제1주년 기념" 경축행사로 각 예술분야에 종사하는 도내 예술인들이 주관이 되어 행사를 열었는데 무용분과는 제주여자고등학교 학생무용부원들이 출연한 가운데 무용공연을 시초로 제주무용예술의 힘겨운 태동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64년에 제주여자중고등학교 무용단이 정식창단부터 무용의 불모지인 제주도에 무용인구 저변확대와 제주민속예술의 전승보급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는데 그 당시 제주여자고등학교 무용교사로 재직하던 (고)송근우선생이 본 도에 무용단이 필요성을 느끼고 재학생을 대상으로 "제주도민속예술단"을 구성하여 무용인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고 그 당시 단원수는 20명으로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을 기본으로 하여 작품을 구성하여 제주민속무용을 체계적으로 지도 육성하게 된다.
"제주민속예술단"은 제주여자중·고교 재학생으로 구성되었지만 그 활동 영역은 도, 내외 문화예술 행사에 도를 대표하는 무용단으로 활동을 하게 된다.
그 이후 1964년도에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제주도 대표팀으로 제주도의 토속적 생활상인 해녀들이 바다에 나가 작업하는 과정을 무용극화한 『해녀놀이』작품으로 출연하여 장려상을 수상하였고, 1965년도에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입춘굿놀이, 해녀놀이 등 2개작품을 구성하여 다시 장려상을 수상하였으며 , 1966도에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는 제주의 토속적인 무속신앙의 제의식 절차를 무용화한 『세경놀이』가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하였으며, 매해마다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제주도 대표로 참가하여 오는 동안 기량이 향상되어 1967년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는 제주의 전통무속설화를 무용극화한 『영감놀이』작품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제주도를 대표하는 무용단체로서 본 대회에 참가해 오는 동안 안무지도를 맡아온 (고)송근우에게 문화상 및 제15회 향토문화 공로상과 개인연기상으로는 고진숙, 박영희, 양성옥, 김희숙씨가 연기상을 수상한바 있다. 또한 1970년도 3회에 걸쳐 서울에서 개최되는 아세아 국제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여 모두 최고상을 휩쓸었고 그 뿐만이 아니라 제주도를 대표하는 예술사절단으로써 해외초청공연으로 베네즈엘라 정부초청공연등 도내,외 크고 작은 행사에 참가해오는 동안 총480여 회의 공연활동실적을 남겨 제주 무용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기게 된다
그 이후 1972년도에는 사설단체로는 처음으로『인당 무용단』이 창단을 보게되는데 단장에는 의사 출신인 (고)고수선 씨가 사제를 털어 무용단을 조직하게 된다,
사무실 소재지는 일도1동 (구,운주당) 에 사무실과 연습실(50평)을 마련하여 20명의 무용단원으로 창단을 보게된다
그 당시 무용지도에는 제주여자고등학교 무용교사로 재직하고 있던 (고) 송근우선생이 맡아 해녀놀이, 비바리춤,(정인수 구성) 등 무용작품을 지도하여 공연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 무용단은 도내 민간단체로써는 유일한 무용공연단체로써 도내 한라문화제등에 출연하여 제주 민속예술의 우수성을 내외로 선양하는데 크게 공헌하여 왔다.
그 이후1974년도에 인당무용단 단장인(고) 고수선씨가 한국국악협회제주도지부 중앙인준을 받아 초대 지부장에 추대되고 국악의 불모지인 본 도에 국악의 전승보급에 진력하게 되고 13년 동안 국악(전통무용)후진양성에 부단한 노력을 하여 왔다.
그리고 1975년부터 제주학생종합예술제가 개최되어 학교무용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 왔으나 1976년도에 제2회로 그 막을 내리는 등 학교무용의 저변확대에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제13회 전국소년체육대회시에 연합매스게임의 성공적 추진으로 제주무용의 획기적인 관심과 호응속에 제주민속예술을 재 궤도에 끌러 올려한 한다는 도내문화예술인들의 결의와 각오를 다지는 계기를 맞기도 한다.
이와같은 무용의 저변확대와 전승보급에 걸림돌은 전문공연장이 없어 종합체육시설인 제주시민회관과 소극장 규모인 학생회관이 도내 공연장을 대표하는 열악한 환경속에서 공연단체 들이 작품활동뿐만 아니라 도외 공연단체의 공연유치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는 등 공연단체의 창작활동 및 문화예술 발전에 걸림돌이 되어왔다
그 후 도내 무용학원이 개설되면서 학원활동을 통한 소규모 공연단체가 하나 둘 조직되는데 김희숙무용학원내에 "김희숙무용단"과 김정숙무용학원내에 "김정숙무용단," 국악협회 회원들로 조직된 소규모 무용단체인 "한라민속예술단,"등이 조직되어 도내 행사등에서 공연활동을 해왔다.
이처럼 무용에 대한 관심도가 저조한 상태에서 소규모 공연단체 활동을 통한 새 활로를 모색하는 계기가 마련되는데 1985년 9월 16일 관립예술단체인 "제주시립민속예술단"이 도내 예술인들의 관심 속에 뜻깊은 창단을 보게된다.
그 당시 단장에는 강창수 ( 전제주시 부시장)이고 민속예술단 구성에는 3개단(무용단, 무속단, 민요단)에 상임총지휘자는 김택근, 무용단상임안무장에 김희숙. 안무장에 김현영, 무용단원에는 고은숙등 15명으로 구성되었고 무속단에는 지방인간문화재인 (고) 안사인 등 11명 ,민요단 강순녀 4명등 총정원 30명으로 위촉되어 1985년 12월 12일 2회에 걸쳐 제주시민회관에서 창단기념공연으로 새 출범을 하게 된다.
그 당시 발표작품으로는 김택근 (상임 총지휘) 구성 및 연출, 그리고 김희숙( 상임단무장 )무용안무로 궁중무, 비바리, 해녀놀이, 부채춤을 선보였고 민요에는 오돌또기, 해녀놀이, 맷돌노래, 봉지가등 제주전통민요와 지방인간문화재로 지정보호되는 영감놀이와 삼승굿놀이, 등과 제주 최초로 제주굿의 굿의식 절차에서 나오는 독특한 가락과 장단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연물놀이 등이 선보여 1,200여명의 관중을 매료시켰다.
그 후1986년 4월29일에 제2회 정기공연이 제주시민회관에서 영감놀이와 허수아비등 무속을 바탕으로한 창작무용이 발표되었고, 민속놀이에는 삼공맞이굿놀이 , 민요에는 영주십경가, 방애소리, 망건노래, 등이 제주전통 민속예술은 무대에 선을 보이는 등 제주 전통민속을 발굴 전승하는 값진 무대를 마련하였으나 제주시립민속예술단으로써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고별무대가 된다.
그러나 관립예술단체인 제주시립민속예술단은 1986년 7월30일부터 10월30일까지 3개월간 제주향토야시장 공연,등 도내,외 크고 작은 행사에 참가해 오는 동안148회의 공연활동으로 제주민속예술을 발굴 전승하는 요람으로써의 역할과 공헌을 해 주었다.
그 이후 1987년에 6월15일 제주시립민속예술단이 모체가 되는 도 산하 단체인 재단법인 제주도민속예술단이 새로운 창단을 보게되는데 이 공연단체는 88서울올림픽을 겨냥한 공연단으로써 4개 시,군이 공동출자로 창단을 하게된다.
이 재단법인 제주도민속예술단은 이사장및 단장에 박부찬 (전 제주도부지사) 이사에는 전창수 (전 제주도 기획관리실장), 김창진 (전 제주시장), 현치방 (전 서귀포시장), 황인서(전 북제주군수), 김태환 (전 남제주군수) 등이 참여한 가운데 무용부, 민요부, 놀이부, 3개분야로 구성되었고 상임총지휘자에 김택근, 안무장에 김희숙, 단원으로는 강연숙등 16명으로 출범을 시작된다
이 재단법인 제주도민속예술단은 1987년 8월15일 로얄호텔 대연회장에서 창단공연을 시작으로 하여 전국민속예술제 개막축하공연,특히 향토민속예술을 야간관광자원화의 일환인 '상설공연장 이 1988년 4월30일부터 9월30일까지 5개월간 제주시 연동소재 동아생명 문화센타에서 운영되어 왔고 ,1989년 3월16일부터 11월30일까지(7개월간) 남제주군 표선읍 "제주민속촌" 상설공연 등을 갖는 등 1987년부터 3년동안 123회의 공연활동으로 제주 고유민속예술을 전승보급하고 도 내,외에 널리 선양하는 문화사절단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오는 등 제주무용의 탄탄한 기반을 다져온 전문무용단체로 크게 공헌하여 왔다
그 이후 도, 시,군의 부담재원등 열악한 제정으로 운영되던 재단법인 제주도민속예술단은 지난 1989년 1월10일 제주도 산하 관립단체로 거듭나는 "제주도립민속예술단" 설치조례가 공포되고 1990년 3월2일 3개부 (무용부, 민요부, 놀이부) 정원 40명의 제주도립민속예술단의 창단을 보게되는데 총지휘자에 김택근 ,안무자에 김희숙 ,단원 50명 정원으로 구성된다
이와같이 관립단체인 제주도립민속예술단체의 탄생은 88서울 올림픽 성화기착지로 전 세계로 널리 알려졌고 그 후 전 러시아 고르바쵸브대통령등 세계정상들이 즐겨찾는 제주도가 이제는 "평화의 섬"으로 또는 세계 민속연구학자들이 두루 다녀가면서 "민속의 보고"의 섬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제주도가 국제관광의 명소로 발돋음과 동시에 공연예술에 대한 관심 또한 크게 부각되어 나타내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지역적인 특성을 고려하여 제주 고유민속예술의 사장을 막고 제주 고유의 민속예술을 부가가치가 높은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고 무대예술로 승화시켜 전승 보급을 해야한다는 여론과 함께 시급하고 매우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었다
이처럼 어려운 지방여건속에서도 1987년7월 15일에는 초, 중,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하여 무용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학교무용연구회가 발족되고 이 무용연구회는 시, 군 교육청 및 교육위원회의 협조와 기금으로 운영하게 되는데 1988년 7월 30일부터 3일간 중앙강사( 연세대학교 김정녀, 민속놀이 제정위원 이종만선생 ) 등을 초빙하여 학교무용의 기초와 한국무용을 체조화하여 보급하기 위한 '덩덕쿵 체조" 를 연수하는 등 일선교사를 대상으로 연수하고 학교무용의 보급 장려하는 차원에서 매년 방학기를 이용하여 실시해 오고 있다
이 "학교무용연구회"는 시,군 교육청 관할에 각각 1명의 회장을 두고 도 전체를 학교무용 교육활성화의 산실로 부단한 노력과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1988년 2월5일에는 제주 무용계를 이끄는 협회로써의 기능보다 소규모 무용동호인 모임에 그치는 유명무실한 제주도무용협회에서 한국무용협회 제주도지회로 중앙인준을 얻기위해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게 되는데 위원장에 이창훈, 부위원장에 이연심 김희숙, 감사에 차영숙, 등으로 등록인준을 상정하여 1989년 10월27일 한국무용협회 제주도지회 설립승인을 얻게 되고 초대지회장에 이창훈, 부지회장에 이연심,김희숙, 한국무용분과에 김재희, 현대무용분과 및 총무에 김효정 등이 추대된다
한국무용협회 제주도지회 인준과 더불어 무용저변확대를 위한 활발한 활동을 펼치게 되는데 그 해 첫 사업으로 중견무용인 초청공연이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이루어 졌는데 중앙 무용인으로서 무용협회 이사장 조흥동을 비롯하여 조승미,이준규, 이현자, 최희선,김문숙과 서울에서 활동중인 강지희, 이유미가 특별 출연했고 제주도민속예술단원들과 합동공연으로 개최되었다.
1990년 1월 제주도교육청 주최로 제1회 교원예술제가 전국에서는처음으로 개최되었는데 무용부문에는 도내 초, 중 고교 교사 25명이 출연하여 한국무용, 현대무용을 선보여 학교무용의 활성화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1991년 2월25일에는 서귀포시 프린스호텔에서 전국무용평론가 및 무용인 5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전국무용평론가 세미나" 개최하여 무용실기와 이론에 대한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강구하는 등 무용 활성화를 다졌고, 그해 3월에는 부산여자대학교 무용과 출신으로 구성된 "하야로비"현대무용단이 이어졌으며 6월에는 조승미발레단 제주초청공연, 매년마다 창작무용제 개최, 전국무용제참가,(92년: 장려상 수상 , 94년: 장려상 수상) 1991년 5월에는 김백봉무용단 제주초청공연,1992년 12월 22일에 "춤의해" 폐막제 제주공연, 등을 기획 추진되었고, 1993년도에는 한국무용협회 제주도지회 제2대지회장에 김희숙이 취임되면서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재임하는 동안 매해마다 -여름야외 이벤트"도민과의 만남"공연을 해변공연장에서 실시하였고 -1994년 12월 27일 고인이 된 제주무용계의 선구자였던 (고) 송근우선생"추모공연",
-1995년부터 2000년까지 한여름밤의 해변축제 초청공연,등을 펼치는 등 지방무용협회의 활성화 및 무용의 저변확대에 크게 기여해 왔다
이 뿐만이 아니라 1988년 서울올림픽 성화도착 공개행사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제주여고의 고,양,부 삼신을 소재로 한 "삼성신화"와 중앙여고와 인화초등학교의 "밭밟는 노래," 제주농고의 "멸치후리는 놀이," 제주여상의 "해녀놀이," 제주상고의 "방앗돌 굴리는 놀이"와 인간문화재인 (고) 안사인을 중심으로 한 "영감놀이" 등 제주의 토속적인 민속예술을 체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어 되었고 특히 1988년 8월 25일에는 공연, 전시단체의 창작활동의 새로운 산실이 될 제주도문예회관의 개관은 지방문화예술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된다.
제주도문예회관이 개관과 더불어 도내 무용학원 중심의 무용단들이 속속 창단을 보게 되는데 그 중 "한양무용단"(대표; 강금숙 ,예술감독: 이창훈) "예지무용단" (대표: 김정희), 제주발레스탶 무용단 (대표: 정미영)" 백록민속예술단"(대표: 한춘자) "제주어멍무용단" (대표:김정순) "전통어멍무용단"(대표 강인생) 등이 창단과 더불어 활발한 공연활동을 펼치므로써 무용의 활성화와 저변확대에 크게 공헌하게 된다
또한 제주도내 무용계의 유일한 관립단체인 "제주도립민속예술단" 도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되는데 1997년 9월 18일 "제주도립민속예술단"에서 "제주도립예술단"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예술단 구성 또한 3개부(무용부, 놀이부, 민요부)에서 3개단 (민속무용단, 민속합주단, 민속합창단 )으로 하고 정원만도 50명 정원에서 150명(비상임:30명 포함) 정원으로하는 종합예술단으로써의 기능을 갖춘 대폭적인 확대 개편이 이루워 졌는데 예술감독에는 조영배, 안무자에는 김희숙이 선임 위촉되고 1차로 민속무용단 50명 정원으로 구성되어 재출범을 하게 된다 .
그 이후 2000년 2월에는 제주도립예술단 2대 예술감독에 김기원 2대 상임안무자에 김정학이 위촉되어 현재 무용단 운영과 안무지도에 임하고 있다.
이 관립단체인 "제주도립예술단"으로 확대 개편이전 1988년8월30일 창단공연 "생불화(안무: 김희숙, 연출: 이창훈, 음악: 조영배) 를 발표하였는데 이 작품지도에는 한국무용협회 조흥동 이사장이 직접 담당하여 주어 작품의 질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었고 작품제작비만 하더라도 2천여만원이 무용작품제작에 투입하는 등은 전례가 없는 획기적인 지원이 있었으며 대성황을 이룬 가운데 제주무용의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
이 창단공연과 더불어 국, 내외 공연 또한 빈번하게 이루어졌는데 인도네시아 발리주 초청공연을 시작으로 -일본관광 홍보공연, -전국시, 도립무용단 공연(국립중앙극장), -일본 북해도 눈꽃축제초청공연, -아.태영화제 제주홍보공연, 중국해남성 건성10주년 초청공연 등 지금까지 정기공연 개발 작품수만도 45개 작품과 343회의 공연실적을 올리는 등 제주도를 대표하는 예술사절단으로써의 역할로 독특한 제주민속예술의 발굴전승과 그 우수성을 국,내외로 선양하는데 크게 기여해 오는 등 제주무용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는데 큰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다.
제주도문예회관이 개관과 더불어 국내,외 전문무용단체들이 속속 제주공연에 초청되었는데 제주도문화진흥원에서 주최가 되어 초청된 무용단체로는
-1988년 9월29일에는 문예회관 개관기념공연으로 독일 칼스루헤 국립발레단 초청공연을 시작으로
-1989년12월4일부터 2일간 88서울예술단 무용" 땅의소리 춤"
-1990년 4월25일부터 2일간 국립발레단 "카르멘"
-1990년 6월 29일 무용극" 그 하늘 그 북소리"
-1991년 8월 2일부터 2일간 " 하계예술캠프 무용공연"
-1992년 4월 21일 국립발레단 " 돈키호테"
-1993년 6월 26일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
-1994년 8월 9일 국립국악원 " 우리가락 큰잔치"
-1994년 12월 5일 인간문화재 "이동안 전통무용 발표회"
-1995년 5월 20일 국립발레단 " 까르미나 브라나"
-1995년 12월 3일 광주시립무용단 " 장희빈 " (발레)
-1997년 9월 30일 국립무용단 " 오셀로 "
-1998년 11월 4일 중국예술단 초청공연
-1999년 11월 10일 국립발레단 " 돈키호테"
-2000년 5월 26일 대구시립무용단 교류 합동공연
-2000년 10월 18일 중국동방가무단 제주초청공연 등이
제주에서 초청공연으로 유치하여 제주도민들에게 무용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관심도를 제고시키는데 견인차 역할을 해 주는 등 제주무용의 활성화를 도모하는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그외에도 도내 무용단인 한양무용단, 예지무용단, 제주발레스탶무용단 등은 매해마다 정기발표회를 갖는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이와같은 제주무용의 숨가쁜 역경의 발자취는 도내 무용인들의 피나는 노력과 창의적인 잠재력이 소산이며 제주도가 국제적인 관광지로 부상하려는 도민여러분의 각별한 격려와 관심속에 새로운 문화예술 창달의 값진 밑거름이며 소중한 문화자원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문헌발췌
- 제주도지 ( 제6절 무용편)-319 p
- 국악협회 문건 (1976)
- (고) 송근우 선생 이력서및 활동공적
- 제주시립민속예술단 연혁
- 재단법인 제주도민속예술단 창단 문건
- 제주도립민속예술단 창단 문건
- 제주도립예술단 창단 문건 등